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에 사시는 김한종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김한종님은 2006년5월04일부터 5월14일까지 11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영국일주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영국 일주 여행기 -잉글랜드,스코트랜드,웨일즈 문화탐방- |
 (사진: Glamis Castle 전경) |
영국 일주여행 코스도 |
|
영국 일주 여행기 |
갑자기 봄이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 동안 고르지 못한 봄 날씨가 오늘은 화사하다. 그렇게 많던 벗 꽃, 개나리, 목련화가 지고 지금은 영산홍이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다가온다. 5월 4일: 우리부부는 이번에 영국 일주 여행을 나서기로 한다. KE 907 편으로 인천공항을 이륙. Seoul-London 8882 km(5519 Miles) 를 장장 11시간을 넘어 비행. 시차는 8시간 뒤진다. 비행기는 발해만, 몽골, 시베리아 남부, 모스크바 남부를 거처 발틱 해를 내려다 보면서 남진하여 네델란드 상공을 거처 London Heathrow 공항에 내리니 현지시간 오후 4시 40분이다. 비행기 안에서 일간 신문 2부를 읽고, 茶山 정 약용의 “牧民心書” 325 P 를 진지하게 읽어도 시간이 남는다. 목민심서는 다산의 유배생활 18년간에 쓴 저술로 오늘날 <지방행정의 지침서>로 일컬어 진다. 국내에서는 5.31 지방선거 열풍이 불어 올 것이다. 모름지기 백성에게 봉사정신이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민초의 한 사람으로 후보자들에게 권하고 쉽다. 공항에 내려 지루한 수속 끝에 오후 6시가 넘어 버스(영국은 Coach로 쓴다) 에 승차하여 High Street 139 에 있는 한 식당 “Koguryo” 에서 한식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기내식을 두 번이나 한 관계로 대충 한다. 식사 후 Thames River 북부지역, New Bridge St 에 있는 “Crown Plaza Hotel” 로 이동하여 20시경 Check-in 하고 머나먼 나라에서 첫날 밤을 맞이한다.
 (사진: 대한민국 국적기 KAL 907 기의 모습) |
|
1. 영국이라는 나라 |
|
영국의 국가 명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로 England, Scotland, Wales와 Northern Ireland 의 4개 지역을 통합한 연방 국가 형태이다. 4개 지역이 각기 다른 문화와 언어, 인종, 환경이 다르고 국기마저 다르다. 각기 영국에서 독립을 주장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독특한 입헌 군주국가 형태에다 의회제도를 기반으로 하여 통합에 성공하여 세계의 리더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또 해양국가로 일찍부터 식민지를 개척하여 오대주 육대양에 걸 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한때는 전 세계의 54개의 나라를 지배하던 국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영국연방(British Common Wealth) 을 구성하고 영국 여왕이 연방 국가 원수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트랜드, 웨일즈, 북 아일랜드의 4개 주를 말하며 면적은 24만4천㎢ 에 인구 5천7백37만 명이다. 주로 Briton 섬이 영국으로 대표된다. 지형이 단조롭고 평지가 대부분이고 스코트랜드에는 산지가 많으나 고작 높은 산이 1342 m 이고, Wales 에는 Snowdon 산 군이 1085 m 로 가장 높다. 대부분이 평야와 구릉지대로 되어 있어 넓게 보인다. 우리나라 보다 불과 2만㎢ 정도 크나 산지가 70%인 것과는 정 반대로 경작 가능지가 80%나 되니 인구가 많아도 밀도가 낮다.
 (사진: 잉글랜드의 농촌 유채 밭 풍경) 국토가 북위 50도 이상에 위치하나 멕시코 난류의 영향을 받아 해양성 기후로 년 중 따듯하다. 그러나 날씨는 변화가 많아 4계절이 하루에 존재한다. 의회 정치의 본고장으로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원은 귀족, 성직자 등으로 구성되어 약 700명이다. 하원은 소선거구에서 직접 선거로 선출하며 659명으로 구성(잉글랜드 529명, 스코트랜드 72명, Wales 40 명, 북 아일랜드 18명)되었다. 모든 권한이 하원에 있고 다수당이 총리 직을 수행한다. 일인당 GDP 22.800$ 로 세계 5위 국가로 자리 매김 된다.
|
|
2. 영국을 이해하기 위한 간략한 영국의 역사 |
|
현 영국의 조상은 대륙에서 건너온 Kelt (Celt) 족이 주인이고, 5~6세기 게르만 족이 이주해와 “Anglo-Saxon”이라고 부른다. 다음에는 덴마크인, 또 스칸디나비아계의 Viking족이 침입해와 동화되었고, 11~12 세기에 프랑스에서 건너온 노르만족으로 구성 되어 있다. Kelt 족은 지금의 Scotland, Irland, Wales 인의 선조이다. BC 55 년에 Roma 제국이 이곳에 침입하여 Thames 강가에 요새를 세우고 살았다. 4세기에 Roma 제국이 쇄퇴하자 게르만 족의 일원인 주트족, 앵그로족, 색슨족이 대거 들어와 켈트족을 밀어내고 Briton 섬을 지배하게 된다. 이후 Anglo-Saxon 족이 지금의 잉글랜드 지역을 석권하게 되었고 원래의 Kelt 족은 스코트랜드, 웨일즈, 아일랜드지역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후 11세기의 노르만족의 “William” 이 1066년 “Hastings Battle” 에서 승리하여 영국이 평정되고 그가 Westminster Abbey 에서 영국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정복자 William 은 노르만 왕조를 열었고, 모든 권력은 노르만 귀족에게 돌아간다. 그가 1087년에 죽은 뒤 손자 “HenryⅡ” 가 등극하여 Scotland 와 Wales 지방을 완전히 평정하여 1189년까지 평화로운 잉글랜드를 만들었다. “HenryⅡ” 는 아들의 반란으로 쫏겨나1189년 셋째 아들이 “RichardⅠ” 가 된다. 그는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여 10년 만에 전사하여 그의 동생 “John” 이 1199년 왕이 된다. 그는 무능하여 귀족들이 대항하여 “Magna Carta”(대헌장) 를 서명하여 의회정치의 싹이 튼다. (사진: Scot Queen “Mary” 모습)
“John” 왕이 죽자 “HenryⅢ” 가 왕위에 오르나 폭정을 하여 귀족들이 지방대표를 모아 의회를 탄생 시켰다. 이것이 “의회 민주주의”의 탄생이다. 이로서 정복 왕 William 이후200년간의 프랑스 통치권에서 벗어난다. 그로 인해 1337년부터 프랑스와 100년 전쟁에 돌입한다. 잉글랜드 왕 “Edward Ⅲ” 가 프랑스를 진격한 후 긴 전쟁이 시작된다. 오르레앙 전투에서 패배한 후 프랑스의 영토를 상실한다. 그 후 영국 내부에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나 “York” 가와 “Lancaster” 가문의 장미전쟁이 일어난다. York 가문의 승리로 귀결 되었으나, 튜터 가문의 “Henry Ⅶ” 가 York 가문을 누르고 왕위에 올라 튜터 왕조가 시작되어 절대 왕정의 기초가 확립된다. 이어 “Henry Ⅷ” 가 1534년 로마 교황과 결별하고 “Anglican Church”(영국 성공회)를 설립하여 수도원 해산, 토지를 몰수 하였다. “Henry Ⅷ” 의 아들 “Edward Ⅵ”, 다음에 등장한 Queen “Mary”(1553-1558) 여왕은 다시 카도릭으로 돌아가면서 “성공회”의 많은 신도를 화형 시켰다. 이 후 “ElizabethⅠ”는 새로이 영국 국교를 확립하고 선정을 베풀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여 왕정을 공고히 하였다.
