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이집트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작성일 :
2007.11.21
조회수 :
1911
| 이 글은 서울에 사시는 김한종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김한종님은 2006년1월04일부터 1월13일까지 10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이집트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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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불가 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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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gypt 답사코스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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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gypt 고대 문명을 찾아서 |
| 2006년 병술 년 새해가 밝아왔다. 소한 밑이라 매서운 추위가 밀어닥치고 바람이 세차다. 오후 늦게 우리는 고대문명의 발자취를 탐사하러 인천공항으로 향하였다. 공항에 들어가니 저녁인데도 만원이다.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어린이 단체 출국도 많았다. KE 951편으로 Dubai 경유 Cairo 행 편에 올라 21:30분 이륙. 인천서 Dubai 까지는 약 6740 km를 가야 하는 먼 나 먼 여정. 10시간 30분이나 지루한 비행을 하여 현지시간 A.M 3시경에 사막의 현대도시로 태어 났다는 Dubai 공항에 착륙하였다. Cairo 는 여기서 다시 2시간 정도 쉬었다가 출발하여야 한다. 공항구내 Duty Free 지역에서 쉬면서 이스람의 본고장을 엿볼 수 있었다. 얼굴이 약간 검고, 곱슬머리, 큰 눈, 높은 코, 코밑 수염을 기르고, 여자는 히잡, 차도르나, 브루카를 쓴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2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탑승하여 Persia 만과 Arabia 반도를 가로 지르는 약 2430km 를 3시간 30분을 더 비행하여 인천을 출발한지 약 16시간 만에 우리는 세 번 째로 머나먼 Africa 땅 Nile강 삼각주 상공에 들어왔다. 홍해 넘어서 일출하는 광경이 비행기 안에서 신비롭게 느끼는 순간 국적기는 고도를 낮추어 황량한 공항 지역을 날라 황토색 땅만이 무한대로 펼처진 Nile 강 동쪽을 지났다. |
| 1. 회색의 도시 Cai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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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날: Cairo 공항에 06:25분 착륙. 한국과는 시차가 7시간 늦다. 밤새도록 비행한 피로가 엄습한다.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공항 밖 넓은 땅에서는 공사가 한창이고 곳곳에 크레인이 서있어 건설 현장이 어지럽다. (사진: Nile 강과 Cairo 신도시 전경)버스에 오르니 현지인 안내자로 “Asdin”이 소개된다. 그는 한국말이 유창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그는 Cairo 대학 상경학부를 졸업하고 한국말을 배우러 연세대학교 한국어 학당에 유학을 온 이집트 청년이다. 현지인으로는 유일하게 우리말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97∼99년 I.M.F 기간을 거치면서 어려움을 이기고 99년 부터 한국인을 위해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제 Egypt 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나라는 면적이 약 99만8천㎢, 인구는 7천 500백만의 대국이다. 동으로는 홍해, 서로는 리비아, 북은 지중해, 남쪽은 수단과 접해있다. 전 국토의 96%가 사막이고 농경지는 3%에 불과하다. 인구에 대부분은 나일강 연안과 수도 지역에 밀집하여 살아간다. 국민의 97%가 이스람 교도이다. 주요산업으로는 석유생산, 농업, 관광 등 일차산업이 주를 이룬다. 한국과는 95년에 수교하였고 북한과의 인연이 깊다. 아침부터 부산하고 도로가 막힌다. 도시의 청결상태가 불결하여 첫 인상이 나쁘다. 학생 20만의 Cairo 대학에 한국어 과가 최근에 생겨 20-30명이 배운다 한다. 아랍국가가 22개인데 모두 아랍아만 사용한다. 아랍지역에 특징은 기독교, 이스람교, 유대교 등 3대 종교가 모두 사막에서 태어난 창시자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이다. 고층 건물이 밀집한 Cairo 신 시가지를 지나 구 시가지로 향하니 더욱 도시 모습은 황량하다. 