| 이 글은 부산에 사시는 양영숙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양영숙님은 2002년2월22일부터 3월1일까지 8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앙코르/아유타야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안녕하십니까? 캄보디아 여행을 함께 한 부산의 양영숙입니다. 지난 캄보디아 여행은 참 보람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다른 패키지 여행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수준있는 여행이었으므로 마음에 큰 양식이 되어, 제 자신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듯한 기분입니다.
이는 여행사측의 빈틈없는 배려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캄보디아의 문화를 볼 수 있도록 한 섬세한 프로그램, 또한 현지 정부장님의 성실한 가이드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건국대박물관 채 과장님의 기획도 좋으셨구요. 이렇게 좋으신 분들을 만나뵙게 되어 참 기쁩니다. 이 좋은 여행에 나를 불러준 내 친구 김선옥에게도 감사 드리고요.
캄보디아 여행기를 써서 보냅니다. 졸필이지만 여행도 정리할 겸, 같이 다녀 오신분들에게 안부도 전할 겸 해서입니다. 건국대 박물관에서 매월 강의와 국내 답사여행에도 참석하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이렇게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갖게 되는 군요.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다른 여행에서 또 뵙기를 바랍니다.
| | | | 2월21일 여행출발 하루 전 | | | | 내일 아침 8시까지 인천공항에 가기 위해선 오늘 오후에 서울로 출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방을 정리하는데 이번 여행의 동행을 권유했던 서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햇반 하고 컵라면 같은 거 준비했니? 김하고 깻잎 캔 같은 것 말야." 나는 "물론이지. 한 보따리 사서 넣었어." 하고 대답했다. 지난번 통화 때 선옥이 말이 인도에 갔는데 음식향이 독특해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 면서 컵라면 따위를 준비하라고 당부했었다. 얘기 끝에 "난 요새 살이 쪄서 미치겠다. 물만 마셔도 살이 되는 거 있지?" 하는 내 말에 친구는 서슴없이 "그럼 준비한 햇반, 컵라면 가져가지마." 라고 했다. "향때문에 음식 못 먹는다며?" "그러니까 굶어!" 나는 바로 그거다 하면서 준비한 걸 모두 꺼냈다. 그래 이 참에 살을 빼자! | | | | 2월22일 여행 첫날 | | | | 아침 8시 일행들이 모두 공항에 모였다. 스스로 해야 할 절차가 없으니 출국은 너무나 쉬웠다. 10시 30분 비행기는 방콕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제부터 5시간 반 동안 우리는 구름 위를 날아갈 것이다. 타이항공은 대단히 쾌적하고 스튜어디스들 또한 이국적이었다. 캄보디아 여행 준비는 석달이 넘게 진행되었다. 그간 틈틈이 여행사에서 보내준 안내문들은 너무도 꼼꼼하고 세심해서 여행의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 주었었다. 실은 캄보디아 여행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내 여행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왜 하필 캄보디아니?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얼마든지 있는데-", "거기 위험한 나라아니니?" 등등. 