1603년 “ElizabethⅠ” 가 죽자 Scotland 왕 “JamesⅠ” 가 잉글랜드 왕이 되어 이때부터 Scotland 와 Wales 가 완전히 통합되어 “Great Britain” 이 되었다. 그는 왕정을 강화하려 하였으나 1628년 의회는 “권리장전”을 통과 시켰으나 “JamesⅠ” 가 의회를 해산 하였다. 이에 ”Cromwell” 이 이끈 의회 파가 승리하여 최초로 “공화정”이 탄생하나 크롬웰이 죽자 의회는 네델란드로 망명한 “ CharlesⅡ” 를 맞아 왕정 복고가 이루어 졌다. 이후 의회가 네델란드의 “William” 공을 왕으로 불러들여 1689년 “권리장전”을 선포하고 명예 혁명을 이루었다. 1714년 독일 “Hanover” 왕가의 “GeorgeⅠ” 에게 왕위를 부여 하였다. 이때부터 산업혁명 아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18세기 중엽부터 해양 국가로 부상하면서 식민지 개척에 나서 부를 축적하였다. 18세기 후반 산업화를 이루면서 경제력이 향상되고 프랑스 “Napoleon”과의 전쟁에서 승리 함으로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이후로도 계속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여 1820년 경에는 “대영제국”을 이루어 전세계 26%의 인구를 지배하며, 54개국의 식민지를 개척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19세기 “Victoria” 시대를 열어 1837~1901 년까지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이 시대의 정신이 바로 “개인의 창조력, 품격, 성실, 근면”이 국가 덕목으로 되면서 영국은 세계의 리더 국가로 부상 하였다.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식민지의 상실이 이어지고 서서히 국력이 기울기 시작. 정치, 경제의 중심이 미국 대륙으로 넘어가면서 쇄퇴하기 시작한다. 그 후 여성 수상 “Datcher”가 등장하면서 국가 위신을 회복하고 공산 체제 소련의 붕괴로 이제는 미국과 더불어 세계 리더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
|
3. 중부의 고대도시 York 를 향해 |
|
5월5일: 시차관계로 잠시 자다가 03:30분 깨어나니 좀처럼 날이 밝지 않는다. 아침 식사후 호텔 주변을 산책 하니 봄이 우리보다 한 달 가량 늦게 와서 꽃이 다채롭게 피어난다. 이번 여행은 런던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올라가 스코트랜드 인버네스에서 네스호를 따라 내려온다. Glasgow 를 거처 Lake District 를 경유하여 Wales 지방으로 하여 주로 외곽을 돌아 남부를 거처 London 으로 들어오는 일주 코스이다. 오늘은 런던을 출발하여 340 km 북쪽에 있는 York 시로 가는 날이다. 08:00 시경 출발하여 런던 외곽으로 나가 Motorway I(High Way) 으로 나가니 차량 정체가 심하다. 점차 북상하면서 차도 변은 노란 유채 밭이 아름답게 펼 처 진다. 중국 운남성 나평의 유채보다 키가 작으나 색 갈은 더 진하여 아주 선명하다. 기름을 생산하기 위해 재배한다. 오른쪽 평원에는 목초지가 아주 푸르게 끝없이 이어진다. 양과 소가 방목되어 평화로이 풀을 뜯고 그 사이로는 전원 주택이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 York Minster 사원의 전경) 고속도로에는 물류 콘테이너 차가 줄을 이어 시야를 방해한다. 11:30분 경에 중간 휴게소에 들어오니 상당히 크고 쇼핑 점도 규모가 크다. 주변의 자연을 함께 숨쉬어 본다. 노란 수선화, 하얀 수선화가 너무 아름답고 민들레 꽃도 샛 노랗케 피어나 바람에 나부낀다. 휴게소에서 조금 다채롭게 점심 식사를 한다. 여러 가지를 주문하여 맛을 본다. 12:30분에 다시 출발하여 York 로 향하니 날씨가 정말로 화창하다. 변덕스럽다던 날씨가 이렇게 좋아지니 너무나 다행스럽다. 14:00시가 되어 York 시에 들어와 성곽도시 입구 주차장에 차가 멈춘다. 이 시는 중세의 성곽도시로서 지정학적으로 잉글랜드의 요새를 이룬 곳이다. 로마군이 Ouse 강과 Foss 강 사이에 주둔지를 세울 때 도시의 기반이 형성되어 수백년 동안 잉글랜드의 제2의 도시가 되었다. 잉글랜드 북부에서 노르만 인들의 가장 강력하고 번영하는 도시가 되었다. 민스터 사원, 도시 성벽, 기타 중세에 세운 건물들은 내전에도 견디어 냈으며 18세기에는 항구이자 북부지방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19세기에는 철도와 대형 초코릿 공장이 이 시를 변모 시켰다. 오늘날 철도 박물관과 이시의 역사적인 건축물은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특히 북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 고딕식 “York Minster”는 도시를 관장하고 북부에서 중요한 교회이다. Northumbria Anglian 왕인 “Edwin” 이 627년에 여기서 세례를 받은 터에 세워진 다섯번째의 성당이다. 현재의 사원은 1472년에 완성된 이래 세번이나 화재가 났으나 그대로 전해온다. 이 사원의 장미꽃의 Stained glass 는 “장미전쟁” 후에 건축된 것이다. 중앙의 해바라기 주위에 붉은 장미와 흰 장미는 1486년 York 가문의 “Elizabeth” 와 Henry 7 세의 결혼에 의해 York 가와 Lancaster 가문의 결합을 의미한다. 1984년 화재가 났으나 복원되었다. 사원 내부는 너무나 웅장하고 장식이 아름답다. 사원 양쪽 회랑에는 성현들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사진: York 사원 근처의 초등하교 수업 모습) 사원을 보고 나서 성안의 중세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생각을 몇 백년 뒤로 돌린다. 걸어서 “Jorvic Viking”의 고대 유적이 발굴된 데에 와서 체험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본다. Viking 족의 잉글랜드에서 정착 당시의 생활상을 직접 지하에서 체험해 보았다. 다음으로 성벽에 요새를 형성한 “Clifford’s Tower” 에 올라 이 중세의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보았다. 이 Tower 는 1244~1270년에 “Henry Ⅲ” 가 건축하였다. 이곳은 1190년 유대인 학살의 장소 였고, 이제는 York 의 상징이다. 탑 위의 통로에서 York 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새이자 명소이다. Castle Museum 은 시골 의사인 “John Kirk” 가 20세기 초반에 빅토리아 시대와 Edward 시대의 유물을 수집한 것을 한군데 모아놓은 것으로 Britain 에서 가장 유명한 민속 박물관이다. 죄수의 방, 집시 caravan (포장마차), 여러 가지 보석, 가정의 살림 도구, 상점과 그들의 가정 생활용품이 체계적으로 전시된 최고의 박물관이다. 우리는 York 시의 중세 역사와 생활사를 한시간 이상 보면서 그들의 중세생활에 몰입하면서 오후 6시까지 관람을 마치었다.