왼쪽으로 묘지를 바라보면서 나아간다. 이곳 묘지는 도시 면적의 5분의1 이나 차지할 정도로 전부가 매장지이다. 지하 1칸에 시신을 매장하고 그 위로는 제사 지내는 곳이 2 칸 이상 이다. 고대에는 특이한 이집트어가 있었으나 647년 부 터 Arab어 만을 사용하며, 나일강 연안 좁은 땅에서 삼 모작으로 농업이 발달해 왔다. 나일강은 6675 km로 중부 아프리카에서 부터 9개국 을 거처 흐르는 장강(長江)이다. 화폐로는 Pound 화를 사용한다. 1 파운드는 약 우리 돈 200백원으로 석유 1 L, 1 US$ =5.7 Pound 이다. 우리가 방문할 곳은 주로 고대 왕국의 문화 유적이다. 참고로 시대 구분을 하여본다. 1) Old Kingdom: 제1 왕조∼11 왕조 B.C 3100∼1986 년. 태양신 숭배시대2) Middle Kingdom: 제12 왕조∼17 왕조 B.C 1985∼1539 년. 미이라화 되어 영생시대 3) New Kingdom: 제 18왕조∼31 왕조 B.C1538∼332 년. 왕권시대( Ramses 왕조) 4) Dark Age : Greece 지배 ( BC 305-30), Roma 지배 ( BC 30-642 AD) 등. (사진: “RamsesⅡ” 누운 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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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대 왕도 Memphis 의 거석 문화와 지하 묘지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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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선 고대 도시 Memphis로 간다. 중간에 가면서 과일 가게에서 Orange, Banana 등 간식거리를 장만한다. Memphis 는 고대 시대인 BC 3200년 전에 수도 였다. 이 당시에 발굴된 돌로 된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대의 석상, 상형 문자 석, 왕의 석관 (큰 돌을 위에서 파내 린 것), 제단 등이 남아있다. 가운데 있는 Alabaster Sphinx 는 BC 1200 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앞에 유물관에 있는 Ramses Ⅱ의 누워있는 “Limestone” 은 실내에 전시 되었고 67세에 죽었다는 그는 이렇게 돌의 석상으로 남아 현재를 지배한다.(사진: Cairo 시내의 과일가게 ) 다음의 방문 지는 “Tomb of Ka-Gmni” 의 지하 묘지. BC 2340 년 전에 만들어진 귀족의 무덤으로 지하 방에는 그가 살았던 당시의 생활상이 모두 벽에 조각되어 문자가 없던 시대라 조각으로 모든 것을 표현 하였다. 나일강의 물고기, 제사 지내러 가면서 가져가는 제물의 모습, 강가에서 낚시 하는 모습, 농사 짓는 도구 등 일상 생활의 모든 면이 상세히 표현 되었다. 관이 놓여있던 방에는 관 위 정면 벽에 상형 문자로 당시의 모든 것을 표현하여 놓았다. 과일, 야채, 양 등 사람이 먹고 쓰던 모든 것이 벽면에 새겨지고 채색이 되어 있다. 이곳은 모래동안 모래에 뭍 처 있었고, 건조한 기후라 현재까지 보존이 되었으나 발굴당시 훼손으로 일부만 복원되어 있다. 무덤 주인의 모습이 벽면에 크게 새겨져 있다. “Mere Ruka” 의 지하 묘지는 왕의 딸과 사위의 무덤으로 당시의 왕족의 화려한 생활상을 벽면에 조각하여 놓았다. 파티에서 춤추는 장면, 포도주를 만드는 과정을 조각으로 표현, 농사 시 밀 재배 장면, 탈곡 장면, 양 등 가축의 도살 장면 등 거의 일상 생활의 모든 면이 조각으로 재현 되어있다. 이곳에도 무덤 주인의 석상이 가운데 있고 제단이 지하 방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도 입구가 모래에 뭍 처 있어 비교적 훼손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지구에 있는 4700년 전에 만들어진 Pyramid 는 지상 최초의 것으로 60 m 높이로 돌로 쌓여 있으나 오랜 풍화로 인해 부식되어 있다. 그 앞에 석조로 축조한 건물에서 제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아 이는 후대에 지은 것이다. 문은 북쪽에 있고 묘실은 Pyramid에 있다. 이집트에는 총 108개의 유사한 피라미드가 있다. (사진: Sakhara 지구의 Pyramid 의 모습)정오 경에 Sahara Restorant 에서 식사를 한 후 이제는 구 Cairo시를 방문 하기로 하였다. 이곳에서도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교회인 “Ben Ezra Synagogue”를 찾아 구시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교회 건물이 당시대로 원형 보존 되어 있으나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있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Cairo 에 세워진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조그만 돌문으로 들어가 지하에 세워진 교회를 찾았다. 천정은 나무로 되어 있고 교회내부는 옛 로마시대의 기둥으로 석주가 세워져 있고 너무 오래되어 마모가 심했다. 그러나 벽에는 예수의 옛날 그림이 걸려있고 지하방도 있는 교회로서 보존가치는 있었다. 