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서울에 사시는 황경식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황경식님은 2004년1월26일부터 2월7일까지 13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그리스/터키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꿈속 혹은 꿈 바깥에서… | | | | 아프로디테 허공에 걸린 탱화인가 어둠에 쌓여있는 파르테논 흰 금빛으로 빛나고 하늘에 점점 떠있는 푸른 돌, 사람이 만든 붉은 집들이 구름위로 피어오르며 감출수록 더욱 드러나는 거품 속, 그리운 사람이여 우리는 때때로 겹쳐진 꿈의 어느 한 곳을 헤매는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있다. 2004년 1월 26일,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쯤 날아간 그곳은 이미 7시간의 시차가 벌어져 있었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가 하면 빛나는 하얀 돌덩어리들이 혹은 알렉산더의 혹은 클레오파트라의 손길과 발자국이 묻어있다, 한다. 일찍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걷던 길이기도 했다. 어쩌면 먼 훗날 미지의 외계인이 찾아올 길인지도 모른다. 카파도키아의 낙타바위가 그 입구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서울에 버려둔 내 삶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나는 서울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었던가? 희미한 윤곽을 그리며 몇 개의 단어가 흘러갔다. 이처럼, 꾸고 있는 꿈과 버려 둔 꿈 사이를 배회하며 우리의 삶은 얼마나 복잡하고 신비로운 꿈의 연기(緣起)일까, 하고 생각해본다. 얼마나 많은 꿈의 그물눈으로 촘촘하게 엮어져 있는지? 그 눈부신 꿈의 한 그물코에 매달려 우리는 잠시 낯선 공간, 낯선 시간을 떠돌게 된다. | | | | I. 神들의 나라, 인간의 땅 - 불안에서 환희로 | | | 굳이 델포이, 파르테논을 들지 않더라도 그리스는 신들의 나라였다. 제우스의 얼굴을 만나고 아프로디테의 자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테네에서 메테오라로 가는 길에 머리 위에서 쏟아질 듯 시커먼 구름이 기괴한 형상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내리 누르듯이 여백 없이 채운 두껍고 암담한 구름이었다. 그 사이로 돌연 천지를 쪼개는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황금빛 빛줄기. 하지만 지중해성 겨울 기후의 변덕이 원래 그러한 지, 잠시 후 믿을 수 없을 만큼 샛노란 큰 별이 하늘에 떠 있다. 금빛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곁에 있는 조각달도 유난히 선명하고 뚜렷하며 색깔이 곱다. 신들의 나라 그리스는 모든 것이 명확하고 선명하다. 이에 반해 터키는 인간의 땅이다. 수천년간 잠들었던 장대하고 화려한 에페스의 유적 속에는 색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인도(人道)며 수세식 석조 화장실뿐만 아니라 창녀들조차 당당하게 자신을 밝히고 피알(PR)하는 표식을 남겼다. 뿐이랴, 파묵칼레의 온천이랑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콘야 평원. 무엇보다 맛있는 터키 음식이 그곳이 사람 사는 땅임을 증명하고 있다.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호화로운 돌마바흐체 궁전과 사치와 호사의 극을 달린 톱카프의 보물 창고에서 진하고 진한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뜻밖의 낭패를 경험했다. 함께 여행을 신청한 어떤 팀이 갑자기 취소를 통보해와서 어쩌면 여행계획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13명이 여행을 신청했는데 6명이 못 간다는 것이다. 너무나 벼르고 별렀던 여행인데…꼭 성사가 되도록 여행사에 부탁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은 취소되지 않고 가까스로 11명이 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날씨가 말썽을 부린다. 뉴스에 터키에 유례가 없는 혹한이 닥치고(당시 서울에서도 연일 영하 15-6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에서는 폭설까지 내렸다는 소문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떠나기 전날 밤은 여러 가지 꿈에 시달리며 뒤척였다. 다만 집사람이 악수까지 하며 격려를 해주어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한 후까지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활주로 주변에 쌓여있는 눈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날 우리가 아테네로 갔을 때는 마치 따뜻한 봄날 같았고 이후 계속 환상적인 날씨가 이어졌다. TC 강희옥 과장은 이쁜 미모의 자기 때문이라 했지만 우리들도 내심 각자 자신들 덕택이 아닐까 생각했으리라. 