 (사진: Clifford Tower 전경) 한시간 이상을 달리어 North Yorkshire Park St, Ripon 에 있는 Best Western 계열인 Ripon Spa Hotel 61호(3층)에 여장을 풀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옛날 호텔에서 Wine 을 맛보며 제법 품위 있는 식사를 한 후 휴식을 취하였다. 5월 6일: 아침 5시에 기상을 하니 날씨가 아주 상쾌하다. 호텔이 3성급으로 오래되어 목조로 된 바닥에서 소리가 나고 삐걱거린다. 시설은 잘되고 주위환경은 좋으나 너무 오래된 곳이다. 산책에 나서니 Hotel 앞 Garden 이 아름답게 가꾸어 졌고 질서가 정연하게 정돈된 모습이다. 특히 잔디가 잘 정리 되었고, 노란색, 흰색 수선화, 튜립이 너무나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다. 그 주위의 프리므라 꽃이 더 돋보이게 장식되어 그야말로 아름다운 화원에 들어간 듯 하다. 옆의 Ripon Spa Garden 으로 나가니 이 가든은 큰 나무와 왕 벗꽃나무의 꽃이 만발하고 수선화를 비롯한 각종의 꽃이 만발하여 너무나 상쾌한 아침이다. 입구에는 이 지역에서 1,2차 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자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조그만 동네에 이렇게 훌륭한 공원이 있다니 너무나 부럽다. 07:00 시경 아침식사. 싱싱한 과일을 먼저 맛본 후 몇 가지를 추가 하면서 만족한 식사를 하였다. 오늘도 Edinburgh 까지 북으로 갈 길이 멀다.
|
|
4. Scotland 의 수도 Edinburgh 를 찾아서 |
|
08:00시에 출발하니 아침에 좋던 날씨가 어느새 흐리고 빗방울이 내린다. 북쪽 Highland 로 향하여 도로에 나오니 York 도시로 오던 때와는 달리 차량이 적어 속력이 난다. 이제부터 England 북부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펼 처 진다. 어제에 이어 유채 밭이 드문드문 나타나고 시각을 자극한다. 한시간을 지나니 서서히 Low land 의 분위기가 나타난다. 마을이 드문 드문 보이고 도로 좌우에는 목장이 계속되고, 새끼양이 어미 양과 같이 다니고 소도 어린 송아지를 돌보며 여유롭게 풀을 뜯는다. 마을이 있으면 교회가 있고, 빨간 우체통이 있는 것이 정다운 모습이다. 집집마다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깔끔한 인상을 준다. Corbridge 에 오면서 서서히 목장지대가 경사가 지고 양 때 들이 많아진다. 잉글랜드 북부의 전원풍경이 조금은 황량하게 펼 처 진다. Jedburgh 로 가는 길은 언덕길로 왼쪽은 황량하고, 스코트랜드의 접경지역의 구릉지대는 검은색으로 계곡이 형성되어 쓸쓸한 풍경을 보여준다.
 (사진; 스코트랜드 야산에 피는 Heath 야생화) 10:35분 마침내 Scotland border에 오르니 경계석이 나타나고 국경 포인트에서 본 Scotland 의 인상은 바람이 무섭고 추위가 느껴지는 곳으로 왼지 “grey” 하고 음산한 느낌이다. 다시 차에 올라 Jedbourgh Abbey 앞에서 10분간 휴식. 이 수도원은 “Henry Ⅷ” 가 성공회로 개종하면서 파괴한 수도원의 잔해가 남아 있는 곳이다. 다시 잘 포장된 Roman Road(Roma가 점령했던 시기에 개통된 도로)를 달리어 가는 주변에는 노란 Heath 꽃 만이바람에 흔들린다. 언덕으로는 거친 바람이 불고 이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가 바쁘게 돌아간다. Edinburgh로 가는 68번 도로 좌우에는 푸른 목장이 계속되고 인적이 드물고 주택도 안 보인다. 중간의 휴식처에서 30분간 휴식하면서 여러 가지 쇼핑을 한다. 물건도 다양하고 가격도 합리적인 곳이라 모두들 선물용으로 한 두 가지 품목을 산다. 어느덧 Edinburgh 고도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길거리에 붐비고 복장도 제 각각이다. 여름에서 겨울까지의 복장이다. 시내로 들어와 Holyrood Palace 에 이른다. 이 궁은 Edinburgh 시 “Royal Mile” 끝 자락에 있다. 현재도 “Elizabeth” 여왕의 여름 별궁이다. 1540년에 “James Ⅳ” 가 개축한 화려한 프랑스식 궁전이다. 스코트랜드의 왕실이 공개되고 왕실에서 수집한 여왕의 Gallery 가 눈길을 끈다.
 (사진: Holyrood 궁전의 전경) 영국은 잉글랜드 뿐 아니라 도처에 성(Castle)성이 많다. 영국이 이렇게 스코트랜드와 웨일즈 지방에 성이 많은 것은 잦은 침략으로 지방 귀족과 영주가 영토를 보존하려 한데 기인한다. |
|
5. Scot 의 여왕 “Mary” 의 기구한 운명 |
|
Gallery 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Queen Mary of Scot”(1542-87) 의 인물화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인 5세에 Paris 에 보내져 그녀가 15살이 되었을 때 어린 황태자 “Francis” 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2년 후 “Francis” 가 죽자 과부로 Scotland 로 돌아왔다. 그녀는 스코트랜드 사람에게 미인으로 인기가 있어 카도릭 나라의 어려운 여왕의 역할을 잘 하였다. 1565년에 젊고 이기적인 “Lord Darnley” 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겨우 8개월 지나 남편이 Holyrood 궁에서 Mary 의 시종 비서인 “David Rizzio”를 질투한 나머지 “ Darnley” 가 그녀 방에 자객을 보내 “Rizzio” 를 끌어내어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1566년 Mary 의 아들인 “JamesⅥ” 가 태어난 후 이어 남편 “Darnley” 도 살해된다. 그런 후 3개월 만에 “Mary” 여왕은 그의 남편을 죽인 혐의가 짙은 “Bothwell” 백작과 결혼을 한다. 이에 스코트랜드 인들은 격분하여 “Mary” 여왕을 “Lochleven Castle” 에 가두어 버린다. 그리고 그의 어린 왕자에게 양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1568년에 도망을 하여 다시 왕좌를 차지하려고 하나 실패하여 영국으로 달아났다. 그 후 19년간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Protestant English Queen “Elizabeth”의 명으로 처형된다. 이방에 있는 그림이 바로 파란만장 한 삶을 살아온 “Mary” 여왕의 그림이다. 이 방의 그림은 대부분 왕실의 초상화나 그림이다. 이렇게 왕정 국가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을 보고 나서 이번에는 “Royal Mile” 로 이동하여 High St 에 있는 레스또랑 “ The Mitre” 에서 스코트랜드의 정통 요리인 “하기스”(잡곡밥에 다진 고기와 으깬 감자, 당근의 3개 Piece 로 구성)와 정통 생맥주 한잔과 식사를 현지식으로 진행한다. 식사 후 우리는 이제 “Edinburgh Castle” 로 향한다.
