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란-중남미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작성일 :
2007.11.21
조회수 :
826
| 이 글은 서울에 사시는 박길란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박길란님은 2004년1월2일부터 1월19일까지 18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중남미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2004년1월1일 목요일 : 출발 전날 |
설 쇠고 자양동 집에서 돌아 온 것이 거의 밤 12시. 두 남자에게 세탁기 돌리는 것부터 다시 복습시키고 이것저것 확인 시키다보니 새벽 4시가 가까웠다. 누워도 잠이 올 것 같지 않다.이번 여행은 나름대로 정말 많이 준비 했다. 3년 전부터 저축하고 남미 문학작품을 읽고, 성능이 꽤 괜찮은 디지털 카메라도 준비하고, 백화점 문화 센터에서 몇 달간 카메라 조작법까지 배웠다. 너무나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여행이다. 더 나이 들어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가고 싶어 무척 조바심도 내고, 내가 있는 세상의 정 반대편이 궁금해 상상만으로도 내 심장이 진동하는게 온 몸으로 느껴지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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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2일 금요일(제 1일) : 드디어 출발 |
| 공항에서의 미팅이 오후 1시. 이 두터운 겨울옷에서 출발, 상파울로에 도착하면 그곳은 불볕더위 속이란 말이지! 왠지 신의 영역을 벗어나는 짓을 하는 것 같아 벌써부터 재미있다. 이번 여행 인원은 여행사 인솔자인 한 이사님을 포함해 10명이다. 여행 다니던 중 가장 인원도 적고 왠지 오붓한,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 이사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중남미 여행 자료집' 이라는 두툼한 책자부터 1권씩 나누어 준다. 세상에! 이 책을 읽다보면 LA에 도착 할 것 같다. 비행시간은 12시간 정도란다. 그 동안 못 잔 잠 다 채우면 좋으련만 아무리 오래 자려고 애를 써도 2시간 이상은 자지를 못한다.우리 일행은 거의 책을 읽고 있다. 친구인 영숙이도 열심이고…난 아무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 몸에 미열이 있는 것이 불안하다. 스스로 잘 먹고 잘 자자고 계속 최면을 건다. 미국 입국도 아니고 단지 경유 할 뿐인데도 LA공항의 검색은 기분이 상할 정도로 지나치다. 지문 찍고 사진 찍고…. 가진 짐은 몇 번의 검색대를 거친다. 세계 평화를 위해 열심히 협조했지만 DC에 찍힌 내 얼굴을 보니 비행시간에 지쳐 수류탄 하나도 못 들게 생겼다. 공항에선 약 20여년만에 대학 친구들과 요란한 상봉이 있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 역시 세계는 하나임에 틀림없다. 우리 풋풋한 20대 초반 같이 어울려 다닐 때, 먼 훗날 미국 땅에서 이런 상봉을 할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친구들과 헤어지고 이번엔 상파울로 행 비행기에 올랐다. 벌써 '비행기'의 '비'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기내에 들어서는 순간, 도로 튀어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지독한 낮선 외국인 냄새와 왜 이렇게 사람들이 큰지…. 스튜어디스부터 집채만하다. Varig 항공사면 남미 제일 큰 회사인데도,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코를 찌르고 승무원은 불친절에 옷매무새가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비행기 좌석 간격도 좁고…. 지옥의 12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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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3일 토요일(제2일) : 남미 여행의 관문 상파울로 |
| 브라질 시간으로 7시에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도착이 기쁘다 말다 할 것도 없이 우리 일행은 얼굴이 모두 반 넋이 나간 것 같다. 24시간 비행. 인간은 도대체 한계가 없는 동물이라니깐! 공항을 나서니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고 온통 푸르름으로 둘려 쌓인 것이 우리나라와 정반대 계절의 땅에 왔다는 실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상파울로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는 주말에 연말 연시여서 인지 텅텅 비어 있었고, 도심은 거의 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다고 한다.시내로 들어가면서 놀란 것은 공항 주변에서부터 시작되는 '파벨라'라는 도시 빈민가였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쓰레기 더미 속의 집들은 기가 막힌다. 저 슬픔의 집 속에 수많은 사연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속 '제제'가 있을 것이다.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먼저 독립 기념관으로 갔다. 이 나라에서 독립 기념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브라질 역사를 조금만 알고 있어도 의아해 할 것이다. 프랑스에 패해 자기 나라의 식민지였던 이곳으로 도망 온 포르투갈의 황태자가 독립(1822년)을 선언 한 것이니 말이다. 예상했던 대로, 기념관의 전시물은 스페인 왕조의 수많은 물건과 기독교의 성물, 건국 신화가 되어 굳어버린 황태자의 도착에서부터의 기록이 수많은 그림이 되어 온 벽을 도배하고 있었다. 이 기념관에서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은, 중앙 계단 난간에 브라질의 17개강에서 떠 온 물이 여의주처럼 각각 담겨져 서 있는 것인데, 넓은 국토를 상징하고 그들의 각각의 마음이 소중히 고여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다. 이곳을 나와 마스피 상파울 미술관으로 갔다. 전시물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미술관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건축물은 시간을 내서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것 같은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총 길이 74m의 건물이 한 개의 받침대도 없이 서 있다. 그 공법은 건물 옥상에서 내려 온 붉은 양옆의 기둥이 이 건물을 끌어 들어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큰 건물을 가느다란 두 개의 끈으로 들고 있는 형상이 내가 보기에도 어째 불안해 보였는데, 앞으로 이 건물의 수명은 20년 정도로 보고 있단다. 어떤 여성 건축가의 작품이라는데 그 아이디어가 놀랍지 않은가? 도시 중심지에 있는 성당으로 이동해서 구경하고 잠시 성당 앞 시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상점에는 많은 물건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색채로 눈길은 끌었지만 품질은 영 아닌 것 같다. 모두 브라질 돈이 없으니 슬슬 사람들 구경만 하다가, 또 원수 같은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갔다. 오늘 2시간 정도지만 이과수까지 가야한다. 오후 4시30분 정도에 출발한 국내선은 생각보다 탑승객이 적어, 세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더니 허리가 이제 살았다고 엄살을 피우며 늘어진다. 그대로 잠이 들어 1시간 가량이 지났나? 심하게 흔들리고 기장이 무슨 소리인지 떠들어대서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일어나 보니, 세상에 ! 내 눈 밑에 넓은 열대 밀림과 알 수 없는 작물(거의 콩이었음)이 심겨진 끝없이 넓은 밭이 새 파랗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이과수 !! 이과수폭포가 그림처럼 동그랗게 떠서 황토 물을 토해내고 있다. 기장은 저녁 햇살 속에 빛나는 이과수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보너스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오랜 시간의 비행기 여독이 이 몇 분간의 경치로 상쇄하고도 남아 모두 탄성을 지른다. 너무나 갑자기 다가온 광경이라 나도 최고의 순간에 맛보는 현기증을 느꼈다. 비행이 끝났을 때 탑승객 모두 기장에 대한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공항을 나오니 엄청난 더위가 나를 감싼다. 불시에 찜통 속으로 들어 온 것 같다. 이곳 가이드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아줌마로, 우리나라 IMF 때 신랑과 함께 이 곳까지 왔고 여기 와서 공부에 재미를 붙여 대학을 다니고 있단다. 호텔에 짐만 내려놓고 간단히 씻은 뒤 저녁 먹을 식당으로 갔다. 브라질 전통 식사인 슈하스트식 뷔페 스타일인데 TV에서 본대로 많은 종업원들이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를 부위별로 꼬챙이에 끼워 구워서 들고 다니면서 손님이 원할 때까지 무제한 가져다준다. 영숙이와 나는 먹는 것 보다 신기해서 사진 찍기 더 바쁘다. 고기 맛도 나쁘지 않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꼭대기 라운지 바에 가서 이 나라 민속주 '까이 삐리앙' 이라는 사탕수수로 만든 칵테일을 한잔하고, 방으로와 행복한 샤워를 하고 시차라는 것도 못 느끼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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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4일 일요일(제3일) : 폭포의 향연, 브라질 이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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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자! "영숙아 ! 드디어 이과수다!" 신선한 과일로 아침을 먹고 9시 이과수로 출발했다.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인가!버스를 타고 밀림 지역을 통과해 핑크 색 호텔 앞에 도착해 내리니… 세상에! 세상에 !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되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여러 줄기의 폭포가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펼쳐졌다. 모두 일제히 탄성을 지르고 셔터를 터트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웃기는지…. 브라질 쪽 폭포의 1/100 정도를 보고 난리를 피웠으니… 주차장에서 폭포 중심까지는 거의 10㎞, 숲길을 따라 가면서 오른 쪽 폭포를 계속 보며 가게 된다. 이과수폭포를 중심으로 한 국립공원은 면적이 24만ha로 서울의 3.2배나 된다. 1939년 국립 공원화 되었으며, 1989년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하얀 포말을 그리며 수십 수백 개의 폭포들이 일단 이단 계단식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내가 기대한 이상이었다. 우리 설악산 비룡 폭포 정도, 아니 제주도 천지연 폭포 정도 규모의 폭포 몇 백 개가 한꺼번에 내 눈앞에서 흘러내린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나 이동해서 폭포 중심으로 갈수록 수량은 많아지고 천지를 흔드는 물소리는 점점 더 나를 흥분시켰다. 폭포에 접근하는 다리를 건널 땐 이미 인간의 소리는 다 사라지고 오직 자연의 웅장함과 외침만이 있을 뿐이었다. 폭포 주변엔 여러 개의 무지개가 서고 내 몸은 폭포에서 떨어져 나온 물방울 세례로 축축해졌다. 폭포가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 가능한 전망대로 이동해 이 자연의 거대함을 마음껏 즐겼다. 점심은 이과수 옆 식당을 이용했는데 식당 위치가 강물이 흘러 와 절벽으로 떨어지는 지점 위에 있어, 거짓말처럼 그 큰 굉음은 사라지고 이과수 강만 바라보이는 고적함이 흐르는 곳 이었다. 메뉴는 역시 뷔페식인데 음식의 종류가 서울 특급 호텔 수준이며 전부 맛도 최상급이다. 점심 후 마꾸꼬 투어를 했다. 지프차로 정글을 가로질러 강 쪽으로 접근해 보트를 타고 폭포 아래쪽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지프차를 타고 가다 내려 잠시 밀림 속을 걸어 보았는데, 하늘을 가린 숲과 벌레들의 향연으로 제법 원시 세계로 들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착장에서 모두 비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쾌속정을 탔다. 정말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서 폭포 도착하기도 전에 물보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 맞은 생쥐 꼴이다. 뜨거운 햇살에 온 몸이 익는 것 같아도 모두 속도의 경쾌함과 폭포 물벼락 스릴에 배 안은 최고조의 즐거움으로 행복감이 넘쳤다. 한국에서부터 비옷 준비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 한 이사님을 향해, 입으나 마나한 건 왜 챙겼냐고 핀잔을 주면서 모두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멋진 여행의 서막을 알렸다.몇 십 년 묵었던 온갖 삶의 스트레스를 다 날려 보내고 새 공원으로 갔다. 동남아의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새 공원·나비 공원들을 가게 되는데, 처음 보는 원색의 열대 새 들을 보면 처음에는 감탄하지만 곧 식상하게 된다. 여기도 그러려니 하는 고정관념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게 아니다. 우선 너무나 화려한 깃털의 빛깔과 다양함에 놀라고 새라고 부르기에는 내 관념을 뛰어넘는 큰 사이즈에 질린다. 여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여러 종류의 새를 보면 난 분명 미지의 세계에 들어 와 있는 것이다. 새 공원을 나와 일단 오늘 묵을 호텔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움직이기로 했다. 오늘 호텔은 이과수 골프 리조트인데 사방이 골프장으로 둘러 쌓인 방갈로 형태의 호텔로, 걸어서 이동하기 힘들 정도로 넓고, 그림엽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경치에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 대충 씻고 이과수폭포 하단 지역으로 이동! 이과수 강과 빠라나 강이 합류하면서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 세 국경이 접하는 곳을 구경했다. 저녁은 중국식 식당으로 조촐한 식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식당의 압권은 파가 잔득 든 김밥이었다. 모두 김밥에 반가워한다. 맛을 본 얼굴들이란…호텔로 들어오니 벌써 어두워져있어 간단히 빨래 좀 하고 금방 잠이 들었다. 아 !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지 않는 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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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5일 월요일(제4일) : 천지창조의 아르헨티나 이과수 |