하긴 많은 여행을 해보지 않은 나로선 미국이나 유럽이나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나라를 우선 여행지로 꼽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날아온 수많은 안내문들을 읽으면서, 여행사의 배려를 알 수 있었고 드디어 앙코르 와트는 가장 가 보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다. 11시 50분, 비프 당근 호박 빵 샐러드 케이크 등으로 기내 점심을 먹고 한잠 자고 나니 4시 방콕 돈무앙 공항 도착. 캄보디아의 포첸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7시에 있었다. 3시간 동안 공항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처음으로 발 마사지를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젊은 남녀들이 부지런히 외국인들의 발을 마사지해 주고 있었는데 얼굴들은 모두 무표정한 상태였다. 밤 9시에 캄보디아 프놈펜의 포첸톤 공항에 도착했다. 그 곳 시간은 7시였다. 씨엠립에 도착하자 덴파레꽃 세송이로 만들어진 코사지를 한 개씩 주면서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덴파레는 우리나라에도 있는 난꽃인데 꽤 비싸지만 이 곳에선 국화로, 싱싱한 덴파레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한인이 6년간 운영해온 동방가든에서 된장국과 상추쌈으로 저녁을 먹고 Hotel Sofitel Cambodiana에서 여장을 풀었다. 6년을 캄보디아에서 살았다면 이 곳 내전의 끝무렵에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도 주인 아줌마는 살기 어떠냐는 내 질문에 "살 만 해요" 라고대답한다. 이 곳 현지 가이드 정세영 부장은 그보다 더 오래 여기 살면서 내전을 다 겪었다고 했다. 라면 한 개로 일주일을 살며 집안에 숨어 지낸 적도 있다고 했다. 과연 위험한 나라라고 할 만 하다. 그러나 외국에선 아직도 '한국'하면 위험한 나라라고 알고 있는 거나 뭐가 다르랴? | | | | 2월23일 여행 둘째날 | | | | 오전에 프놈펜에서 비행기를 타고 앙코르가 있는 씨엠립에 도착했다. 우리는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앙코르를 향해 달린다. 씨엠립은 프놈펜과의 문화차이가 20년이나 날 정도로 외지고 한적한 곳이었다. 부채살 같은, 잎이 무성한 긍아옥과 목련을 닮은 흰 꽃을 무수히 단 가로수들이 좌우로 늘어져 있었는데 보기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나무들'처럼 보였다. 이곳은 6개월 건기에 6개월 우기가있는데 지금이 건기의 막바지에 있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씨엠립에서 앙코르 유적지까지는 7km데 일본이 무료로 포장해 주었다는 아스팔트 위로 노란 중앙선이 그려져 있었다. 그간에는 인도와 차도의 구분없이 사람과 차가 잘 비켜가며 살았는데, 중앙선이 있고 부터는 오히려 교통사고가 많아졌다는 넌센스가 재미있다. 사람들에게 중앙선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게 아닌가 싶었다. 앙코르 유적지 입구에서 3일동안 달고 다닐 이름표에 붙일 사진을 한사람씩 찍는데 사진사가 '김치'를 연발하며 웃기를 종용한다. 한국 사람을 많이겪은 듯 싶다. 우리는 입장권을 만들고 나서 다시 버스로 숙소인 City Royal Hotel에 돌아왔다. 중식은 뷔페로 흰밥 볶음밥 각종고기 오이 당근 감자 고기국물에 두부완자탕등 먹을거리가 너무 풍부했다. 과일은 많았는데 파인애플 외에는 별로 맛이 없었다. 두 접시, 세 접시... 향때문에 못 먹어 살을 빼리라던 내 결심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나서는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앙코르와트로 향했다. 씨엠립에서는 썬블록크림을 바르고 바지를 입었다. 바지는 가이드의 명령(?)이었다. 70도 경사의 층계를 오르기 위함이란다. 얼마 안 있어 앞이 탁 트인 연못 앞에 도착했다. 한가운데 쭉 뻗은 247미터의 다리가 있고 좌우로 늪이 있는데 이것은 사원을 보호하는 해자라 한다. 다리끝에 푸른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아있는 세 개의 돌봉우리와 함께 좌우로 웅장한 돌 건축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수미산을 의미하는 도시 사원 앙코르와트이다.