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영-호주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작성일 :
2007.11.21
조회수 :
749
![]() 이 글은 서울에 사시는 함돈영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함돈영님은 2005년11월06일부터 11월14일까지 9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호주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1.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곳 1위. (그레이트 오션 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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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남편과 미국 여행을 할 때였다. 비행기 안에 있는 개인용 모니터에서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곳 50군데?라는 프로를 보았다.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 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우 흥미 있어 여러번 반복하여 보았었다. 옆에 있던 남편이 ?당신, 많이 다녔으니 거의 다 가본 곳이겠네? 하며 내 대답을 궁금해했다. 그랬다, 2/3 이상은 가본 곳인데 정작 상위권인 두 군데 못 가본 곳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 두 곳은 호주에 있는 에어즈록과 그레이트 오션 로드였다. 더구나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1위를 차지한 곳이다. ![]() 시내에 있는 집에서 바다까지는 십리가 좀 넘는 정도의 거리였다. 바다가 우리 식구의 생활 터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유와 낭만을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뿐, 꿈 많던 사춘기 시절에도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 채 파도만이 제 스스로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 여중, 3학년 때였다. 몇 십 년만의 가뭄이라 했다. 교복을 입은 채로 뙤약볕이 내려 쬐는 경포대 가는 길을 줄을 지어 걸어갔었다. 모내기를 한 논바닥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어린 여학생들까지 동원하여 물 퍼 나르기를 하였을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출렁이며 넘쳐나는 바닷물을 원망스런 눈으로 볼 수밖에. 또 한번은 바다 가까이에 있는 산의 소나무 잎에서 꼼틀거리는 송충이를 잡느라 동원되었다. 나무젓가락으로 한 마리 두 마리 집어내며 토해내는 한숨처럼, 마주 보이는 바다는 역시나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내게 바다는 그렇게 아무런 의미가 없이 흘러가고... 기억되고 있을 뿐이었다. 총 길이, 200km 가 되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볼거리는 해안가를 달리는 드라이브도 절경이지만, 서핑 하기에 좋은 비치와 거센 파도에 깎인 기암절벽들이다. 첫 번째로 만나는 ?벨비치?, 해마다 부활절을 전후해서 국제 서핑 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마침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바닷가로 나갔을 때도 몇 명의 서핑 애호가들이 파도 타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보기도 하였다.(정작 타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바닷물에 바지자락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아 하며 밀려오면서 그 힘이 약해진 파도에 슬며시 발을 넣어보기도 하였다. 밀가루 같이 고운 모래사장에서 거침없이 벗고 누워 즐기는 사람들을 흘깃거리며 내가 즐긴 최초의 바다를 생각해 냈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을 와 대학을 졸업한 그 다음해 봄, 남편과 약혼을 하였다. 여름휴가를 마침 낙향해 계시던 친정아버지께로 갔었고, 작은 소도시에서 젊은 연인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바닷가였다. 그러나 약간의 용감과 배짱이 동반하여야 했었다. 수영복을 입긴 했지만 벗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쑥스러움 때문에. 결혼 후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여름이면 한번씩 찾던 그곳을 마지막으로 갔던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버스에 올랐다. ![]()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마을 입구, 아치의 현판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 건설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1차 세계대전 후 남아도는 인력을 이용하여 이 길을 닦았다고. 계속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점심후의 식곤증 때문에 감기는 눈을 잠깐씩 부치며 도착한 곳이 오션 로드를 대표하는 12사도 바위가 보이는 곳이다. 