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바라나시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07.11.21

  • 조회수 :

    324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신분제도는 아마도 인도의 카스트제도일 것이다. 교통수단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로 묶여진 21C, 이 시대에도 사회 구석구석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카스트제도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도만의 제도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지난 1월의 인도/네팔 여행은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어떤 것인지를 피부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여행이었다.
 이미 오차의 호텔에서 진행된 가든파티 때 하인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신분제도의 단면을 체험한 우리 일행은 카주라호 가는 길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경험해야 했다. 우리들이 탑승한 버스가 무리한 앞지르기를 하다가 앞선 트럭의 뒷부분을 들이받았는데, 트럭이 중심을 잃고 길 건너편의 가로수와 충돌, 트럭의 조수가 사망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속도를 잠시 늦추는 듯 하던 우리 버스기사는 곧바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은 것 같은데 그냥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버스를 세울 것을 종용했지만 버스기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No Problem'이었다. 이유인 즉, 죽은 사람이 기사가 아니고 조수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다. 조수는 천민인 수드라 계급이기 때문에 나중에 장례식에 쓸 땔감이나 몇 묶음 전해주면 된다며 천연덕스럽게 핸들을 잡고 있는 운전기사의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은근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수 천 년을 이어온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맞서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버스 사용 계약을 파기하고 운전기사로 하여금 당장 현장에 가보라고 화를 내는 것뿐이었다. 우리 일행들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이날 이후 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바라나시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은 이어졌다. 사르나트에서는 현지에 거주하는 가이드만 설명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가이드인 수닐 씽이 유적설명을 시작했다. 이 때 현지 경찰이 나와서 수닐 씽을 제지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 그 경찰관이 7명이나 되는 가족들을 데리고 찾아와 나이 어린 수닐 씽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가이드 수닐 씽은 신분 높은 오차왕국의 크샤트리아 계급이었던 것이다. 법이나 규정에 앞서 신분의 위세에 눌린 경찰관의 풀죽은 모습이 내 마음을 시리게 만들었고 이런 사회구조에서도 인도인들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말하게끔 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하는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은 저녁에 다시 찾은 갠지즈 강변에서 어느 부분 해소되었다.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을 이룬 바라나시 도심을 가로질러 릭샤를 타고 도착한 강변의 화장터에서는 오늘 아침에도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시신들이 태워지고 있었다. 장작불에 올려진 시신들은 매캐한 연기와 함께 너무나 쉽게 이승과의 이별의식을 치르고 있었고, 유족들 또한 너무나 담담하게 망자와의 인연의 끈을 놓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불과 골목길 하나의 차이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힌두 기도의식이 시작되었다. 강변에 운집한 인도인들은 브라만 사두의 숙연한 의식에 맞춰 같이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하며 한 덩어리로 승화되어 갔다. 이 순간만은 카스트도, 고단했던 골목길 너머의 삶도 모두 시바 신의 품속에서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길게만 느껴지는 인도인들의 치열한 하루는 그렇게 갠지즈강의 어둠 속으로 잊혀져 가는 것 같았고, 나 또한 이 순간에 억울하게 죽어간 트럭 조수에 대한 충격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