|
|
6. 중세의 고성 “Edinburgh Castle” 에서 |
|
Edinburgh 시는 도시 전체가 UNESCO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중세의 도시가 그대로 보존되었으나 돌의 검은색으로 인해 전체가 회색의 도시로 보인다. 특히 Old Town 의 구시가지는 완전히 석조 건물로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 Edinburgh 성의 전경) Edinburgh 성은 천혜의 자연적인 요새로 위풍당당하게 화산 석 바위산 위에 세워져 있어 구 시가지에서 잘 보이고 있다. 성 위로 올라가는 길은 돌을 깔아 놓은 당시의 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문 앞 광장에는 Festival 을 위해 전망대가 만들어 지고 “넬슨” 제독의 동상 등이 세워져 있어 광장을 굽어본다. 입장료를 내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돌길을 올라가면 강가를 향해 성벽에 설치된 대포가 위상을 자랑한다. 그 뒤로 성 밑에는 AD 600 년경 부터 성에서 일어난 대사건의 기록이 그림과 더불어 전시되어 있다. “Din Eidyn” 의 최초기록은 Lothian 전사 들이 Northumbria의 Angles 족에게 정복된 기록부터 1745년 성을 공격한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이르기 까지의 사실이 기록 되어 있다. 그 후 “Bonnie Prince, Charlie” 가 왕위를 다시 찾으려는 투쟁이 전개되었던 역사적인 곳이다. 오늘날 이성은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요새로서 이제는 스코트랜드의 제일의 관광지가 되었다. 성으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는 13세기 후반 Scotland 의 지도자 “William Wallace” 의 동상이 서있다. 또 1314년 영국으로 부터 성을 탈환한 King “Robert Bruce” 의 동상도 서있다. 바다를 향해 도열한 대포는 150년간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북쪽성을 방어하기 위해 포를 발사한 “One o’clock Gun” 이 전시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성안 박물관에서 16세기 왕실의 저택에서 Queen “Mary” 가 스코트랜드의 “James Ⅵ”(영국 왕 James I) 를 낳았을 때의 침실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스코트랜드의 옛 명품들이 전시된 왕실 Room 을 볼 수 있다.
(사진: Edinburgh 성에서 결혼식에 백파이프 연주 모습) 때마침 성에서 결혼식을 하는 한쌍의 신혼부부의 혼례식을 볼 수 있었고 유명한 “백 파이프”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성벽은 거칠고 우중 충 하나 역사가 서려있는 이곳은 단연 Edinburgh 의 상징이다. 성의 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Royal Mile” (약 1.5 km의 거리 구간을 이렇게 부른다.)의 Castle Hill 을 걸어 내려온다. 성으로 부터 “Holyrood Palace” 에 이르는 돌길이 Old Town 을 형성 하면서 우리는 수세기에 걸친 건물을 보면서 각국에서 온 관광객 들과 어울려 거닐어 본다. Old Town 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바람이 불고 스산한 가운데 “Calton Hill” 로 오르니 Greek Style 의 기념물로 1820년대에 건축하다 미완성으로 남은 “Athens of the North” 를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전 방향으로 중세도시를 전망할 수 있는 곳이다. 언덕 위에는 New Town 설계자인 건축가 “James Graig” 에 의해 세워진 “Old Observatory” (구 전망대)의 위용을 볼 수 있었다. 강풍과 추위로 서둘러 내려와 “Corus Hotel”에 들어오니 결혼식 축하연으로 축제분위기 였다.
|
|
7. Scotland 의 고성-전투의 격전장인 “Stirling Castle” 을 찾아서 |
|
5월 7일: 아침에 일찍 깨어나니 창밖에는 비가 내라고 있었다. 드디어 변덕스러운 영국의 날씨를 경험하게 되는 듯하다. BBC 방송의 일기예보를 보니 구름벨트가 Edinburgh 지역 아래로 이동 중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한참을 휴식 후 09:05분 비가 오는 가운데 Stirling 으로 출발 한다. Highland 의 관문인 이곳은 잉그랜드가 1100년경 Lowland 를 평정 하였으나 그 북부는 그렇치 못하였다. 1297년 “William Wallace” 가 Forth 강을 건너 처 들어 오는 잉그랜드 군을 격파 하여 “Stirling Bridge”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사진: Stirling 성의 전경) 다음 1314년 “Robert Bruce” 가 정예 잉그랜드군을 패퇴시킨 곳으로 바위 위에 세운 요새로 Scotland 에서는 가장 유명한 성이다. 그 후 Scotland 계의 “JamesⅠ” 가 영국 왕으로 등극하자 그 후 수세기 동안 왕과 여왕의 궁정 행사 장소로 사용하였다. 성 아래 내려다보이는 평야지대는 중세의 군대들이 전투를 감행한 전장이었다. 이 성의 “Great Hall” 은 가장 큰 축제와 행사를 개최하던 곳이다. 박물관에는 성안에서 살던 당시의 왕족들의 연회와 생활에 쓰던 주방 시설과 각종 요리 재료와 방식이 재현되어 전시되고 있다. 이곳에는 1543년 Scotland 의 비운의 여왕인 “Mary”가 등극한 “Chapel Royal” 이 있으며, 또 Mary 왕의 아들 “James Ⅵ” 가 1566년 세례를 받은 곳이었다. “James Ⅵ” 가 영국 왕을 승계 받은 후 권력의 중심은 London 으로 갔으며 “Stirling” 성은 왕실의 주거지로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당시의 성안의 생활상과 왕실의 각종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슬비가 오는 가운데 Stirling 성을 떠나 Perth 시내를 벗어난다. A 9 고속 도로로 나오니 들판은 초지와 양 떼 목장이 다시 나타나고 드문 드문 농가가 나타났다. 비는 계속 가늘게 내리고 시야는 아주 흐리다. 그래도 목련화와 왕 벗꽃은 활짝 피어 밝게 보였다. |
|
8. 유령이 나온다는 전설이 깃든 “Glamis Castle” 을 찾아서 |
|
우리는 다음의 방문 지는 Perth 와 Aberdeen 사이 A 94 번 도로에 있는 “Glamis Castle”이다. 입구에 이르니 돌로 된 성문으로 Coach 가 들어가기가 좁았다. 성으로 가는 길은 입구와는 달리 아주 넓고 사원한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 좌 우로 푸른 초원과 목장이 이어지고 수선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대로를 따라오니 양궁대회가 성안에서 열리고 있었다. 성에 도착하여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성안의 레스또랑에서 이곳의 특이한 점심식사를 하고 입장하기로 하였다.