거친 파도와 강한 바람에 의해 기이한 형상으로 표현된 바위들이 예수의 열두 제자와 같은 12개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허나 파도의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2개의 바위는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 ![]() 신앙생활에 적극적이며 봉사활동에 정성을 쏟는 친구가 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바다구경을 못 하였다는 신체장애자들을 자기 승용차에 태우고 강원도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감격의 눈물까지 흘리더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서늘함이 느꼈었다. 가까이 있어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그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에어즈록으로 가기 위해 머문, 멜버른에서의 일박 이일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다녀오는 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200km 되는 해안을 달리면서 내 큰 몸이 작아짐을 느꼈다. 허나 마음은 몇 배로 커진 것 같았다. 커진 마음은 넓고 넓은 바다를 향해 작은 돛 단 배를 하나 띄워 보냈다. 내 고향바다 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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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람의 계곡에서 어머니의 포근함을 느끼다. (마운트 올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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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오로지 저 장엄한 바위를 보기 위해 온 것이다. 더불어 신비롭고 거대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어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고 준비했을 것이다. 공항에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대형 버스에 비행기에서 내린 모든 여행객들이 함께 올랐다. 버스는 황량한 벌판에 있는 리조트(다섯 군데)를 차례로 들리면서 손님들을 내려 주었다. 우리일행 열 한 명은 맨 마지막 리조트에서 내렸다. 하늘과 지평선이 맞물려 있는 광활한 대지 어느 곳에서나 고개를 돌리면 에어즈록이 보였다. 그리곤, 그리움에 신열을 앓던 나에게 천년, 만년의 침묵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구가 생성될 때부터 자신들은 호주 대륙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호주 원주민들을 ?에보리진? 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숭배의 대상인 붉은 암석으로 된 거대한 바위산이 에어즈록 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단일바위로서 평지로부터 높이가 360m 되며 둘레는 대략 7km 된다고 한다. 호주 대륙의 사막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이곳을 에보리진들은 살아있는 화석이라 생각하여 신성시하고 있는 것이다. 에어즈록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마운트 올가 역시 그들의 신앙이다. ![]() 동네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만 가면 ?산?이 있는 것을 큰 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작은 산을 무시하고 멀리 있는 큰 산 만을 욕심냈었다. 더구나 그런 곳을 가려면 미리 계획하고 또 하루 종일 걸려야 함인데도. 정상까지 다녀와도 왕복 두 시간이면 충분한 동네 산을 사랑하게 된 것이 십 오 년 전쯤부터다. 사계절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그곳을 일주일이면 나흘이나 닷새 정도를 올랐다. 그러면서 터득한 것이 내가 쉽게 오를 수 있는 곳까지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마운트 올가는 에어즈록보다 높이와 규모가 더 크며 둘레 22km에 36개의 크고 작은 돌산들이 모여 있다. 산과 산 사이로 난 좁고 긴 협곡들을 걷다보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황토색의 바위 산 으로 나무들이 짙게 그림자를 드리워 마치 일부러 만들어 놓은 작품 같다. 내일 아침, 수직으로 올라가야 하는 에어즈록 등산의 전초전으로 생각하며 느리게 또 빠르게 걸으며 에보리진들의 영적인 세계로 다가가 보고 싶었다. 가끔씩 가이드가 그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을 얻고, 약으로 쓰이던 나무들을 가르치며 설명을 해 준다. 생각보다 완만한 코스에 별 무리 없이 가는 일행들의 뒤를 따라 에보리진의 흔적을 더듬으며 가는데 앞서가던 가이드가 여기까지만... 하고 커다란 바위를 지정한다. 편편한 곳에 올라앉아 바람의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함에 온 몸을 맡기고 신성한 의식을 치루는 것처럼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차츰 명상에 근접하면서 모든 허물을 다 포용해 줄 수 있는...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 같은 아늑함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듯이 그렇게 있는데 돌아가야 한단다. 