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김한종-중국운남성/나평/구북/홍하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07.11.21

  • 조회수 :

    1402


이 글은 서울에 사시는 김한종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김한종/이영옥님은 2006년3월03일부터 3월11일까지 9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나평/홍하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구촌에는 이런 곳도 있다네!


(사진: 나평 유채 밭에서)

운남성 여행지도


(곤명→석림→사림→나평→구북→홍하→원양→건수→곤명)

운남성-나평-구북-홍하 여행기

“春來 不思春”- 봄은 왔다지만 쌀쌀한 날씨는 마음을 우울 하게 한다. 여행에는 무엇보다 기후조건이 가장 먼저 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지를 찾아가는 나그네에게는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것은 고행을 의미한다.
3월 3일: 인천공항에 16:00시에 모인다. 쌀쌀한 날씨가 오후에 좀 누그러 지면서 우리는 19:00시경 KE 885편으로 운남성 곤명(Kunming) 으로 출발. 약 4000 km 를 5시간 이상을 비행한 끝에 어두운 밤에 공항에 착륙. 현지 시간 밤 11시 (한국시간 밤 12시)이다.

1. 운남성의 성도-발전하는 곤명시

우리는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가 23:55분 시내로 들어가 Kunming Bank Hotel 1103 호에 투숙. 오후 늦게 출발하여 중국 서남쪽 오지의 관문인 곤명까지 오는 것으로 마감.
먼저 중국을 알아본다. 총면적 960만 ㎢의 대국(남한의 약95배), 인구 13-15억의 나라. 베이징, 상하이 등 동쪽지역은 발전하였으나 북부, 서부, 서남 지역은 산간 오지이다.
토질만 보아도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홍색, 북쪽은 흑색, 중부는 황색으로 대표된다. 중국인은 태어나서 다 다녀보지 못하고, 국내의 음식도 다 먹어보지 못하고, 자국의 글도 다 읽지 못하고 죽는다는 속담도 나라가 그렇게 넓다는 뜻이다.
이번에 찾아가는 운남성은 22개성, 5개 자치구 중 서남쪽에 위치한 오지 중에 오지에 속한다. 1999년 꽃 박람회 가 개최되기 이전에는 한가한 시골에 불과한 곳이었다.
운남성에 대해 살펴보자. 이 성은 면적 39.40만 ㎢, 인구 4375.6만 (2003년)으로 농촌인구의 비중 73.4%. 중국 서남쪽에 위치. 서로 Tibet, 남으로 버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이 접하여 있다. 이곳 운남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의 4계절이 공존하는 곳이며 열대, 아열대, 온대, 한대 식물이 공존한다. 식물의 보고이며, 천연자원, 향료의 고장 등 온화한 기후, 다양한 민족, 독특한 문화로 인해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곤명, 여강, 대리, 옥계, 개원 시 등 대규모 도시 건설로 지역의 중심지로 변하고 있다.
“彩雲之南”(채운지남) 즉 무지개의 남쪽으로 불리며, 자연 풍광의 축소판이다.
“一山分 四季” (일산 분 사계) 즉 산이 높아 사계절이 함께한다.
70 m 에서 6700 m 에 이르는 고지대에 26개의 소수민족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고산, 협곡, 고원 호수, 카르스트 지형, 전통 원림, 화훼, 민족 정취가 특색으로 관광 개발구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성정부가 소재 한 곤명을 중심으로 도로, 철도, 수운이 연결되고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다.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으로의 대외 개방 통로이다.
날이 밝아오자 호텔 밖으로 시내 중심가의 고층 빌딩이 사방으로 보이고 그사이에 오래되고 낙후된 지역이 불균형하게 보인다.
아침 8시에 호텔 밖으로 나서니 하천이 흐르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예상대로 버스부터 불편하다. 사전에 예상한 대로 이다. 우리는 이번 여정을 만발한 유채꽃을 먼저 보기로하여 반대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2. 자연의 예술작품-석림 자연석 전시장

