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2월22일 | | | | 10시 30분에 캄보디아를 향한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해 16시10분 방콕에 도착하였다. 고대 이집트와 멕시코에서 "하늘을 닮은 전당"의 신전을 건설하였다는 사실은 이들 국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즉, 캄보디아의 '힌두교와 불교의 작은 땅'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에서도 "하늘을 닮은 전당"이 건설되었다. 역사가들은 고대 이집트와 멕시코, 그리고 앙코르와트 사이의 어떤 연관성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 나라들이 앙코르 신전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는게 대체적인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의 유물들은 독특한 특성을 갖춘 독창적인 예술작품이다. 비슈누와 시바를 숭배한 힌두교와 대승불교가 앙코르의 이 거대한 종교 건축을 이룩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선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이집트나 멕시코의 고대 유적과 앙코르와트와의 불연관성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첫날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숙박했다. | | | | 2월23일 | | 09시 45분 프놈펜 공항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비행기는 우리나라 50년대 프로펠라식으로 61명이 탈수 있는 경비행기였다. 이 비행기를 타고 10시 30분에 시엠립 공항에 도착하였다. 중식은 특별한 전골로 맛이 일품이었다. 캄보디아는 12시부터 3시까지는 전 국민의 오수 시간이란다. 크메루군과의 전쟁시에도 오수 시간에는 잔다는 것이다. 거리엔 사람이 없다. 이 나라의 대형차는 100%가 한국차이며, 차 전체가 우리 글자이다. 일본 관광객이 탄 차 뒤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씌인 영구차도 있었다. 호텔에서 2시 30분에 직선 길을 관광버스로 달렸는데, 무더운 날씨다. 길가에는 열대림들이 무성하였다. 종점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급히 꺾기어 지나면 위용의 직사각형 섬을 둘러싼 해자가 나타난다. 이곳은 종교적 의미가 있다. 힌두교 신화엔 세계의 중심에 메루산(수미산)이 있고, 그곳에 신이 살며 장상에는 절대자가 살고 있다. 이 해자(물)는 우주의 바다이다. 건너편 앙코르와트는 세계의 중심인 "메루산"을 뜻한다. 그러므로 해자를 건너갔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해자를 가로지른 섬 위에 푸른 숲으로 솟아나는 다섯 개의 높은 탑들이 강렬하고 강력한 피라미드의 뚜렷한 먼 윤곽을 뽐내고 있다. 앙코르와트였다. 지금까지 창조된 가장 거대한 돌 건축물 중의 하나다. 앙코르와트는 각각 안으로 포개진 다섯 개의 직사각형 울타리로 구성된다. 입구에서 해자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나가 뱀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앙코르와트는 뱀 숭배에 통째로 바쳐진 곳으로,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뱀으로 장식되지 않은 곳이 없다. 나가를 지나 좌우를 보면 문이 5개가 보인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5개의 탑 중 3개가 보인다. 참배로를 가다가 왼쪽으로 가, 앙코르와트를 바라보면 5개의 탑을 모두 볼 수 있다. 참배로 양쪽 옆으로는 해자 다리에서와 같이 나가들이 머리를 들고 있다. 참배로 중간 양쪽에 폐허가 된 조그만 건물이 있다. 바로 도서관이다. 가이드는 이 건물이 도서관이란 설명이 없었지만, 나는 문헌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내려가 보니, 검게 그을린 건물이었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발굴했을 때 힌두교 신화에 의거한 천문학에 관한 내용이 발견되었는데, 그런 이유로 추측하여 도서관이라 한 것이다. 양쪽 도서관 앞에 커다란 사각형 못이 있다. 