에어즈록의 일출을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다시 버스를 타고 약 50km 정도 떨어진 에어즈록으로 향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연한 살색의 커다란 바위산은 가까이 갈수록 색이 짙어졌다. 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거대한 단일 바위는 자연 환경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에어즈록의 빛깔을 표현할 말이 너무나 부족함에 안타까울 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해는 빠른 속도를 재촉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손엔 와인 잔이 들려 있었다.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로 떨어지는 일몰을 향해 축배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의 버스 기사도 부지런히 오가며 작은 탁자를 내려놓고 와인병과 잔을 준비해 놓았다. 맥주 반잔도 못되는 주량이지만 이 분위기에선 들고만 있어도 취 할 것 같은 와인 잔에다 짙은 명암의 에어즈록의 그림자를 담았다. 그리곤 서서히 취했다. ![]() 또 별 하나, 나 하나를 헤아리며 걷던 밤길도. 해가 지면서 검은색으로 바뀐 에어즈록을 뒤로하고 간 곳은 야외에 마련된 바비큐장 이다.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의 메뉴는 즉석에서 구워주는 고기 종류와 생선, 야채샐러드다. 작은 집 하나 조차 보이지 않는 황량한 대지는 온통 어둠이었고 사방이 툭 터인 바비큐장 주변으론 붉은 색의 토양 위에 무성한 잡풀뿐이다. 음식을 구별 할 만큼의 작은 전등은 이미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온갖 별 자리가 수놓아진 사막의 하늘에선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별들의 잔치다. 이때쯤 켜 놓았던 몇 개의 전등이 꺼지며 조용히 원시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벼운 바람소리, 벌레소리를 들으며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내려 뿌리듯, 그렇게 쏟아지는 별들을 향해 기도를 했다. 내일... 에어즈록의 정상까지 무사히 오를 수 있게 해 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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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이스캠프에 남다 (에어즈록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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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즈록을 오르는 일도 그렇고 킹스캐년 트레킹 역시 마찬가지다. 해가 뜨면서부터 시작되는 사막의 높은 기온 때문에 오전과 저녁나절에 움직이고 한 낯에는 주로 리조트 내에서 휴식을 취한다. 새벽 네 시 반, 버스는 잡목 가득한 벌판의 고요 속으로 작은 소음을 내며 갔다. 에어즈록의 일출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포인트로 미니버스와 승용차들이 새로운 경험을 위해 잠을 설치고 나온 사람들을 태우고 왔다. 일몰을 보던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버스의 기사는 따듯한 물이 담긴 보온병과 커피를 준비해 왔다. 서서히 올라오는 아침해의 붉은 기운을 커피 잔에 옮겨 담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검푸른 빛의 하늘은 점차 재 푸른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짙은 검정색의 에어즈록은 마주 보이는 지평선에서, 작은 관목들 사이로 뚫고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바쁘게 색깔을 바꿔가고 있는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죽여 가며 순간순간 변해 가는 주변에 넋을 놓았다. 이제 얼마쯤 있으면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색으로 남을 것이다. 호주 중앙의 내륙지역에 있는 불모지를 ?아웃백? 이라고 한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였던 에보리진들과 호주 정부가 소유권을 갖고 분쟁을 벌였었지만 1985년부터 에보리진들의 소유로 인정되었다. 지금은 호주 정부한테 세를 놓아 관광객 유치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성역인 이곳에 호텔이나 유흥장 건설 같은 것은 허락하지 않고 있다. 탐험가 어니스트 길즈가 1872년 이 지역을 여행하다가 거대한 돌산을 발견한 뒤 당시 남 호주의 총독이던 헨리 에어즈의 이름을 따서 ?에어즈록?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살아있는 화석이라 믿고 있는 이 바위산은 대략 6만년 되었다고 하며 삼분의 이는 땅속에 묻혀 있다. 평지로부터 높이는 360m, 해발 860m 되는 이 거대한 암석은 원래 회색이었던 것이 철분이 섞이면서 황토색으로 변했다. 관광객들에겐 이곳에 올라가는 것을 허락했지만 조상의 영혼이 라고 믿는 에보리진들은 절대로 오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영혼이라고 믿고 숭배하는 것들이 무서움의 상징 같았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간 무당집에서 온갖 색으로 치장된 휘장과 집기들이 압도하는 분위기에 숨을 죽이고 떨고 있었다. 