우선 이곳에서 92 km 떨어진 석림(石林- Stone Forest)으로 향하는 장정에 들어갔다. 이곳도 봄날 이지만 상당히 쌀쌀한 편이다. 그러나 창밖으로는 각종 꽃이 만발하여 벌써 봄이 한창이다.
(사진: 대석림 입구 전경)
끝없이 넓은 벌판으로 나오니 도로는 공사 중이다. 인부들이 작업도구로 작업중이다. 우리나라 60년대를 연상하듯 인력들이 동원되어 좌우로 확장하는 도로에서 일하며, 그 사이로 차량이 곡예를 하듯이 지나간다. 더욱이 우마차도 통행하는 곳이라 참 운전하기가 어렵게 보인다. 쭉 뻗은 도로를 한시간 반을 달려 “석림”에 도착, 주차장에서 관광차를 탄다.
울긋불긋한 옷에 모자를 쓰고 한껏 예쁘게 단장한 아가씨가 간이 운전대를 잡고 우리를 석림으로 안내한다.
세상에 많은 곳을 다녀 보았지만 이런 곳도 있다니? 얕은 산에 돌이 저마다 갖가지 모습을 하고 서있어 마치 수풀을 이루었다고 보이기에 “石林”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외곽으로 관광도로를 따라 봄 꽃을 바라보면서 곳곳에서 멈추어 사진을 찍고 감상한다. 어지간한 사진 전문가들의 경연같이 생각 된다.
오밀 조밀한 돌들의 세계에 몰입하여 대 석림 입구에 들어오니 호수 가에 봄기운이 가득한 곳에 사람들이 초 만원. 우리는 그사이를 뚫고 소석림 트레일로 들어갔다.
자연이 내려준 지구상의 예술작품이 널 다란 전시장에 어떤 구도로 배치된 모양인양 너무나 제 각각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질서는 있는 것 같다. 기기묘묘한 괴석에 유사한 이름을 부친다는 것이 부질 없는 듯하다. 그저 있는 대로 보는 것이 더 자연 친화적인 것 같다.
꽃과 바위, 조형 물이 어우러진 곳을 여기저기 자연에 도취되어 그대로 눈으로 보는 것이 최상이다. 어떤 의도 하에 배치하여 놓았어도 자연 그대로만 못하다.
이 지역은 오랜 옛날에 바다였던 곳이 융기하여 현재의 지형으로 변하였다 한다. 이 모든 자연이 유구한 세월이 흘러 조성되고 지구촌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장실 시설이 부족하여 자연에 배설로 숲으로 되돌려 준다. 걸어서 자연을 감상하고 다시 차에 타기를 반복하면서 석림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석림 관광을 대충 한 후 이제 다시 도로로 나와 끝없는 푸른 평원지대를 바라보며 대지의 넓음을 부러워 하면서 우리는 “사림”(沙林- Sharin) 으로 향하는 도로를 달려 사림 입구에 이른다.

3. 자연의 예술 작품-모래로 만든 조각 작품의 전시장

(사진: 사암 모래로 만든 장군상)
사림이란 모래로 만든 여러 가지 조형 물을 석림처럼 전시한 곳이다.
우리는 먼저 점심시간이 되어 대나무로 지어진 중국식당에 이른다. 벽에도 모두 대나무로 장식된 특유한 모습이다. 큰 공연장을 겸한 식당으로 10코스의 식사를 마련하였다.
식사 후 광장에 전시된 갖가지 인물상을 모래로 조각하여 색 갈을 낸 것을 돌아보고 이런 모래 조각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운남성에는 “三林”이라 불리는 것이 이는데 “초웅”의 土林, “곤명”의 石林, “육양”의 沙林 이 바로 “三林”이라 부르며, 문자 그대로 흙과, 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수풀이란 뜻이다.
이곳 사림은 모래에 여러 가지 색갈이 들어 있는 것이 오랫동안 사암으로 만들어져 풍화작용을 거처 갖가지의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는 모래로 만든 여러 가지 모형,주로 사람 모형을 둘러보았다. 다음에는 사암으로 만들어진 광대한 바위지대로 들어갔다. 보는 사람의 취향과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인다. 입구로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사암지대를 파서 통로를 만들고 계단을 조성하여 볼거리를 따라 트레일을 조성한 곳이다.
1987년부터 관광지로 조성 되었다. 이곳에서 “삼국지” 등 각종 영화가 촬영되면서 명성이 추가 되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관광로에는 가마 꾼과 마차가 뒤엉키어 복잡하다. 여기서 4~6 km 를 걸어서 관람을 한다.
한자로 “육양채색”(陸楊彩色)이라는 말로 표현되며 우리는 이런 사림의 숲을 걸어서 유람을 하였다.
이곳에는 매년 모래 조각 전을 열어 세계각국의 유명 조각가가 모여들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작품을 내 놓는다. 헤리 포터, 단테, 헤밍웨이 등 세계의 유명 작품, 작가들의 상징물을 조각하여 그 작품을 전시한다. 이러한 전시물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특히 뉴욕의 “Metropolitan Opera”좌를 사암에 부조(浮彫)한 것은 아주 뛰어난 아이디어다.

(사진: 사암에 부조된 뉴욕 오페라 좌 모습)
이렇게 하여 세계적인 조각가가 이곳에 작품을 설치한 것만도 관광의 품위를 더해주는 것이다. 걸어서 한시간 반정도의 사림 관광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니 오후의 햇살이 따듯하다.
이제부터 우리는 운남성 동쪽에 위치한 나평(羅平)으로 이동한다. 공사중인 도로에 나오니 역시 어지럽다. 주변에 펼 처지는 평화로운 농촌풍경을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30분이 지나면서 유채꽃밭이 서서히 좌우 평야지대에 나타난다.

4. 나평의 유채꽃- 온천지가 노란색 바다처럼 보이고

나평에는 소수 민족인 보이 족이 3~4만 명이 살며 소수 민족의 슬기로운 삶을 이어간다. 노란 물결이 끈임 없이 전개되어 사람의 눈도, 마음도, 의식도 모두 노란색에 물들어 간다. 구채구, 장가계 같이 이곳도 정부가 풍경구(風景區)로 지정한 곳이다 나평의 유채 밭은 서울의 6배 크기의 면적으로 약 3000만 ㎢의 거대하고 광활한 평야와 구릉지대와 산으로 올라가는 밭에도 모두 노랑 유채가 피어 무슨 글자나 장식을 한 것같이 착각을 일으키게 보인다.