박사장님, 이사장님 부부는 독실한 카톨릭이셨고 나 또한 메가로 메테오라 수도원에서 이번 여행의 무사함을 열심히 기도했으니까. 어쨌든 메테오라에 갔을 때는 우리의 불안은 환희로 변했다. 그 신비한 날씨의 조화를 어찌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옮길 수 있으랴. 까마득한 바위 봉우리 여기저기 아득하게 세워진 수도원들을 감돌다 풀려 가는 몽환적인 안개와 갑자기 금빛 화살처럼 쏟아지던 햇볕. 그 어떤 카메라나 비디오로도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습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그전에 구로스라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동안 순간적으로 소나기가 내리더니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올랐다. 무지개는 이후에도 몇 번이나 우리를 따라다니며 마음을 설레게 해주었다. 이후, 특히 숨막히게 파란 하늘이 마음을 사로잡던 쉬린제 마을이나 에페스, 히에라폴리스에서 콘야 대평원을 거쳐, 자꾸만 TC가 겁을 주던 카파도키아까지 내내 우리가 가는 곳의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고 화창했다. 때문에 환상적인 일몰도 몇 번이나 보았다. 눈처럼 하얀 파묵칼레를 분홍으로 물들이던 일몰이나 카파도키아의 붉은 계곡에서의 장엄하고도 엄숙한 일몰, 카파도키아에서 카이세리 공항으로 갈 때는 3,914m의 눈 덮인 에르지예스 산꼭대기에 걸린 파란 보름달과 겹쳐진 일몰이 너무 황홀해 버스 안에서 몇 번이나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 | | | II. 트랜바이에 흔들려봐 - 여행, 여유, 자유, 낭만 | | | | 여행의 본질은 여유고 자유이며 낭만이라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다시 한번 실감했다. 끼니 때 마다 맛보는 풍요로운 현지식(現地食)에서 먼저 그 기분을 느낀다. 처음 도착할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2주일동안 그리스에서 한번, 터키에서 한번 해서 두번만 한식을 먹고 나머지는 모두 현지식이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녹두를 갈아 만든 맛있는 수프와 각종 케밥이 나오는 터키 음식은 원래부터 유명했다 하더라도 그리스에서도 식사 때마다 매우 독특하고 근사한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사가시스 식당에서의 슈불라끼(메디다 케밥)와 바코스 식당에서의 맛있는 돼지갈비는 특히 잊을 수 없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트랜바이라는 전차를 타고 가로질러간 탁심광장에서의 방황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이스탄불의 대학로라는 탁심광장에서 TC 강과장은 현지 화폐로 1인당 무려 10,000,000TL(터키 리라)를 주면서 2시간의 자유시간도 주었다. 4시부터 6시까지 함께 몰려다니지 말고 자유롭게 흩어져 먹고싶은 것 사먹고 하고싶은 구경 마음껏 하라고 했다. 그래도 우린 너무 친하다는 핑계로 차마 서로 떨어지지 못하고 몰려다니기는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 여행의 진수가 아닐까 생각했다. 서울의 남대문, 동대문처럼 사람이 바글거리는 시장에서(그때가 터키의 중요한 명절인 Kurban Bayram 전날이었다) 같이 간 일행이 작은 선물 사는 것 구경도 하고 흥정을 부추기기도 했다. 식당에 가서는 요리 이름을 몰라 손짓발짓으로 너무 많이 시켜 맛있는 음식을 조금 남기는 촌극도 벌리고…. 불과 1시간 정도였지만 아름다운 산간마을 쉬린제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주어졌다. 거기서는 마음먹고 혼자서 고즈넉한 골목길을 산책하며 마을 사람들이 명절을 준비하고 양 잡는 것을 구경했다. 마을 아가씨와 사진도 찍고 동네 노천 카페에서 한없이 쓸쓸한 이 나라 노래를 들으며 250원짜리 홍차를 마시기도 했다. 카파도키아의 도자기 마을 아바노스와 오스만투르크 시대를 가장 잘 보존한 마을이라는 무스타파 파샤에서도 계속 그렇게 했다. 터키의 인기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라는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버스정류장에 앉아 근사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시장경험도 완전히 우리에게 자유롭게 맡겨졌다.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션 바자르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흥정도 해보라는 것이었다. 먼저 그랜드 바자르에서 마신 '살렙'차의 향기가 새삼 생각난다. 끓인 우유에다가 커피를 섞은 후 계피가루를 뿌린 것 같았는데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콤한 그 맛에 온몸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물건을 흥정하는 일은 처음에는 서투른 영어구사에 더 신경이 쓰였지만 차차 적절하게 흥정하는 법을 스스로 깨닫고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로 밀고 당기는 재미도 수월찮았다. 