이렇게 다른 교의 교회도 보존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오후 일과를 좀 일찍 끝내고 피곤을 풀기위해 Sheraton Hotel 에서 들어와 오후 5시 까지 휴식. 오후 7시에 이번에는 Nile 강 유람선에 승선하여 야경을 감상하면서 선상에서 부패식으로 저녁식사. 선상에서 벌어지는 음악과 쇼를 감상 하면서 식사 후에는 2층, 3층 밖에서 강을 따라 가면서 Cairo의 신, 구 도시의 야간 모습을 비교 할 수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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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끝없는 사막을 달려 가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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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날:오늘은 흑 사막을 경유 백 사막으로 가는 날이다. 오아시스 마을인 “Bahariya”로 가기 위해 370 km 를 약 4시간을 걸려 가야 한다. Cairo 시 외곽으로 나가면서 도로좌우에는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고 있으나 우중충한 모습이다. 이곳을 지나니 이제부터는 끝없이 사막이 전개된다. 좌측으로는 단선으로 광 괘도의 철도가 깔려있고 그 위로 옛날 기관차가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모습이 신기하다. Tour Police 1명을 대동하고 오전 내내 달려가다 중간 휴게소에 멈춘다. 휴게소라야 썰렁한 단층 건물에 안아 힁하니 비어 있다. 차와 과자 등을 팔고있고, 한쪽에선 물 담배를 피고있는 사람이 4명이 앉아 있다. 쉴 때도 마땅치 않고 주위가 불결하다. 밖으로 나오니 한국의 대학생 3명이 광주에서 왔으며 그들도 백 사막으로 간다고 한다. 다시 출발하여 가는 도중 도로 견에 차를 세우고 내려가서 기차 선로가 신기한 듯 사진을 찍는다. 사람하나, 집하나, 풀한 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의 연속이다. (사진: 흙 사막에 솟아난 山들- Pyramid 와 같이 보인다.)이곳 유목민은 이스람 교도로서 그들은 땅의 소유가 필요치 않고, 마음이 순수하고, 성격도 단순하며, 언어도 어휘가 적고 간단할 뿐이다. 사막 가운데 Green Valley 는 나무를 심어 가꾸고 나일강 물을 끌어 식수를 해결한다. 가는 길에는 안개가 끼어 시야가 아주 흐리다. 잠시 달려가면서 날씨기 밝아지고 햇빛이 나면서 환해진다. 사막에는 별, 하늘, 모래 뿐이며 유목민들에게는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하는 생각에 사로 잡혀 명상 시간이 유일한 안정을 주는 것이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복잡하고 맞지 않는다 한다. 생활이 단순하고, 제도가 필요 없으니 왕이 존재하는 왕정제도가 적합하다 한다. 12시가 되어 Tour Police 에 신고하고 12:40분에 “Bahariya Oasis- Gija” 마을에 있는 Western Desert Hotel에 도착. 새로 지은 2층 건물이나 우중충하다. 우리는 여기서 Cairo 시내를 통과할 때 중간에 인수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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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별이 쏟아지는 백 사막의 낭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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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Bahariya” 마을이 백 사막 Tour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170 km를 Jeep(일제 Toyota)차 한대에 6명씩 타고 13:50분 출발.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로 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90∼100km 의 속도로 달려 간다. 가다가 오른쪽 중간에 Pyramid 모양처럼 생긴 산아래 차를 세우고 모두 산에 오른다. 먼지가 일어나는 비탈 길을 올라가니 정상에는 돌 무더기가 몇 개 있고 주위에는 황무지 벌판에 군데 군데 Pyramid 모양의 작은 산 봉우리가 수없이 많이 보인다.고대의 Pyramid 모양과 똑같이 닮은 꼴이니 아마 이것을 모방하여 Pyramid 를 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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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돌산 지하에 마련된 Pharaoh들의 영원한 안식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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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을 돌아보고 산밑에 있는 도굴마을을 지나 “왕가의 계곡”으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62개의 무덤이 석산 아래 지하에 조성 되었으나 그 중 61개가 도굴 되었다 한다. 