| 어제 일찍 잔 덕인지 밖은 아직 밝지 않은데 눈이 떠졌다. 여명 속에 살포시 보이는 호텔 정경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영숙이를 깨워 재빠르게 나갈 준비를 하고 대지에 햇살이 퍼지길 기다리며, '내 인생 최후의 날' 아니, 앞으로 남은 '내 인생 최초의 날' 처럼 열심히 살 하루를 맞이한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햇빛이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가방을 문 앞에 내놓고 잔디에 내려서는 순간! 내 다리에 금방 땅의 정기가 타고 올라 심장을 데운다. 눈앞의 모든 사물들이 새들의 노래 소리를 반주로 해서 서서히 자신의 색깔을 내고 있다. 호텔의 멋진 건물과 숲과 자그마한 호수는 여기저기 요정을 뿜어내면서 아침을 열고 있어, 나는 의심하지 않고 여기가 극락의 모습이라고 확신한다. 영숙이와 나는 자신의 피사체를 찾아 계속 셔터를 눌러댔다. 한순간 난 자연과 내가 충분히 교감하고 있다는 소중한 감동을 받았다. 깔끔한 아침을 먹고 오늘은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폭포로 향했다. 500m 정도의 긴 다리를 건너자 이제부터 아르헨티나란다. 폭포까지는 우선 꼬마기차를 타고 20∼30분가서, 이과수 강 2㎞ 정도 위쪽의 다리를 건너 폭포에 접근하게 된다. 남미의 유럽이라는 아르헨티나가 실감나는 건, 매표소부터 유색 인종은 한 사람도 안보이고 모두 순수한 백인들이라는 것이다. 영어나 불어가 튀어나와야 어울릴 것 같은 금발들의 낯선 스페인어는 왠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붉은 흙의 밀림 한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기차 정거장은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지…. 부모 따라 소풍 와 있는 것 같은 동화 속 풍경을 만들어 준다. 폭포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물의 굉음은 커지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궁금증만 더 해 간다. 그러다 한 순간 ! 커다란 구멍 속으로 강물이 진공청소기 먼지처럼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폭포에 다다랐을 때, 영숙이와 나는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서로 쳐다보면서 외쳤다. 크∼은 소리로 "올 겨울 우리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이 폭포는 '악마의 숨통'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불리지만 나는 '천지 창조' 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신이 이 세상 만물을 만들 때, 이렇게 모든 것을 섞어서 거대한 힘으로 휘저어 강인한 팔로 산을 끌어내고 강을 끌어내고 숲을 만들어, 인간을 저 속에서 창조해 냈을 것이다. 어제 브라질 쪽 폭포는 인간이 이해 할 수 있는 강한 매력의 자연적 아름다움이었다면 이곳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우리의 이해도 찬사도 가당치 않은 신의 영역이었다. 붉은 황토 물이 새하얀 포말로 부서져 엄청난 속도로 쏟아져 내린다. 우리 인간은 원초적으로 고요하고 깊은 자연에 감동을 받게 되어 있다고 믿었는데, 이 역동적이고 웅장한 자연은 감동보다 더 큰 무조건적인 그 존재의 인정과 복종을 끌어냈다.이런 감정은 내 아들이 태어나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잠들은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 ! 네가 나의 우주구나 !" 라며 내 속 깊숙한 곳의 절대자(絶對者)를 감지했던 그 느낌과 흡사했다. 모두 폭포의 물세례로 온 몸이 다 젖었지만 누구하나 그곳을 뜰 생각을 안 한다. 거의 1시간 이상을 머물렀지만 한 이사님도 우리를 재촉하지 않아 어찌나 고마운지… 점심은 독일의 맥주전용식당 같은 엄청나게 큰 곳에서 했는데(나중에 알아보니 주인이 독일인이란다), 입구에서 안쪽 벽까지는 가물가물하기까지 하다. 영숙이와 난 식당에 와서도 신기한 것이 많아 먹는 것보다 사진 찍는데 더 정신이 팔렸다. 식사 후 이타이푸(ITAIPU) 댐으로 이동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가 공동으로 건설한 이 댐은, 이곳 원주민어로 '노래하는 돌' 이라는 서정적인 명칭이 어울리지 않게 세계 최대의 발전 용량을 자랑한다. 무려 충주댐의 32배요, 소양강 댐의 63배나 된다. 18년(1971년∼1991년)에 걸쳐 완성된 이 댐은 지상에서는 어디에서도 전체를 찍을 수 없다. 도대체 너무너무 어마어마한 이 콘크리트 구조물을 차를 타고 구경을 해도 전부 토막내서 구경하는 꼴이니, 가이드의 통계 숫자 설명 말고는 확실한 감동이 와 닿지를 않는다. 아이고 ! 단 하루 지상에서 놀았다고 또 비행기다. 남미 여행의 모든 길은 상파울로부터라서 또 국내선으로 그 도시로 갔다가 다시 국제선으로 아르헨티나의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가야 한다. 날자! 날자! 또 날고 자꾸 날자 ! 4시30분 출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니 밤 11시30분경이었다. 비행기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나르다, 한 순간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거대한 도시가 부상하는 광경은 한 마디로 쇼크다. 정말 거대하고 화려한 다이아몬드가 점점이 박혀서 엄청난 바둑판같이 보이는 경관이란!. 도시 형태가 100m 100m, 한 블록으로 그물을 반듯하게 펼쳐 놓은 것 같이 짜여진 계획도시라 밤에 그 모양이 더 확실하게 보인다. 공항에서 고속도로로 30분 정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한 밤의 도시는 하늘에서와는 다르게 어두침침했으며 도시 전체가 파리의 뒷골목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묵을 호텔은 ABASTO 호텔인데, 온 호텔이 탱고 춤추는 한 쌍의 상징 그림으로 꽉 찼다. 아! 나도 왠지 이 밤 ! 영숙이라도 붙들고 탱고를 추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방에 들어오자 둘은 말도 못 부쳐보고 혼수상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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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6일 화요일(제5일) : 순도 100% 자연의 땅 칼라파테로 |
|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 칼라파테로 간다. 비에 푹 젖은 도시는 깊은 우울함이 깃들어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들어온 넓고 푸른 팜파는 어디 가고 이런 잿빛 도시만 보고 가야하나…공항을 9시30분에 출발, 12시20분에 칼라파테에 도착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 할 때는 비가 오고 있었지만, 이곳은 쾌청한 날씨에 순도 100%의 청량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준다. 기온도 20 정도를 조금 웃돌며 바람이 상쾌하다. 공항은 시골의 한적한 간이역 수준이며 공항의 조그만 건물과 활주로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경치는, 어느 것 할 것 없이 할 일을 완전히 잊은 황량한 대지, 대지뿐이다. 삭. 막. 하. 다. 공항에서 차로 30분 정도를 달리니 마을이 나타났는데, 마을 입구부터 흐드러지게 핀 각종 꽃들과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길 양옆 미루나무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퇴출 된 동요 속의 미루나무가 이곳에서는 제 몫을 톡톡히 잘 하고 있어 대견스럽다. 기후적인 이유겠지만 낮고 작은 집들이 동화 속 세상처럼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 정말 예쁘다. 이곳 가이드의 설명으로, 이 마을에 남미의 교민 관광객을 제외하고 순수한 한국 단체 관광객으로는 우리가 두번째라니 정말 먼 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이 중국인인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배불리 먹고 숙소에 짐 맡기고, 드디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크고 제일 아름답다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로 출발했다. 이 도시에서 빙하까지는 80㎞ 정도를 달려가야 했는데 1시간 아스팔트길에 또 1시간 비포장도로가 정말 죽을 맛이다. 엄청난 먼지와 요동치며 흔들어 대는 승합차는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투덜거림도 잠시 멀리 빙하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 컨디션은 빠르게 회복된다. 차에서 내려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에 도착하니 기온은 뚝 떨어져 있고 칼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모두 한겨울 복장으로 무장하고 배에 몸을 싣고 빙하의 코앞까지 이동했다. 빙하 전면의 길이만 4㎞, 깊이가 50㎞ 이상이라니…순백과 코발트 색 빙하의 위용은 대단했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 시리지만 카메라 셔터를 멈출 수 없다. 아무리 디카라지만 빙하만 100장을 찍었으니…높이 100m 가 넘는 빙하는 부분적으로 흙과 같은 침전물이 치타의 눈물 자국처럼 띠를 그리고 있지만, 가까이 볼수록 청아한 푸른빛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왜 파타고니아 국립공원 내 100여 개의 빙하 중에서 이곳을 유네스코가 세계 유산으로 지정했는지 이해가 간다. 간간이 따발총 소리를 내면서 빙하는 계속 떨어져 내리고 또 가끔은 우리가 괴성을 지를 정도로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린다. 배에서 내려 이번에는 빙하를 위에서 보기 위해 전망대로 이동했다."그래, 그래" "책에서 TV에서 익히 봐온 빙하의 모습은 이런 거였어!" 50㎞에 달한다는 빙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빙하는 눈부신 햇살 아래 온 나신을 드러내고 누워있다. 장관이다 ! 전망대는 빙하를 여러 각도에서 잘 볼 수 있게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자연을 거슬리지 않게 전부 나무로 된 산책로를 따라, 주변의 나무와 수많은 들꽃들이 짧은 이 축복의 계절을 놓치지 않으려고 푸르름과 앙증맞음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아 ! 이건 분명 지상의 모습이 아니라 천상의 모습이로다 !" 우리는 모두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이 빙하 하나를 나누어 담고 칼라파테로 돌아왔다. 이곳은 극지방이라 지금의 계절에는 일몰은 밤 11시경이고 일출은 새벽 4시경이다. 그러니 밤 보기가 쉽지 않고 하루가 길고도 길다. 저녁은 이 칼라파테에서 제일 유명한 양고기 바베큐 식당에서 먹었는데 손님이 많아 발 들여놓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 나라 사람들 정말 고기를 먹어도 먹어도 많이도 먹는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끝없이 나오는 고기를 접시 가득가득 끝없이 먹어댄다.난 도저히 보기만 해도 지겨워 한 조각도 못 먹겠다. 이제는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아니라 기름 흐르는 '괴기 덩어리'로 인식된다. 오이 몇 조각으로 저녁을 때우고, 영숙이는 다른 여 선생님들과 가이드 아저씨 집으로 맥주 한 잔 하겠다고 가고 난 일찍 방으로 돌아왔다. 칼라파테의 양고기 식사를 기점으로 여행 내내 고기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겨우 세수만 하고 누웠으나 너무 춥다. 집 떠나 처음으로 신랑이 몹시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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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7일 수요일(제6일) : 메마른 대지의 감동 아 ! 칼라파테 |
| 그래도 몇 시간 쉬었다고 아침은 한결 몸이 가볍다. 정말 아무런 가감 없이 오렌지 주스, 커피, 빵 한 조각인 소박한 아침을 먹었다. 매일 매일 화려한 호텔의 아침 식사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좀 황당하기도 했지만 나로선 아무 불평이 없다. 항상 이 정도만 먹어 왔으니… 오전에는 인근에 있는 목장으로 갔다. 호수에 면해 있는 목장은 생각보다 양들도 많지 않고 굉장히 한적하고 조용하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이 파타고니아 지역에만 약 400만 마리 정도의 양이 있고 이 양털의 70% 정도가 중국으로 수출된단다. 참 멀리도 간다. 한 가지 기억 남는 이야기는 보통 양들의 수명이 15세 정도인데 이곳 양들은 8세 정도란다. 풀이 거칠어 이빨이 약해져 오래 살지 못한다나…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2시간 정도 산책을 했다. 스위스나 뉴질랜드 같이 푸른 초지가 잘 조성된 목장 풍경은 아니지만 끝없이 넓은 초지와 생소한 야생화, 상쾌한 바람, 그 뿐인가? 호수 넘어 보이는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안데스의 연봉과 연봉들…지금의 이 여유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하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이 한가로운 소풍은 앞으로 남은 여행을 위해 내 몸을 충전시키기에 더 없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걷는 즐거움은 내 삶의 영양제 같다.오후는 지프차를 타고 칼라파테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투어를 하기로 했다. 어제 비포장도로에 질려, 시작은 큰 기대 없이 남들 다 하는 거니 해치워야지 하는 기분으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허술한 4륜 구동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그러나, 이게 장난이 아니다. 길이라고는 자동차 바퀴자국이 전부인 급경사 진 산허리를 물 밖에 끌려나온 생선이 날 뛰는 것처럼 요동치며 오르는데, 모두 내심 불안해서 아무 말이 없다. "이거 아무래도 잘못 시작한 것 같구만…." 그러다 산 위에 올라 능선을 타고 평원을 가로지르는데, 그 넓은 평지에 노란 애기 신발 모양의 키 작은 노란 꽃들이 쫘∼악 깔려있다. 그러면서 이 지구의 원초적인 속살을 들어내고 펼쳐진 대지의 모습에 모두 탄성을 지른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다! 그랜드 캐년 만큼 웅장하고 거대하지는 못하지만 황량함이 주는 감동이 깊다. 지프차는 계속 이동하면서 몇 군데 우리가 감동 받을 만한 장소에 세워 주는데, 내려다보이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담녹색 호수와 칼라파테 마을의 모습, 안데스의 설봉들이 어우러진 경치는 정말 비경이다. 차별 침식으로 남아있는 기암괴석들은 그 신기한 형태로 내가 이름 모를 어떤 행성에 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지프차는 여전히 심한 요동과 45 이상의 급경사를 오르내려 공포심을 자아내지만 이제는 모두 이 스릴을 즐기고 있다. 확실히 말하건대 이 투어는 유쾌·상쾌·통쾌, 삶의 충전 100% 코스다. 투어를 끝내고 잘 생긴 운전사에게 "당신운전 솜씨는 아르헨티나 축구 실력보다 훨씬 낫다"고 칭찬했더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정말 정말 신나는 3시간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이 산에서 찍은 이름 모를 많은 야생화들은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 나를 이 날의 추억과 함께 행복하게 해준다. 칼라파테에서 8시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어중간한 저녁 식사를 해결하려고 피자를 먹었는데, 이 지구 끝에서 먹은 나폴리 피자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맛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밤 11시15분에 도착, 호텔에 들어오니 또 12시를 넘겼다. 매일 밤, 영숙이와 같은 방을 써도 서로 이야기도 못 해보고 방에만 들어오면 씻고 침대 속에 들어가기 바쁘다. 오늘도 콱콱 채운 빛나는 내 인생의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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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8일 목요일(제7일) : 에비타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