덕분에 이집션 바자르에서 아주 맛있는 호두와 선물도 사고 다른 곳에서도 재미있는 기념품과 선물을 사는 데 끼어 들기도 했다. 이 같은 여유와 자유로운 활동은 일상의 굴레에 꽉 묶여있던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커다란 해방감을 주었다. 이밖에도 떼르모 필로스라는 노천 온천에서 온천 즐기기, 우치사르의 동굴 카페에서 차 마시기 등등 낭만적인 추억들이 계속 쌓여갔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만족한 것은 '천천히'라는 구호였다. 워낙 교사 체질에다가 혹시라도 단체여행에서 남에게 폐가 될까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뛰어가려고 하는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의 TC 강희옥 과장은 특유의 탄력 있는 목소리로 '선생님,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가세요' 하고 외친다. 그렇다. 우리는 즐기려고 여행을 온 것이지 바쁘게 뛰어다니거나 어떤 일의 성취를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가능한 한 천천히 먹고 느긋한 일정을 즐기는 것이 바로 여행의 참 멋이 아닐까? 덕분에 아테네에서 이스탄불 오던 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던 위풍당당한(?) 우리 버스가 갑자기 고장이 나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한쪽 도로가 완전히 폐쇄되는 것을 오히려 재미있어 하고, 나중에 버스 대신 택시 타고 시내로 들어갈 수 있어 더욱 신이나 했다. | | | | III. 일곱 개의 작은 열주(列柱)들 | | | | 1. 디오니소스 카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쩌면 두 분은 에페스 원형극장에서 노래 부른 것을 손꼽겠지만 나는 좀 색다른 것을 들고 싶다. 바로 디오니소스 카페다. 파르테논 야경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다. 낮에 본 파르테논은 몹시 안타까웠다. 복원을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쓸데없는 구조물들이 너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오매불망 그리던 파르테논이 마치 큰 수모를 당하는 것 같았다. 순결한 처녀(파르테논의 원래 뜻이다)의 몸에 더러운 손길이 닿은 것 같았다. 하지만 어둠은 신기하게도 그 모든 것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다만 파르테논 본래의 모습만 온전하게 하얀빛의 기둥으로 붉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다. 어둠의 요술이요. 빛의 마력이다. 다른 모든 것은 어둠에 굴복하고 오직 흰 금빛 대리석만 눈부신 빛을 발한다. 마치 카페의 넓은 유리창에 근사한 탱화가 걸려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보고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매혹적인 모습이다. 유감인 것은 그 아름다움을 그저 가슴에만 새겨둘 수 있을 뿐, 내가 가진 디지털 카메라로는 역부족이다. 어둠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새삼 느끼며 쓰고 달고 독특한 향이 나는 그리스 커피 잔을 들었다. 페치카에서는 붉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이처럼 멋있는 카페를 가진 아테네 시민들이 너무 부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하늘에 떠있는 돌, 메가로 메테오라 처음 메테오라에 도착했을 땐 빗발이 약간 비쳐 우산을 끄집어내었다. 잠시 후, 빗방울은 곧 안개로 바뀌며 메테오라의 장엄한 바위 계곡을 감돌고 에워싸더니 얼마 있지 않아 봉우리들만 조금씩 보인다. 그 바위 꼭대기마다 수도원과 수녀원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수도원인 메가로 메테오라 수도원과 그 수도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람 수도원이 압권이었다. 마침 우리가 그 수도원을 뒤돌아 나올 때는 막 안개가 흩어지며 황금빛 햇살이 비치고 파랗게 깍은 옥 같은 하늘이 눈앞에 열리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에 다시 구름이 몰려와 방금 돌아 나온 메가로 메테오라 수도원이 구름 위에 떠 있었다. 하얀 안개의 살을 뚫고 신비하게 그 모습을 나타내려는 광경은, 도저히 이 세상에는 없는 마치 천상의 교회 같았다. 비로써 메테오라란 말의 뜻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영어로 미티어라이트, 즉 운석이란 뜻인데 하늘에 떠 있는 돌이란 그리스 말이라고 한다. 우리를 안내하던 오동수 가이드도 평생에 구경할 수 없는 신비로운 모습이라 하면서 자신이 시인이 되지 못함이 아쉽다고 거듭 탄식이다. 지독한 아름다움은 오직 마음에 담아갈 수밖에 없노라고, 중얼거리면서. 3. 파란, 너무나도 파란 1월 30일 오전 10시 40분, 비행기는 마치 전생의 고향 같은 느낌을 주는(우선 음식이 입에 잘 맞았고 기후와 자연 풍광이 그만하면 살만하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땅을 이륙한다. 