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찍고 왼쪽 해자 가장자리로 펼쳐있는 잔디위로 갔다. 이리로 가면 다섯개의 봉우리를 다 볼 수 있다. 앙코르와트가 찍힌 티셔츠나 책자를 팔러나온 어른, 어린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늘에 앉아 야자를 한통씩 빨아마시고 드디어 사원안으로 들어갔다. 다리 좌우엔 힌두교사원을 수호하는 조각으로 '나가(머리가 일곱개 달린 뱀으로 꼬리와 부채같은 코브라 목에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가 있어 사원을 수호하고 있다. 앙코르와트에는 신들이 살고, 최고 정상 지성소엔 절대자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바다 밖에서 살며 해자를 가운데 두고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평화의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를 구분한다. 우리가 죽음의 강을 건넌다는 말은 바로 이 해자를 두고 한 말 같다. 이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다섯개고 솟은 탑도 다섯개다. 앙코르 제국은 1441년에 멸망했으나 300여년간 숲속에 방치되어 인간의 관심밖에 있다가 1700년대에 프랑스인 앙리모어가 발견했다고 한다. 통로에 비슈느 신상과 절대자 앞에서 춤을 추던 천사들 즉 '압사라(Apsara)'들의 조각상들이 보인다. '나가'의 머리가 들려져 있고 몸통이 죽 늘어서 있다. 팔다리가 없는 사람, 걸인들이 구걸하는 모습도 보인다. 내란때 불구가 된 사람들인가보다. 이들에게 적선을 안 할 수 없는데 너무 많으니 볼때마다 베풀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참배로 좌우엔 검게 불탄 건물이 있어 도서관이라 하는데 정말 도서관이었는지는 믿겨지지 않는다. 두번째 문으로 들어서면 남 동 북 서로 회랑들이 길게 있는데 따라돌면서 벽면을 조각한 부조물을 감상하느라 어느 쪽이 동인지 서인지 모르고 가이드의 말에 귀기울이며 그저 따라다녔다. 전투장면, 서로 찔러 죽이고 진군하는 군인들, 기마병들, 활쏘는 모습들, 육박전의 처절한 장면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그 옛날 인도의 왕권 다툼에 의한 싸움이었다고 추측된다. 앙코르와트를 지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의식을 치르고 있는 부조도 있다. 전쟁에 승리하여 행진하는 모습, 수리야바르만 2세는 행진하는 군대중 가장 많은 15개의 파라솔밑에 코끼리를 타고 있다. 코끼리 코앞에 앉은 새가 '가루다', 가루다위에 서있는 인물이 비슈느신이다. 37개의 천국과 32개의 지옥을 표현한 부조물이 있다. 3단을 나뉘어 조각됐는데, 하단지옥에는 손발을 묶어 끌고 당기며, 동물이 물어뜯는 장면, 중간엔 사람들의 평화로운모습, 상단에는 천사들이 춤추는 천국, 중간에서 지옥에 있는 자들을 심판하다 도저히회개가 안 되는 사람을 다시 지옥으로 내려뜨리는 부조도 있다. 모든 생물은 우유의 바다에서 탄생한다. 비슈느신도 우유의 바다에 떠서 세상을 창조하고 보호하고 파괴한다고 힌두교는 믿고 있다. 동쪽회랑에는 맨 밑에 바다생물들의 부조가 있다. 서쪽회랑 '랑카의 전투장면'과 '라마야나' 배경의 부조가 이루어져있는데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랑카는 스리랑카니까. 2층벽에는 수 많은 압사라들이 늘어서있다. 3층에서 4층 지성소로 가는 계단은 거의 70도 경사고 계단 넓이도 발바닥 길이보다 짧아서 이 곳을 오르려면 게걸음으로 엎드려 기어 올라가야 하는데 그것은 신을 만나러 가는 인간은 신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는데 여기에도 1500개의 춤추는 압사라들이 보인다. 지성소는 우주 중심의 메루산(수미산), 절대자가 거주하는 곳 2층엔 4개의 신이 수영하던 수영장이 있다. 