(사진: Glamis 성 전경) 이 성은 1372년 부터 “Strathmore” 백작의 저택이었고 왕실의 주거지로서 Scot land 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일컬어 진다. 전체적으로는 돌로 지어 투박하게 보이나 내부는 아주 호화로운 장식으로 되어 있다. 현 Elizabeth 여왕이 어린시절에 자라났던 집이고, 여왕의 어머니의 거처였으며 “William Shakespeare” 의 비극 “Macbeth” 에 등장하는 전설의 무대이다. 1100년에 최초로 지어 졌고 그 후 1800년대에 개축되었다. 첫째 방은 백작의 가족생활 공간으로 현 “Elizabeth Ⅱ” 의 사촌과 어머니가 어린시절에 살던 곳이다. 천장은 장미, 엉겅퀴의 장식으로 되어 있다. 벽에는 에리지베스 2세의 어머니, 아버지의 초상화가 있다. 둘째 방에는 각종 사냥에서 잡은 사슴 뿔이 전시 되었고, 사냥 도구도 벽에 전시 되었다. 카드놀이를 하였다는 비밀의 방은 갑옷이 걸려있는 벽 뒤에 있다 한다. 이곳의 가구 장식은 1700년 대의 상아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사진: Glamis Castle 성밖의 풍경) 셋째 방에는 각종 가구가 비치된 응접실로 1700년 대의 가구 들이 그대로 배치되어 있고 선조들의 초상화가 벽면을 장식하였다. 에리자베스 공주와 마가릿 공주가 사용하던 의자도 놓여있다. 네 번째 방은 가족 예배실로 지금도 사용된다. 천장에는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장식하였고 특별 예배실로 가족의 귀신이 깃든 곳으로 400년 전에 죽은 여인이 안개 낀 날에 나타난다는 방이다. 다섯째 방에는 1800년 대의 도서실이 있으며, 1903년에 현 여왕의 할머니의 결혼 50주년을 기념한 장식이 되어 있다. 가운데에는 당구대가 있고 한쪽에는 피아노도 있다. 현 주인인 백작의 초상화는 미완성으로 남아있고 그가 사망한 후에 완성하도록 되어 있다. 벽에는 1600년 대에 영국에서 제작한 타피스트리 그림 4매가 걸려있다. 여덟째 방에는 각종 생활 도자기가 전시 되었고 이들은 1700년 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일곱번째 방에는 에리자베스 여왕과 마가릿 공주의 여러 가지 사진이 걸려있다. 여덟째 방에는 조지 6세의 침실로 여왕의 어머니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침대 위로는 천에 수로 놓은 왕세자와 공주의 이름이 걸려있다. 세 번째로 “Patrix Lord Glamis” 라는 이 성주의 이름이 1884년 생으로 3번째 자녀로 되어 있다. 아홉번째 방은 독서실로 시계가 태업을 감아야 가며 시간마다 울리고 있다. 열번째 방은 감옥으로 사용하던 골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Glamis Castle 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탁 트인 도로를 걸어가며 여유를 부린다. 걸어가는 우리를 차례로 버스에 태우고, 우리는 Inverniss 로 가기 위해 도로에 나오니 이제 부터는 주변 경치가 바뀌기 시작한다. 77 mile 지점부터는 목초지와 양 때가 노닐던 풍경은 끝나고 주변은 이제 Highland 의 황량하고 거친 들판이 나타난다. 언덕이 검은 색 갈로 아직 겨울의 옷을 벗지 못하고 쓸쓸하며 안개가 끼어 부옇게 보였다. 위도상 지역으로 전형적인 Highland 의 풍경이 나타난다. 계곡으로는 눈이 녹은 물이 흐르고 산 위에는 아직도 겨울눈이 남아있고 위도상으로 50 도 이북이라 아직 겨울의 끝 자락이다. 나무에도 새싹이 나지 않았고 검은색으로 보이는 황량한 언덕과 산 능선이 보인다. 중간 마을인 Coylumbridge 에 숲속에 자리잡은 Hilton Hotel 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이곳도 Cairngorms National Park에 있는 휴양지로서 여러 가지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곳이다
 (사진: Hilton Hotel 근처에 콘도 모습) 주위에는 스포츠 센터가 있으나 아직 개장이 안되었다. 또한 그 뒤 숲속에는 61채의 Hilton 계열의 대형 Lodge 가 들어서 있다. Lodge 마당에는 회색 토끼들이 제 세상인양 뛰어 다닌다. 이곳에는 봄이 한달 이상 늦게 오는 것 같아 모든 주변이 스산하다. 그러나 호텔내의 레스또랑은 사람들로 붐 빈다. 저녁 식사 후 Hotel Lobby 에서는 연주소리가 나고 노래가 울려 퍼진다. 5월8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니 북위 60도에 가까운 지역이라 아직도 추위가 남아있으나 강인한 들꽃들이 피어난다. 숲속에는 들 토끼들이 인기척에 다라 난다. Lodge 주변을 산책 후 도로 건너 숲으로 들어가니 인적이 없어 새벽의 고요가 숲속에 퍼져있고 소나무과의 큰 나무들이 많아 아주 싱싱하다. 한참을 숲으로 들어가니 펜스가 처져있고 산책 코스는 끝난다. |
|
9. 영국군과 Scotland 군의 격전장 을 찾아서 |
|
08:30분 호텔을 출발하여 Culledon Battle Field 를 방문한다. 널따란 초원지대에 이르니 거친 잡초만 무성하고 Heath 꽃 만이 군데 군데 피어 있고, 당시에 전투장소를 알려주는 노란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100만평 정도나 되는 광활한 초원의 한쪽은 목장이 있고 오른쪽의 벌판이 옛날의 격전지이다.