| 오늘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구경을 하고, 3시35분 비행기로 상파울로로 가서 다시 비행기로 리오 데 자네이로까지 간다. 화창한 날씨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며칠 전보다 밝고 거리의 사람들도 여유 있어 보인다. 비잔틴과 로코코 양식의 도시 건물은 중후하고 고풍스럽지만, 왠지 짓 눌린 육중한 느낌이 유럽과는 조금 다른, 계획적이고 일률적인 군사도시 같은 냄새가 난다. 우리는 먼저 레클레타 묘지로 갔다. 각 나라마다 특이한 관광 코스가 있지만 아침부터 공동묘지라니…. 우리 정서와 달리 아무리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도시 가깝게 둔다지만…. 굉장히 호기심이 발동한다. 레클레타 공동묘지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도로를 따라 양옆으로 묘지라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정교하고 고급스런 축소된 도시 같은 형태다. 쉽게 말해 한 집안의 납골묘가 각각의 특색과 개성으로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내노라 하는 부자들의 납골당이다. 3∼5평 정도의 묘지 가격이 웬 만한 아파트 가격보다 비싸고, 팔려고 내놓는 사람도 없어 거래는 거의 없단다. 이 묘지들 중에 관광객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에비타의 묘다. 다른 묘보다 이곳에 꽃들이 가장 많이 놓여 있었다. 다른 묘지보다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까만 대리석의 반짝임은 그녀를 상징하는 듯했다. 여전히 후대인에게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 라는 칭찬과 모독을 동시에 받는 그녀의 삶과 내 삶의 무게를 양손에 놓고 가늠해 보는 엉뚱한 상념에 빠졌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자기 삶에 충실했을 거고, 난 나대로 내 삶에 만족하니 자신의 인생을 사랑함에는 우열이 없을 것이다. 10차선 정도 되어 보임직한 5월 대로를 통과해, 핑크 빛 대통령 궁과 국회 의사당, '산 마르코 성당'을 볼 수 있는 '5월의 광장'으로 갔다. 에비타가 광장에 모여 자신을 신처럼 믿고 따르던 군중을 향해, 내려다보며 따뜻한 미소(?)로 손 흔들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던 대통령 궁은 아름답고 우울했다. 건물 전면은 핑크빛으로 잘 단장되어 있지만 옆과 뒤는 회색 빛 그대로여서 꼭 지금의 아르헨티나를 보는 것 같다. 산 마르코 성당은 여느 유럽의 큰 성당에 빠지지 않을만큼 화려하고 아름답다. 특히 20세기 초반의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것 같은 이태리에서 수입해 깔아 놓은 모자이크 타일은 인상적이다. 이 광장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다. 이 작품은 로댕이 인정한 4개의 정품 중 하나인데, 뉴욕·파리·동경에 하나씩 있는 것은 모두 박물관 박제가 되어 모셔져 있지만, 유독 아르헨티나만 이 엄청난 가격의 예술품을 비와 추위와 오늘 같은 강한 햇빛 아래 내놓고 있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에게는 다시 누려 볼 수 없는 눈의 호사라 모두 오랜 시간 이 큰 아저씨 앞에서 머물렀었다. 어쩌든 이 아저씨만이 다른 3명에 비해 동상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당당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것 같다. 그러면서 아르헨티나의 서글픈 자존심 같다는 생각도 들고…칼라파테에서 모자를 잃어버려, 가이드에게 부탁해 모자 하나 살만큼의 시간만 시내에서 소비하고(실제로는 종도 2개 샀음) 보카 지역으로 이동했다. 탱고의 발상지로 유명한 이 지역은 꿈을 머금은 파스텔 톤 색채의 낡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20세기 초 이 나라가 최고로 경기가 좋았을 때 꿈을 찾아 들어 온 유럽 노동자 계급이 모여, 고향을 그리며 정착한 약간은 비애가 어려 있는 곳이다. 지금은 마라도나를 탄생시킨 보카 주니어스 축구 팀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실제 보카 지구 한 가운데 이 축구팀의 전용 경기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옛날 어부와 부두 노동자들이 배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를 모아 집을 치장하면서 여러 색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이곳의 상징이 되어 배색이 잘 된 한 장의 그림처럼 예쁘다. 거리에서는 늙고 추한 한 쌍의 남녀가 1불 씩 받고 관광객을 상대로, 탱고 춤의 약간은 섹시하고 조금은 고혹적인, 그러나 왠지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포즈를 취해주며 땀을 흘리고 있다. 상점마다 조잡한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그러나 아마추어 화가들이 들고 나온 그림들은 모두 비슷한 색채를 가졌으나 자세히 보면 여러 기법이 실험된 가지고 싶은 그림이 정말 많다. 지금도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사지 못한 것이 많이 후회된다. 천천히 보고 느끼고 싶었던 보카 지역은, 한 30분 만에 콩 튀기듯 점만 찍고 떠나야 했다. 정말 아쉽다. 이 도시 빈민촌과 접하고 있는 한인촌의 식당으로 이동해 오랜만에 한식 점심을 했다. 한식도 내 식욕을 돋우지 못하고 어설프게 조금 나온 냉면과 시원한 수박으로 배를 채웠다. 수박은 감탄 할 정도로 달고 맛있다. 그러나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이제 아르헨티나를 완전히 떠났다. 이 나라에서 3박은 너무나 정신없이 지나가 칼라파테 농장에서의 산보가 먼 꿈속의 일만 같다. 상파울로를 경유해 리오테자네이로 비행기를 탔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시 국내선이라 비행기는 1/3 정도만 찼다. 모두 3자리씩 차지하고 누워 단잠에 빠졌다. 그런데 기체가 흔들리더니 완전히 롤러코스트가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 비명 소리가 들리고 최상의 공포감이 밀려 왔다. 약 1분, 아니 30초 동안 계속된 난기류 통과는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으니깐.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지만, 나도 몰랐던 내 깊은 내면에 "이제 죽어도 그렇게 억울할 것 없다"는 이성의 소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이 평온해 지기까지 했다. 이건 내가 올바르게 나이를 먹어 간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공항에 내린 우리 일행 모두 먼 세상을 구경한 얼굴이다. 조금 늦었지만 리오의 첫 여행은 삼바쇼로 시작했다. 한 극장에서 진행된 쇼는 훌륭했다. 화려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 몸은 분명 커다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깐. 특히 남자들의 집단 율동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유연하고 그러면서 아름다운 단단함은 큰 감동을 주었다. 브라질의 전통무예 '까뽀에라'를 대결의 의미보다 팀워크를 중요시하고, 조화와 공존의 정신으로 승화 시킨 것이리라. 오늘 본 남성의 벗은 상체는 수컷의 섹시함이 아니라 예술의 경지에 이른 생명의 정수였다. 호나우두의 현란한 발놀림과 히바우두의 멋진 오버 헤드 킥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보통 춤의 쇼를 보면 여자가 중심인 것이 대부분인데 이 브라질 삼바 쇼는 남자주도 하에 여자는 단지 장식품에 불과 하다는 감이 왔다. 쇼가 끝나고 무대의 무희들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즐기는 시간이 있었다. 어찌되었건 이들 생활의 일부분이며 놀이의 달인들 향연을 잘 구경하고, 타악기의 깊은 떨림을 가슴에 품고 호텔로 돌아오니 밤 1시가 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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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9일 수요일(제8일) : 20년 전부터 꿈꾸어 온 나의 리오 데 자네이로 |
| 리오 리오 리오! 리오 데 자네이로! 20년 전 일본에 유학 가 있을 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습지만 '中井貴一' 라는 배우에게 열중해 있을 때가 있었다. 그 배우가 너무 좋아 TV 드라마, 영화, 노래까지 눈에 불을 키고 보고 듣고 하면서 설레곤 했다. 그 사람 노래 테이프를 사 그 테이프가 다 늘어질 정도로 들었는데, 그 중에 '리오 데 자네이로' 라는 노래가 얼마나 좋았던지…. 그 슈크림 같이 달콤한 목소리가 '리오 데 자네이로'를 외쳐 댈 땐 숨이 막힐 정도로 이곳이 그리웠다. 가난한 유학 시절이라 그 당시는 이곳에 오겠다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난 지금 리오의 호텔에서 하늘을 찌를 듯 쪽쪽 곧은 야자수와 하얀 백사장의 해변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는 날! 그것만으로도 흥분 될 정도로 기쁘다. 잔뜩 구름이 끼어서 비를 뿌릴 것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모두 어제의 피곤함은 싹 잊은 듯 건강한 얼굴이다. 먼저 이 도시의 상징인 코르코바도 언덕의 예수 상을 보러 갔다. 이 도시 어디서든지 보이는 예수 상은 브라질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깊게 각인되어 있다. 언덕을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약간의 열대림을 벗어나자 리오의 전경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조금씩 조금씩 올라,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리오의 그림 같은 경치가 모두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산과 바다, 그리고 낮은 하늘이 도시의 조형물들과 이렇게 퍼펙트 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인지…숨이 멎을 것 같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섰을 땐 나의 감동을 누군가와 같이 공감하고 싶어, 가장 가깝게 있는 한 이사님이랑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나랑 같은 기분임에 틀림없는 얼굴이었다)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 몇 백 개의 섬과 흐린 회색 빛 하늘과 그 하늘을 옅은 청회색으로 끌어안은 바다는, 침착하고 한가로운 여유로움으로 내 몸 속에 스며든다. 과나바라 만을 따라 발달한 도시도 전혀 이 천혜의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언덕의 예수 상은 1931년에 완성된 것으로, 높이가 30m 양팔의 길이가 28m로 엄청난 크기다. 요즘 TV의 Anycall CF에서 리오를 잠시 보이면서 이 예수 상의 뒷모습을 비추는데, 그래 ! 정말 뒷모습에 표정이 있다. 앞모습은 양팔을 힘껏 벌린 조금은 경직된 예수 상이지만, 뒤에서 보면 약간 앞으로 어깨를 구부리고 정말 온 세상의 모든 인류를 품어 안은 너그러움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 아니 약간은 지겨울 정도로 리오를 눈에 담고 가슴에 채워 내려 왔다. 점심 식사는 리오의 부촌 한 가운데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갔다. 여기 저기 식당 내부와 종업원의 몸가짐에서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벽에는 이 식당을 다녀간 브라질 최고 축구 선수들의 유니폼이 잔뜩 걸려 있다. 뷔페 식단도 나무랄 것이 없다. 나로선 정말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왜냐고? 내가 좋아하는 일식 요리가 많 았으니깐. 잘 생긴 꽃미남 종업원 한 명이 내가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것을 알아채고, 소 한 마리의 온갖 부위를 다 가져와 먹어 보라고 통 사정을 한다.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표정에 내가 미안해 죽을 판이다. 일행 중 한분이 술을 한 병 사셨는데 와 ! 모두 감탄 ! 두 분이 아프리카 여행 중 드셔 보셨던 술이라는데(도저히 이름이 생각나지 않음) 꼭 우유 캐러멜을 액체 상태로 만든 것처럼 색과 맛이 감미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술 한 병 값이 75불 ! 브라질에서 이 만한 돈이면 천문학적인 액수다. 식당을 나와 잠시 해변에서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맨발로 걸은 백사장은 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부드럽다.흔히 남미 해변 하면 떠오르는 쭉쭉 뻗은 팔등신 미녀들은 한 명도 보지 못했지만, 여자라는 사람은 할머니부터 아기까지 전부 비키니 차림이다.비키니도 보통 비키니인가. 위아래 것 다 합쳐야 내 두 손바닥 만 할까?모든 걸 다 가리고 있는 우리는 확실히 이방인, 아니 외계인이었다. 도시를 이동하면서 리오 최대 부촌의 쇼핑몰 앞에 엄청난 크기의 삼성 로고 입간판이 대한민국의 자존심처럼 보여 자랑스럽다. 브라질 부자들이 자가용 헬기를 타고 와 쇼핑을 한다는 이곳을 조금 지나면 옛날 우리나라 전형적인 달동네가 그 끝을 모르게 형성되어 있다. 버스는 마라까낭 축구장으로 갔다. 상암 경기장 같은 훌륭한 초현대식 축구장을 가진 우리로선 시설 면에서 노후된 상태를 보면 좀 실망스럽기고 하지만, 이 경기장이 1950년에 완성된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감탄사가 나온다. 우리는 돌다리나 만들던 시절에 말이다. 지금도 한 달에 3번 정도 20만 관중이 들어와 큰 경기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사용함에 아무 불편함이 없다. 더더욱 이 나라 축구 역사를 함께 한 산증인으로서의 의미만으로도 구경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브라질만이 가질 수 있는 훌륭한 관광 자원이다. 지하로 내려가 선수들의 라커룸과 미니 연습장, 샤워 실을 둘러보면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상상하니 어떤 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경기장의 객석에 이 축구장을 지을 때 투자한 사람들의 지정 좌석이 있는 것도 인상 깊다. 경기장 입구에는 브라질 최고 선수들 족적이 새겨져 있어 모두 자신이 아는 선수들을 찾아 사진도 찍고 발도 비교해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축구장을 뒤로하고 간 곳은 삼바 경연장! 리오는 매년 2월에 세계적인 리오 카니발이 열리는데 바로 그 장소다. 한번이라도 TV에서 카니발을 본 사람이라면 그 화려하고 큰 스케일과 많은 관중에 압도당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카니발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지금 내 눈앞의 경연장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도저히 그 현란한 카니발이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양편으로 시멘트로 겨우 모양만 낸 스탠드가 있고 2차선 정도의 길이 하나 있을 뿐이다. 