서쪽 태양의 일몰은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의 몸에 황금 도금한 것이 석양에 반사되어 다시 빛을 발하는 것은 사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한다. 등산을 열심히 하고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보고 나면 허전하고 내려올 일만 남은것 같은허탈감이 밀려온다. Jasmine restraunt에서 뷔페로 저녁을 먹으며 dinner show를 보았다. 젊은 남녀들의 고기잡는 춤, 농사짓는 춤, 나물뜯는 춤등, 이 나라의 민속을 보았고 압사라들의 춤을 보았다. 압사라들의 춤은 한쪽발을 바닥에서 떼지 않는 靜中動, 끊임없는 선의 움직임이었다.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침대에 누웠는데도 압사라의 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 | | | 2월24일 여행 세째날 | | | | 우리가 탄 1호차에는 공교롭게도 단 1명을 제외하고 가톨릭 신자들로 되어있어서 가는 도중 주일 미사 대신 사도예절을 드렸다. 달리는 차안에서 성가도 엄숙히 부르고. 맘속으론 이 행복한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도 드렸다. 오늘은 꿀렌 가는 날. 여전히 크메르루주군의 휘하에 있다는 곳이다. 좁은 길로 그들의 허락을 받아 10분 간격으로 차가 한대씩 들어갔다. 꿀렌산 강 상류에도 물이 다리까지 차는 바위에 새겨진 1000여개의 '링가(남근)'와 춤추는 압사라 조각이 물속으로 들여다 보여서 걸어들어가 만져보고 확인하였다. 약 2시간 달려 폭포지역에 이르렀다. 흐르는 물 밑으로 역시 링가와 압사라 조각이 보이며 바위 밑에는 2.5m의 폭포가 있고 사람들이 목욕을 즐기는 모습들이 보인다. 폭포근처에 여러 개의 지붕이 있는 평상들이 있는데 관광객들은 이곳을 빌려 점심을 먹는다. 우리는 준비해온 김밥과 잘 익은 김치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 여행사의 배려가 너무도 고맙다. 꿀렌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반테이스레이 사원을 보았다. 반테이스레이사원은 10C후반 앙코르 보다 300년 앞서 세워졌는데 조각이 뛰어나고 아름답다. 라젠드와 바르만 2세때 흰두교 파괴의 신 시바에게 받쳐진 사원으로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몰을 구경하기 위해 다시 앙코르 와트 사원 다리 앞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산책도 하고 해자 뚝에 앉아 앙코르를 바라보며 사색에 젖었다. 저 앙코르 건축을 위해 동원됐을 수많은 군중들 코끼리들 돌 다듬는 장면들, 저 높이 까지 어떻게 하나하나 들어 올렸을가?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여 저 엄청난 작품을 이루어 냈을까? 우리나라는 그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여러 가지 상념으로 한시간을 보냈다. 5시경 프놈바켕의 65m의 돌산을 오르고 나서 지성소까지 10개씩 된 5개의 계단을 오르니 멀리 저 아래 정글속에 파묻힌 앙코르가 눈에 들어 왔다. 많은 조각품들도 내전때 손상되고 요새로 사용되었던 관계로 지성소의 천정도 크게 부서져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구름이 끼어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New바이욘 식당에서 밥 야채볶음 신선로에 고기국이 나와서 저녁을 잘 먹었다. 이날 일행중 한 분이 생일이어서 여행사측이 꽃다발을 선물했고, 다 같이 생일축하 노래도 불렀다. 흐뭇한 인간관계가 너무 좋았다. | | | | 2월25일 여행 네째날 | | | | 가는길에 일본관광객이 탄 버스가 지나가는데 한글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글귀가 보여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가 탄 차에도 「아시아 bus와 함께 즐거운 여행을」이라 쓰여 있었다. 대형차들은 100% 한국에서 중고차를 들여온다니 그럴법도하다. 우리도 T셔츠나 잠바에 영문자가 새겨져 있을때 어디 다 알고 입는가? 