이곳에는 18왕조 때 부터 인 “Thutmose Ⅰ”, ( BC 1524-1518), ‘Seti Ⅱ” “Ramses Ⅱ,Ⅲ,Ⅳ,Ⅵ,Ⅸ” 등의 무덤이 있으며 어느 묘이건 묘실 벽에는 저승의 모습과 내세의 부활을 다채롭게 벽화로 그려 놓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부장품이 도굴되었으나 19-20 세기에 들어와서 겨우 고대 수도가 발굴되고 상형문자가 해독 되었다 한다. 특히 영국인 “Howard Carter” 는 소년 Pharaoh 였던 “Tutangkhamen” 의 무덤을 발굴하는 개가를 올렸다. (사진: 왕가의 계곡의 “RamsesⅣ”의 무덤) 어린 소년 왕(18세에 사망)의 무덤의 관 뚜껑에 “파라오의 잠을 깨우는 자는 죽음의 저주가 내리리라”는 글이 새겨 져있다. 이상 하게도 발굴에 관계된 사람들의 의문의 죽음이 계속 되었다. 지금은 이곳의 무덤을 보존상 번갈아 개방한다고 한다. 우리가 직접 들어간 곳은 “Ramses Ⅲ”의 무덤으로 통로 길이가 140 m 되며 부장품이 가장 많았다 한다. 벽에는 벽화들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으며 내세에서 죽은 자가 부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벽화로서 눈길을 끈다. “Ramses Ⅸ” 의 무덤은 그가 일찍 죽어서 미 완성인 채로 남아있고 벽면에 벽화가 없는 곳도 여러 곳이 잇다. 왕이 죽으면 그 다음 왕의 무덤이 축조되기 때문이 미완성으로 남는다 한다. “Ramsesm Ⅳ”의 무덤에는 화강암의 석관이 남아있고 벽 천장에는 태양의 신이 누르여신과 한 쌍이 되어 낮과 밤을 여행하는 그림과 신들의 행차, 기도하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후에 프랑스인 학자가 이 무덤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개가를 올리면서 그 당시의 생활상이 공개 되었다. 오전 탐방을 마차고 3시반 까지 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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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가장 예술적인 Karnak Tem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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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는 “Karnak” 신전을 방문, 일명 “Amon” 신전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회랑을 자랑하며 “Seti Ⅰ”(1313-1292 BC)와 그의 아들 “Ramses Ⅱ”(1292-1225 BC)가 18만 평의 대지위에 연이어 건축 하였다. 이 신전은 안으로 갈수록 오래된 기둥이 도열 되어 있다. 진흙으로 만든 성벽 안에 세워 졌으며, 어떻게 높게 축조 하였는가를 알 수 있게 한쪽 벽에 진흙을 쌓아 올리고 공사를 한 흔적이 남아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134개의 엄청난 높이의 기둥이 도열 되어 있고 천정이 없어진 부분이 있다. 이는 모두 “RamsesⅡ”때 만들어 졌다. 중간의 기둥 한 가운데에는 신전은 대개 3 가지로 분류된다. 1) 신을 위한 신전, 2) 왕을 위한 신전, 3) 장제(葬祭) 신전 등이다. 이 “Karnak” 신전은 규모나 조각면에서 세계에서 최고의 위치다. 밖으로 나오니 Nile 강과 연결된 호수가 잔잔하다. 이곳에서 신전에 제사할 때 몸을 청결히 하는 곳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야간에 “Luksor” 신전을 보기위해 나섰다. 보통 이 “Luksor” 신전 일대를 천정이 없는 박물관이라 일컬어진다. (사진: Karnak 신전 내부) “Ramses Ⅱ”가 축조 하였다고 하며, 석상이 양쪽에 서있고, 북쪽으로는 “Sphinx” 의 거리가 조성 되어 양쪽에 도열 되어 있다. 당시에는 6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하나 현재는 100여 개가 남아있고 이 도로를 따라가면 “Karnak” 신전과 연결되고 “Amon La” 남쪽 규방으로 불리었다. 기원전 1900 년 경 제12 왕조의 Pharaoh 였던 “Sesostris Ⅰ”가 세웠다 한다. 두개의 축은 태양의 궤도를 반영하는 동서 축으로 만물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나일강과 평형을 이루는 남북 축은 왕권의 영역과 기능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석상이 좌우에 서있는 광장이 나오고 그 안으로 가면 “Alexsander 대왕”이 정복자로서 이곳에 왔었다는 사실이 기록된 상형문자가 새겨진 방이 있다. 그 뒤로는 지성소가 있으나 심하게 훼손 되었다. 