물이 조금 있어 그곳에서 앙코르와트의 탑 5개를 볼 수 있었으며, 못 물에 비친 탑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참배로 끝에 이르면계단이 있고 올라가면 연단이다. 연단은 왕이 외국 사절을 맞이하던 곳이다. 이 곳을 지나면 5개의 문이 보이고 이곳에서부터 앙코르와트는 동서와 남북으로 긴 회랑이 있다. 이 회랑 벽에는 정교하고 섬세한 나무로 만든 제품과 같이 힌두교 신화에 의거한 수많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가이드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전투 장면, 적을 무참하게 죽이는 아수라장의 모습, 기마병이 활을 쏘고 창으로 찌르고 죽이는 장면, 천국과 지옥을 표현한 부조, 가장 밑쪽의 32개의 지옥에는 머리에 구멍을 뚫고 발과 손을 줄로 묶어 끌며 동물들이 다리를 물어뜯는 모습들, 황소를 타고 수십 개의 팔을 갖고 있는 자는 저승의 죽음의 신인 야마로 염라대왕과 같은 신이다. 원숭이와 악마들과의 싸움, 서쪽은 마하바라타, 북쪽은 라마야나를 배경으로 한 부조가 있다. 앙코르와트의 건축은 독특한 것이니, 바로 이러한 특이한 점이 인류의 세계문화 유산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서쪽 정문으로 2층 계단을 오르면 벽에 갖가지 모양을 하면서 춤추는 선녀 압사라 부조들이 벽을 따라 끝없이 조각되어있다. 아름다운 선과 미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서쪽 정문으로 와서 계단을 올라 세 번째 문을 통과해 3층으로 오르면 가파른 계단이 있고,위를 보면 큰 탑이 보인다. 이것이 참배로 옆 못에서 보았던 그 탑이다. 벽을 따라 많은압사들이 보이는데, 그 표정은 전부가 다르다. 네 번째 문을 통과하기 전 가파른 계단이 앞에 서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나 내려 올 때 노약자나 여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좁고 경사가 급해 치마 입은 여자는 곤란하다. 네 번째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이 되는 가장 성스러운 곳, 바로 지성소가 있다. 절대자가 거주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중심부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예불을 올리는 모습, 향이 짙은 냄새를 풍기면서 오르는 이들의 마음에서 허허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땀을 흘리면서 지성소에 올라오기까지, 나는 이곳 앙코르와트를 얼마나 보고 싶어했던가!? 일시에 허전한 감정을 품으면서 텅 빈 空만 전신을 짓누를 뿐이다. "텅 빈 충만함"을 가슴에 간직하면서 오랜 시간 머물고 싶었지만 메루산(수미산)을 마음에 간직하고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 밑의 가파른 계단을 한 걸음 한걸음 내려온다.이곳이 바로 앙코르와트, 그렇게 보고 싶어하고 갈망했던 곳이다. | | | | 2월24일 | | | | 시엠립 호텔에서 05시30분에 일어나 "꿀렌"의 자료집을 정리하였다. 08시에 꿀렌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킬링필드의 학살자인 폴포트의 크메르 루즈군이 최후까지 항전하던 곳이다. 이곳을 보기 위해서 베트남을 경유하는 캄보디아 팀을 포기하고 이 팀에 참가했다. 3시간을 꾸불꾸불한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도중 차가 멈추어, 일행이 내려서 미는 촌극도 있었다. 도착시간은 11시였다. 자야바르만 2세는 앙코르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꿀렌 산 위에 신이 머무른다는 힌두교의 전설에 따라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것이 앙코르 제국의 시작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며, 유적 관광의 의미가 큰 것은 물 속에 조각되어 있는 앙코르 부조이다. 일행들은 초라한 모습에 실망한 빛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벅차 한동안 물 속에서 부조물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앙코르와트의 사조 물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명상에 잠기었다. 