운 좋게도 기내 뒷좌석에 빈곳이 많아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자 말자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테네 전경이 보이더니 마침내 그 유명한 에게해가 나타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몽상처럼 여기저기 떠 있는 섬과 굴곡진 해안선. 무엇으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색조의 바다. 한참 후에야 아, 이것을 카메라로 찍어둘걸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카메라는 짐칸에 들어있었다. 다시 그것을 끄집어내는 동안 이 광경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아쉽지만 이 환상적인 모습도 그저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둘 수밖에…. 하늘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선명한 바다. 내륙지방과 달리 아테네 근교 해변 가에는 집들이 매우 많았다.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이리라. 지붕은 모두 빨간 색. 벽은 새하얗다. 그것이 코발트색 바다와 어울려 더욱 경관을 돋보이게 한다. 언어를 전공한 오동수 가이드는 그리스에서는 돌을 표현하는 단어만 서른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미묘한 바다를 표현하는 말은 몇 가지나 될까. 초록도 아니고 파랑도 아닌 저 신비로운 색깔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불완전한 기억 속에만 붙잡아두기에는 너무나도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4. 물 담배 연기를 내뿜고 이스탄불에서의 첫째 날은 날씨 때문에(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흐리고, 비 뿌리고 하였다) 「성스러운 지혜의 집」이라는 소피아사원과 지하 저수지, 그랜드 바자르 같은 주로 실내에서 구경하는 곳만 다녔다. 약간 처져있는 마음을 헤아려서일까, TC 강희옥 과장이 터키에 온 기념으로 특별 경험을 하자면서 물담배 집으로 인도했다. 조금 허술해 보이는 실내로 들어가니 안개처럼 담배 연기가 뿌옇게 차 있다. 먼저 '차이'라는 빨간 전통차와 숯불 담긴 화로와 큰 피리 비슷한 담뱃대를 준다. 여러 사람이 함께 피울 수 있도록 각자의 빨대도 주었다. 빨대를 빨아들일 때마다 물 담배는 꾸르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자신의 속살을 풀어놓는다. 처음에는 조심해서 빨았으나 나중에는 경쟁하듯이 서로 깊게 빨아들이고 하얀 연기를 토해냈다. 연기 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몽롱하게 떠도는 것 같았다. 특히 L선생이 그 중에서 두드러지게 잘 했다. 요즘은 이곳 사람들도 많이 찾지는 않는다지만 그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아주 능숙하게 담배를 빨아드리고 멋있게 연기를 뿜어낸다. 사과 향이 나는 것 같았는데 기분을 너무 많이 낸 탓일까,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면서 말못할 그리움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5. 에게해에 손을 담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번 여행 중 몇 번이나 기억에 남는 일몰을 경험했지만 쿠사다시 비둘기 섬에서의 일몰도 잊혀지지 않는다. 노천 카페에서 향기로운 찻잔을 앞에 두고 각자 생각에 잠겨 에게해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던 감동. 그 감동의 여운을 가슴에 안고 천천히 숙소로 돌아온 우리들은 또 다시 감격의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코루마 호텔. 해변 절벽 끝에 지어진 그 호텔은 지어진지 좀 오랜 된 것 같았는데 객실에서 창문만 열면 바로 바다가 쏟아져 들어 올 것 같았다. 식당에서도 사면이 바다였고 음식도 맛있었는데 그 날 우리는 이지향 선생님 생일 파티를(본인은 매우 쑥스러워 했지만) 일단 케이크 조각 자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모두 박사장님 방에 모여 포도주를 건배하며 마무리했다. 다음날 새벽 바다 쪽으로 난 현관문을 밀고 나가니 바위를 깎아 계단을 만들어 바로 바다 속으로 이어지게 만들어 놓았다. 야외 수영장에는 물 위에 주방시설이 되어 있고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식사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계단을 내려가서 바닷가에 이르니 아주 작지만 모래사장이 사방에 바위로 에워 쌓여 숙박객들이 충분히 일광욕을 즐길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수영과 다이빙도 할 수 있었다. 방파제 비슷하게 바다 속으로 20여m 시멘트로 돌출된 구조물이 있었는데 파도에 대비하여 격자모양의 넓은 구멍을 가득 뚫어놓은 것이 특이했다. 잠시 허리를 굽히고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쪽빛 에게해가 바로 손아귀에 잡힌다. 생각보다 아주 따뜻하다. 파란 물이 손에 젖어들어 손과 팔이, 마침내 몸뚱이와 마음까지도 파랗게 젖어드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6. 