도화지에 칠해지던 아름다운 색들이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변해 나를 향해 위협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옆에 있던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그날의 광경은 몇 번의 꿈속에서 무서움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었다. 결혼 후에도 또 한번의 경험이 있다. 시아버님이 안 계신 집안의 기둥인 시 아주버님이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혼인 막내며느리가 데리고 다니기에 제일 만만했는지 어디를 가든지 나를 앞장세우고 다니시던 어머니를 따라 인천의 무당집엘 갔다. 한참 달아오른 무당의 입에선 시집 식구들의 죽은 귀신이라는 이름들을 쏟아 내며 정신을 빼 놓는데 왜 그리도 겁이 나던지. 새 색시가 들어와 아주버님이 병 난 것이라는 소리를 뒤집어 쓸까보아 조바심에 떨었다. 요란스럽게 만들어 놓은 단상의 ?신?에게 수없이 절을 하며 주절거리던 무당집을 그 이후론 가 본 적이 없다. 서서히 다가오는 사막의 열기를 느끼며 잡목 가득한 벌판을 지나 에어즈록으로 갔다. 며칠 전부터 과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하며 의견이 분분하던 일행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올라가는 곳은 한 군데로 정해져 있었다. 일출을 보고 온 사람들, 거의가 다 모이고 있는 중이었다. 헌데 제동이 걸렸다. 바람 때문에 올라 갈 수 없다는 관리자의 얘기다.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조금만 바람이 거세도 클로즈를 한다. 웅성거리며 얼마쯤 기다리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곤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에보리진들의 신앙이며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그곳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나 않았나 하는 맘이 들었다. 작은 의식이라도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노여움을 푸십시요?... 맘속으로 빌었다. 한편으론 그래, 주인들도 안 올라가며 신성시하는 곳을 외지인들이 너무 쉽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차라리 잘 된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어쩜 다들 올라가는데 나만 혼자 못 올라가면 어쩌지...하는 며칠 전부터의 조바심을 해결 해 주는 바람이 고맙기까지도 했다. 무엇이던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멀리 두고 바라보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에어즈록이 그랬다. 각자의 취향이 달라 정복을 함으로서 느끼는 쾌감도 무시 못 하겠지만 나에겐 주변에서 바라다보며 느끼는 감정이 더 좋았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에어즈록 주변을 트레킹 하는 것이었다. 붉은 색깔 모래 기운을 받으며 크고 작은 계곡 사이로 들어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마치 파란 천을 쫙 펴놓은 것 만 같았다. 에보리진들이 거주하던 동굴과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에서 그들을 흔적과 문화를 느껴보기도 하며 두 시간쯤 걷고 나오니 에어즈록을 기어오르는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마치 개미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해 보이는 움직임은 개미가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그 사이 바람이 약해지면서 올라가도록 허가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 못 올라간다는 얘기에 돌아 가버린 사람들이 많아 다른 때 보다 올라가는데 붐비지 않다고 하였다. 시작하는 맨 아래부터 얼마쯤 까지는 완만한 편이었다. 빠른 사람들은 이미 그곳을 지나 다음 단계인 쇠줄 장치가 시작 되는 곳까지 올랐다. 가쁘게 숨을 내 쉬며 올라가던 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곤 올라가는 쪽을 피해 앉을 수 있은 곳을 찾았다. 저 아래 황량한 붉은 벌판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상처를 껴 앉고 있는 에보리진들의 숨소리도 들었다. 그들의 영혼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를 숙였다. 가끔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이끌림에 고개를 들면 광활한 대지의 잡목들과 붉은 흙,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마운트 올가가 눈앞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살면서 부대끼고 쓸데없는 욕심으로 번민하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이곳까지 올 수 있게 해준 가족들의 고마움과 나 자신의 건강함에... 이 모든 광경과 체험을 함께 공유한 일행들에게 감사함을... 살랑 살랑 부는 바람에 에보리진들의 숨결을 느끼며 순간이나마 마음을 비우며 그렇게 있었다. 얼마쯤 그렇게 있다가 내려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일행 세 명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의 얼굴엔 흥분과 새로운 경험에 도전한 충만함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다음 스케줄 때문에 빠른 속도로 오르고 무사히 내려온 일행들에게 버스 기사 겸 가이드는 놀라움의 찬사를 보였다. 