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와 중국 일대가 조류독감으로 법석인데도 중국 여행을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다.그러나 한번 마음먹고 눈독 드리면 꼭 하고야 마는 나를 누가 말리랴.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중국에서도 비교적 오지로 알려진 운남성(雲南省) 여행의 일정은 쿤밍으로부터 시작하여.중띠엔(샹그릴라), 려강, 따리 순으로 짜여졌다. 첮 도착지인 쿤밍은 운남성의 성도(省都)로 기후가 온화하여 사계절 끊임없이 꽃이 핀다 하여 꽃의 도시로 불려진다. 해발 1,891m의 고원에 위치해 있으며 운남성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앞으로 여행할 다른 도시들 보다 비교적 현대화된 곳이다. 쿤밍의 또 다른 특징은 26개의 소수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같이 여행하는 인원도 이에 못지않게 각양각색의 17인이 모였다. 인천공항서 3시간 반 만에 도착한 쿤밍과의 첫 만남은 저녁식당이다. 인원에 맞추어 두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데 누가 이리저리 가라고 일러준 것도 아니건만 용케도 알아서 나뉘어 졌다. 이름하여 신세대, 쉰세대 라고 했던가? 그렇게 갈라진 일행들은 여행 끝날 때까지 고정되어 버스 안에서도 앞뒤로 나뉘어졌지만 서로들을 배려하고 양보하여 좋은 관계가 되었다. 본격적인 여행 시작의 첫 날이다. 오전 에는 쿤밍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석림(石林) 으로 갔다. 출근길의 자전거 무리와 상쾌한 공기가 우리와 함께 했다. 거리 곳곳에선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1시간 20분 정도 고속도로를 이용 하는 석림 가는 길은, 작년 11월에 완공 되었다 한다. 바다 밑의 땅이 융기해 형성된 석림은 해발 1.750m까지 솟아 있는, 글자 그대로 돌들의 숲이다. 대석림, 소석림, 외석림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제일 먼저 간 대석림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바위들이 각종형태로 들쑥날쑥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관광객들은 미로 같은 7km정도의 길을 따라갔다. 일렬로 줄지어서 머리를 부딪힐까 조심하며 걷다보면 잠깐씩 쉴 수 있는 정자들이 있고 여러개의 이정표도 나온다. 좁은 바위 사이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돌아다니지만 제한된 시간에 모든 곳을 다 볼 수는 없었고, 그래도 꼭 놓치지 않고 올라야 할 곳이 석림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망봉정 (望峰亭)이다. 소석림은 대석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규모도 작지만 바위들도 20~30m씩 되는 대석림 보다 작다. 대신 인공호수와 정원을 바위들과 어우러지게 꾸며 놓았다. 대석림의 굴속 같던 바위 속에서 헤매던 눈과 머리를 식혀준다. 호수 한가운데 솟아있는 바위는 소수민족인 나시족 처녀를 닮았다고 아시마(何詩瑪)라고 이름 붙여졌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석림의 매표소 입구와 경관 좋은 곳곳에서 민족고유의상을 입고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돈을 받는 아가씨들이 보인다. 소석림을 나와 9인용의 작은 전동차를 타고 외석림 을 돌아보게 된다. 이곳은 먼저 본 두 곳과는 달리 아직 개발이 안 된 곳 인 듯 하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 정도의 넓은 언덕, 군데군데에 심어 놓은 듯이 바위들이 보인다. 이번에 함께 동행 한 친구 남편, 농담 삼아 계속 탐낸다. "저 돌 하나만 가져갔으면" 하고. 전동차로 20여분 돌아보고 나온 곳에 우리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버스 뿐 만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상대로 군고구마, 호떡, 과일 등을 파는 현지인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어제 저녁, 오늘 아침에도 탄 버스이건만 운전기사 얼굴을 이제야 확실히 보게 되었다.아니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한번 보았다. 코와 웃입술 사이에 양쪽으로 수염이 났는데(길렀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10cm정도 되는 길이에 단 두 가닥씩이다. 재미있고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놀란 듯이 다시 보는 나에게 웃음으로 답한다. 점심식당은 규모가 크고 깨끗한 곳이라 모두들 만족해하며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대하는 눈치들이다. 열 가지의 요리 중 네 가지는 야채고 나머지는 방법을 달리한 돼지고기인데 처음 몇 번은 같은 재료로도 이렇게 다르게 만들 수 도 있구나 했지만, 하루 두 끼씩 먹는 이것이 여행 끝날 때까지 계속 되니, 몇 분이 가져온 고추장이 제 역할의 몇 배를 더 한 것 같다. 점심 후 찾은 곳은 구향동굴(九鄕洞窟) 이다. 석림서 버스로 이동하는데 2시간 정도 걸렸다. 한창 도로포장 공사를 하고 있어서 이동하는데 더욱 시간이 걸렸다. 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곳의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로 지하에 내려가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즐겼다. 다시 올라와 동굴로 들어가면 종류석들의 잔치다. 어느 곳에선 제법 길고 물 양도 많은 폭포가 요란스런 소리로 떨어져 식곤증의 나른함에 빠져있던 우리들에게 청량제가 되었다. 동굴의 하이라이트는 동굴 끝나는 곳에 있는 넓은 광장이다. 물론 자연 그대로는 아니고 손질을 한 곳이겠지만 규모가 제법 커서 웬만한 공연은 할 수 있겠다 싶다. 운남성 여행의 마지막 날도 쿤밍이다. 따리(大里)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다시 서울로 가기 때문이다. 시내에 있는 취호공원(翠湖公園) 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현지인들로 북적인다. 춤을 추는 사람들과 노래를 하는 이들, 악기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또 어느 곳에선 토론을 하는 무리들도 있다. 사람 다니는 길을 제외한 양쪽으로 죽 늘어놓은 마작 테이블도 빈곳이 하나도 없다. 이 모든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은퇴한 노인들인 것 같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춤이나 마작 파트너가 부부가 아닌 쪽이 더 많단다. 노인정이라 지어놓고 방안에서만 즐기는 우리나라 노인들 보다 역동적이고 건강해 보였다. 오후에 리프트를 타고 20분간 오른 서산산림공원은 해발 2,500m이다. 쿤밍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위치해 있다하여 서산공원이라 한다. 표현은 안했지만 너무 높아, 올라가는 내내 불안했다. 무슨 일인지 중간에 몇 분 동안 리프트가 멈춰 서버려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정상에서 절벽을 끼고 나있는 좁은 계단(800여개)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용이 암벽을 뚫고 나간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용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문 위에 ‘용문’ 이라고 새겨진 곳이 있는데 그곳을 만지면 장수 한다나? 용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재미로 만든 얘기겠지. 다시 좀더 내려가면 원 시대에 지었다는 삼청각 (三淸閣)이 나온다. 더위를 피해 관리들이 공무를 행하던 곳이라는데 얼마나 깎아지른 절벽에 있는지 쳐다보기만 해도 오싹하여 제대로 일을 볼 수 있었을까? 조심하며 내려갔던 길을 다시 힘들게 올랐다. 이제야 한숨 돌리고 정상에 서서 한눈에 들어오는 쿤밍시내와 쿤밍호수를 보며 스틸사진처럼 지나가는 낯선 곳에서의 8일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