신전 순례를 늦게 까지 마치고 야간 Bazar (시장)에 들러 생활상을 점검해 본고 나서 관광 마차를 타고 시장거리를 통과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여섯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은 07:50분 Aswan 으로 출발. 여기서도 Tour Police 호송 하에 270 km 거리를 버스로 가면서 도중에 “Edufu” 신전, “Kom Ombo” 신전, “Philae” 신전을 방문하기로 하였다.이들은 Egypt 가 Greece, Roma, Osman Turkey 등에 정복 당했던 시대의 신전이다. (사진 Luksor 신전의 입구 전경) Alexsander 대왕이 BC 332년에 Egypt 를 정복하고 “Alexsandria” 라는 도시를 만들고, 도서관, 박물관, 등대를 만들었으나 1332년 지진으로 등대는 붕괴되었다. 그 후 “파트로 뮤즈1-4세”왕까지 이집트가 번영을 하였다. “파트로뮤즈12세”는 “Cleopatra” 의 부친으로 그 후 “Julius Caesar” 와 “Cleopatra” 가 부부로 되면서 수완을 발휘하여 이집트는 더욱 번영을 누렸으며 그들 사이에서 난 “파트로 뮤즈 15세”가 왕이 되었다. 시이져가 죽은 후 크레오파트라는 “Antonius” 와 결혼하였고, 안토니우스가 파트로뮤즈 15세를 죽였다. 후에 이집트는 더욱 번영하였으며 그녀가 죽자 이집트는 Roma 제국에 합병되어 670년 간을 통치 밭았다. 그 후 Osman Turkey 가 350년간을 지배하면서 이집트는 문맹률이 높아 졌다. 언어나 종교는 그대로 유지 되었고 이 3개의 신전은 그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Edfu Temple (사진: Edufu 신전의 벽 조각과 상형문자)2300 년 전에 축조 되었으나 19 세기에 복원 되었다. Greece 왕들이 건축. 이집트 신전과 같이 “Horus”(선의 신) 신을 위해 만든 것으로 길이 137 m, 교각높이 36 m, 정면은 79 m, 신전의 출입구에 독수리 모양의 형상은 “Horus” 를 상징한다. 태양신의 문에는 코브라 2 마리가 조각되었고 15 명의 Greece 왕이 200년 동안 공사를 하였다 한다. 왕이 가운데 있고 신이 좌우에 조각되어 있다. 지성소가 가운데 있고 그리스 신과 신화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지성소 안에는 석관이 있고 “Horus” 신의 모습과 상형문자가 조각되어 있다. Kom Ombo Temple 신전은 두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오른쪽은 풍요의 신 “세백신”에게 바치며 세상의 창조주로 생각하였고, 왼쪽은 “Horus” 신전이고 전투적인 태양의 신이다. 조각된 것에는 그리스 왕과 왕비가 그리스 옷을 입고 있으며, 제물을 바칠 때의 날짜와 계획된 제물이 정해져 있는 것이 상형문자로 조각되어 벽면에 남아있다. Philae Temple Aswan Dam 공사로 인해 물속에 잠기게 된 것을 UNESCO의 지원을 받아 옮기어 안전한곳에 건축하여 1982년 공개하였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신전이 원래 있던 섬은 강 건너 먼 곳에 터전이 보인다. 이 신전에는 1978년 “Napoleon” 이 오면서 학자들을 데리고 왔다는 기록도 조각되어 있다. 교회 제단도 마련되어있다. 신전을 몇 개를 돌아보니 나름대로의 건축법이 있고 조각기법도 거의 동일하고 상형문자도 통일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Isis Island Hotel”로 가기 위해 Nile 강의 범선인 Paluka 를 타고 바람의 방향을 잡아 섬에 있는 호텔로 향한다. 그 사이 조그만 보오트를 타고 2명의 소년이 접근하여 노래를 부르면서 팁을 요구한다. 우리가 가는 호텔은 Nile 강 하류의 섬으로 넓은 땅을 차지하고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일곱째 날: 오늘 부터 이곳은 “Big Bairum”이라는 종교행사가 4일간 계속된다. 모두 기도하고 멕카로 순례를 갔던 순례자가 돌아오고, 양을 잡아 축제를 열고 나누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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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Abu Simbel 신전의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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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09:10분 Aswan 에서 280 km 떨어진 “Abu Simbel” 로 가는 MS 247기를 타기위해 Isis Island 를 나섰다. 45분을 비행 후 10시 경에 사막 한복판에 있는 공항에 착륙하여 Shuttle Bus 를 타고 신전으로 향하였다. 이 신전은 커다란 바위산을 파서 신전을 조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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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영원한 불가사의 Pyramid 와 Sphinx 의 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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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ja Pyramid 는 1979년 UNESCO에 고대문화 유적으로 등록 되었다. 