일행의 안전을 보살피며 맨 나중에 내려오신 ?마 사장님? 남아있던 우리에게 베이스캠프를 잘 지키는 일이 등반의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시드니에서 만났던 가이드는 몇 년 전 ?에어즈록을 보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달의 표면을 걷는 게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였다며 우리의 감상을 묻기도 하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에어즈록의 여행을 마감하고 다음 여행지인 ?킹스캐년? 으로 가기 위해 버스는 한 낯의 열기로 뜨거워진 사막의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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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폭풍전야 (킹스크릭스테이션의 텐트 숙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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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니 늘 똑같은 패턴에 조금은 싫증이 나기도 하였다. 혼자 하는 배낭여행? 그건 자신이 없고...맘에 맞는 친구와 들이라면 도전 해 보고픈 생각도 있는데 함께 할 파트너를 구할 수 없고. 네 명쯤 인원으로 자동차를 렌트하여 유럽이던 미국이던 한 보름쯤 다니고 싶은데 그것도 실행에 못 옮기고 있다. 운전은 그런 대로 하겠는데 언어와 지도 보기에 능숙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도 저도 다 포기하고 그렇담 좀 특별한 곳을 다니는 여행은 없을까? 하고 수소문 하다가 알게 된 곳이 테마세이였다. 해서, 이미 사막에서의 두 번 텐트 숙박을 하였던 경험이 있다.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하게 된 몇 분은 조금은 한숨, 또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텐트 안으로 들락거렸다. 연년생인 두 딸들이 4,5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3박 4일, ?아람단? 캠핑을 홍천 쪽으로 갔다. 소양강 줄기를 휘감고 있는 작은 마을에 몇 개 안 되는 교실을 갖고 있는 초등학교였다. 도심에서만 자란 아이들에게 운동장 한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별 들이 쏟아져 내리는 하늘 좀 쳐다보라고 얼마나 성화를 해 댔던지... 그땐 미처 몰랐었다. 별을 보며 자란 우리 세대와 빌딩 숲의 오색네온을 보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정서를. 모닥불 지펴 놓은 것을 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다. 철수가 피워 놓은 불 위에선 감자와 닭고기가 잘 익어 가고 있었다. 주방에만 전등이 있어 식사는 주방에 차려졌다. 일행 중에 활달하시며 싹싹하신 ?이 선생님?이 주방장 보조를 자처하여 철수의 일을 거들었다. 긴 나무 의자와 역시 의자 길이에 맞는 식탁이다. 마치 서부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은 분위기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일 일정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역시나 새벽에 움직여야 한다며 세수...같은 것은 트레킹 다녀와서 하라는 엄명(?)이다. 서로의 얼굴을 절대로 보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모닝콜은 철수가 냄비를 두드리는 것으로 대신한단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저녁을 먹고 다시 모닥불 가로 모여 앉았다. 저쪽... 유럽인들의 텐트 앞에서도 연신 불똥이 튀고 있었다. 모두들 한 마음으로 내일 아침의 트레킹의 기대로 들떠 있는 마음에 청천 벼락이 몰아쳤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꼭 그랬다. 폭풍 같은 모래바람이 몰아치더니 천둥에 벼락까지. 사막의 모래바람... 이 광경을 어디에서 다시 볼 것인가? 그대로 있으면서 구경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도저히 눈뜨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젠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캄캄한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여행 오면서 빠트리고 온 손전등이 너무도 아쉬웠다. 더듬더듬 어둠 속에서 어질러진 물건들을 챙기고 침대로 올라갔다. 금방 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텐트의 네 귀퉁이 받침대중 하나를 꼭 붙들었다. 작년 겨울, 동남아를 휩쓸고 간 ?쓰나미? 생각이 났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라고... 하면서도 잠은 들었었나보다. 텐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냄비 두드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중으로 된 텐트의 지퍼를 올리고 밖을 내다보니 벌써 다들 나와 계셨다. 규칙을 어기고 세수를 하신 분들이 거의 다였다. 어제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맑은 기운이 돌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형용 할 수 없는 색으로 유희를 하고 있는 하늘은 마치 오로라를 연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컵라면의 따뜻한 국물로 배를 채우곤 야영장에서 버스로 이십 분 정도 걸리는 킹스캐년으로 갔다. 