(사진: 나평의 유채 밭 전경)
이 광활한 유채 밭은 수백 년에 걸 처 사람이 씨를 뿌려 가꾸어 온 것이다. 자연이 선사하는 꿀과 기름을 생산하기 위해 소수 민족들은 이곳에 천년이 넘는 기간을 산비탈과 평원을 개발하여온 대역사의 주인이다.
이제 나평에 들어오니 유채의 물결은 안개와 더불어 신비를 더해준다. 2시간 이상을 꽃 속을 달리어 유채꽃 밭과 지평선과 호수와 야트막한 산들이 안개 속에 신비스럽다. 도로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멈추어 자연을 즐긴다.
우리는 조그만 산인 금계봉으로 오르기 위해 유채꽃 속으로 들어가 묻처 버린다. 야트막한 산으로 오르니 유채꽃사이로 고개를 내민 조그만 산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인 듯 아주 묘하게 보인다. 계림(鷄林)의 “이강”에서 배를 타고 유람 하듯이 우리는 유채꽃 나라에서 상상 유람을 한다.
지리학상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절묘한 예술 작품인양 꽃밭사이로 산이 서있는 모습은 말이나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정도다.
아주 큰 노란 화원을 그저 자연에 도취하여 바라 볼 뿐, 그 사이에 바쁜 벌들은 부지런히 꿀을 나른다. 해가 넘어가면서 저녁 노을에 비치는 유채 화원은 천상의 모습이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장엄한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는 첫날의 감격을 뒤로 하고 시내로 돌아와 Hin Yuan Hotel 411호에서 휴식을 한다.
3월 5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에 비가 온 듯하다. 기온이 쌀쌀하여 지고 기대와는 달리 상당히 저온이 계속 된다. 어제의 유채꽃의 환상이 깨어지지 않고 계속되어 오늘도 노란색의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

5. 구룡폭포- 한눈으로 구단의 폭포를 조망하며

오늘 은 09:00시에 출발 하여 구룡 폭포로 향한다. 도로에 나서니 차량의 고장으로 정체가 심하고 도로 공사장에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약 한시간 만에 주차장에 이르러 입장을 기다린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무가 아주 좋다. 무를 파는 여인들이 희고 깨끗하게 씻은 무를 사라고 조른다.
(사진: 구룡폭포 전경)
우리는 10:00시가 넘어 구룡폭포 풍경구로 들어가 대형 궤도차를 타고 전망대로 오른다. 폭이 117 m, 높이가 57 m 의 아홉 개의 단으로 된 폭포가 장관이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2개의 단으로 된 폭포는 안개에 쌓여 보기가 어렵다. 전망대에서 건너편 유채 밭으로 솟아오른 산은 마치 남미의 마추피추와 흡사히 닮은 꼴이다. 안개가 짙게 깔리어 시야가 좁은 것이 유감이다.
차츰 안개가 거치면서 1단 부 터 9단 까지의 폭포가 그림처럼 보인다.
전망대 주변에는 들꽃과 봄꽃이 한창이고 푸른 열매도 싱싱하게 매달려 있다.
폭포를 자세히 보아도 그 단수가 잘 헤아려 지지 않는다.
다시 밑으로 내려와 이번에는 가장 큰 폭포 밑으로 들어간다. 개울과 징검다리를 건너 바싹 다가가 본다. 중국 전통 복장에 머리에 꽃 모자를 쓴 여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폭포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장사들이다. 폭포를 감상한 후 걸어 나오면서, 난을 파는 여인, 고구마, 감자를 구어서 파는 여인들의 노점을 지나면서 그들의 강한 생활력을 느껴본다. 주차장으로 나와 12:00시에 점심을 시작 한다.

6. 장강 삽협의 축소판-소삼협의 협곡을 유람하며

이번에는 멀리 노부각 협곡의 “소삼협”(小三峽) 으로 출발한다. 가면서도 언덕 길에 유채꽃이 만발한 구릉지대에서 하차하여 또 꽃 속으로 들어간다. 노란 색과 향기에 취하고 현혹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산꼭대기 까지 펼 처 진 유채 밭이 그림같이 보이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어떤 모습을 그려 놓은 듯하다. 보는 시각과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보인다.
또한 번 언덕을 내려가면서 고이 족 마을 아래와 산언덕에 펼 처진 노란 세상에 현혹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14:40분에 삼협 선착장에 내려 유람선에 오른다.