앙코르와트의 위대한 건축물 재료가 바로 이산에서 나온 사암이라고 하니, 그 당시 이 돌들을 앙코르까지 운반하던 모습들을상상해본다. 수면 5cm 밑의 개천에는 1,000여 개에 달하는 시바신의 링가상과 기묘한 힌두 문양이 새겨져 있고 비슈누 상과 암라상이 조각되어 있다. 꿀렌은 수중에 조각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유적이다. 아쉬움을 간직하면서 준비한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40분, 반테이스레이 사원에 도착하였다. 약 10세기 경의 사원으로 폐허가 된 사원이다. 현지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는 곳이다. 빈틈 없이 조각된 현란한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정교한 부조들은 세계적인 명품이다. 오후 6시 10분에 프놈 바켕 사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앙코르 유적 중에서 일몰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일몰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정상에 서있다. 거대한 앙코르와트는 정글 속에 묻혀 보이는데, 서쪽 저 너머로 사라지는 붉은 해의 모습은 잊지 못할 앙코르와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석식 때는 오늘 한 분이 생신이어서 맥주 파티에 축하 꽃다발 선물도 있었다. 꿀렌에서 시엠립까지 10km 이상을 자전거에 장작을 싣고, 질주하는 광경은 인상적이었다. | | | | 2월25일 | | | | 08시에 앙코르톰을 보기 위해 호텔을 출발, 08시 20분에 앙코르톰 남문에 도착하였다. 앙코르톰이란 뜻은 위대한 앙코르 즉, 위대한 도시란 뜻이다.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초반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15세기 중엽 태국의 시암족 침공으로 앙코르톰을 버리고 톤레삽 호수 너머로 후퇴한 후 영광을 되찾을 수 없었다. 우선 남문 앞에서 보면 문 위쪽에 거대한 조각과 석상의 예술품에 대한 충격을 느끼지않을 수 없었다. 문 양옆 난간에 조각품이 나열된 것은 신비한 뱀 나가 이다. 남문을 들어가면 무성한 숲이 길게 이어져 있다. 버스에 승차해 그 당시 인구 백만 명이 살고 있었던 넓은 광장을 통과하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맛보았다. 08시 40분에 바이욘 사원에 도착하였다.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와트의 유적 중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인간의 힘이란 어떤 것인가? 힘의 한계란 어디까지이며,이것은 어느 곳에서 오는 것인가? 12세기말 자야바르만 7세란 사람은 인간이 아닌 스스로가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 보살로 믿고, 이 사원을 건립하였다 한다. 첫 번째 문을 들어서면 수많은 기둥들이 있고, 그 기둥에는 화려한 압사라 부조가 있다. 이곳 압사라는 앙코르와트 압사라에서 보다 더 온유한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문을 가기 전 왼쪽으로 가면 벽의 부조물이 있다. 이 조각은 크메르족, 베트남 참파족과 앙코르 왕국과의 전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자야바르만 7세가 톤레삽 호수를 지나 앙코르 왕국을 공격하고 참파족을 격파한 전쟁 모습이 새겨져 있다. 두 번째 문을 통과하면 좁은 급경사 계단이다.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가면 관세음 보살의 얼굴이 나타나고, 어둡고 컴컴한 방이 있고 방 속에 불상이 있다. 불상 오른쪽에 링가가 있다. 이것은 시바신의 남근이다. 힌두교는 이것을 숭배한다. 세 번째 문을 통과하면 사면이 넓고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에 오르니 바람이 불고 땀이 멎는다. 일행은 잠시 쉬면서 좌측으로 한바퀴 돌면서, 관세음보살 얼굴과 육중한 탑을 가슴으로 느낀 후 20분 후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사면이 관세음 보살 얼굴들이며, 그 상이 이곳 저곳에서 반기고 있다. 중앙에는 높은 탑이 솟아 있는데, 이곳이 지성소이다. 