앙코르 톰 남문에 서니 자야바르만 얼굴상이 사방에 조각되어 세계를 내려다 보고 있어 숙연해 지는데 그 옛날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양쪽으로 우유바다를 휘졌던 뱀을 들고 늘어선 부처들도 보이고... 옛날에 인구 100만이 이 도성에 살았다니. 정말 믿기 어렵다. 목조문은 썩어 없어졌다는데 예전에 죄를 지으면 발가락을 잘랐으므로 이 문에는 발가락이 있는 사람만 통과했다고 한다. 여기도 역시 해자가 있었고, 7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위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앙코르톰내에서는 바이욘사원을 가장 먼저 방문했다. 12C말에 건축된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사원군중 3대 하이라이트중의 하나다. 앙코르 와트와 규모로는 비교가 안되나 기본구조는 같아 보였다. 자야바르만 7세 얼굴이 조각되어 있고 216개의 보살상이 보인다. 황금탑은 도굴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보물이 묻혀 있다고 추측한다. 동쪽 방향은 숭배를 뜻한다. 입구 부분의 회랑에는 자야바르만 7세의 업적과 당대의 일상적인 삶이 기록되어 있다. 기둥엔 압사라가 새겨져 있고 입구엔 머리밑에 손을 고인 와불상이 있다. 모든 석축은 지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규칙적으로 쌓지 않고 엇갈리게 쌓았다. 벽화내용은 참 재미있게 그 당시 사람들의 일상이 그려져 있다. 화교병사들 남녀노소 가족단위, 나무열매, 새, 팝나무, 코코넛, 다람쥐, 크메르 병사들 화교쪽머리, 통돼지 굽는 모습, 노래, 음식, 애들 장난, 밀주, 차마시기, 이잡는 광경, 물건 상거래, 조는사람, 고기꼬치 굽는 사람, 생선파는 아줌마, 출산모습, 닭싸움, 통술, 개싸움, 씨름, 군인훈련모습, 창과 방패, 등 닦아 주는 모습. 다음에 가 본 곳은 바푸온사원이다.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바이욘사원 보다도 200년 앞서 건축된 것으로 파괴의 신 시바를 모시던곳이라 한다. 바푸온사원을 지나니 코끼리 테라스가 나온다. 자야바르만 7세는 코끼리 테라스에 문둥이 테라스까지 350m나 되는 연단을 만들고, 그 밑에는 코끼리 부조를 새기고, 그위에 왕의 목조 건물을 만들었다 한다. 하지만 현재 목조 건물은 다 없어진 상태다. 코끼리는 국력의 상징이었으며 가루다들이 떠 받들고 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어린이 병원을 설립했는데 그나 또는 그의 아들이 문둥병에 걸렸었다는 설이 있다. 위쪽엔 왕족의 화장터가 있다. 일반인은 풍장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탄 2호차가 고장이 나서 다들 내려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앞에 간 1호차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현지 기사에게 왜 이렇게 차가 고장이 났느냐고 물으니 기사 왈, "한국차는 좋은 찬데 무슨 말을 하느냐?" 해서 할 말을 잃었다. 중고차라도 좀 튼튼한 차를 수출해야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질 것 같다. 차가 고장난 것까지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프레아칸 사원 감상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위해 바친 사원으로 왕족이 살던 집이 있고 보검을 쥔 석상도 눈에 띈다. 건축물이 나무뿌리에 감기고 짓눌려 무너져 버린 기괴한 모습은 그야말로 세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실감나게 한다. 역시 자야바르만 7세에 건립된바이온 양식인데 그보다 먼저 세워진 듯. 해자, 도서관, 지성소가 있는데 지성소가 평지에 있다. 안으로 가면 허물어져 가는 폐허의 분위기로 금방 귀신이 나올 것 같다. 성벽을 감싸고 있는 나무뿌리들은 마치 큰 문어가 먹이를 감싸 쥐듯이 성벽 여기저기를 짓누르고 돌 틈으로 뿌리가 뱀머리처럼 삐져나오기도 했다. 