(사진: 장강 삼협의 축소판 “소삼협”의 전경)
이곳에는 댐을 막아 생긴 인공 호수가 좁은 협곡을 형성하여 빠르게 흐르면서 좌우로는 붉은 바위산이 80-120도의 각도로 수직을 이룬다. 더욱이 바위가 풍화되어 가는 기묘한 형태로 매달려 있는 모습은 마치 박쥐가 어둠 속에 천장에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
절벽으로 여러 가지의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신비하다. 그 절벽 사이에도 조그만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살고, 조금만 경사가 덜 저도 유채꽃이 심어져 있다. 아마 그 위로 능선에 길이 있는 모양이다.
한 시간 정도 배로 가면서 협곡의 단애를 감상하면서 고이 족 마을 폭포 앞에서 돌아오는 코스는 모두 90분의 유람선 코스이다.
다시 “노천호” 선착장에 내려 온 길을 되돌아 간다.
오후 5시경 다시 유채꽃 평원에 도착하여 이번에는 마차를 타고 조그만 전망대로 향한다. 어느덧 6시가 되어 정상에서 일몰을 감상하기로 한다. 오후 6시 30분이 되어 태양은 먼산 구름 속에서 불사르기를 마감한다. 야트막한 산에서 바라보는 유채꽃 평원은 조그만 산이 안개 속에 솟아있어 마치 천상의 노란 화원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해가 지면서 다시 도로에 나와 유채 꿀을 몇 병씩 사고 버스에 오른다. 이제 2일간에 걸친 유채꽃 세상을 마감한다.
얼마 후 꽃이 지면 이 소수 민족의 향연은 마차도, 꽃 장수도, 꿀 장사도 다 접고 그들은 다시 순박한 농민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진: 도로변의 유채꽃 능선-디자인한 것같이 보인다)
이들 민족에겐 사상도, 이념도, 체제도, 국가나 사회제약도 다 부질없는 것이다. 해 뜨면 일어나 밭 갈고 우물 파 물 마시고 저녁에 자리에 들면 바로 그것이 낙이 되리라는 논어의 구절이 어울린다. (飯疏食 飮水하고 曲肱而 枕之하면 樂亦在其中이라)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시장에서 순박한 원주민의 생활을 들여 다 본다. 손수 재배한 무, 야채, 사탕 수수, 각종 과일 등 다 팔아도 얼마 안 되는 농산물이 좌판에 질펀하다. 한쪽엔 닭,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육류도 생긴 대로 팔고 잇다. 가공된 것이 이니라 생 것 그대로다. 좁은 장거리엔 3 윤차가 붐비고 이것이 이 산골의 주 교통 수단이다. 조그만 공간에도 6-7명이 타고 간다. 장보러 오고 가는 이 촌민들의 생활을 구김 없이 바라본다. 사탕 수수를 씹어 대면서 단맛을 느끼듯이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 보면서 생활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오후 늦게 나평 시에 들어와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52도의 고량주를 조그만 잔에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3월6일: 오늘 아침에 비가 와서 쌀쌀해 졌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07:30분 아침 식사를, 쌀 국수, 밀 국수, 카스텔라 등 비교적 부드럽고 가볍게 한다.

7. 구북 보자흑 호수에 배를 띠우고-계림의 “이강”처럼

오늘은 머나먼 구북(邱北) “보자흑”( Puzhehei-保子黑) 풍경구로 이동하는 날이다. 보자흑은 중국정부가 풍경구로 지정한 장가계나 계림 같은 자연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구북은 소수 민족인 장족과 묘족의 자치구이다. 68개나 되는 호수가 연결되어 있고 그 사이에 솟아있는 조그만 산들이 겹겹이 보이면서 경이로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가는 길에 유채꽃을 두 번이나 더 감상을 하면서, 호수에 비치는 산과 유채꽃의 투영된 모습을 감상한 후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북으로 가는 길은 산속으로 구불 구 불 나있고 안개가 심해 위험하다. 가로수로는 바지오 나무(바나나의 일종)가 줄지어 서있고 산간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여산을 통과하면서 도로에 멈추어 배설을 해결하면서 자연 속에 휴식을 취한다. 가는 도중 마을 정육점 앞에서 소를 잡아 각을 뜨고, 개를 거슬리어 벗기는 원시적인 모습을 보기도 한다. 또 구북 70 Km 지점에서는 송아지를 묶어놓고 잡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평용향 장터에서 장족 마을의 시장을 30분 간 걸어서 가면서 그들의 생활상을 가까이 본다. 돼지, 닭, 야채, 과일, 옷, 모자, 신발 (국방색화), 관솔, 담배 등 모든 생활용품이 장터 바닥에 진열되어 있다.
(사진: 소수민족의 장날- 장터 풍경)
소 달구지를 타고 장터에 오는 모습, 어린애를 업은 아낙 내 등 모두가 소박한 전시장 이다. 공산품은 빈약하고 거의 모두가 시골에서 생산된 일차 산품이 주다. 달걀 20개 정도를 바닥에 늘어놓은 아낙 내 등 원주민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 단면이 그대로 보인다.
민속의상을 입은 여인도 많고, 어느 골목에 들어가니 시골 초등학교 인데 학생들이 별로 없다. 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도처에 있고, 그야말로 천태만상의 삶의 단면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장터에서 국수 한 그릇 얻어 먹기도 어려운 양 보채는 어린이도 있다. 12:00시가 넘어 가까스로 버스는 출발하여 13:00시 경에 보자흑 풍경구에 도착한다. 보자흑 빈관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기분은 최고이다. 우리는 식사를 느긋이 즐긴 후 15:00시 부터 호수에서 조그마한 긴 철선으로 된 배에 5-6인씩 타고 선인호(仙人湖)를 유람한다.