정말 맹랑할 정도로 전무한 풍경이다. 다음은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이다. 정말 이 성당은 우리의 고정 관념을 깨는 개성 그 자체이다. 1976년에 만들어진 초현대식 건축물로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성당이 아니라, 조금 과장하자면 외계인과 접속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상징적 구조물이라 함이 더 어울린다. 수 만개의 유리를 붙여 만든 각진 원뿔형 외관으로 높이가 80m이며, 2만 명을 동시에 수용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으로 들어가면 그 크기에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성당 내부는 굉장히 어둡고 그래서 더 존재감이 인상적인 원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빛을 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팡테아 슈가로프 산으로 갔다. 성당을 나서는데 비가 조금씩 뿌리더니 도착하니 제법 굵어졌다. 오전의 코르코바도 언덕에서 보는 리오는 도시 뒤쪽에서 해변을 따라 발달한 도시와 바다, 섬을 보는 경치라면 원뿔형 슈가로프 산에서 보는 경치는 바다에서 리오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에 걸쳐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갔을 땐 경치는 고사하고 코앞도 안보일 정도로 비가 억수 같이 퍼붓는다. 그래도 모두 비를 맞으면서 구름 속의 리오를 보기 위해 필사적이다. 결국은 몸이 너무 젖어 추워지니 상점의 처마 밑에 쭉 서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그 커피 맛 엄청 쓰구만 !" 기다리다 포기하고 내려오기는 했지만 아쉬움은 없다. 그만큼 코르코바도 언덕에서의 리오가 나를 충분히 채워 주었으니깐. 그리고 하느님이 항상 모든 상황을 최고로 해 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산에서 내려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하느님의 더 깊은 뜻을 알았다. 모든 것을 다 씻어 내고, 우리에게 지상 최고의 노을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음을… 비를 그렇게 많이 머금고 있던 회색 빛 하늘이 벗어지면서 선홍색 물감이 번지더니 그 색은 점점 엷어져 오렌지 빛으로 변했다. 그러다 종국에는 바다와 닮은 담녹색으로 변해 하늘과 바다는 지평선의 가느다란 선만 남기고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예정에 없던 큰 선물을 받았다. 저녁 식사도 본토의 스시와 비교는 안되지만 그 정도면 브라질 최고라고 느낄 수준의 원조 스시로 배를 채우고 호텔로 돌아오니 7시30분! 집 떠나고 처음 가지는 여유다. 매일 한 밤중에 들어오니 잠자기 바빴지만, 오늘은 영숙이랑 이야기도 하고, 빨래도 하고, 다음 여행지 점검도 하고, 저 엉말 좋다. 그러나 내일은 호텔 출발이 05시니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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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10일 목요일(제9일) : 잉카의 제국 페루 리마 |
| 리오에서 7시50분 출발. 그동안 수도 없이 들락거린 상파울루를 거쳐, 이제부터는 나를 과거의 세상으로 데려다 줄 타임머신 격인 비행기를 타고 페루 리마에 도착하니, 페루 시간으로 12시10분이었다. 브라질과의 시차로 난 3시간 젊어졌다. 가이드로 나온 총각은 리마 현지 여행사 사장이면서 원단 관계의 사업을 한다는 30대 초반의 통통한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공항을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본 리마는 가장 먼저 지독한 건조함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기온은 높지 않았지만 먼지와 스모그가 심해 당장 가슴이 뻐근해 진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지나면서 많은 인종을 보았지만 이곳은 또 다른 인종이다. 이 나라 인종 구성이 50% 정도가 인디오, 20 30%가 메스티조, 그 외는 백인 아시아계로 이루어져 있다. 나랑 비슷한 거리의 얼굴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이 느낌은 인도에서 네팔로 들어섰을 때도 그러했다. 남녀가 모두 자그마한 것이 소인국에 온 것 같다. 식당을 가기 위해 해안도로로 들어섰을 때, 바다가 반갑다기보다는 해풍과 바다의 습기가 노후한 차들이 뿜어대는 스모그와 합쳐져, 내 폐는 그 기능을 멈출 것처럼 괴롭다. 중국식 식사를 하고 간 곳은 리마의 부촌이 형성되어 있는 미라플로레스 지구의 '사랑 공원'이었다. 이 해변가 공원의 상징인 사랑의 키스를 열렬히 나누고 있는 남녀 조각상이 가장 크게 눈에 띈다. 커다란 좌대 위에서 백인 남녀? 아니면 메스티조 얼굴인가?찐한 키스에 열중하고 있는 붉은 조각상은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관찰해보니 제법 매력적이다. 황금 박물관으로 이동했다.이 박물관은 한 개인의 소장품을 전시한 곳인데 진열되어 있는 유물이 너무 많아 내가 봐도 기가 막힌다. 너무 많아 어수선하고 보관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고,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진열 상태가 거리의 사람 표정과 비슷하다.그러나 이 박물관보다 잉카 유물을 많이 소장한 곳은 없으며 그래서 세계 각 국에서 순회 전시회를 많이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했고, 황금의 정교한 여러 보물들도 좋았지만 왕족의 가마가리개 황금 장식과 나스카 지역에서 발견된 새 깃털로 만든 옷은 탄성을 지를 정도로 아름답고 섬세하다. 그리고 웬 황금 코털 뽑는 족집게는 그리 많은지…. 이 수집가의 기호에 맞추어 세계 각 나라의 검들이 전시실 방 몇 개에 전시가 아니라 거의 쌓여 있다고 해야 함이 옳을 것 같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장대 같은 검들 사이에 내 가운데 손가락 만 한 우리의 은장도가 목 좋은 곳을 차지하고 전시라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 칼을 보고 있자니 자랑스럽기보다 확실히 설명 할 수 없는 코메디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박물관 구경을 하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이 광장은 리마의 구시가지 가운데에 있는데 구시가지는 빈곤과 불결함이 뚝뚝 묻어난다.리마 시내는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 지역을 제외하면 도시 전체가 빈민굴이라고 할 만큼 열악하다. 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집들은 대부분 지붕이 없고 돈이 없어 완성된 집을 보기 힘들다. 그리고 완성된 집은 그 순간부터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몸만 들어 갈 정도면 그 상태로 중단이다.또 거리의 차들은 왜 그렇게 시합하듯 경적을 울려대는지! 무슨 이유가 있어야 이해를 하지….거리 택시는 거의 우리나라 티코다. 그러나 흐뭇해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내 맘이 복잡하다. 이 도시도 세계 모든 후진국들이 겪고 있는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과 또 이들의 빈민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녁 무렵의 광장에는 많은 시민이 나와 데이트도 하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난 준비해간 머리핀과 볼펜, 사탕들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그들의 해맑은 웃음을 구경했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물건들이 탐이나, 차마 달라는 소리는 못하고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떠나지 못하는 어른들이 신경 쓰이고 한편은 재미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양은 한정되어 있으니…. 광장 주변의 국회 의사당에는 페루 국기와 인디오의 상징인 무지개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1층 상점에서 내 맘에 꼭 드는 숄을 하나 샀다. 문양과 빛깔이 잉카의 냄새를 팍 팍 풍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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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11일 금요일(제10일) : 세상의 배꼽 쿠스코 |
| 오늘은 쿠스코로 가는 날이다. 06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03시에 일어났으니 아주아주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남미 여행을 그렇게 준비하고 기대 했다면 결국 오늘과 내일이 하이라이트 일 것이다. "잉카를 보고 싶어! 잉카를 느끼고 싶어! 잉카를 듣고 싶어!" 비행기를 타고 조금이라도 졸고 싶었지만 창 밖의 만년설을 잔뜩 머리에 인 안데스가 아침 햇살에 빛나면서 나를 놓아주질 않는다. 하늘에서 본 쿠스코는 붉은 집들과 자로 잰 듯한 도시 형태로 누가 봐도 완벽한 계획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공항을 들어서니… 그래 ! 정말 잉카에 왔다.전통 의상의 인디오들이 차랑고·시쿠·케나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바람의 소리를 내고 있다. 많은 전설을 가뜩 담은 그 소리는 부족한 잠으로 기능이 떨어진 나의 뇌를 자극하며 돌아다닌다. 공항을 나서니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온갖 토산품을 든 장사꾼들이 따라 붙는다.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기 위해 시내로 들어서는데 넓은 도로의 정면에 노란 INCA KOLA 선전 입간 판이 딱 버티고 서있는 것이, 왠지 자랑스러워 가슴이 뿌듯하다. 지구 모든 곳에서 코카콜라가 세계의 입맛을 잡았지만 이 페루에서는 저 당당한 노란 아저씨한데 참패를 했다는 것 아니냐! 정말 멋진 놈일세…. 산토도밍고 성당으로 갔다.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성당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우리는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성당은 원래 잉카 최고의 성소인 코리칸차로 태양신을 모시던 곳이었다. 이 신성한 장소를 스페인은 정복과 함께 성당으로 바꾸어 버렸다. 제단의 돌은 그대로 두고 성당을 지은 스페인 정복자들은 어떤 의도로 이렇게 했을까 ? 제단의 축대만이라도 남겨 그들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잉카인의 정신 축인 신전을 밟고 서 있는 자신들의 위상을 보이며 잉카인들을 농락하고 욕되게 하고 싶었는지…. 후대 사람들은 잉카의 옛 종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놀라운 반증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축대 앞에 서있는 나로서는 서글프고 치욕스럽다. 그러나 이 성당은 페루 국가 재산이 아니라 도미니크 교단 재산인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문화 유산이라 코리칸차 복원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이 성당 외에도 태양 처녀의 집은 수도원으로, 와이나 카파쿠 궁전은 교회로 변해있다. 아르마스 광장은 정말 아름다웠다. 광장 가운데 예쁜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성당과 회랑이 그림처럼 연결되어 쿠스코 특유의 색채를 보인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광장에서 방사선 형태로 나있는 골목길은 잉카 건축물의 특징인 면도날 하나도 들어 갈 것 같지 않은 돌담과 세월의 흐름을 몽땅 몸으로 받아 낸 반질반질한 돌길이 어서 들어 와 보라고 끝없이 유혹한다. 잠시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장사꾼들이 계속 괴롭힌다. 그래도 인도처럼 구걸하는 아이들은 없다. 무심히 성당을 구경하고 있는데 성당 앞을 조금 벗어나 할머니 한 분이 엉거주춤 서서 소변을 보고 있다. 백주대낮에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불시에 일어난 일이라 너무나 놀랐지만, 가이드 말로는 이곳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그녀들의 치마가 부채처럼 펼쳐진 것도 서서 볼일을 보는 그런 습관 때문 이란다. 그 예쁜 치마에 그런 뜻이 있었다니… 아쉬움을 너무 많이 남기고 삭사이와 만으로 갔다. 이곳은 우리가 잉카하면 떠올리는 6월 21일에 열리는 '태양의 축제'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이다. 해발 3500m에 위치한 곳으로 엄청난 큰 돌들로 만들어진 요새의 형태이며 잉카 돌담 사진의 열에 아홉은 이곳의 사진이다. 이 큰 돌 들을 이렇게 정교하게 몬드리안 그림처럼 겹쳐 놓은 걸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또 이곳에서는 쿠스코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표범의 형상에 따라 설계된 도시답게 질서정연하면서 고풍스런 정경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과거의 시간들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순간 소중하고 행복했다. 다음은 겐코 유적지로 갔다. 삭사이와만은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온 돌로 조성된 유적지인데 반해 겐코는 그 지역에는 자연 그대로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만든 규모가 작고 소박한 곳이다. 다음은 땀보마차이. 일명 물의 신전이라는 곳으로, 그 옛날 잉카 시대 이전부터 흘렀을 물이 지금도 열심히 흐르고 있다. 왕만이 몸을 씻을 수 있었다는 물줄기를 받아 손을 씻으니 기분이 묘하다. 해발 3400m 이 높은 곳에 저렇게 풍부하고 깨끗한 물이 흘렀으니, 분명 기를 받을 수 있는 신성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이제 긴 오전 일정을 끝내고 내일의 맞추피추를 위해 우루밤바로 이동한다. 고산증을 대비해 이곳보다 고도가 낮은 우루밤바로 내려가는 것이다. 가이드는 이제 1시간30분 정도 가야 할 버스 속에서 절대 자지 말라고 거듭 충고한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 고산증 증세니깐. 그런데 난 몇 년 동안 열심히 등산을 한 덕분인지 신기하게 아무 증상이 없다. 또 솔직히 3800m의 후지산을 오른 경험이 있으니 고산증에 대한 검증은 된 것 같기도 하고….버스 안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들 잠과의 피나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난 잠을 잘 수가 없다. 창 밖의 손에 잡힐 듯한 안데스를 두고…. 안데스의 찌를 듯한 연봉은 그 웅장함과 한없는 깊음으로 내 심장을 뛰게 한다.알프스의 연봉들은 평화롭고 푸근한 그림 같은 깨끗함의 정수라면, 안데스는 골 깊고 척박하고 고난의 상징 같지만, 분명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경외감이 있다. 영숙이랑 같이 이 느낌을 나누고 싶어 흔들어 댔지만, 이미 잠과의 한판 승부는 끝난 것 같다. 한 눈에 봐도 이 지역 최고의 호텔임에 틀림없는 INCA LAND에 도착했을 땐 영숙이는 눈이 다 풀렸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영숙이와 이 순애 선생은 산소를 마시러갔다.남들보다 두 배로 마셨다는데도 방으로 들어서자 영숙이는 완전 뻗어버렸다. 심한 두통으로 얼굴은 시체 같으면서도 잘도 참는다. 약이라면 무엇이든 질색을 하더니 진통제 두 알을 주니 냉큼 삼킨다. 이 호텔은 방갈로 형태로 여러 채의 집들이 예쁘고 소박한 화단을 끼고 넓게 펼쳐져 있다. 방은 답답할 정도로 컴컴하고 습하다. 지금부터 오후 내내 자유시간인데 영숙이가 아프니, 나까지 기운이 없고 재미가 없다. 아무리 자 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눈은 점점 말똥말똥 해져서 괴롭다. 영숙이 증세가 실감나지 않아 미안하기까지 해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햇살은 왜 이리 따갑노?"살을 태워버릴 듯 하다. 호텔 내는 수많은 꽃들이 만발해 있다. 이름 모를 꽃들을 구경하고 사진 찍고 있으니 분명 이 곳이 무릉도원이지 싶다. 그러나 님도 없고 친구도 아프니 쓸쓸하고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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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12일 토요일(제11일) : 공중 도시 마추피추 |