젤베 계곡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카파도키아라는 곳은 꽤 광대한 지방 이름이었고 그 속에 낙타계곡에서부터 젤베, 파샤바 계곡, 사냥꾼 계곡, 우치사르, 카이마크 등등 수많은 계곡과 구경거리가 산재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젤베 야외 박물관과 다음날 찾아가는 괴뢰메 야외 박물관은 입장료를 내야한다. 괴뢰메는 워낙 유명하지만 젤베는 그렇지 못하여 보통은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모든 곳이 마치 아득한 혹성의 어떤 지방에 온 것처럼 낯설고 황량한데 특히 파샤바와 우치사르, 카이마크가 그러하였다. 하긴 그것이 이곳의 특징이고 매력이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불모의 붉고 메마른, 그러면서도 기기묘묘한 형태의 바위들이 사람을 압도하였다.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라고도 한다. 하지만, 젤베는 비교적 친숙한 느낌을 주는 계곡이었다. 아늑하게 펼쳐진 붉은 바위산 골짜기에 곳곳마다 동굴이 뚫려 있었고 여름에는 나무가 자라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이 깨어질 듯 새파랬다. 공교롭게도 외국 관광객 일행이 우리 앞서 지나간다. 일본인 같기도 하고 서양인 같기도 하였다. 동굴은 어떤 곳은 교회로 어떤 곳은 포도주 저장고로 쓰여졌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오히려 호기심을 일으키지 못했다. 차라리 강렬한 빛을 내뿜는 붉은 금빛바위와 자꾸만 쏟아질 것 같은 파란 하늘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 때 아주 낯선 풍경이 갑자기 시야에 들어왔다. 약간은 후미진 바위 한쪽에서 누군가가 뽀뽀를 하고 있었다. 낙타 계곡에서도 그런 모양의 바위를 보았으므로 처음에는 그냥 바위인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분명 사람이었다. 이 멀고도 외진 카파도키아에서 저렇게 달콤한 뽀뽀를 할 수 있다니! 7. 일보 앞으로 마지막날, 이스탄불의 아타투르크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 강용수 가이드가 해준 몇 가지 감동적인 이야기 중 하나. 아무 것도 모르는 순박한 터키의 시골 청년이 지금부터 50여년 전 어느날 갑자기 군대에 징집을 당했다. 연병장에 도열해 있을 때 인솔장교가 '일보 앞으로'라는 구호를 외쳤고 순간 그는 조건 반사적으로 일보 앞으로 나갔다. 그때 앞으로 나간 사람들은 모두 한국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배를 타고 여러 달 걸려 일본을 거쳐오는데 그때까지도 그는 한국이 어디 붙었는지, 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무슨 영문으로 자신들이 참전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간단한 훈련과 함께 기관총 부사수가 되어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지만 곧 사수는 전사. 자신도 열심히 기관총만 쏘다가 참전 3개월만에 부상, 일본에서 6개월 치료받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 한국이 누구와 싸웠는지 몰라 애태우며 그 사연을 하소연하기에 까닭을 물었더니, 이제 곧 천국 갈 날이 멀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당신의 기총소사에 맞아 죽은 영혼이 있다면 상대방을 알아야 인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쉬린제 마을에서 양 잡던 광경이 생각났다. 구약 성경의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 희생양을 잡은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라 집집마다 형편이 닿으면 속죄양을 잡는다고 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또한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안락과 풍요를 누리고 있는 걸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순간, 이번 여행 중 본 해 가운데서 가장 커다란 해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천천히 이스탄불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 | | | IV. 幻想의 하모니 | | | | 훌륭한 오케스트라에는 이에 걸맞은 지휘자가 있듯이 우리 여행에서는 TC 강희옥 과장의 역할을 단연 손꼽지 않을 수 없다. 자칭 인터내셔널 미인인 그녀는 항상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일행을 이끌고 보좌했다. 때묻지 않은 프로라고 할까(너무 칭찬해주면 오버하는 단점이 있는데) 자신의 직무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과 함께 항상 모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려는 태도가 인상깊었다. 때로는 명랑하고 활발하며 때로는 섬세하고 예민하니 도무지 나무랄 곳이 없었다. 