불상, 링가와 요니(여성성기)도 보인다. | | | | 2월26일 여행 다섯째날 | | | | 1년에 6개월은 물에 잠기고 6개월은 물이 빠져서 1모작 밖에 안 된다는 톤레삽 호수로 출발했다. 수심이 12미터 이상이며, 물이 불면 서울의 13배 이상으로 넓어진단다. 울퉁불퉁한 뚝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수상족들이 너절하게 먼지속에서 살고 있는 호숫가 마을이다. 고약한 악취가 코를 찌르고 시궁창같이 썩은 물 위로 수상족들과 나룻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말이 수상족이지 집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사람의 손목같이 가늘어서 곧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물이 불어날 때도 바다처럼 파도가 들이치는게 아니라 수위만 점점 불어났다가 빠지기 때문에 가늘어도 괜찮단다. 다만 수위의 변화로 정착은 어렵고 자주 집을 들고 이사해야 된단다. 이 주민들은 베트남 전쟁시 피란나온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후 본국에서 받아주지 않아 그냥 눌러앉아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캄보디아인들이다. 우리는 분산해서 배를 타고 2km 달려나가 호수 중앙까지 갔다왔다. 애들이 구걸하고 있었으나 어느 한 아이에게만 줄 수 없어 그냥 포기했다. 재래시장에 들러 간단히 쇼핑하고 차오 프라야 식당에서 맛있는 뷔페를 먹었다. 찹쌀물떡, 찹쌀국화빵, 브로컬리, 양파, 옥수수볶음, 쌀국수. 모두 입에 맞는 것들이었다. 호텔에 돌아와 2시간동안 휴식. 오후 4시쯤 버스로 웨스트 메본 사원터로 향했다. 1000여년전에 만든 인공호수라니 그 때 사람들의 노고가 너무나 엄청나다. 한가운데 섬에 중앙 사원이 벼락으로 부서지고 터만 남아 있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일몰을 감상했다. 조그만 가게에서 한 소녀에게서 3불짜리 가방을 2불에 샀는데 조용히 웃으면서 내 손목에 팔찌를 끼워주었다. 나는 1불을 깎은 것이 너무 후회되고 그 소녀의 아름다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이름은 '썩 킴'이라는데 혹시 이후에 누구라도 그곳에 가는 분이 계시면 안부 좀 전해주세요. 며칠을 벼르다 결국 못갔던 야간 산책, 오늘은 드디어 나간다. 뚝뚝이(6인승)는 거래가 안 돼서 오토릭샤 여섯대로 밤거리를 달렸다. 도중에 한 과일가게에서 즉석 생과일 주스를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뚝뚝이 기사이름은 '씽' , 릭샤 기사이름은 '소피아' , 버스조수는 '떠' , 가이드 조수이름은 '싸른'. 모두 잘 웃고 순진해 보이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돌아올 때는 우리가 탔던 릭샤가 어느 것인지 몰라서 소피아를 목청껏 부르니 웃으며 자기를 알려왔다. 롤레이 사원 감상 800년대 초기, 왕의 어머니에게 바쳐진 사원인데 라테라이트(자주색 돌 이름)속에 풀들이 자라서 멀리서 보면 숲으로 보인다. 앙코르 와트 보다 3~400년 앞서 지었는데 여기저기 복원 중이었고 신축된 옆 현대 건물에는 스님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힘의 상징인 소 형상이 사원 좌우에 세워져 있었다. 타프롬 사원 감상
12~13세기에 걸쳐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사원. 입구엔 꽃길이 길게 나 있고 굵은 '나가'를 든 군인들의 형상이 있는데 사원 자체는 그냥 방치해 둔 상태였다.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툼 레이더' 의 촬영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초록색 공간이었으므로 비행기에서도 이 사원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안에 들어가면 길을 잃거나 질병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신의 세계라 불리워 졌으며 나무 뿌리 때문에 현재 복원 불가능하다는데 하여튼 장관이었다. 바콩 사원 감상 9세기 말 건물. 