 (사진: Culleden 전투의 격전장) 1746년 4월 16일 전투에서 영국의 Jocobite Army 의 3중 라인과 Scotland 군의 3 중 방어라인이 처졌었다는 사실이 돌에 새겨져 있다. 그 옛날 양군의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성 대신에 거센 바람소리 만이 스쳐간다. 이 전투 장은 시설물이 없는 벌판이나 “Scotland National Trust” 가 매년 관리비로£ 22.500 를 내어 유지 한다고 새겨져 있으나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인 듯하다. Cullendon 전투장을 떠나 Inverness 시내에 들어오니 조그만 도시의 모습이 한산하다. 이 성은 봉건 영주의 성으로 규모가 적다. 성을 지나 도시 밖으로 나아간다. |
|
10. Loch Ness 의 푸른 물은 잔잔하다 |
|
포장이 잘된 도로를 달려가니 어느덧 “Ness” 호가 좌측으로 나타난다. Loch(Lake) Ness 는 길이 3.9 km, 폭 1.5 km, 깊이 305 m 나 되며 남북으로 길게 비스듬히 누워있으며 물이 푸르고 잔잔하다. “St. Columbia” 가 6세기 경 “Ness” 호에 괴물이 산다는 이야기를 하여 계속 신비속에 남이 있었으나 최근 과학적 탐사로 그런 괴물은 없는 것으로 입증 되었다. 1940년에 폭풍우가 치는 동안 폭격기가 호수에 추락한 일이 있었다. 이 호수는 Fort William 에서 부터 북으로 Inverness 까지 길게 뻗어있다. |
|
11.Urquhart Castle 에 올라 호수를 바라보며 |
|
호수지역을 벗어나서 북해가 들어온 지역 바닷가에 위치한 Urquhart Castle 로 향한다. 이 성은 AD 1600 년경 축조한 것으로 1961년에 보수를 하였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천혜의 요새에 자리잡았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방어용 성이다. 그러니 후에는 주거용으로 사용하였다. 입구에는 보병에게 길을 터주고 방어를 위한 도구가 나무로 되어있는 것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해안가에 Urquhart Castle 의 전경) 차가운 바다 바람을 맞으며 폐허가 된 성을 답사한 후 우리는 Augustus 마을에 있는 조그만 길가 식당에서 노부부가 제공하는 맛있는 점심을 한 후 출발한다. 가는 도중에 Port William 를 지나 교외로 나가니 도로변에 대 협곡이 나타나고 좌우의 산 정상에는 흰 눈이 남아있고, 눈이 녹은 물이 폭포를 이루어 떨어진다. 양쪽의 산이 죽음의 산인 양 검은 색 갈로 다가온다. 한참을 달려 협곡을 벗어나니 산이 부드러워 지면서 트레커 들이 산길에 나타난다. 가다가 Ben Nevis 양주공장에 들러 제조과정을 견학한다. “Ben Nevis” 는 영국에서는 최고의 높은 산으로 1344 m(4406 feet)로 주조회사 뒤에 솟아있는 산 이름을 딴 상표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Whisky 이름이다. 영상으로 위스키의 홍보와 제조과정을 보고난후 공장의 발효과정을 직접 둘러보며 탱크에서 발효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주정의 냄새를 직접 맡아보고 홍보관에서 시음을 한다. 40도의 고농도로 상당히 톡 쏜다. 이 주변은 이 주류회사의 이름을 따서 호텔이름도 상가이름도 많이 있다. 공장 뜰엔 들소 3마리가 주정의 찌꺼기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다시 Coach 가 출발하여 Loch Lomond 를 끼고 도는 좁은 도로를 내려가다가 소떼를 만나 길을 비켜준다. 다시 달리니 호수 가에는 드문 드문 주택이 보이고 Motor Boat 와 유람선도 떠 있다.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 주변은 전나무 등 침엽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길에는 승용차 한대가 옆으로 처 박혀 안타깝다. 이제 Glasgow 로 가는 길은 A 82 로 길이 평탄하고 직선이다. 다시 Lowland 로 내려오니 푸른 초지와 목장이 나타나고 전형적인 농가 마을이 나타난다. 황량한 모습은 푸른색으로 바뀌었고 풍요로워 보이고 수없이 많은 양과 젓소 목장이 나타난다. 이제 먼저 방문했던 “Stirling” 으로 가는 Roundabout(교차로)를 지나서 4차선 도로로 왼쪽으로는 “Ballentine” Whisky 공장이 보인다. 시내로 들어오니 Glasgow University 입구가 나오고, 옛날 고 건축물과 첨탑이 보인다. 교통체증이 심하여 시내를 벗어나는데 시간이 걸린다. Glasgow 를 지나 4차선 도로를 달리어 Carlisle 시 81 마일 지점 부터는 차량이 드물어 편안하고 도로 변에는 목장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진: Culloden 전쟁터, Ness 호, Urquhart Castle 과 Inverness 근처 지도) 19:35분이 지나 잉글랜드에 들어오면서 이내 Lake District(호수지방)에 이르니, 서쪽으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Windemere 에 들어와 White Water Hotel 에 여장을 푼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 지역의 Wine 을 맛보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5월 9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 개울을 따라 소로로 들어가니 “Private Residents only” 라는 즉 사유 주거지라는 알림판이 나온다. 시냇가에 좋은 땅에다가는 모두 주택을 짓고 사는 곳이다. 큰길로 나와 기차 길 밑으로 따라가도 역시 산책코스는 마땅치 않았다. 아침 식사 후 09:00시에 출발하여 Windermere 호수 변으로 와서 휴식하며 자유롭게 산책한다. 호수는 16 km 에 이르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호수 지역이다. 호수 가에는 모두 Mansion 을 지은 곳이 많았다. 맨 먼저 “Bowness” 에 이르니 호수의 선착장이다. 크고 작은 유람선이 출발한다. 여기서 자유롭게 근처를 산책한다. 주차장 남쪽으로 길을 따라가니 Lodge 마을이 나타나고 호수 가와 연결된다. 다시 나와 이번에는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잔디밭과 골프장으로 산책을 한다. 잔디밭 사이 길엔 양 벗 꽃 나무의 가지가 휘도록 피어 있고 잔디밭 내의 바위 언덕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놀고 있다. 녹색의 공원과 아름답게 어울린다. 한 시간 후 모여 차로 Ambleside 로 이동한다. 이곳은 호수의 모든 지역과 연결되고, 각종 Festival 이 열리는 곳이다. 가는 도중 도로 다리 위에 작은 돌로 지은 2층집이 신기하다.