네 시간 정도의 트레킹을 끝내고 다시 캠핑장 으로 돌아왔다. 철수가 바쁘게 움직인다. 점심을 먹고 다시 엘리스 스프링스 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철수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각자가 썼던 텐트 안을 청소했다. 처음에 텐트를 배정받고 들어갔을 때의 그 청결함을 떠올리며 다음에 올 사람도 나와 같은 맘이 들도록 열심히 쓸고 치웠다. 주방까지 다시 한번 점검을 한 후 야영장 안에 있는 주유소에서 우리가 타고 갈 버스에 기름을 넣는 것으로 킹스크릭스테이션의 일정은 끝냈다. 폭풍전야에 모닥불을 피웠던 흔적만을 조금 남겨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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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에덴의 정원에 아담은 없었다 (킹스캐년 트레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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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사막에 솟아오른 붉은 절벽과 거대한 협곡,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걸작품이다. 킹스캐년을 소개 하면서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 트레킹 코스의 여러 군데를 그려 놓았지만 우리 일행은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네 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를 선택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하였다. 일행들의 나이를 볼 때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일정인데도 불구하고 단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잘들 견디신다. 맨 뒤에 쳐진 내가 제일 힘들어 한 것 같다. 칼로 반듯하게 잘라낸 것 같은 절벽 뒤로 서서히 훤해지며 일출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또 어떤 모습일까? 테마세이와 여행하면서 수 없이 보아온 일출과 일몰이건만 언제나 그 느낌은 다르다. 그래도 꼭 몇 군데 말 해 보라면 일출은 ?바간?(미얀마)의 평원과 이집트의 백사막이며, 일몰은 와디람(요르단) 과 그리스의 산토리니섬을 꼽을 수 있다. 헌데 앞으로는 지금 이곳에서 맞는 일출 또한 빠지지 않을 것 같다. ![]() 간간이 부는 바람이 넋을 놓고 있는 나에게 정신을 차리게 한다. 사암 절벽 사이로 난 협곡엔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여러 군데 보였다. 이 만 여 년 전부터 에보리진들의 거주지이기도 한 이곳엔 비바람에 쓰러진 고목들과 상관없이 지금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잡목들이 많았다. 한때는 에보리진들 에게 물과 양식을 가져다주기도 하던 것들이다. 조금씩 부는 바람에 살포시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에보리진들의 애잔한 울음처럼 들렸다. 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걸으면서 적당한 외로움과 격정도 느껴보았다. 앞서 가던 누군가가 주저앉으면 그곳이 쉬는 장소다. 한숨 돌리면서 각자의 배낭에 넣어온 오렌지와 사과 등을 꺼내 먹는데 ?철수? 가 무엇인가를 내 놓는다. 아침으로 라면을 먹은 우리들이 염려스러워 빵을 준비해 갖고 온 것이다. 자기가 직접 구운 파운드 케잌이었다. 세상에나...감격 어린 감동. (말이 되는 소린지...) 철수의 말로는 (물론 마 사장님의 통역으로 들었음) 우리가 아침에 라면 먹는 것을 보며 저것을 먹고 어떻게 몇 시간의 힘든 트레킹을 견딜까? 하고 걱정되었다고 한다. 라면의 그 매콤한 국물의 힘이 어떻다는 걸 모르는 철수로선 당연한 일이겠지만. 부드러운 빵처럼 달콤한 휴식을 하고 다시 붉은 바위와 협곡으로 빠져들었다. 아주 가파른 몇 군데는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 계단을 따라 내려 간 곳에 ?에덴의 정원? 이 있었다. 그곳이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앞서 가던 철수의 설명이 있었지만 뒤에 쳐져서 걷던 나는 듣지를 못했다. 허나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에덴의 정원이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모든 건 다 설명이 될 수 있었던 곳이다. 여태껏 지나 왔던 거대한 절벽과 협곡에 비하면 너무도 아늑한... 은신처 같은 곳이었다. 커다란 야자나무들로 덮인 골짜기 아래로는 물이 고여 있는데 무척 깊어 물은 검은색을 띄웠다. 에덴 정원의 이브들은 아담을 기다리는지... 우리 일행의 여자분들,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호주의 그랜드캐년 이라고 불리 우는 킹스캐년은 오랜 세월동안 이루어진 자연의 변화로 이루어진 거대한 조각품의 전시장이었다. 이렇게 글로 전하지만 표현의 부족함에 안타까울 뿐이란 걸 늘 느낀다. 직접 와서 본 사람들, 그 누구도 다 같은 맘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 백 만년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갈라져서 만들어낸 신비로움, 광활한 사막 안에서 보는 또 다른 체험이었다. 