(사진: 보자흑 선인호에 보오트를 띠우고)
얕은 수심에 조그마한 물고기, 연꽃이 가득한 곳으로 노를 저어가면서 화창한 봄날을 즐긴다. 도 연명(陶 然明)의 시나 굴원(屈源)의 어부사가 이런 곳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낚시를 드리우고 유유자적하는 사람도 물가에 많다. 조그만 배에 안주와 과일, 술을 싣고 우리 배에 접근하여 먹으라고 권유하며, 고기와 생선을 구워 냄새로 자극한다. 한시간이 넘도록 배를 타면서 호수 주변의 산수는 그림같이 보이고 어떤 바위는 사자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주변 경치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마치 신선들이 하늘 나라에서 노는듯한 기분이다. 다리 밑을 통과하여 배를 버리고 조그만 산으로 오른다. 산에도 계단식으로 길이 잘 되어 있어 쉽게 정상에 오르니 이 또한 절경이다. 두 겹, 세 겹으로 겹 처 보이는 산수경이 계림이나, 베트남의 하롱베이 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정말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미흡하다.
산 정상 반대편으로 건너가니 호수 너머로 산이 2-3개가 겹치고 지는 해가 물에 그림자를 드리면서 출렁인다. 한시간 넘게 자연을 즐기면서 내려와 마차를 타고 복숭아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호텔에 이른다. 한동안 호숫가에서 휴식을 하면서 일몰의 절묘한 순간을 맞이한다. 정말 지구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저녁은 호수를 바라보면서 2층에서 양 구이를 안주 삼아, 화폭 주, 홍 주를 즐기며, 한시간 이상 계속된다.
(사진: 보자흑 도가촌 빈관 앞에서의 일몰 광경)
어둠이 내리면서 다시 마차를 타고 소수민족이 벌이는 민속 쇼를 보러 숲으로 간다. 장족, 묘족 등 이 지역의 소수 민속이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쇼를 30여분 감상하고 돌아오니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신선한 공기가 향기롭다.
이렇게 머나먼 이국 땅 고원지대의 호숫가의 향연은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빈관 호텔 보자흑 도가촌 귀빈루 104호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8. 홍하의 다락논- 1400여 년을 일구어온 자연의 경이로움을 찾아

3월 7일: 오늘은 일찍 출발하여 홍하(洪河)로 이동하는 날이다.
홍하에는 17만 여 개의 다락 밭과 논이 있다. 1400년의 세월 동안 삶의 터전을 닦아온 소수 민족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산 비탈과 능선, 골짜기에 논이나 밭을 만들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그렇게 높은 곳까지 고도를 맞추어가며 논을 이루고 밭을 이루어 곡식을 심을 수 있을 까? 그들의 천년에 걸친 치열한 삶의 터전을 외지 인이 찾아와 이제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지만 그들은 그냥 평범한 일상의 농사일 일 뿐이다. 농사철엔 3월 부터 논에 물을 대어 물은 은빛으로 빛나며 저녁에 해가 넘어가는 순간 빨간 저녁노을이 논물에 반사되는 정경은 실로 자연의 숭고함을 선사한다. 그토록 아름다운 경관을 그들은 매일 보나 우리들에게는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이곳에 사는 하니 족은 90%가 산지로 된 곳을 1400여 년에 걸 처 자연의 예술품으로 일구어 왔다.
우리는 홍하로 오는 도중에도 산간마을을 지나면서 오전에 시장에 내려 그네들의 생활속으로 들어간다. 과일, 야채, 한약재, 대나무 그릇, 신길이, 쟁기 등 이 바닥에 나열되어 있고 길가에서는 틀이(의치) 빠진 것도 수리하여 끼어주는 아주 특이한 풍경도 구경한다. 시계판매대, 이발소 등 그들의 소박한 삶이 그대로 묻어난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대개 200만 명, 연변 130만, 흑룡강성 50만, 기타 20만이 흩어져 산다. 26개 소수민족 가운데 언어를 가진 민족은 우리 조선 족과 동파 족 뿐이다.
우리와 중국이 1992년 수교 후 조선족은 이제 연변에서 각지로 흩어져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해외 동포도 우리의 국력이다.
이동하는 도중 높은 고원지대를 넘어온다. 오직 하늘이 있고, 붉은 흑인 신비탈이 있고, 농부는 그 사이에서 밭을 일구고 원시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무도 한 그루 없고 목이 타는 산비탈엔 물이 없으니 어떻게 살까? 전기 줄도 보이지 않으니 긴긴 어둠을 어떻게 이겨내나?

(사진: 소수민족의 산간 마을 전경)
2000 m 이상의 고원지대에 올라오니 그런데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우리는 화장실이 없어도 이제는 자연을 벗삼아 견디어 간다. 드디어 13:00 시경 개원시(開遠市)에 이르러 “도도 찬청”에 도착하여 맛있는 식사를 한다. 개원시는 신흥도시로 산업 물류의 중심도시로 건설이 한창이다.
이 고산 지대에는 600 m 이하에는 하니 족, 600-1400 m 사이에는 나이 족, 2000 m 이상 고원지대에는 묘족이 살고있다. 4653개의 관계수로가 있다 하며, 662개의 대수로와 연결되어 농사를 할 수가 있다 한다.