 (사진: Wateredge Inn 에서의 휴식) “Wateredge Inn” 으로 들어가 호수 가에서 Tea 를 마시며 백로와 오리를 벗삼아 시상이 떠오르기를 기대해본다. 조그만 햇빛 가리개 밑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 본다. 건너편 조그만 섬은 숲으로 우거지고 그 너머 산 위에는 안개로 가려있어 아련하게 보인다. 근처의 집은 거의 다 Cafe 나 Restaurant 이며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잔디를 잘 정리하여 봄 향기가 한껏 퍼지는 곳이다. 다음은 “Grasmere” 로 이동한다. William Wordsworth 가 태어나서 살던 곳으로 그의 시가 자연을 노래하고 낭만주의 시상을 체계화한 곳이다. 다리건너 “Grasmere Parish Church”(교구 교회) 뒷마당에는 그와 그의 아내 Mary Wordsworth(1859 년 사망), Sister Dorothy(1855 년 사망) 와 함께 나란히 누워있고 묘비가 세워져 있다. W. Wordsworth 무덤에는 영어로 다음과 같이 써 있다. He described Grasmere as “the Fairest place on Earth”. He now rest on the peaceful churchyard, his wife, Dorothy, Catherine(딸), Thomas. 이곳을 나와 우리는 그가 살던 집인 “Dove Cottage” (1799-1818) 로 간다. 이곳에서 시인은 가장 위대한 서정시를 창작하여 완성한 곳이다. 집 뒤에는 박물관이 있고 시인의 원고와 시집, 그가 쓰던 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앞에는 1891년에 세워진 “William Wordsworth Trust” 가 있다.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자유롭게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개울 건너 Parish Church를 바라보는 “Swan Restaurant” 에서 휴식을 한 후 교회 후원을 통해 가든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누구나 방문객이 Grasmere 의 친구가 되어 이름다운 Garden 에 나무를 심거나 (매년 ? 5 기증), 통로에 “Engraved Stone Set”(표지석- ? 145 기증) 를 세우는 기증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팜프렛이 있다. 가든 밖 목장에는 어린양이 어미와 더불어 풀을 뜯는 모습이 정답게 보인다. 여기 그의 대표적 시를 감상하기로 한다.
 (사진: Parish Church 에 Wordsworth 의 묘비)
The Daffodils by William Wordsworth(1770-1850)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Continuous as the stars that shine And twinkle on the milky way, That stretched in never-ending line Along the margin of a bay: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The waves beside them danced, but they Out-did the sparkling waves in glee: A poet could not but be gay In such a jocund company! I gazed-and gazed- but little thought: For oft, when on my couch I lie In vacant or in pensive mood, They flash upon that inward eye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Immortality ode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우리는 호수마을 제일 윗 쪽에 있는 Keswick 으로 이동하여 간다. 이곳도 Lake Distirct National Park 로 아름다운 거리와 주택 상가가 고풍스런 곳이라 걸어서 산책한다. 오후15:30분 Chester 로 이동하기 위해 Motorway 6번 도로에 나오니 한산하다. 주위 목장에는 흰 양이 어린새끼와 더불어 돌보는 모습이 눈에 띤다. 큰 산이 없어 구릉지대와 목초지 조성이 쉬워 낙농이 발달하였으나 우리는 식당에서 양 고기 요리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달려가면서도 초록의 평원은 눈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 준다. 목초지는 검은 돌로 얕게 돌담을 쌓아 사각형으로 구획한 것이 다른 곳과 다르다. Chester 시에 17:20분에 들어오니 언덕위로 노르망디 풍의 성이 나타난다. 주변에는 아파트와 같은 고층건물이 나타난다. 이 도시는 4각형의 고대 성곽 도시이다. 외곽으로 디프강이 흐르는 곳에 중세도시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중세건물로 남아있는 Chester 성당을 찾아가니 마침 Wine 시음행사가 예정되어 입장이 안 된다. 길 건너 주교관을 방문하려 하였으나 오후 6시가 넘어 성직자들이 나오는 중이었다. 내친김에 외곽 성벽으로 올라 걸어서 디프강이 합류하는 곳까지 산책을 한다. 성벽아래로 내려오니 중심가로 향하는 도로와 만나 중세의 예쁜 목조 건물이 즐비한 거리로 발길을 옴긴 다. Saint Peter’s Church (AD 907 년) 앞에서 아담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사진에 담아본다.
 ( 사진: Chester 시내의 중세식 건물 모습) 다시 차로 이동하여 Ramada Chester Hotel 에 이르러 휴식을 한다. 저녁 늦게 몇 사람이 시내로 나가 영국인의 Pub 문화를 경험해 본다. 그들은 이곳이 휴식처이고 지역사회의 사교장 이다. “Old Trooper” 라는 Pub 에서 우리는 농도가 다른 맥주 한잔씩을 마시면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우리가 들어간 호텔 종업원들도 여기서 만난다. 이곳에서 흡연도 자유로워 젊은 여자들이 멋진 자세로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
12.Wales 지역의 이국적인 분위기 |
|
5월 10일: Chester Hotel 도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소리가 나서 불편하게 밤을 보냈다. 아침에 나오니 산책할 곳이 없어 아쉬운 곳이다. 날씨는 아주 쾌청하다. 우리의 Coach 는 A 55 Motorway 를 따라 Conwy 로 간다. 이곳 해변도 Maxican Gulf 의 영향으로 따듯하여 수영을 즐길 수 있다 한다. Wales 는 Cambrian 산맥으로 England 와 차이가 나고 양과 소를 키우는 낙농이 발달하였다. 인구 270만 명의 Wales 인들은 자주성이 강해 독특한 그들만의 Wales 언어를 쓰고 있다. 철자가 달라 구별하기가 어렵다. 모든 표지판 상단에는 Wales 어를 먼저 쓰고 그 밑에 영어로 표기해 놓았다. 그들 민족의 조상인 Kelt 족의 Wales 어를 사용하여 England 와는 차별하여 정체성을 지키려 한다. 평지에는 목장이 주로 차지하고 석탄 광산이 도처에 있다. Wales 에는 잉글랜드의 잣은 침략에 영주와 귀족들이 성곽을 20여 곳이나 구축해 놓았다. 해안가로 가면서 노변에는 2~3층의 중세 풍의 건물이 줄지어 있고 지붕 위엔 굴뚝이 2~3개씩 솟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Conwy Castle” 은 Charcoal Stone 으로 축성하여 요새를 이루었다. 봄이 와서 아름다운 초목이 돋아나는 성안에는 조그마하고 아담한 중세의 주거 건물로 차있다. 바다가로 항구에 면해 있으나 물동량이 별로 없다.