| 아침 눈을 뜨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비속에서도 새는 울어 댄다. 영숙이는 어제보다 좀 나아졌나보다. 그동안 세탁을 해도 충분히 말리지 못한 속옷, 양말들이 밤새 히터 위에서 뽀송뽀송 말라 감촉이 좋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기차역으로 출발 ! 꿈에 그리던 'INCA Trail' 여정을 맛보기 위해 기차에 오르니 9시. 기차역 주변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 사이로 아침 안개가 피어올라, 깊 은 안데스 연봉을 가렸다 보였다 하면서 신비감을 더 해준다. 가이드는 이 기차를 탈 때 꼭 먹어야 한다며 잉카의 옥수수를 샀다.좁은 협궤 열차에는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로 꽉 찼다. 우리 일행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정말 느긋하게 담소를 즐기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애를 느꼈다. 아 하 ! 그 옥수수… 알갱이가 엄청 커 딱딱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부드럽고 수분 함량이 많아 입 속에서의 터짐이 참 좋다. 맛은 좀 밋밋한 편이지만 같이 먹는 부드럽고 짭짭한 치즈 때문에 결코 잊지 못할 별식이었다. 기차 왼쪽으로는 포효하듯 우루밤바 강이 흐르고 있다. 기차 출발과 함께 하늘은 말끔히 개었다. 기차는 마추피추에 도착하기 전에 역사도 없는 곳에 가끔 서는데, 그때마다 자기 키 보다 큰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이들은 여기서부터 500년 된 잉카의 옛길을 걸어, 2박3일·3박4일 등의 일정으로 마추피추까지 걸어서 간다. 나도 한동안은 저들과 같이 걸어 마추피추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없다. 현실적으로 시도 할만한 체력을 못 가졌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난 가장 빠르고 쉽게 가는 길을 선택했다. 기차는 정확하게 10시30분에 도착했다. 마추피추는 어제까지 계속 비가 왔었다는데, 오늘은 거짓말 같이 맑고 청명한 날씨가 되었단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의 조상님 음덕일 것이다. 우루밤바 보다 고도(2400m)가 낮아서인지 덥기까지 하다. 버스를 타고 깊은 협곡을 따라가는 초입의 경치가 벌써부터 범상치 않다. 도대체 이 병풍 같은 깊은 산 어디에 도시가 있다는 건지? 버스는 굉음을 내며 굽이굽이 힘들게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정말 공중으로 부상하기 시작 한다. 버스는 최대로 부상해 주변 산들을 발밑에 놓으면서 예쁜 식당 앞에 우리를 내려준다. 간단한 짐만 챙겨 몸을 가볍게 하고 개찰구를 지나 산허리를 돌아서니 아 ! 마추피추 ! 마추피추다 !!!! 와이나피추를 배경으로 북·동·서쪽 모두 가파른 절벽 위 험준한 산 배꼽 부분에 위치한 이 도시는 확실히 평상시의 도시가 아니다. 첫 눈에 들어온 이 도시는 너무나 낯설지 않은 그림, 사진에서 봐온 곳과 한치의 오차도 없다. "맙소사 ! 정말 난 이곳에 오고야 말았다!"이 느낌이 마추피추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나의 첫 일성이었다. 우리는 도시를 전체적으로 더 잘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 잉카 농 가의 그늘로 들어가 앉았다. 태양은 어제를 잊고 자신의 최고 자식이었던 잉카의 모든 것을 구석구석 비추고 있다. 지금의 마추피추는 거짓말처럼 너무나 평화롭다. 아래 도시를 어슬렁거리는 관광객은 이곳의 주민 같고, 도시 중심의 작은 광장은 새파란 잔디로 빛나고 있어 어떤 슬픔도 없는 생명의 상징 같다. 우리는 이 도시를 2시간 이상 돌아다녔는데, 영숙이와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남들 보다 두 세배 더 뛰어 다녔다. 이곳에서의 내 감정을 말해주듯 약 200여 장의 사진은 버릴 것이 없었다. 이 도시는 1911년 미국의 고고학자 히람 빙엄의 보고서에 의해 바깥 세상에 알려진 이래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 졌지만, 무엇 하나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모두 추측 일뿐이다.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기록이 없기도 하지만, 남아메리카 어느 민족보다 강력한 제국과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이들이, 자신들이 존재했다는 기억만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것은 태양신의 마지막 배려 아니었을까? 수수께끼를 많이 남겨야 신비감은 더 한 법이니깐! 우리는 부족함 없이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잉카를 느꼈다. 이곳에서 배낭여행하는 우리나라 여학생을 만났는데 눈에 띄게 예쁘고 깨끗하게 생겼다. 오늘 푸노까지 들어간다는 이 여자애가 어찌 그리 대견한지…. 가녀린 몸매의 그녀지만 이곳까지 혼자 올 정도의 용기라면 앞으로 무엇이든 잘 해 낼 것이다. 우리의 모든 젊은이를 대표해서, 파이팅 !더운 날씨 때문에 마을을 돌고 나올 때쯤에는 많이 지치기도 했지만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마추피추를 마음에 담아두기 위해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이곳을 떠났다. 점심은 마추피추 입구 식당에서 했는데 식당이나 식단을 봐도 엄청나게 비쌀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서양인뿐이다. 배낭 여행객은 꿈도 못 꿀 것이기에 여학생을 혼자 내려 보내려니 정말 가슴 아팠다. 내 돈으로라도 먹이고 싶었지만 그 애에게 폐가 되는 건 아닌지… 일행들에게도….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그 여학생은 날렵하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아무래도 어른답지 못했던 것 같아 점심이 쓰다. 우리는 4시 기차로 마추피추를 떠나 처음 기차를 탔던 곳으로 돌아와 버스에 올랐다. 이제 쿠스코로 돌아가 오늘밤을 쉴 것이다. 다시 우루밤바를 떠날 때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어제 그렇게 환상적이던 안데스의 풍경이 비가 오고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신비감을 더 해 간다. 연봉은 연봉을 이고 그 연봉은 구름을 이고 모두 일어서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곳 그 아래 움츠리듯 지붕을 맞대고 몸 부딪기며 사는 내 이웃 같은 얼굴의 이들 우루밤바에서 푸스코로 가는 길의 산천은 골 깊은 내 뼈와 힘줄 같고 그 위에 뿌리는 빗물은 축복의 기도가 되어 내려앉아 나의 낮은 자리를 더욱 내려 앉으라 가르쳐 준다. 내 입에서 즉흥적으로 이런 시구가 나올 정도로 창 밖의 풍경은 경건하다. 저녁은 잉카인들의 전통 춤과 노래를 즐기면서 뷔페 스타일로 했다. 이 식당은 세계 각 국의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예약을 하면 앉을 자리에 그 나라 국기를 놓아둔다.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서너 명이 나와 추는 춤은 그리 칭찬 할 정도가 아니었지만 여섯 명이 나와서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는 정말 근사했다. 안데스만의 고유 음색을 만들 수 있는 시쿠와 어우러진 남자들의 화음은 이방인의 가슴을 저민다. 대여섯 개의 갈대, 혹은 대나무를 가로로 나열하여 묶은 시쿠는, 언제 들어도 그 매력적인 슬픔이 바람 소리가 되어 현실의 나를 잊게 한다. 잉카인의 한숨 소리가 관을 통해 모아져 만들어 내는 저 멜로디만큼 잉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을까 ? 9시쯤 식당을 나와 호텔 방으로 들어오니 10시를 넘겼지만, 이 밤을 절대 그냥 보낼 수 없다는 한 이사님의 제청으로 어르신 네 분만 남겨놓고, 쿠스코의 밤을 즐기기 위해 아르미스 광장으로 나왔다. 비는 앞을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진다. 빗속에서도 광장의 회랑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모두 우리처럼 이 근사한 도시의 모든 것을 더 느끼고 싶나보다. 우리는 상점 몇 군데를 구경하고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쿠스코에는 '쿠스케냐'라는 유명한 맥주가 있는데, 보리 싹을 틔워 발효시키고 맥주에서 가장 중요한 물인 안데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청정수가 만나, 세계적인 술이 탄생한 것이다. 아르미스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층 술집으로 들어가 쿠스케냐를 시켰다. 보통의 맥주와 흑맥주가 있다. 맑은 맥주는 달짝지근하고 향기롭기까지 해 와인을 연상하게 했고 흑맥주는 한 모금에 필이 꽉!!! 올 정도로 자극적이면서도 감미롭고 끝은 부드럽다. 아 ! 가벼운 알코올이 번져오는 나른함이 참 좋다. 그리고 비 오는 아르미스 광장은 가로등 불빛을 온통 지면에 반사시키면서 지상 최고의 낭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세상의 배꼽인 쿠스코의 영원함을 위해 건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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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13일 일요일(제12일) : 나스카 문화를 찾아 이카로 |
|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공항을 향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공항에 오니 비로 인한 안개 때문에 모든 항공편이 다 연착되어 있었다. 언제 출발할지도 몰라 무작정 대기 상태였다. 호텔 방의 쾌적했던 침대가 그립다. 결국 2시간15분이나 연착해, 10시15분에 쿠스코를 떠날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 파차카막 유적지를 찾았다. 이곳은 잉카족 최고의 신인 머리가 두 개인 창조의 신, 농업의 신을 모신 신전이 있던 곳인데, 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전형적인 토성이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많이 파괴된 상태로 우리를 맞는다. 이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서 지금까지 왔다면 이란의 밤 유적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 차를 대고 어디하나 몸을 감출 수 있는 그늘도 없기에 차 속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도시락은 김밥인데 메뉴는 정직하게 김. 밥. 딱 하나다! 이것도 분명 교포 중 어느 집에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맛은 그런대로 평균치는 했다. 버스 뒷좌석은 흔히 관광버스에 있는 라운지 형태로 되어있어 모두 모여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소풍나온 것처럼 즐겁게 먹었다. 정말 감탄 할 정도로 이번 동료들은 여행의 프로다. 특히 네 분의 어르신들이 너무나 이런 분위기를 잘 이끄셔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어른으로서 존경받는다는 건, 스스로 받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된다. 이러니 한 해 한 해 세월 가는 것이 무섭다니깐…이제 이카까지 곧장 달릴 것이다. 400㎞ 거리라면 우리나라에서는 4시간 정도 걸리겠지만 여기는 페루니…. 이카 시내를 통과해, 이카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 다 되었다.이카 박물관의 외관은 낡고 개성 없는 우리나라의 1960 1970년대 가정집 같은 건물이지만, 들어서면 누구든 압도 당 할 것이다. 유물의 진열 상태는 조잡하지만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이카·나스카 문화를 보여주는데, 그 유물의 우수성이 BC 1000년경부터 내려 온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카·나스카 문화는 선 잉카 문화로, 유적과 유물의 태반이 묘와 묘의 부장품이라는 단조로움이 있지만, 다채색 토기며 기하학적인 문양이 지금의 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면직물과 알파카 털의 자수는 기교와 색채감이 예술이다. 정말 이 박물관이 유명한 것은 다수의 미이라 때문이다. 실제로 미이라가 굉장히 많다. 외계인을 닮은 형태의 조그마한 두상들이 진열되어 있다. 자신들이 상상한 신을 닮게 하기 위해, 귀족의 자제들은 어릴 때부터 두상을 뾰쪽하게 키워 조금만 부딪쳐도 뇌가 머리의 빈 공간에서 흔들려 죽었다고 한다. 거기다 뇌수술 한다고 예리한 도구로 동그랗게 구멍 낸 두상까지…. 지난 1만 여 년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 않은 이 지역의 특성상, 지금도 조금만 파면 자연 분해돼지 못한 많은 미이라가 있을 것이다. 여행 중 처음으로 한 이사님의 재촉으로 이카에 온 진정한 목적인 오아시스 마을로 서둘러 떠났다. 한 이사님은 사막의 석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이겠지만 시간상 불가능 할 것 같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달려 달려 오늘의 숙소가 있는 오아시스 마을 입구에 도착,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모래 언덕을 향해 뛰었다. 해는 이미 지고 조금 남은 태양의 여명을 모두 붙잡고 늘어지는 심정이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사구 위에 서니 감개무량하다! 항상 이 마을을 그려왔는데, 그 마을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360일 뽀얀 모래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완벽한 그림 그 자체이다. 이 오아시스는 남미에서 가장 큰 것이라는데도 아담한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오아시스를 놓고 동그랗게 예쁘장한 집들이 들어서 있고, 멋지고 잘 생긴 소철 나무를 쭈 욱 늘려놓은 것 같은 열대 수목들이 늠름하게 서 있다. 정말 아름답다. 신도 의도치 못했을 풍경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머물 MOSSONE HOTEL은 단연 돋보인다. 정사각형 모양의 단층 건물로 호텔 가운데가 정원이다. 문 하나만 닫으면 외부의 침입이 차단되는 이 건물 양식은 흔히 실크로드 대상 숙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많은 배낭 여행자들이 바로 내가 앉은 이곳에서,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꼭 저 호텔에 머물 것을 꿈꾸는 이국적인 호텔이다. 붉은색 건물에 하얀 바이어스 처리를 한 것 같은 액센트가 산뜻하고, 오아시스 쪽으로 난 아치형 회랑이 고풍스럽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모래의 감촉을 즐기며,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을 때까지 사막의 적막 속에 있었다. 너무나 아쉬운 여운이 길게 길게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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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14일 월요일(제13일) : 나스카 지상화를 찾아 하늘로 |