9. 고원 지대에 형성된 소수 민족의 터전- 원양 시

원양 시(源陽 市)에 다가오면서 다락 밭이 나타난다. 이 도시는 인구 37만이 살고있다. 6개의 소수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1200-1600m 고원지대에 살면서 열대, 온대, 한대의 기후가 공존하니 차이가 크다. 이렇게 높은 곳에 물이 풍부하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수이동화”라는 나무가 수소를 흡수하여 물을 만들어 배출하며, 습도도 많고, 비도 자주 와서 물 걱정이 없다 한다. 여자가 모를 심으면 풍작이 예상되어 모는 여자들이 심는다. 물을 한번 대면 오랫동안 잠겨있고 몇 번 물고를 대면 수확이 가능하다 한다.
구 원양 시는 1700 m 이상의 고원지대에 세워진 마을이고, 구름이 아래에 있고 늘 구름바다위에 도시가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주택, 상가, 호텔, 학교도 들어서 있고, 아주 큰 규모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도로에는 소, 닭, 개 등이 한가하게 다니고 그사이로 트럭, 3 윤차, 버스, 승용차 등이 비집고 다닌다.
다락 논에 물이 차면 석양에 별난 풍경을 연출한다. 우리는 산을 계속 올라 일몰 포인트를 찾아 간다. 마침내 “호구풍경구”라는 지역에 일몰 전망대인 “제전 관경구”(梯田觀景區) 라는 곳에 도착한다. 관광객과 카메라 맨이 포인트마다 진을 치고 있다.
(사진: 제전 관경구에서 내려다본 다락논의 풍경)
해는 서산 위에 높은데도 100 m 저 아래 2-3만평이나 되는 다락 논에는 물이 가득히 담겨있어 석양에 빛난다. 그 주변 양쪽 언덕으로는 능선을 따라 다락 논이 수 십단, 수 백단으로 조성되어 마차 비단의 무늬 같이 보인다. 계단의 논마다 물이 채워져 있는 것이 석양의 각도에 따라 신비한 색깔을 연출한다. 이를 보기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사진 작가들이 대기하고 있다. 우리도 30분 이상을 기다리니 해는 서서히 구름 위로 모습을 감추었다가 붉은 빛을 발하며 다락 논 바닥에 찬란한 무늬를 연출한다.
일몰의 감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한잔 술로 피로를 풀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내일의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각자 휴식을 취한다.
3월 8일: 새벽 05:10분에 기상. 원양 호텔을 나서 일출을 보기위해 “도이수” 포인트로 한시간 이상을 돌이 깔린 길을 달려간다. 06:50분에 포인트에 도착. 어둠 속에 다락 논에 물이 하얗게 보이고 건너편 산 너머에서 여명이 밝아온다. 하늘이 벌겋게 물들면서 07:15분 해가 올라오면서 포인트 밑의 다락논의 물이 물고기 비늘처럼 하얗게 출렁거려 보이고 은빛으로 빛난다. 점차로 다락 논에 퍼져 가면서 건너편 논으로 물결 치는 것이 이동하면서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춤을 추는듯하다.
(사진: “도이수” 풍경구에서 아침 해가 다락 논에 퍼지는 모습)
07:30분 이 넘도록 다락논의 물은 마치 요정이 춤추듯 하며 저 아래쪽의 운해(雲海)는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 한다.
해가 봉우리를 넘어오면서 햇살이 온 계곡 다락 논에 퍼지면서 하일라이트를 이룬다. 오른쪽 마을은 숲속의 어둠에서 벗어나 생동의 아침을 맞으면서 고요 속에 잠겨있다.
그러는 동안 어린이를 업은 아낙 내나 꼬마들이 계란을 쪄서 담은 조그만 그릇을 들고 다니면서 사라고 조른다.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살수도 없고 어떻게 도울 수도 없다. 젊은 아낙 내는 해가 퍼지자 아기들에게 젖을 물리고 모성애로 돌아간다.
주변을 자세히 보니 뒷편 산에서 골짜기를 타고 물이 흐른다. 이런 지형조건이 1400여년 부 터 개간을 하여 관계수로를 만들어 생산성 높은 농업기반을 이룬 것이다.
원양 시는 멀리 서 보면 구름 위에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다. 돌아가면서 또 운해가 덮인 다락 논과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면서 사진에 부지런히 담는다.
차를 이동하여 “빠다” 라는 지점에서 내려 전망대로 이동한다. 무려 3000여 단의 다락 논이 장관을 이룬 전망대에 오른다. 15~75도의 경사진 곳에 끝없는 논이 이어진 곳으로 약 5~7만평 정도로 보인다. 계곡의 논두렁은 구불 구 불 곡선으로 그림 그리듯 이어지고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면서 물이 찬 논은 산수화(山水畵) 같다. 그 사이에 조그만 가건물은 농기구 창고이다.

(사진: “빠다” 풍경구에서 내려다본 3000단의 다락 논 전경)
이곳에 사는 하니 족은 청해, 서장 지구에서 종족 분규로 이동하여 정착한 소수민족으로 이곳에 개간을 하고 정착 하였다 한다. 약 12.500 hectares(1 hectar 는 1만㎡로 약 3300평) 에서 50만 톤의 쌀을 생산해 낸다.
우리는 이런 지구촌 풍경을 보면서 10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와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휴식 후 12:40분에 또 나간다.
우리 부부는 휴식시간에 서민들의 시장거리로 들어가 냄새를 맡아본다. 각종 국수, 튀김, 요리 냄새가 진동하고 연기가 매캐하다. 하니 족의 의상을 파는 가게 앞에는 여자들이 붐빈다. 시장 골목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진동하나 이제는 참을 수 있다. 의사 소통이 전혀 안되어 Body language 가 유일한 수단이고 위안화만 받으니 답답하다.