지성소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가면서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찍었다. 10시 10분 바이욘 사원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바푸온 사원을 보았다. 이사원은 바이욘 사원보다 200년 정도 앞서서 만든 사원이다. 10시 20분 코끼리 테라스를 보았다. 이 터는 ㄷ 자형으로 되었는데, 350m나 길게 이어져 있다. 담에는 코끼리 부조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이곳은 병사들과 코끼리를 사열한 장소이다. 이곳에 세워진 건물들은 목조였기 때문에 사라졌다. 뒤에는 왕궁 터가 있고 앞에는 두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외국 사신이 머무른 곳이라 한다. 코끼리 테라스 옆에 문둥이 테라스사원과 왕족의 화장터를 보았다. 버스를 타고 북문을 통과해 1.5km를 지나서 동쪽 바라이 사원에 도착하였다. 12세기말 세운 불교 사원으로 연못 위에 세워진 사원이다. 연못 중앙에는 둥근 섬이 있고 그 섬은 두개의 뱀이 긴 몸통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그 위에는 탑이 솟아있다. 이 탑은 관세음 보살에게 바쳐진 탑이다. 북문을 통과해 1호 차는 바라이 사원에 도착하였으나, 2호 차가 오는 도중에 고장이 나서 다른 차로 바꾸는 사고가 있었으나, 이 차가 한국산이라 불평 한마디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프레아칸 사원에 도착했다.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의 아버지를위한 불교 사원이다. 문을 통과해 폐허가 된 돌들을 밟고 안으로 가면 허물어 질 듯한 공포의 분위기에 전율을 느낀다. 이 성벽을 위에서 아래로 뻗어 내린 200년 이상 된 스펑나무뿌리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여기 저기에 불상이 있고 링가와 요니도있다. 13시 20분에 중식 후 호텔에 도착, 15시까지 휴식 후 오후 답사를 했다. 룰루오스 사원군에 도착하여 롤레이 사원을 방문했다. 893년 야소바르만 1세가 세운 사원이다. 정교한 부조를 탑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나, 많이 부식해서 폐허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부조들이 발전해, 앙코르와트나 바이욘 사원의 화려한 부조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 탑은 야소바르만 1세의 부모와 외조부모를 위한 탑이라고 한다. 프레코 사원은 879년에 세워진 것으로 인드라바르만1세의 부모와 조상, 전왕인 자야바르만2세의 왕비의 화장을 위한 사원이다. 6동으로 건축되었으며 적사암을 구워만든것이다. 이 사원도 폐허가 되었으나, 앙코르 유적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바콩 사원이다. 881년에 세워진 사원으로 가파른 계단에 8개 단으로 앙코르와트와 비슷한 구조다. 초기 유적임에도 웅장함을 보여 주고 있으나 바이욘사원과 같이 뛰어난 부조물은 아니다. 17시 20분에 도착한 사원이 타프롬 사원이다. 늦게 도착하니 관광객이 없어 한가한 마음으로 이 우람한 나무 뿌리들이 사원을 짓누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허물어진 벽돌을돌아 들어가니 문어 발 같은 나무 뿌리가 또 사원 지붕과 탑을 내려 깔고 앉아 있는 200년 이상 된 거대한 뿌리가 나타난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사원이다. 이곳에 약 8만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 한다. 이 사원은 복원하지 않고 일부러 폐허 된 원형 그대로 둔 사원이다. 이와 같이 세월은 모든 것을 잠재우고 지금은 나무 뿌리만이 그 당시의 화려함을 상징하고 있다. 두 번째 문을 통과하니, 오른쪽 벽에 200년 이상 된 녹용이 잠자고 있다. 뿌리가 녹용 같다 하여 부쳐진 명칭이다. 옆에 공간 탑이 있고 탑 속에 들어가서 자신의 가슴을 치면 큰 울림 즉, 메아리가 들린다. 왕의 슬픔을 상징한 울림이라 한다. 통곡의 방이라고도 한다. 타프롬 사원 관광을 마치고 18시에 라프론 사원 관광을 하고 버스로 다음 사원으로 이동하였다. 18시 30분에 도착한 곳이 타케오오 사원이다. 일명 미완성 사원이라 한다. 가이드 말이 이 사원은 경사가 급해서 오르기는 위험하기 하기 때문에 버스에서 잠깐 하차해 아래에서 관찰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몇 사람은 가파른 층계를 올라 정상을 관찰하고 7시에 내려 왔다. 