| 오늘은 이번 여행 중 가장 힘든 날이 될 것이다. 어제 쿠스코 안개로 미루어진 일정도 다 소화해야 하고 잠도 멕시코로 이동하는 기내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바에스타스 섬'으로 갔다. 이곳은 '작은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곳으로, 여러 종류의 바다 동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파라카스에 도착해 쾌속정을 타고 약 40분 정도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해안 모래 언덕 위의 칸델라브라(촛대)라는 지상화를 보게 된다. 길이가 140m 폭이 57m 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그림인데 성당의 촛대처럼 촛대가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만들어진 시기나 정확한 목적은 수수께끼라지만 어부들에게 훌륭한 등대 역할만은 확실히 했을 것 같다.바에스타스 섬은 여러 개의 섬이 모인 군도인데, 갑자기 새까맣게 모여 있는 새들의 무리를 보이면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섬은 엄청난 소음과 함께 새의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해안선을 따라서는 물개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종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이처럼 많은 새의 무리는 처음 보는 것이라 충격적이다. 이렇게 가깝게 자연 상태의 동물을 본다는 것. 색다른 경험으로 흥분된 나는 생명의 환희를 맛보고 있다. 특히 목 좋은 해변을 온통 차지한 물개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는데, 1초도 쉬지 않는 수놈들의 세력다툼은 굉장하다. 어느 놈 하나 수컷은 몸 성한 곳 없이 상처투성이고 유혈이 낭자하다. 다른 일행들도 이 색다른 관광 대상에 대단히 만족하고 흥분하는 것 같다. 여기저기 탄성이 튀어나오고 모두 일어서 난리가 났다. 선장도 최대한 섬 가까이 배를 대어주어 우리는 이 멋진 놈들을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즐길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가 운이 좋아 오늘 바람이 없어 그렇게 가깝게 배를 될 수 있었단다.파라카스로 돌아와 서둘러 나스카 평원으로 달렸다. 3시간 정도 달리는 길은 대지의 메마름이 극에 달한다. 푸른빛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버려질 수밖에 없는 대지의 한숨처럼 흙먼지를 일으키는 크고 작은 회오리만 일어나 움직일 뿐이다. 나스카의 지상화를 구경하기 위해 경비행장에 도착했을 땐 정오 무렵이었다. 여기도 오후가 되면 바람이 심해져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린다고 들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에어컨이 있던 버스에서 내리니 숨막히는 더위가 엄습한다. 나는 미스터리의 그림을 본다는 기대감보다, 저 작은 비행기를 내 몸이 견디어 낼 지에 더 관심이 높아 내내 불안하다. 우리는 3대의 비행기에 나누어 타고 한 이사님, 영숙이, 내가 한 조가 되었다. 막상 타고나니 두려움은 견딜 만 했지만 솔직히 두 눈 똑바로 뜨고 구경하는 것은 포기했다. 분명 개, 원숭이, 외계인, 벌새, 거미, 나무 등등 다 봤지만 할 말이 없다. 계속 이 비행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으니깐. 외계인의 동그란 눈은 확실히 생각난다. 어떻게 잊겠는가 ! 태양에 이글이글 달구어진 황야에 홀로 서, 우리를 보고 손 흔들며 호의를 보이던 그 순진한 눈매를…. 비행기에서 내렸을 땐 이미 내 몸 구석구석이 다 흔들려 불안한 조짐이 나타났다. 그 동안의 피로와 긴장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 버리는 걸 느꼈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7살 난 내 첫 손자의 그림을 구경하기 위해, 노구의 몸을 이끌고 지구 한 바퀴를 달려와 구경 한 것 같은 허탈감이 밀려왔다. 리마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도 지쳤는지 결국 에어컨이 멈추었다. 때문에 리마의 식당 앞에 설 때까지, 7시간의 대 장정은 정말 끔찍했다. 저녁은 깔끔한 한식이 준비되었는데 나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병사가 되어 쌀밥도 김치도 다 싫다. 이제는 멕시코로 이동한다. 멕시코시티까지는 5-6시간 걸릴 것이다. 다시 페루를 찾게 될 거라는 기약은 못하지만, 다양한 관광 자원이 많은 매력 덩어리의 잉카 제국을 평생 그리워하고 이곳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난 살아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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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15일 화요일(제14일) : 신이 되어지는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
| 저녁 먹은게 체했는지 비행기에서 변기를 붙잡고 몇 번 씨름을 했더니 만사가 귀찮다. 스튜어디스에게 약을 얻어먹고 겨우 구토가 진정되었다. 7시에 공항을 나섰다.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춥다. 아침 식사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간단히 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보들보들한 핫케이크가 맛있어 보였지만 나는 토마토 주스 한 잔으로 때웠다. 멕시코시티는 전형적인 대도시다운 면모를 보인다. 건물 높고, 차도 많고, 공해도 심하고, 새벽의 골목 어귀에는 쓰레기도 잔뜩 쌓여 있고….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신이 되어지는 곳이라는 테오티우아칸으로 갔다. 이곳은 BC 2세기∼AD 7세기 경까지 번성한 곳으로 아즈텍의 선조 문화가 태동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은 7세기 경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원인은 전쟁, 천재지변, 외계인 설, 전염병 등으로 추정되지만 아직도 설만 난무 할 뿐이다. 먼저 케찰코아틀 신전으로 갔다. 아즈텍의 깃털 달린 뱀이라는 신을 섬기는 곳이다. 그리 규모가 큰 편은 아니나 깃털 달린 뱀이랑 비의 신이라는 로봇같이 생긴 신이 새겨진 신전 돌계단의 부조 물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이곳은 소리의 진동을 이용해 상당히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는데 박수를 치면 지금도 열대 밀림지대에서 살고 있는 케찰이라는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단다. 지하 신전으로 들어가 벽면 가득 채운 벽화를 구경했다. 원형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색채는 아직도 뚜렷이 남아있고 상형문자 같은 기하학적인 벽의 조각들은 그들의 높은 문화 수준을 대변하는 듯 했다. 차를 타고 이동해 해와 달의 신전이 있는 곳으로 갔다. 死者의 길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 엄청난 규모에 기가 막힌다. 이 길은 테오티우아칸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약 8 10차선의 대로인데, 정면에 달의 신전을 두고 오른쪽에 그 보다 더 큰 태양 신전이 있다. 사방으로 여러 부속 건물을 거느린 이곳은 엄청난 크기와 위용으로 사람을 압도한다.우리는 달의 신전에 오르기로 했다. 오르는 계단에 코가 닿을 만큼 경사가 급해 힘들기도 했지만, 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보니 꼭대기 제단에 올랐을 땐 완전히 기진맥진 해져버렸다. 그래도 조금 누웠다 일어나니 건너편에 보이는 해의 신전에 오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제단 위에서 보는 경치는 더욱 장관이다. 이곳 건물은 거의 현무암으로 검은 빛을 띠는데 완벽하게 정비된 전설 속의 거대한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직선으로 쭉 뻗은 사자의길 위 사람들이 하나의 점처럼 보인다. 어렵지 않게 종교의식을 지내기 위해 왕이 앞장서고 그 뒤에 제사장, 군인,또 포로로 잡혀 온 제물들의 기다란 행렬이 그려진다.우리는 다시 멕시코시티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과달루페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에는 멕시코의 카톨릭을 소개 할 때마다 또 멕시코 각 가정마다 하나쯤은 걸려있는 '과달루페의 마리아'가 있는 곳이다. 성당은 바로코 양식의 오래된 건물도 있고 근자에 세워진 현대식 성당이 공존하고 있었다. 성당 주변에는 멕시코 각지에서 이 성소에 순례 온 사람들로 엄청 붐비고 있었다. "그래 ! 이곳은 교황청이 인정한 성모 발현지이잖아?" 우리는 테페악 언덕까지 올라 발현지의 성당도 구경하고 공해에 찌든 멕시코시티도 조망하다 내려왔다. 멕시코시티는 호수를 메워 만든 도시라 지금도 일 년에 4.5㎝ 정도씩 앉고 있다. 그래서 이곳의 성당도 많이 기울어져있었다. 우리는 소칼로 광장으로 갔다. 지금까지 내가 본 광장 중에 가장 컸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보다 몇 배나 크고 광장 주변의 건물도 화려하고 웅장하다. 광장 주변 건물 중 물론 백미는 대성당이다. 스페인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신대륙 침략의 기념비가 될 만한 성당을 짓고 싶어 건축했으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겠는가! 1573년에 공사에 착수해 1813년 완공을 시켰는데, 이 성당의 석재에는 물론 아즈텍 인의 어느 신전을 허물고 가져온 것이 들어있다. 이 광장 귀퉁이에 수도관 공사 중 발견된 아즈텍 유적터는 그 흔적만 겨우 남기고 있어 서글프기 짝이 없다. 광장 가운데서는 국기 하강식이 시작되고 있다. 나는 길 건너편에 서서 그들의 건국 신화가 담긴 국기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일식으로 했지만 통 입맛이 없다. 빨리 호텔로 가서 쉬고 싶다. 오늘 숙소는 SHERATON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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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16일 수요일(제15일) : 멕시코를 다시 보게 한 국립 인류학 박물관 |
| 이번 여행 중 가장 느긋하게 아침 10시부터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제 호텔로 와서 해열제를 먹고 잤는데도 열은 떨어지지 않는다. 남들 모르게 살살 아프려니 더 힘들다.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으로 갔다. 이 나라가 자랑하는 Pedro Ramirez Vazquez가 설계한 이 건물은 가운데 중정이 있는 사각형의 이층 건물이다.이 박물관 1층은 역사박물관으로 멕시코 역사가 시대 별로 나누어져 있고 2층은 민속 박물관으로 이들의 생활상을 시대별로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2층은 안타깝게 시간이 없어 접근도 하지 못했다. 1층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인류가 시베리아에서 빙하기에 얼어붙은 베링해를 통과해 내려오는 과정부터 보여 주고 있었는데 서양인 관람객이 정말 벌떼처럼 모여 안내원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통과해 아즈텍 문명 실로 옮겨 본격적인 관람을 했다. 이 박물관은 정말 훌륭했다. 수많은 유물도 좋았지만 그 유물이 가장 빛을 발 할 수 있도록 배치한 감각도 칭찬 할 만 했으며 조명도 퍼펙트 했다. 아즈텍 문명이 어떤 경로로 어떤 시기를 거쳐 멕시코시티로 와서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를 조금의 지식만 있으면 흥미를 가지고 관람 할 수 있다. 흔히 아즈텍 문화를 돌의 문명이라고 하는데 그 근원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마야 문명실의 압권은 상형문자의 비문들이었다.1841년 '중앙아메리카, 치아파스, 유카탄 여행기'를 써, 앞서간 탐험가들의 허황되고 과장된 상상력을 배제하고, 신중하고 학술적인 현대적 시각으로 이들의 문화를 풀어보려고 애썼던 미국인 스테판스가 이 문자를 보고,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 그림을 보면서 느낀 감동을 굳이 묘사 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감탄했던 그 느낌 그대로다. 한 자 한 자가 멋진 회화였고, 그 비문 자체는 우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렁참이 있었다. 조그마한 사각 틀 안에 박혀 있는 문자는 극히 사실적이면서 기호적인 형태다. 고고학자라면 누구든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몸살이 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는 주황빛 조명아래서 먼 마야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 주고 있다. 박물관을 나서는 나는 머리 속에 복잡해졌다. 내가 알고 있던 멕시코는 마약 밀수 최대 중계국이며, 불법 입국을 노려 매일 미국 국경 사막지대를 목숨 걸고 내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부정적인 시각의 나라였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박물관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에 의해 매도 당해야하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멕시코시티를 떠난다.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20분 연착한 오후 4시30분 비행기로 칸쿤을 향했다. 비행기에서 심한 열에 시달렸다. 칸쿤에는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일이 안되려니 이곳 현지 가이드가 나와 있지 않았다. 이번 여행 중 최고의 위기 상황이었다. 모두 말이 없지만, 시간이 흐르고 무작정 모두 빠져나간 공항 대기실에 있자니 맥이 빠지고 짜증스럽다. 다행이 어떻게 연락이 되어 다른 가이드가 50분 정도 지나서 나타났다.가이드 설명대로라면 앞뒤 다 끊고, 칸쿤에는 단 두 명의 가이드 밖에 없다니 불가항력의 일도 일어날 수 있겠다고 좋게 생각해야지… 저녁은 멋진 식당에서 카리브 쇼를 보면서 최고급 식사를 했다. 가이드 말로는 공항에서의 실수를 속죄하는 의미로 예정된 식사보다 업그레이드시켰단다.우리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기며, 여자 교장 선생님 부부께서 사신 맛있는 포도주를 높이 들고, 무사히 여기까지 오게 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서로를 축하했다. 식당을 나서니 카리브의 시원한 밤바람이 그지없이 신선하다. 호텔로 들어와 영숙이는 한국에 전화도 하고 밤바다를 보겠다고 나가고, 난 씻지도 못하고 교장 선생님 사모님이 주신 약을 먹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내일 나만 치첸이사 구경도 못하고 호텔에 있다 공항으로 곧장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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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월17일 목요일(제16일) : 마야의 땅 칸쿤 |