10. 하니 족 민속 마을에서- 축제에 참여하고

이곳의 소수민족으로 하니 족( Hani 족-哈尼族)을 알아본다. 그들은 BC 1600~2100 년 전에 Yi, Lagu 족과 같이 장족(Qing)으로 부 터 갈라져서 Qinghui-Tibet 고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다 Dadu 강을 건너 Yunan(운남)으로 이주 하여 Kunming People 로 호칭된다. 그 후 하니 족은 홍하 남부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하여 1400년 간이나 운남, 원영 주변 고원지대에 정착, 농경을 발전시켜 부족을 단결시키며 전통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근대에 와서 1920년 이 정상(李 呈祥-Mr.Lichenxiong, 1900-1977)을 족장으로 추대하여 1948년 민족대표로 선출했다. 그는 1950년 중국 공산당 전원 위원회에 초청을 받고, 1954년 홍하 하니 족의 자치정부 의장으로 선출된 민족 지도자로 확실하게 하니 족을 이끌어 왔다. 이제는 소수 민족으로 하니 족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월 8일은 “春節” 축제로 분위기가 다라 오른다. 우리가 하니 족 민속마을을 방문한다. 그들은 각 가정마다 조그만 대나무 상에 8~12가지의 음식(계란 삶은 것, 땅콩, 묵, 나물, 생선구이, 고기 말린 것) 등, 특히 마른 음식을 접시에 담아 각 가정마다 상을 차려 뒷산으로 가지고 온다. 산 중턱에 젯상을 차려 놓고 그 주변에다 폭죽을 수십 개나 준비하여 나무에 걸어놓고 부족 연장자가 제사상에 술을 붓고 절을 하는 것을 신호로 산 닭을 바친다. 그리고 폭죽을 터트리며 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축제를 마치고 음식을 모두 나누어 먹는다.그러나 여자는 하나도 없고 남자만 참여하는 의식이다.

(사진: 하니 족의 춘절 제사 의식)
우리는 축제에 참여하고 4명씩 한상을 받아 맥주를 마시며 점심으로 축제 음식을 맛본다.
억지로 점심을 때우고 자유시간을 가져본다. 하니 족 마을 광장을 벗어나 고지대로 올라가서 다락 논이 보이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아래로 수백개의 다락 논의 물이 출렁이면서 햇빛에 빛난다. 한참을 논두렁으로 나가보니 오리 3마리가 잘 어울려 놀고있다. 논배미에 앉아 휴식을 하면서 옛날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논 뚝을 얼마나 견고하게 쌓았는지 원주민의 노력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높은 곳에서 앉아서 내려다보는 다락논의 오후는 한가로움과 여유가 넘친다. 논둑에 앉아 가수 ”은희”의 “꽃반지 끼고”를 불러본다. 눈물이 날 정도로 센티멘탈에 젖어본다.
논두렁에 앉아 있으니 한 농부가 물고를 살피고 볍씨를 뿌린 논에 연약한 새싹이 돋아나는 위로 낙엽 등 이 물질이 덮인 것을 긴 장대 꼬챙이를 이용하여 찍어낸다. 참 기막힌 아이디어다. 자연과 더불어 수천년간 이어오는 농사의 지혜가 논두렁에서 연상된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이번에는 하니 족 민가에서 10코스의 요리와 맥주를 곁 드려 한다. 오후 6시반 부 터 하니 족이 벌이는 민속 쇼를 관람하며 유물관 광장 앞에서 그들과 어울려 본다. 언어는 안 통하나 장고 춤, 소고 춤, 부채 춤 등 어디나 음악은 공통 정서를 포함한다.

(사진: 하니 족의 민속춤 장면)
마지막으로 우리들과 다 함께 추는 “도이소 춤”을 추며 한시간을 마감한다.
어둠이 내리면서 낮선 소수 족 문화와 함께한 시간을 아쉬워 하면서 늦게 호텔로 돌아온다. 그들은 일상 생활에서 우러 나오는 춤과 노래를 우리를 위해 오늘 6가지의 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어 감사하다.

11. 곤명으로 돌아오며

3월 9일: 오늘은 다시 곤명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난다. 2일이나 묵었던 구 원양 시 호텔도 이곳에서는 수준급이다. 공기는 시원하나 다소 냄새가 난다. 330 km 나 되는 머나먼 구간을 이동하면서 몇일 전 왔던 도로를 경유 개구시에 11:10분에 들어간다.
가는 도중에 자연에 배설을 하면서 건수(Jian Shui) 시에 12:20분에 진입하여 Linan Hotel 에서 소스가 특별히 맛있는 생선찜을 시식한다.
식사 후 우리는 “주씨 고택”(朱家花圓)을 방문한다.
청나라 말기에 족벌세력을 형성한 주씨 일가가 살던 저택이다. 214개의 방과 42개의 대소 정원으로 구성된 대 저택이다. 주씨 가문의 100 년 역사가 사진으로 전시되어 가문의 영광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 대륙의 개화기인 19세기의 험난한 변혁의 시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몰락한 가문이다. 지금은 정부가 관리한다.
“주자 10훈”이 벽면에 쓰여있어 가문의 규범을 삼았음을 보여준다. 봄날 같은 날씨에 부겐베리가 만발한 큰 정원을 뒤로하고 다시 버스 투어에 오른다.

(사진: 주씨 고택의 전경)
시원하게 뚤린 고속 도로에 진입하여 70 km 정도 남은 곤명시를 향해 질주하다가 과속 단속에 걸려 한동안 길에 멈추어 선다. 16:00시경 통해( Tong Hai) 시를 지나서 끝없는 평야가 펼 처 진다. 이곳은 몽고족이 침입해 내려와 일부가 정착한 곳으로 드넓은 땅에 야채를 대규모로 재배한다. 규모면, 수량면, 가격면, 어느 모로 보나 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단위다. 18:00시가 지나서야 곤명시에 들어와 너무 피로한 나머지 발 맛사지를 한시간 동안 여유있게 받은 후 20:00시가 넘어 Bank Hotel 식당에서 늦은 식사를 한다. 맥주와 청주 (42도)를 곁 드린 성찬을 하고 마지막 밤을 편안하게 보낸다.