이것으로 유적지 답사는 다 마쳤다. 19시∼21시까지 독실에서 그간의 피로를 풀 겸 한잔 술에 앙코르와트의 멋을 적시었다. 저녁 밤늦게까지 재래시장 노천가의 과일 주스 맛과 이 교수님의 한잔의 맛, 양주는 영원한 추억이 될 것이다. | | | | 2월26일 | | | | 앙코르와트의 유적 답사를 어제 전부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아침은 06시 10분에 일어나 06시 40분에 아침 식사를 하였다. 08시에 톤레삽 수상 마을을 보기 위해 가는 도중 초등학교를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였다. 09시 30분에 버스는 울퉁불퉁한 좁은 둑을 지나 냄새가 진동하는 톤레삽호수의 수상 촌에 도착하였다. 많은 관광객들이 법석들이다. 건기인 관계로 호수에 있는 물이 썩어있다. 좁은 수로는 썩어서 냄새가 진동하는 새까만 물이다. 날씨는 찌는 듯이 뜨거운데, 36도 이상일 것 같다. 배 일곱 척에 4인이 타고 호수중앙으로 갔다. 계속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그 위를 달린다. 통통배 소리가 붉은 황토 물에 넘친다. 양쪽에 수상 촌이다. 물위 집이다. 화분도있다. 세탁을 한다. 황토 물에서 아줌마는 요리를 한다. 황토 물에서 아주 작은 배에 남편은 노를 젓고 부인은 뒤에 탔다. 투망을 들고 고기를 잡는다. 손을 흔드는 어린 아이가 있다. 깊은 안으로 집을 끌고 이사를 간다. 고기 잡는 통발도 있다. 수로 양쪽에는 우거진 나무가 춤을 춘다. 잡은 고기를 말리고 있다. 어린이들이 황토 물에서 목욕을 한다. 20분 경과, 09시 50분이다. 많은 수상촌이 저 멀리 보인다. 집을 끌고 깊은 호수로 간다. 슈퍼 배다. 배에서 물건을 판다. 10시,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다. 큰 수상촌이다. 망망대해다. 아니, 호수다. 황토 물이다. 우리 배가 고장이다. 엔진이 낡아 멈추어 섰다. 무섭다. 우리 일행의 배는 안 보인다. 발동이 걸린다. 10시 15분 일행의 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 모였다. 가이드의 설명이다. 건기인 관계로 현재의 물은 30%이고, 우기가 되면 70%이상이 호수로 변한다. 여기에 70%의 물이 차면 어느 정도 크기의 호수가 되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수상 촌에 도착, 해상 박물관을 견학하는데, 호수에 존재하는 모든 해산물이 전시되었다. 물뱀이 눈에 뜨인다. 배가 지나면 파도로 해상 집이 출렁댄다. 수상촌 학교가 있다.황토 물을 손으로 먹는다. 6∼7세 어린이가 배를 젓는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물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도 이곳에 산다. 이들의 세계는 물이다. 물 밖의 세상은 죽음이다. 볼일도, 식수도, 목욕도, 세탁도 이 물에서 한다. 배에서 내려 둑을 거닐면서 사는 모습을 보았다. 서울 난곡동 달동네는 천사들이 사는 곳이다. 썩은 물 냄새는 지독한 악취다. 그러나 이들에게 이곳은 천국이다. 재래시장에 11시 45분에 도착했다. 재래 시장이란 그 나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무더운 곳, 시장 내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이들의 조상으로부터 받은 재산이다. 덥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말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웨스트바라이 호수다. 웨스트바라이는 9세기에 사람이 파서 만든 인공호수다. 앙코르와트의 식수로 사용한 호수로 건기에도 마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하수가 나오는 호수이다. 호수 중앙에 멜본 사원이 있으며, 이 사원은 폐허가 되어 담이 남았을 뿐이다. 여기에서 본 일몰 광경은 아름다웠다. 석식 후 여행사측에서 마련한 과일 파티가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 | | | 2월27일 | | | | 2002년 2월 27일 아침 10시 05분에 시엠립 공항을 이륙해 11시에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였다. 킬링필드로 11시 30분에 이동 중, 가이드의 학살 상황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숙연한 분위기였다. 