| 새벽 5시쯤 눈을 떴을 땐 어제 약 덕분인지 열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밤새 앓기는 했지만 몸은 한결 가뿐하다. 영숙이와 7시부터 시작되는 아침식사 전에 바다를 찍기 위해 서둘러 짐을 싸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해변을 거닐며 바다와 하늘과 새들을 찍었지만 카리브의 바다를 올바르게 즐기는 방법이 아니다. 해안을 따라 쭉 늘어선 호텔마다 사람들이 나와, 비치의자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바다를 향해 몸을 맡기고, 철저히 그들과 하나가 되는 시합을 하는 듯 했다. 그러면 천천히 밝아오는 햇살에 의해 카리브의 바다와 하늘은 색과 형태를 바꾸어 가면서 자신의 모든 걸 보여 주는 것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움이 넉넉한 이 광경은 나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으로 다가왔다.칸쿤의 아침 해변은 나로 하여금 우리 아들 신혼 여행지로 파리 다음으로 권하고 싶은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 오늘 하루 종일 바다만 내려다보고 있을 수 있는 여유만 주어진다면, 내 영혼의 일부를 팔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이 호텔은 무지무지 크고 사람들도 많은데 거의 가족 단위 미국인 같다. 대충 아침을 먹고 7시40분에 치첸이사로 향했다. 여기서 치첸이사까지는 3시간 정도의 거리로 지루한 길이었다. 치첸이사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 마을을 통과 할 때는 정말 놀라운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남미의 여러 곳을 지나 이곳까지 왔지만 여기 사람들은 어느 민족과도 생김이 달랐다. 몸집에 비해 얼굴이 크고 키가 작으며 목이 짧고 굵은, 한마디로 옛날 세계사 교과서에서 본 북경 원인과 흡사했다. 원래 마야 문명은 잉카·아즈텍 같이 강력한 제국을 완성했던 문명이 아니고 부족 국가 형태로 발달했으며, 유카탄 일대의 정글에서 철저한 농경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타 문명보다 교류가 적었다고 들었지만, 이들의 순수한 혈통이 신기하기만 하다. 과테말라 티칼 유적지 근방의 주민은 50%이상이 순수 마야인이란다. 유적지의 입구를 거쳐 잡목 숲을 지나면 한순간에 쿠쿨란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이 피라미드 정면 광장을 중심으로 오른편 전사의 신전을 비롯한 옛 도시가 근사하다. 이틀 전에 본 테오티우칸과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 떨어져 웅장한 느낌은 적지만 석회암 건축물이라 깨끗하고 아름답다. 사방 각 91계단으로 만들어진 쿠쿨란 신전은 마야 예술적 감각의 정수이며, 이들의 천문학 지식이 농축되어 만들어진 석축 물로 1년 365일을 나타낸 마야 달력을 표현한다.사면의 계단 중 정면 계단은 춘분과 추분의 오후 4시경에 태양 빛과 그림자의 절묘한 조화로 제일 아랫단 뱀 머리 부조 물이 온 몸을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 신전을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급해 오르기도 내려오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올라 마야의 심장을 관통한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 여러 신전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전사의 신전을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두어 너무나 안타까웠다. 마지막 신단에는 많은 부조물과 제물의 심장을 담았던 그 유명한 차크몰 석상이 있는데 말이다. 이 신전 옆에는 많은 석주가 서 있는데 그 옛날 1,000개가 넘었다는 석주는 864개로 줄었다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만지면 뽀얀 분가루가 묻어 날 것 같은 부드럽고 연약한 흰색의 석회암 기둥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는 것이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기 그지없다. 해골 신전의 부조물은 제물이 된 희생자들의 해골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숫자가 엄청나다. 만화처럼 표현된 그들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마야인이 숭배한 동물 중에 하나인 재규어 신전에는 이 민족의 전쟁 역사를 표현한 것 같은 부조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또 이곳에 조각된 재규어 내지는 표범이, 영락없이 우리나라 민화에서 흔하 게 보아온 호랑이와 똑같은 모습이라서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신전을 돌아 펠로타 경기장으로 갔다. 엉덩이와 허벅지만을 이용해 순 고무로 된 단단한 공을 경기장 상단의 돌 고리를 통과시켜 점수를 계산했던 '펠로타'라는 공놀이 경기장이다. 마야인은, 이 우주에는 5개의 대 주기가 있는데 그들은 5번째 주기에 살고 있으며, 그래서 태양이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지쳐 그들의 신이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힘세고 강한 인간의 피를 계속 대지에 뿌려야만 자신들의 세상이 유지된다고 믿었다.그 강한 인간을 찾는 방법이 펠로타였다. 이긴 팀의 주장은 영웅이 되어 이 경기장 많은 관중들 앞에서 참수형에 처해져 목으로 많은 피를 쏟으며 죽어갔다. 이 역사적 사실은 경기장의 부조물이 되어 지금도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경기장은 길이 146m 너비 36m 의 반듯한 사각 공간으로, 정확한 벽 높이는 모르겠으나 몇 십 미터의 닫친 공간이다. 남미 최대 펠로타 경기장으로 가운데 서서 손뼉을 치면 7번 울릴 정도로 공명의 울림이 대단하다. 각 7명씩 양 팀이 갑옷과 투구까지 갖추어 입고 비장한 경기를 했을 그들이 쉽게 떠오른다. 이기고 싶은 경기였는지 지고 싶은 경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큰 경기장 규모와 그들의 가뿐 숨소리, 관중의 환호성이 다 느껴지는, 1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교감으로 충격과 감동을 같이 받았다. 이 경기장은 그 당시 사회적 신분에 따라 관람석이 나누어져있는데, 물론 벽 중앙의 최 상단에는 왕족을 위한 특별석이 있으며 하단으로 갈수록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구경했단다. 많은 신전으로 둘려 쌓인 광장을 벗어나 100m 정도의 숲길을 가면 '세노테'라는 저수지가 나타난다. 치첸이사라는 명칭이 마야어로 '우물가의 집'이라는 뜻이라니 이 샘이 얼마나 중요하고 성스러운 곳인지 짐작하게 된다. 마야 문명의 유적지를 보면 한 곳도 인류의 생명 줄인 강을 끼고 발달한 곳이 없다. 모두 우물을 파고 물을 모아둔 세노테라는 저수지만 있다.이 저수지는 생활용수, 농업용수 의 공급지이며 숭배의 대상이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가뭄이 심해지면 이곳에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받쳐 신들을 달랬다. 세노테는 가로 세로 30 50m 정도의 웅덩이로, 물은 석회암 성분이 녹아있어 뿌연 회색빛이며 신성함과는 거리가 먼 허술하고 지저분했다.탐험가 미국인 에릭 톰슨은 멕시코 일대의 값비싼 유물, 보물을 찾아다니다 거의 실패하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1924년 이곳에 와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샘에서 많은 유골과 함께 보물을 건져 올렸단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세노테 치고는 정말 품위가 없다. "아 ! 마야의 태양신은 오늘 너무 힘을 쓰시는지 덥고 뜨겁다."그러나 가이드 말로는 오늘 너무나 순하시단다.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온 목적을 잊고 나무그늘만 찾다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니…이로서 내 남미의 대장정은 끝을 보였다. 우리는 화려한 의상의 마야인들이 선보이는 민속춤을 보면서 점심을 먹고 서둘러 공항으로 달려갔다.오후 5시경에 칸쿤을 출발, 5시간 이상을 날아 10시30분을 넘겨 LA에 도착했다. 그러고도 괴롭고 괴롭게 5시간 정도를 공항에 대기하고 있다가 또 지옥의 12시간 비행 끝에 인천에 도착하니 아침 7시였다.비행기의 '비'만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죽음처럼 계속 될 것 같은 비행기 타기가 곧 끝난다는 기내방송을 듣고 영숙이와 나는 끌어안고 생환의 기쁨을 나누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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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 여행을 정리하면서 |
| 오랫동안 여행 후유증을 앓았다. 한달 넘게…. 온 몸에 힘 한 알갱이도 없다는 것이 이런걸까? 여행 중에 잃은 식욕은 영 살아나지 않았고 특히 육식은 생각만으로 울렁증이 났다. 1, 2월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밖의 기온 상승과 함께 내 몸도 살살 기운을 냈다. 이번 여행을 정리하려고 펜을 들었을 땐 영 자신이 없었다. 여행 중 매일 매일 토막처럼 기록한 문구는 몽땅 암호 같고 기억은 멀기만 했으니깐. 그러나 시작은 어렵게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하루하루 쓰다보니 마술처럼 머리가 풀리면서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감동과 감격으로 몰려나와 유치한 격정에 나를 달래느라 오히려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아 ! 난 정말 대단한 경험을 했다. 단 하루도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알차고 근사했다. 그만큼 남미는 내가 50여 년 산 세상과 많이 달랐다.자연을 마주해도 그들은 거대하고 원초적이었으며 유물 유적을 보면 신비함과 농밀한 그 무엇이 있었다. 체력이 회복되고 비행기가 그리워 질 때쯤이면 난 또 다른 여행을 꿈꿀 것이다.이번에는 신랑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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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쇠고 자양동 집에서 돌아 온 것이 거의 밤 12시. 두 남자에게 세탁기 돌리는 것부터 다시 복습시키고 이것저것 확인 시키다보니 새벽 4시가 가까웠다. 누워도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먼저 독립 기념관으로 갔다. 이 나라에서 독립 기념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브라질 역사를 조금만 알고 있어도 의아해 할 것이다. 프랑스에 패해 자기 나라의 식민지였던 이곳으로 도망 온 포르투갈의 황태자가 독립(1822년)을 선언 한 것이니 말이다.
내 눈 밑에 넓은 열대 밀림과 알 수 없는 작물(거의 콩이었음)이 심겨진 끝없이 넓은 밭이 새 파랗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이과수 !! 이과수폭포가 그림처럼 동그랗게 떠서 황토 물을 토해내고 있다. 기장은 저녁 햇살 속에 빛나는 이과수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보너스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오랜 시간의 비행기 여독이 이 몇 분간의 경치로 상쇄하고도 남아 모두 탄성을 지른다. 너무나 갑자기 다가온 광경이라 나도 최고의 순간에 맛보는 현기증을 느꼈다. 비행이 끝났을 때 탑승객 모두 기장에 대한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하얀 포말을 그리며 수십 수백 개의 폭포들이 일단 이단 계단식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내가 기대한 이상이었다. 우리 설악산 비룡 폭포 정도, 아니 제주도 천지연 폭포 정도 규모의 폭포 몇 백 개가 한꺼번에 내 눈앞에서 흘러내린다고 상상해 보라!
선착장에서 모두 비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쾌속정을 탔다. 정말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서 폭포 도착하기도 전에 물보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 맞은 생쥐 꼴이다. 뜨거운 햇살에 온 몸이 익는 것 같아도 모두 속도의 경쾌함과 폭포 물벼락 스릴에 배 안은 최고조의 즐거움으로 행복감이 넘쳤다. 한국에서부터 비옷 준비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 한 이사님을 향해, 입으나 마나한 건 왜 챙겼냐고 핀잔을 주면서 모두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멋진 여행의 서막을 알렸다.
깔끔한 아침을 먹고 오늘은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폭포로 향했다. 500m 정도의 긴 다리를 건너자 이제부터 아르헨티나란다. 폭포까지는 우선 꼬마기차를 타고 20∼30분가서, 이과수 강 2㎞ 정도 위쪽의 다리를 건너 폭포에 접근하게 된다. 남미의 유럽이라는 아르헨티나가 실감나는 건, 매표소부터 유색 인종은 한 사람도 안보이고 모두 순수한 백인들이라는 것이다. 영어나 불어가 튀어나와야 어울릴 것 같은 금발들의 낯선 스페인어는 왠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붉은 흙의 밀림 한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기차 정거장은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지…. 부모 따라 소풍 와 있는 것 같은 동화 속 풍경을 만들어 준다.
어제 브라질 쪽 폭포는 인간이 이해 할 수 있는 강한 매력의 자연적 아름다움이었다면 이곳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우리의 이해도 찬사도 가당치 않은 신의 영역이었다. 붉은 황토 물이 새하얀 포말로 부서져 엄청난 속도로 쏟아져 내린다. 우리 인간은 원초적으로 고요하고 깊은 자연에 감동을 받게 되어 있다고 믿었는데, 이 역동적이고 웅장한 자연은 감동보다 더 큰 무조건적인 그 존재의 인정과 복종을 끌어냈다.
차에서 내려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에 도착하니 기온은 뚝 떨어져 있고 칼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모두 한겨울 복장으로 무장하고 배에 몸을 싣고 빙하의 코앞까지 이동했다. 빙하 전면의 길이만 4㎞, 깊이가 50㎞ 이상이라니…순백과 코발트 색 빙하의 위용은 대단했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 시리지만 카메라 셔터를 멈출 수 없다. 아무리 디카라지만 빙하만 100장을 찍었으니…
배에서 내려 이번에는 빙하를 위에서 보기 위해 전망대로 이동했다.
저녁은 이 칼라파테에서 제일 유명한 양고기 바베큐 식당에서 먹었는데 손님이 많아 발 들여놓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 나라 사람들 정말 고기를 먹어도 먹어도 많이도 먹는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끝없이 나오는 고기를 접시 가득가득 끝없이 먹어댄다.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2시간 정도 산책을 했다. 스위스나 뉴질랜드 같이 푸른 초지가 잘 조성된 목장 풍경은 아니지만 끝없이 넓은 초지와 생소한 야생화, 상쾌한 바람, 그 뿐인가? 호수 넘어 보이는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안데스의 연봉과 연봉들…지금의 이 여유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하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이 한가로운 소풍은 앞으로 남은 여행을 위해 내 몸을 충전시키기에 더 없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걷는 즐거움은 내 삶의 영양제 같다.
그러다 산 위에 올라 능선을 타고 평원을 가로지르는데, 그 넓은 평지에 노란 애기 신발 모양의 키 작은 노란 꽃들이 쫘∼악 깔려있다. 그러면서 이 지구의 원초적인 속살을 들어내고 펼쳐진 대지의 모습에 모두 탄성을 지른다.