해자가 담장 안에 있는데 풀만 무성하다. 탑 속에 들어가 가슴을 치니 크게 공명이 되어 신기했다. 공명탑은 신문고 역할을 했고 통곡의 방이라고도 했는데 한맺힌 사람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그 옛날에는 3킬로미터까지 들렸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이 있고 코끼리 상들이 보이는 앙코르의 초기 유적지이다. 타케오 사원 감상 26일 오후, 거의 지친 몸으로 이 사원에 왔다. 이 사원에는 조각이나 글이 없었다. 사원은 길가에 있었으며 꼭대기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신선한 바람을 쏘였다. 왕족의 전용제사장이었는데, 미완성인 채 남아 있었다. 불상이나 지성소는 다른 사원과 같았고, 중앙에 가파른 계단이 80개나 나 있다. 이것은 시바신에게 바쳐진 것이라 한다. | | | | 2월27일 여행 여섯째날 | | | 아침에 시엠립 근교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그 학교에 한국에서 준비해간 학용품을 전달했다. 학교는 황폐한 목조건물이었으며 세 칸 쯤 되었고 어두컴컴한 속에서 양편으로 나누어 페트병 쓰러뜨리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여교장은 답사에서 "여러분같이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 때문에 이 직업을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되돌리곤 한다"고 말해 감명깊었다.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교사직 이지만, 사명감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이드 정세영 부장은 자기의 자녀를 더 나은 학교에 다니게 할 수도 있었지만, 외국인으로서 특권의식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이 학교에 넣었다고 했다. 참 존경스러운 분이다. 씨엠립에는 고등학교가 셋이 있고, 대학은 프놈펜 대학이 유일하다. 낙제제도가 있어 한 두 해 공부하다가 가능성이 안 보이면 그대로 밥벌이에 나선다고 한다. 캄보디아는문맹율이 67%나 되므로 글 광고보다는 그림 광고가 많았다. 우리 조계종에서 7만 불을 들여 건설했다는 다리도 건너 보았다. 오후에 쌍발 여객기로 프놈펜에 도착했다. 천정에서 시원한 습기가 내려와 에어컨을 대신했고 40여분동안 각종 음료수, 토스트, 바나나 등 간식도 나오고 쾌적했다. 프놈펜에선 그 악명높은 'Killing Field'의 현장을 보았다. 전체 800만 인구중에서 200만이 죽었다고 한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3년 6개월 간 공산정권이 들어서서 지식인, 지식인의 가족, 공무원, 교원 등을 부르조아라고 무조건 학살하여 구덩이나 강에 버렸다고 한다. 엄마가 절규하는 바로 앞에서 애기들을 나무에 부딪치게 하여 죽이는 그림은 정말 끔직했다. 고등학교 건물에 방방마다 일인실 감옥을 만들어 쇠고랑을 채우고 철침대에서 고문한 흔적도 역력하다. 애기 안고 있는 엄마 뒷머리에 나사못을 박는 모습, 여자를 벗겨 눕히고 집게로 유두를 끊어내는 모습, 여자의 하부에 전갈을 집어넣는 모습, 작두로 손을 자르는 모습, 학살된 시체를 새나 매들이 뜯어먹는 모습, 아, 그들도 인간일진대 얼마나 더 잔학해 질 수 있단 말인가! 가슴이 답답해옴을 어쩔 수 없었다. 1990년에 만든 위령탑에는 8000여 개의 유골과 그들의 옷이 진열돼 있었고 유골로 캄보디아 지도를 만들어 놓은 것도 있었다. 희생자들이 스스로 죄를 인정한 것처럼 죄수번호를 붙여 사진을 찍고 학살하였다고 한다. 바닥이 은으로 된 실버파고다를 관람했다. 다이아가 9594개나 박힌 금불상이 있는가 하면 건물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실버타일 바닥에도 앉아 보았다. 왕궁과 국립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앙코르에서 워낙 장엄한 사원들을 본 끝이라 놀라움은 별로 생기지 않았다 . 저녁식사후 프놈펜을 출발, 방콕 돈무앙 국제공항에 도착해 그랜드 호텔에 투숙했다. 16층에서 방콕시내를 내려다 보니 천상세계에 있는 듯 저 밑이 어지럽다. 