게다가 기억력 좋고 사진 잘 찍고, 얼마 되지 않는 우리 팀에서 강사모가 다 생길 지경이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 아무리 TC가 훌륭해도 그 구성원이 모래알 같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다행히 우리들은 모래알이 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구성원 하나 하나가 전혀 닮지 않은 독자적인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대편의 입장을 배려하는 자세 때문일 것이다. 전직 공무원이셨던 박사장님은 풍부한 삶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헤아려 주시는 경륜과 지혜를 갖고 계셨다. 사모님은 얼마나 아름다운 품성을 가지셨는지 작은 일에도 늘 목이 메이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에페스 원형극장에서 근사하게 노래를 부르셨다. 사업가이신 이사장님은 치밀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며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지셨으며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들을 깨우쳐주셨다. 항상 사장님과 동행하여 부러움을 사는 사모님은 이지적인 멋쟁이시며 영어를 매우 잘하신다. 두 사모님은 아주 독실한 카톨릭이셔서 세실리아와 엠마라는 세례명으로 서로를 부르셨는데 부르는 소리가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다. 조선생님은 정신이 번쩍 들만큼 세련된 미인. 외모 뿐 아니라 행동과 생각하시는 것 모두가 깔끔하고 개성적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셨다.이제 우리 팀. 먼저 따님 화정이와 함께 온 소희선생님. 만일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이번 여행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했을까? 순수 토종 경상도 사투리를 거침없이 구사하시는(화정이 말로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는데 그 증거로 화정이는 완벽한 표준말이다) 그 말투 자체가 우리를 항상 포복절도하게 한다. '커피가 무서버' 라는 아주 평범한 말이 왜 그렇게 우습게 들리는지. 아마도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너그럽게 이해하려는 여유 속에서 선생님의 유머가 생기는 것 같다. 긍정 속에서 여유가 생기고 여유 속에서 웃음이 피어나는 것이다. 다음은 영민 선생님. 말없는 가운데도 늘 따뜻하고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주시는 참 선생님. 한없이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서도 우리 모두에게 보다 근사한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애쓴 완벽한 카메라맨이기도 하셨다. 지향선생님은 화려하고 자부심이 넘치는 개성의 소유자. 뾰족 구두와 선글라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패션감각도 일품이지만 뜻밖에 타인을 세심하게 배려해주시는 섬세함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배선생님. 매사에 초연하면서도 넉넉한 마음 씀씀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밤마다 벌어지는 맥주 파티를 위해 서울에서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오신 안주. 운전기사가 과속으로 큰 벌금을 물게 되었을 때 선뜻 20불을 내놓으시는 것처럼(터키에서 20불은 무시 못할 금액)꼭 필요할 때 항상 그 손길을 베풀어줌으로 어느덧 또 다시 우리들의 확실한 교주가 되어버리신다. 비록 교도들이 철이 없어 늘 바가지를 쓰시는 입장이지만 덕분에 우리들은 언제나 풍요롭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요정 화정이. 처음 출발할 때는 새침데기 공주였지만 갈수록 괄목상대할 만큼 발전하여 나중에는 엄마 뺨치는 유머 실력을 자랑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이처럼 독특한 개성들이 하나 같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 것이 이번 여행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다. 마치 이질적인 악기들이 모여 근사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서로 다른 음들이 부딪쳐 신비한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밤마다 방을 옮겨가며 로컬 홈바가 열리고 즐거운 담소가 벌어졌으며 점심식사 때는 서로 와인을 사겠다고 해서 나중에는 순서가 매겨지기도 했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이번 여정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하며 2004년 1월 26일부터 2월 7일까지의 꿈같았던 12박 13일의 그리스ㆍ터키여행을 주마등처럼 펼쳐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