지프차는 여전히 심한 요동과 45 이상의 급경사를 오르내려 공포심을 자아내지만 이제는 모두 이 스릴을 즐기고 있다. 확실히 말하건대 이 투어는 유쾌·상쾌·통쾌, 삶의 충전 100% 코스다. 투어를 끝내고 잘 생긴 운전사에게 "당신운전 솜씨는 아르헨티나 축구 실력보다 훨씬 낫다"고 칭찬했더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정말 정말 신나는 3시간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이 산에서 찍은 이름 모를 많은 야생화들은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 나를 이 날의 추억과 함께 행복하게 해준다.
우리는 먼저 레클레타 묘지로 갔다. 각 나라마다 특이한 관광 코스가 있지만 아침부터 공동묘지라니…. 우리 정서와 달리 아무리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도시 가깝게 둔다지만…. 굉장히 호기심이 발동한다.
산 마르코 성당은 여느 유럽의 큰 성당에 빠지지 않을만큼 화려하고 아름답다. 특히 20세기 초반의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것 같은 이태리에서 수입해 깔아 놓은 모자이크 타일은 인상적이다. 이 광장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다. 이 작품은 로댕이 인정한 4개의 정품 중 하나인데, 뉴욕·파리·동경에 하나씩 있는 것은 모두 박물관 박제가 되어 모셔져 있지만, 유독 아르헨티나만 이 엄청난 가격의 예술품을 비와 추위와 오늘 같은 강한 햇빛 아래 내놓고 있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에게는 다시 누려 볼 수 없는 눈의 호사라 모두 오랜 시간 이 큰 아저씨 앞에서 머물렀었다. 어쩌든 이 아저씨만이 다른 3명에 비해 동상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당당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것 같다. 그러면서 아르헨티나의 서글픈 자존심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 옛날 어부와 부두 노동자들이 배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를 모아 집을 치장하면서 여러 색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이곳의 상징이 되어 배색이 잘 된 한 장의 그림처럼 예쁘다.
조금 늦었지만 리오의 첫 여행은 삼바쇼로 시작했다.
먼저 이 도시의 상징인 코르코바도 언덕의 예수 상을 보러 갔다. 이 도시 어디서든지 보이는 예수 상은 브라질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깊게 각인되어 있다. 언덕을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약간의 열대림을 벗어나자 리오의 전경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조금씩 조금씩 올라,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리오의 그림 같은 경치가 모두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산과 바다, 그리고 낮은 하늘이 도시의 조형물들과 이렇게 퍼펙트 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인지…숨이 멎을 것 같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섰을 땐 나의 감동을 누군가와 같이 공감하고 싶어, 가장 가깝게 있는 한 이사님이랑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나랑 같은 기분임에 틀림없는 얼굴이었다)
점심 식사는 리오의 부촌 한 가운데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갔다. 여기 저기 식당 내부와 종업원의 몸가짐에서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벽에는 이 식당을 다녀간 브라질 최고 축구 선수들의 유니폼이 잔뜩 걸려 있다. 뷔페 식단도 나무랄 것이 없다. 나로선 정말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왜냐고? 내가 좋아하는 일식 요리가 많 았으니깐. 잘 생긴 꽃미남 종업원 한 명이 내가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것을 알아채고, 소 한 마리의 온갖 부위를 다 가져와 먹어 보라고 통 사정을 한다.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표정에 내가 미안해 죽을 판이다.
마지막으로 팡테아 슈가로프 산으로 갔다. 성당을 나서는데 비가 조금씩 뿌리더니 도착하니 제법 굵어졌다. 오전의 코르코바도 언덕에서 보는 리오는 도시 뒤쪽에서 해변을 따라 발달한 도시와 바다, 섬을 보는 경치라면 원뿔형 슈가로프 산에서 보는 경치는 바다에서 리오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에 걸쳐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갔을 땐 경치는 고사하고 코앞도 안보일 정도로 비가 억수 같이 퍼붓는다. 그래도 모두 비를 맞으면서 구름 속의 리오를 보기 위해 필사적이다. 결국은 몸이 너무 젖어 추워지니 상점의 처마 밑에 쭉 서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공항을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본 리마는 가장 먼저 지독한 건조함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기온은 높지 않았지만 먼지와 스모그가 심해 당장 가슴이 뻐근해 진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지나면서 많은 인종을 보았지만 이곳은 또 다른 인종이다.
박물관 구경을 하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공항을 들어서니… 그래 ! 정말 잉카에 왔다.
아르마스 광장은 정말 아름다웠다. 광장 가운데 예쁜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성당과 회랑이 그림처럼 연결되어 쿠스코 특유의 색채를 보인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광장에서 방사선 형태로 나있는 골목길은 잉카 건축물의 특징인 면도날 하나도 들어 갈 것 같지 않은 돌담과 세월의 흐름을 몽땅 몸으로 받아 낸 반질반질한 돌길이 어서 들어 와 보라고 끝없이 유혹한다.
다음은 땀보마차이. 일명 물의 신전이라는 곳으로, 그 옛날 잉카 시대 이전부터 흘렀을 물이 지금도 열심히 흐르고 있다. 왕만이 몸을 씻을 수 있었다는 물줄기를 받아 손을 씻으니 기분이 묘하다. 해발 3400m 이 높은 곳에 저렇게 풍부하고 깨끗한 물이 흘렀으니, 분명 기를 받을 수 있는 신성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은 안데스 연봉을 가렸다 보였다 하면서 신비감을 더 해준다. 가이드는 이 기차를 탈 때 꼭 먹어야 한다며 잉카의 옥수수를 샀다.
"맙소사 ! 정말 난 이곳에 오고야 말았다!"
이곳에서 배낭여행하는 우리나라 여학생을 만났는데 눈에 띄게 예쁘고 깨끗하게 생겼다. 오늘 푸노까지 들어간다는 이 여자애가 어찌 그리 대견한지…. 가녀린 몸매의 그녀지만 이곳까지 혼자 올 정도의 용기라면 앞으로 무엇이든 잘 해 낼 것이다. 우리의 모든 젊은이를 대표해서, 파이팅 !
쿠스코에는 '쿠스케냐'라는 유명한 맥주가 있는데, 보리 싹을 틔워 발효시키고 맥주에서 가장 중요한 물인 안데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청정수가 만나, 세계적인 술이 탄생한 것이다. 아르미스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층 술집으로 들어가 쿠스케냐를 시켰다. 보통의 맥주와 흑맥주가 있다. 맑은 맥주는 달짝지근하고 향기롭기까지 해 와인을 연상하게 했고 흑맥주는 한 모금에 필이 꽉!!! 올 정도로 자극적이면서도 감미롭고 끝은 부드럽다.
우리는 이곳에 차를 대고 어디하나 몸을 감출 수 있는 그늘도 없기에 차 속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도시락은 김밥인데 메뉴는 정직하게 김. 밥. 딱 하나다! 이것도 분명 교포 중 어느 집에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맛은 그런대로 평균치는 했다. 버스 뒷좌석은 흔히 관광버스에 있는 라운지 형태로 되어있어 모두 모여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소풍나온 것처럼 즐겁게 먹었다. 정말 감탄 할 정도로 이번 동료들은 여행의 프로다. 특히 네 분의 어르신들이 너무나 이런 분위기를 잘 이끄셔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어른으로서 존경받는다는 건, 스스로 받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된다. 이러니 한 해 한 해 세월 가는 것이 무섭다니깐…
여행 중 처음으로 한 이사님의 재촉으로 이카에 온 진정한 목적인 오아시스 마을로 서둘러 떠났다. 한 이사님은 사막의 석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이겠지만 시간상 불가능 할 것 같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머물 MOSSONE HOTEL은 단연 돋보인다. 정사각형 모양의 단층 건물로 호텔 가운데가 정원이다. 문 하나만 닫으면 외부의 침입이 차단되는 이 건물 양식은 흔히 실크로드 대상 숙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많은 배낭 여행자들이 바로 내가 앉은 이곳에서,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꼭 저 호텔에 머물 것을 꿈꾸는 이국적인 호텔이다. 붉은색 건물에 하얀 바이어스 처리를 한 것 같은 액센트가 산뜻하고, 오아시스 쪽으로 난 아치형 회랑이 고풍스럽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모래의 감촉을 즐기며,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을 때까지 사막의 적막 속에 있었다. 너무나 아쉬운 여운이 길게 길게 이어졌다.
먼저 '바에스타스 섬'으로 갔다. 이곳은 '작은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곳으로, 여러 종류의 바다 동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파라카스에 도착해 쾌속정을 타고 약 40분 정도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해안 모래 언덕 위의 칸델라브라(촛대)라는 지상화를 보게 된다. 길이가 140m 폭이 57m 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그림인데 성당의 촛대처럼 촛대가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만들어진 시기나 정확한 목적은 수수께끼라지만 어부들에게 훌륭한 등대 역할만은 확실히 했을 것 같다.
특히 목 좋은 해변을 온통 차지한 물개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는데, 1초도 쉬지 않는 수놈들의 세력다툼은 굉장하다. 어느 놈 하나 수컷은 몸 성한 곳 없이 상처투성이고 유혈이 낭자하다. 다른 일행들도 이 색다른 관광 대상에 대단히 만족하고 흥분하는 것 같다. 여기저기 탄성이 튀어나오고 모두 일어서 난리가 났다. 선장도 최대한 섬 가까이 배를 대어주어 우리는 이 멋진 놈들을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즐길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가 운이 좋아 오늘 바람이 없어 그렇게 가깝게 배를 될 수 있었단다.
우리는 3대의 비행기에 나누어 타고 한 이사님, 영숙이, 내가 한 조가 되었다. 막상 타고나니 두려움은 견딜 만 했지만 솔직히 두 눈 똑바로 뜨고 구경하는 것은 포기했다. 분명 개, 원숭이, 외계인, 벌새, 거미, 나무 등등 다 봤지만 할 말이 없다. 계속 이 비행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으니깐. 외계인의 동그란 눈은 확실히 생각난다. 어떻게 잊겠는가 ! 태양에 이글이글 달구어진 황야에 홀로 서, 우리를 보고 손 흔들며 호의를 보이던 그 순진한 눈매를….
차를 타고 이동해 해와 달의 신전이 있는 곳으로 갔다. 死者의 길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 엄청난 규모에 기가 막힌다. 이 길은 테오티우아칸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약 8 10차선의 대로인데, 정면에 달의 신전을 두고 오른쪽에 그 보다 더 큰 태양 신전이 있다. 사방으로 여러 부속 건물을 거느린 이곳은 엄청난 크기와 위용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제단 위에서 보는 경치는 더욱 장관이다. 이곳 건물은 거의 현무암으로 검은 빛을 띠는데 완벽하게 정비된 전설 속의 거대한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직선으로 쭉 뻗은 사자의길 위 사람들이 하나의 점처럼 보인다. 어렵지 않게 종교의식을 지내기 위해 왕이 앞장서고 그 뒤에 제사장, 군인,또 포로로 잡혀 온 제물들의 기다란 행렬이 그려진다.
우리는 소칼로 광장으로 갔다. 지금까지 내가 본 광장 중에 가장 컸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보다 몇 배나 크고 광장 주변의 건물도 화려하고 웅장하다.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으로 갔다. 이 나라가 자랑하는 Pedro Ramirez Vazquez가 설계한 이 건물은 가운데 중정이 있는 사각형의 이층 건물이다.
마야 문명실의 압권은 상형문자의 비문들이었다.
저녁은 멋진 식당에서 카리브 쇼를 보면서 최고급 식사를 했다. 가이드 말로는 공항에서의 실수를 속죄하는 의미로 예정된 식사보다 업그레이드시켰단다.
우리는 해변을 거닐며 바다와 하늘과 새들을 찍었지만 카리브의 바다를 올바르게 즐기는 방법이 아니다. 해안을 따라 쭉 늘어선 호텔마다 사람들이 나와, 비치의자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바다를 향해 몸을 맡기고, 철저히 그들과 하나가 되는 시합을 하는 듯 했다. 그러면 천천히 밝아오는 햇살에 의해 카리브의 바다와 하늘은 색과 형태를 바꾸어 가면서 자신의 모든 걸 보여 주는 것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움이 넉넉한 이 광경은 나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유적지의 입구를 거쳐 잡목 숲을 지나면 한순간에 쿠쿨란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이 피라미드 정면 광장을 중심으로 오른편 전사의 신전을 비롯한 옛 도시가 근사하다. 이틀 전에 본 테오티우칸과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 떨어져 웅장한 느낌은 적지만 석회암 건축물이라 깨끗하고 아름답다. 사방 각 91계단으로 만들어진 쿠쿨란 신전은 마야 예술적 감각의 정수이며, 이들의 천문학 지식이 농축되어 만들어진 석축 물로 1년 365일을 나타낸 마야 달력을 표현한다.
신전을 돌아 펠로타 경기장으로 갔다. 엉덩이와 허벅지만을 이용해 순 고무로 된 단단한 공을 경기장 상단의 돌 고리를 통과시켜 점수를 계산했던 '펠로타'라는 공놀이 경기장이다. 마야인은, 이 우주에는 5개의 대 주기가 있는데 그들은 5번째 주기에 살고 있으며, 그래서 태양이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지쳐 그들의 신이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힘세고 강한 인간의 피를 계속 대지에 뿌려야만 자신들의 세상이 유지된다고 믿었다.
많은 신전으로 둘려 쌓인 광장을 벗어나 100m 정도의 숲길을 가면 '세노테'라는 저수지가 나타난다. 치첸이사라는 명칭이 마야어로 '우물가의 집'이라는 뜻이라니 이 샘이 얼마나 중요하고 성스러운 곳인지 짐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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