오늘로 캄보디아 유적관람을 모두 마쳤다. 지난 며칠을 회고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 엄청난 사원들을 보건데 분명 한때는 강성한 국가였음이 틀림없을텐데 전쟁으로 모든 걸 날려 버렸다는게 너무 안타까웠다. 캄보디아인의 얼굴에선 자기 조상이 과거엔 엄청난 민족이었음을 자부하는 어떠한 표정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이 나라는 다시 일어날 만한 저력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었다. | | | | 2월28일 여행 일곱째날 | | | 전지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도시 아유타야로 출발했다. 아유타야는 차오프라야강 하류에 발달한 도시다. 우선 방파인을 방문했다. 방파인은 아유타야 남쪽에 있는 궁으로 호수 중앙에 자리하고 아유타야 시대 왕족의 별장으로 17세기에 세워졌다 한다. 이곳에선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을 접시모양에 담아 나올때 사라고 내민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중에 사진 주인을 알아 보는지, 내 얼굴을 남의 나라에 두고 올 수 없어 4불을 주고 샀다. 태국 현지가이드 노처녀 '앤'은 한국에 2개월 체류했다는데도, 우리말을 곧잘 한다. "앤"하고 부르면 고개를 돌리며, " 왜 불러"하고 예전 가요의 멜로디를 붙여 답한다. 예쁘다고 했더니, 그녀 말이 "당신은 피부가 좋아요"란다. 왓프란시산펫 사원, 왓야이차이 몽콘 등을 관람했으나, 앙코르와트와 앙코르 톰에서 느낀 감동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방콕으로 돌아와서는 버스와 배로 시내를 두루두루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곧 선거가 있는 모양이다. 입후보자들의 선전판이 나무나 전주 등에 부착되어 있었는데, 어느 곳이나 풀로 붙인 게 아니라 구멍을 내어 아래위로 기둥에 묶어 놓았다. 선전용지 때문에 아무때나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휘날리는 우리나라도 이것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로수에는 꽃들이 주렁주렁 피어있었고 저녁식사때가 되니 곳곳에 길거리 식당들이 들어서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나와서 외식하는 모습들이 정겹다. 이제 저녁을 먹고 돈무앙으로 나가 밤 비행기를 탄다. 밤12시 서서히 서울행 비행기가이륙하면서 이제 여행은 끝이 났다. 서울을 떠날때는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기대로 긴장했으나 지금 이 시간에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 한 가득 고여있음을 느낀다. 이곳을 여행했던 사람들 말은 코끼리쇼를 보았다거니 음란비디오를 보았다거니 하는것들이었는데 우린 얼마나 알찬 공부를 하고 왔는지 가슴이 뿌듯하다. 보다 업그레이드된 나를 느낀다. 학교에서 이 나라에 관한 공부란 그저 수박 겉핥기였다. 요즘 글로벌 세계를 지향하는 우리는 가까운 나라부터 차곡차곡 배워 나가야 할것이다. 지금 어린 학생들은 더 열심히 ------- 이렇게 값진 여행을 계획해 주신 박물관 채현식 과장님과- 꼼꼼하게 계획하며 편안히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테마세이투어 마경찬 사장님, 캄보디아 가이드, 성실히 뛰고 있는 정세영 부장님(사실 마사장님과 정세영부장의 성실한 설명은 곧 나의 지식이 되어 이제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해줄 자신이 생겼다.)등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는 마음 그지없다. 여행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렌다. 오늘따라 손목에 팔찌를 끼워주던 그 소녀 '썩 김' 이 자꾸 그립다. 다시 또 한번 살폿이 안아 주고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