12. 곤명시의 명소를 찾아

3월 10일: 오늘은 곤명 시를 둘러보기 위해 늦게 호텔을 나선다.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은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서 해발 1800~19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하여 사계절 내내 혹서나 혹한이 없어 늘 꽃이 피고 봄 분위기가 무르익어 “春城”이라 불린다.
이런 기후로 인해 관광지로 각광 받고 99년 꽃 박람회 후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요즈음에는 도로를 확충하느라 요란하다. 운남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특유한 문화를 체험하려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온 산하가 빨간 토질로서 담배, 차, 꽃 재배에 적합한 토질이라 이 3가지 농산물이 유명하다.
맨 먼저 시내에서 찾은 곳이 원통사(圓通寺)로 도시 북쪽의 원통산 기슭의 1368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연못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이다. 원통보전에 새겨진 황룡과 청룡이 유명하다. 벗 꽃이 만발하여 입구가 아름답고 대형 초가 큰 항아리에서 피어나는 향기에 기도객이 끊임없이 모여든다. 이곳의 미륵불은 긍정적인 모습을 띠고 있어 온화하다. 대웅전의 처마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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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원통사의 불전- 사람보다 큰 초가 타오르고)
다음에 방문한곳은 시내 서북쪽에 위치한 “취호공원(翠湖公園)”으로, 호수를 중심으로 4개의 연못이 있으며 여러 개의 풍경구로 나누어 졌으나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오전이라 중국인 특유의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연못가에 앉아 “보이차”를 마시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가져본다. 주위에는 버들이 늘어져 호수의 운치를 돋운다.
겨울에는 갈매기가 많이 날라온다고 한다. 한동안 휴식 후 우리는 “휘황원”이라는 곳으로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이동한다. 대나무로 연회석을 둘러 친 식당에서 여러 가지 버섯을 시식하기로 한다. 여기다 와인을 더하니 아주 기분이 상쾌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버섯이 비싸나 중국인에게는 다른 모양이다. 여러 가지를 탕에 넣어 익혀 먹는 특이한 요리를 즐기었다.
식사 후 대밭에서 나오는 기분도 좋았고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면 술꾼들에게 큰 인기를 끌 것이다.
이번에는 꽃 시장으로 향한다. 새로 생긴 시장이라 넓고 시원하다. 각종 이름을 알 수 없는 생화가 너무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고, 조화, 마른 꽃도 아주 많은 대규모 꽃 시장이다. 허브향도 요란하고 각종 조화를 만드는 강습장도 마련되어 있다. 꽃 향료를 이용한 각종 제품도 다량으로 판매되고 있다. 건너편에는 생 과일 시장이 성황이다.
우리는 이번에는 “서산”으로 이동하여 버스로 중턱까지 오른다. 서산 삼림공원은 곤명호의 서쪽, 해발 2500 m, 4 km 에 달하는 산 군에 화정산, 태화산, 나한산 등의 산이 연달아 있다. 2명씩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서쪽으로 곤명호가 길게 펼 처져 있다. 곤명호는 남북 40 km, 동서 8 km 로 중국에서 6번째로 크며 해발 1885m 에 위치하나 물이 순환되지 않아 죽어가는 호수이다.
(사진: 서산에서 내려다본 곤명호 전경)
서산 공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곤명호는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준다. 산정에 오르면 곤명시가 한눈에 보이고 꽃이 만발하여 아름답다. 우리는 나한산(羅漢山)의 절벽 위에 암벽을 뚤어 만든 “용문 석굴”을 보러 간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코스로 “달천각” 에서 석굴을 통해 내려간다.
이 석굴은 청나라 중기에 시작하여 72년간 공사 끝에 1330 여 개의 돌계단으로 조성 하였고, 석실, 신상 등 다양한 볼거리를 돌로 만들어 놓았고 곤명호를 바라보고 있어 경치가 수려하다. 도중에 휴식을 하면서 ”철관음차”를 마시며 담소한다.
오늘 일정에 마지막으로 대관루(大觀樓)를 관람한다. 서산 공원과 마주한 곳에 누각이 아름다운 곳으로 1690년에 지은 3층 목조건물이 명물이다. 호수 가에 정면으로 위치한 구조가 아름답다. 시인 묵객들이 찾는 곳이다. 그 앞에 달려있는 180자의 족자는 손 염(孫 髥) 옹이 쓴 것으로 곤명호의 풍치와 운남의 역사가 써있디.
최근에 춘절 행사가 있었던 곳으로 여러 가지 조형물이 있다. 대관루 앞에 큰 호수는 오후에 태양이 빛나고 각종 양귀비 등 꽃 장식이 아름다워 한시간이 넘는 산책을 즐기었다.

(사진: 대관루의 전경)
중국인들 특유의 발 마사지를 받아보는 나머지 시간도 뜻 있는 행사였다..
오후 늦게 공항으로 이동하여 밤 12시가 넘어 Ke 886기에 올라 길고도 지루한 비행 끝에 겨울의 끝 자락에 음산한 나라로 다시 돌아와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특별한 오지여행을 마련해준 Themesaytour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