이곳 대학살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700만 명 중 350만 명, 약 절반을 학살하는 대 참살극이었다. 여기에서 회수한 해골이 4층까지 가득 쌓여 있다. 심지어 어린아이를 나무에 매달아 지금도 혈흔이 있다. 이와 같은 참상에 대해선 유구무언이다. 툴슬랭 감옥은 학교 교실을 칸으로 막아 고문실과 감방으로 사용한 곳이다. 1호∼15호까지는 고문실 이다. 각 벽에는 베트남 군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모습을 촬영하여 게시하였으며, 바닥에는 고문했던 도구와 피가 지금도 남아 있다. 다음 동은 교실을 독방으로 개조한 것으로 참담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교실은 해골로 캄보디아의 지도를 제작해 걸어 놓았다. 사람의 머리를 갖고 꼭 이렇게 세계 사람들에게 관람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462번 번호표를 단 모자의 사진이 있는데, 당시의 외무장관 부인과 아들이며 아이는 엄마 품에 곤히 잠들어 있고, 어머니는 죽음 직전에 정신이 나간 처참한 모습으로 눈방울은 초점이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감옥을 뒤로하고 왕궁을 관광했다. 캄보디아의 불교 문화와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전통적인 캄보디아 양식이며 메콩강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50m에 달하는 황금 빛 탑과 지붕은 루비, 사파이어 , 에머랄드의 화려한 색채를 하고 있다. 왕궁에는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왕에게 선물한 별장이 있는데 이 별장과 몇 개의 홀은 가끔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된다고 한다. 특히 한편에 김일성이 시아누크 국왕에게 선물한 도자기가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을 답사하고 6일간의 고적답사를 마무리했다. 17시 30분에 한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20시 10분에 프놈펜 공항을 이륙해 21시30분에 태국 방콕에 도착, 그랜드 호텔 1601호실에 투숙하였다. | | | | 2월28일 | | | 06시 20분 조식 후 08시 아유타야로 출발하였다.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북쪽으로 64km지점에 있다. 차오프라야강 하류에 전개된 삼각주 위에 있다. 이곳은 옛 왕궁과 수많은 사원 유적이 남아 있어 세계유산 목록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다. 왓프란시산펫. 이 곳은 왕궁 단지 내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 방콕의 왕궁에 있는 에메랄드사원과 비교 할만한 것이다. 1500년에 16m의 입불상을 조각해서 170kg의 금을 입혔는데, 1767년 버마인들이 그 불상의 금을 녹여 내기 위해 불을 질렀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왓탐미카랏 사원은 14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많은 상들이 크메르에서 온 수호신들로 둘러싸여 있다. 왓차이 왓따람 사원은 1630년에 지어진 것으로 앙코르와트를 모델로 해서 건축된 것으로 규모는 웅장하다. 방파인은 17세기 중엽에 아유타야왕 프라사트농이 지은 궁으로 아름답다. 이곳은 호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데, 아유타야 시대에는 왕들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방콕 왕조의 라마 4세와 라마 5세때 재건되었다. 방파인은 태국 왕조의 여름 별궁으로태국 전통양식과 중국식 유럽식 건축양식이 혼합된 것이다. 앙코르 제국을 멸망시킨 아유타야 왕조가 앙코르 문화의 영향을 받아 건립한 사원이 이곳에서 재탄생되었던 것이다. 아유타야 답사를 마치고 방콕으로 귀환한 일행은 쇼핑센터를 방문했다. 여유 시간에 전통 안마를 생전 처음 받았다. 23시 50분에 방콕 공항을 이륙, 3월1일 아침 06시 40분에 인천 공항에 착륙해 일행 모두 무사히 귀국하여 7박8일 간의 고적 답사를 마쳤다. 주님께 감사 드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