기원전 26세기 대부분을 통치했던 제4 왕조의 “Pharaoh”인 “Khufu, Khafre, Menkaure 의 3대왕이 세운 것으로 40 m 의 언덕이라 Nile Delta 삼각주가 내려다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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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미이라로 된 왕들은 영원히 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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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 마지막으로 우리는 Cairo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일반 박물관 입장료에다 미이라 실은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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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Tutangkhamen” 의 유물관의 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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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Nile 강과 Cairo 신도시 전경)
1) Old Kingdom: 제1 왕조∼11 왕조 B.C 3100∼1986 년. 태양신 숭배시대
Memphis 는 고대 시대인 BC 3200년 전에 수도 였다. 이 당시에 발굴된 돌로 된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대의 석상, 상형 문자 석, 왕의 석관 (큰 돌을 위에서 파내 린 것), 제단 등이 남아있다. 가운데 있는 Alabaster Sphinx 는 BC 1200 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앞에 유물관에 있는 Ramses Ⅱ의 누워있는 “Limestone” 은 실내에 전시 되었고 67세에 죽었다는 그는 이렇게 돌의 석상으로 남아 현재를 지배한다.
(사진: Sakhara 지구의 Pyramid 의 모습)
(사진: 흙 사막에 솟아난 山들- Pyramid 와 같이 보인다.)
(사진: 백 사막에 풍화되어 가는 돌의 모습)
(사진: 백 사막의 일몰 광경)
두 번째로 마치 미국의 자이언 캐년 같은 바위 지대에 오니 흰 바위산이 엄청나게 크다. 그토록 색갈이 깨끗할 수 가 있나? Sphinx 를 만들어도 좋은 크기의 바위가 바닥에 서있기도 하고, 아마 고대 Sphinx 도 그렇게 만들어 졌을 것 같다. 건너편 흰 바위 지역으로 건너간다.
(사진: Memnon의 거석상 전경)
(사진: 왕가의 계곡의 “RamsesⅣ”의 무덤)
신전은 대개 3 가지로 분류된다. 1) 신을 위한 신전, 2) 왕을 위한 신전, 3) 장제(葬祭) 신전 등이다. 이 “Karnak” 신전은 규모나 조각면에서 세계에서 최고의 위치다. 밖으로 나오니 Nile 강과 연결된 호수가 잔잔하다. 이곳에서 신전에 제사할 때 몸을 청결히 하는 곳이다.
여섯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사진: Edufu 신전의 벽 조각과 상형문자)
(사진: Abu Simbel 신전의 정면)
( 사진: Aswan High Dam 전경)
(사진: 약 1000 Ton의 미완성 Obelisk 모습)
1) Khufu Pyramid: 왕의 재위 23년 동안 공사 ( BC 2656-2633). 2∼3 Ton 에 이르는 돌 250만 개로 축조. 높이 147 m, 밑변길이 230 m, 그러나 지금은 침식으로 인해 높이가 138 m 이며, 입구는 17 m 높이 가운데 있다. 아래 지하 입구에서 50 m 정도 내려가면 첫째 방, 우측으로 통로가 나온다. 곧게 연결통로로 32 m 를 올라가면 길이 47 m, 높이 8.5 m 의 회랑이 있고, 이를 통과하면 묘실이 나온다. 10 mⅹ5m 의 묘실에 “Khufu”왕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묘실 위의 5개의 빈방에서 벽에다 낙서한 인부들의 기록에서 알 수가 있다. 약 10만 명의 노동자가 하루에 수십 개씩 쌓았다고 한다.
Sphinx 는 맹수의 힘과 인간의 지혜를 동시에 가진 “Pharaoh”를 상징한다고 한다. 화강암은 Aswan에서 가져 다가 사용하였고 얼굴은 “Khafre” 왕 자신을 조각하였고, 몸통은 사자상으로 BC 450년까지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한다. 그 옆에 것은 장제 사원으로 건축하였다 한다.
(사진: Tutangkhmen 의 황금 투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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