다들 무사히 또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목적지까지 다녀오는 것을 보며 함께 한 철수는 연신 놀라는 기색이었다. 김치와 고추장으로 다녀진 우리들의 기량을 가르쳐 줘야 할 것을... 캠핑장 으로 돌아가 점심을 한 뒤에는 다시 버스로 네 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아웃 백?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엘리스스프링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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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간이 정지된 곳 (엘리스 스프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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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크릭 스테이션을 떠나 버스로 네 시간을 달려왔다. 에어즈록에서 킹스캐년까지 세 시간 반, 하룻밤을 자고 다시 킹스캐년에서 이곳까지 네 시간, 태초의 땅 그대로일 것 같은 사막을 지나왔다. 마을 하나 볼 수 없고 지나치는 자동차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곧게 뻗은 이차선의 고속 도로 옆으로 보이는 것은 무수한 잡목들과 붉은 흙더미, 푸르디푸른 하늘이다. 가금씩 꿈틀대며 나타나는 ?신기루? 가 자칫 지루함에 약이 되기도 하였다. 나름대로 많은 곳을 여행하였다고 말 할 수 있다. 십 오 년 동안을 다니면서 배운 것도 많았고 아직은 조금이지만 열린 사고도 가지게 되었다.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을 팽개쳐 놓고 다니면서 (남편은 절대로 괜찮다고 하였음) 과연 내가 잘 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원망은 안 할까? 하면서도 멈추질 못했다. 주변 친구들이 더 야단이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그래,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하늘에서 저...남편 등 꼴 빼 먹는 년...? 하시겠지. 라고 대꾸하였다. 다행히도 남편이 이해를 해주고, 밀어주고, 아이들 앞가림도 대신 맡아주며 나의 여행 열병을 치료하여 주었다. 어느 면에선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 준 것 같기고 하다. 저희 스스로 밥을 해먹으며 제 아빠까지 챙기고, 교복을 빨아 다려 입으면서 도시락 싸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세 명의 아이들 모두 부모 속 안 썩이고 자기에 맞는 전공을 하여 자기 분야에서 열심이들 일 하고 있다. 가정을 이룬 두 딸, 제 엄마 닮은 게 여실히 나타난다. 틈만 있으면 여행 가려고 하니... 그렇게 다닌 여행, 가슴에 깊이 남는 곳은 화려함을 주는 도시보다는 뭔가 부족하고 사람의 발길이 덜 닿는 곳들이었다. ‘이별이란 무거운 끈 풀어버리기? 라고 표현한 어느 시인의 구절이 생각났다. 그랬다. 에어즈록부터 이곳까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사막을 달려 주었던 ?철수?와 끈을 풀어버릴 시간이 된 것이다. 버스 뒤에 매달은 짐칸에서 우리들의 가방을 끌어내며 사흘 동안의 인연의 끈을 놓았다. 철수가 돌아가는 등뒤로 막 퍼지기 시작하는 노을도 따라 가고 있었다. 엘리스 스프링스엔 오래 전부터 에보리진들이 살았다 한다. 지금은 그들을 쉽게 볼 수 없는데 우리가 낙타 농장에서 돌아 올 때 거리를 지나는 에보리진 몇 사람을 보았다. 잃은 것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같은 표정들의 에보리진, 한참동안 내 시선이 꽂혔다. 문명의 혜택이 그들을 몰아 낸 것일까? 구경거리가 아닌, 이곳의 오래된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런 여건은 아니었다. 허나,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원초적인 문명과 문화를 가지고 자연을 숭배하던 그들의 흔적을 느끼고 싶어 이곳까지 온 작은 보람이었다. 호주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엘리스 스프링스, 메마른 땅이었지만 유럽인들의 출현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이제는 원시의 자연을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미개척, 오지라는 뜻의 ?아웃 백? 여행은 엘리스 스프링스를 떠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원시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광활한 땅을 밟으며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들은 나를 깨우치는 또 다른 소리였다. ※※ 인천 공항에서 시드니, 다시 멜버른으로 갔다. 이틀 밤을 자고 엘리스 스프링스로 가서 다시 에어즈록의 작은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미 기록하였던 여러 곳을 걸쳐 다시 시드니로 돌아온다. 시드니에서 이틀을 보내며 마 사장님은 우리들에게 최상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마련해 주셨다. 그동안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우리가 원해서 한 것인데) 시드니에서의 일정은 기록을 안 하였습니다. 함께 하신 일행 모든 분들께도 특별한 여행으로 기억되겠지요. 며칠 안 남은 2005년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여행을 돌아 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