 (사진: Conwy Castle 의 전경) 이 성은 Edward I 세가 1500 명을 동원하여 당시 화폐로 900만 파운드를 들여 축성하였고 4개의 망루가 있고, 성벽은 3각형 모양으로 둘러 쌓아져 있다. 성안에는 조그만 도시가 형성 되어 있다. 탑이 서있는 성 위로 올라가니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망루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은 가파라서 밧줄이 연결되어 있다. 중간에 방어용이나 통풍구로 쓰이는 창구가 있으며 콘위시와는 아름다운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둥근 망루에 오르니 기분이 이상하다. 11:00시경 성을 떠나 북 Wales 지방의 전원을 달려가니 아주 색다른 풍경이다. 우리는 “Snowdon Mountain National ParK” 지역으로 이동한다. Snowdon 山으로 오르는 산악열차가 떠나는 마을에 도착한다. 기다리는 동안 야외에서 생선 튀김 요리에다 맥주를 더해 점심을 해결한다. Snowdon 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3560 Feet (1085 m) 이나 비슷한 높이의 산 군이 연결되어 제법 험하게 보인다. 나무가 없이 풀밭이 정상까지 무성하여 양들이 방목되어 풀을 뜬 는다. 건너로는 검은색이 나는 “Charcoal Stone” 의 채취 장이 흉하게 보인다. 이 지방의 성곽, 성채나 주택, 담장들이 모두 이 돌로 쌓아져 있다. 이 산악열차는 1896년부터 운행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있다. 열차는 석탄을 때어 움직이는 조그만 기관차이며 빨간 색깔로 칠해졌고 2칸 정도로 운행된다. 굴뚝에서 내뿜은 연기는 검은 연기로 석탄 냄새가 주위에 메캐하게 퍼진다. 산을 오르는 열차는 779 m 지점까지 오르거나 끝까지 올라간다. Llanberis→Clogyn(Wales 어)(779 m) 까지 45분간 올라가면서 주변의 산군과 협곡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초지에는 양 떼와 새로 태어난 새끼들과 토끼들이 수 없이 풀을 뜯고있다. 우리는 779 m 에 내리니 바람이 거세고 주변의 조망이 아주 뛰어나다. 산 위와 아래 협곡이 발아래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한라산 백록담 규모에 물이 조금 고여있는 곳이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휴식을 하는 곳에는 정상으로 오르는 트레커들이 쉬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트레켕 코스도 잘 정비되어 정상으로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30분간 자유시간을 가진 후 내려오는데 30분이 소요된다. 높은 곳에서 North Wales 지방의 평화로운 풍경도 내려다 보인다. 이 산 밑에는 “King Arther” 가 산아래 잠들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사진: Snowdon 산을 오르는 산악열차) 14:50분 국립공원 등산을 마치고 남부 Wales 를 통과하여 St. David 로 가는 길에는 목장이 얕은 돌담으로 구분되어 있어 질서 정연하게 보이고 제주도의 돌담을 연상케한다. 지방 도로인 2차선을 40 mile 로 달려 전원마을을 두루 보면서 David 에 이르니 20:00시경이 된다. Stradey Park Hotel 에 체크인 한다. 칠면조, 포그 등 오랫 만에 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를 곁들인다. 식사를 하고 나니 비가오기 시작한다. 5월 11일: 밤에 소나기와 천둥이 친 후 날씨가 걱정 되었으나 아침에 깨어보니 아주 쾌청한 날이었다. 호텔 밖으로 산책을 나가 바다가로 향하였으나 쉽게 접근할 수가 없어 다시 돌아온다. 오늘은 늦게 출발하여 Swansea 로 향하는 도로에 들어오니 아침 출근 차량으로 만원이다. M 4 Cardiff 방향으로 도로에 나가니 주거 단지가 그림같이 보인다. 해변 가에서 내려 산책, 남부 Wales 의 풍경은 수목이 울창하고 북부와는 달리 산지가 없고 평야지대다. Wales의 최고 휴양지로 일컬어지는 해안가에 산책을 위해서 내린다. 바닷가 언덕에 1,2차 세계 대전시 Wales 의 영국군 소속 전사자 명단이 육,해,공군의 순서대로 동판에 알파벹 순서로 새겨져 있다. 대개 1000명이 넘는 숫자였다.
 (사진 : Swansea 해변가에서 조개 줍기) 그 앞의 해변은 백 만평 정도의 모래사장과 갯벌이 전개된다. 물이 빠져나가 수 많은 조개 껍질과 소라가 아름답게 모래톱을 덮고있다. 주변에는 상가나 시설이 없어 한산하다. Swansea 는 Wales 의 제 2 도시로서 석탄 산업이 폐광되고 1700년대 산업인 제철, 제련소의 공업시설이 퇴조 하면서 항구가 변모하고 도시가 탈바꿈 되었다. 이곳은 시인 Dylan Thomas 의 고향이라 그의 박물관 보인다. 우리는 다시 Cardiff 민속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야외 전원 숲속에 Wales 의 민속촌이 재현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많이 관람한다. 박물관의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 1. 민속집: 흑으로 지었고 외벽의 색갈을 황소의 피로 발랐다. 이렇게 하면 악귀를 몰아낸다는 풍속에서 나왔다 한다. 농부가 살던 집으로 아래층에는 부엌, 주방기구, 철 접시 등이 보관되어 있고 2층에는 침실이 있으며 벽이 아주 두껍게 지어 졌으며 지붕은 짚으로 이어졌다. 2. Cornmill: 방앗간으로 맷돌로 윗 층에서 갈아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3. Peter Mason: 마구, 말 안장, 장신구 등을 보관한 곳으로 지금도 장인이 만들고 있다. 4. 농가 주택 : 1545년에 지은 집으로 굴뚝이 아주 크게 솟아있고, 북서 Wales 지방의 전형적인 농가로 안내인의 설명이 진지하다. 5. Cookpit: 닭 싸움 장으로 원형으로 지어 져있다. 6. Breadpit : 빵을 구워내는 공장으로 지금도 큰 빵을 구워내서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이곳 민속촌 안에는 마차도 다니고 조그만 관광 기차도 다닌다.
 (사진: 민속촌의 Wales 농촌주택 모습) 다음에는 Cardiff 로 이동하여 바닷가 Millenium Center 앞에서 자유시간을 갖는다. 이곳은 Wales 주의 수도로서 현대식 건물이 많으나 구 시가지에는 중세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즐비하다. Millenium Center 앞에는 조형물 분수탑이 인상적이다. 건물은 Wales 의 고유한 돌로 지었고 중앙전면은 동으로 된 장식을 하였다. 그 옆 바닷가에는 Wales Assembly 건물이 붉은색의 3층 건물로 아주 고풍스럽고 이 일대를 Mermaid Bay 라고 한다. 해변 가 이태리 식당에서 여러 가지 가면을 구경하면서 Pasta, Steak 등 맛있는 요리를 즐기었다. |
|
13. Cardiff 의 고성을 방문하여 |
|
이 고성은 최초에 이곳을 지배 하였던 로마인들이 AD 76년 경에 축성 하였던 곳에다 14~15세기에 와서 Wales 인들이 성을 쌓았다. 그 후 석탄광산으로 큰 돈을 벌어들인 Robert, Earl of Gloucester, 가 사들여 그 당시 30만 파운드의 거금을 들여 William Burges 의 설계로 성 내부를 공사하여 현제에 이르고 있다. 성 내부를 소개해 보자. 제 1실: 12별자리가 천장에 그려져 있고 주위는 금으로 장식하여 호화롭다. Children Room: 아리바바의 이야기, 로빈 후드의 모험, 잠자는 미녀, 로빈손 크루소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벽에 그려져 있다. Arab Room: 이스람식으로 천장이 둥근 돔으로 장식되었고 나무 조각 장식을 금으로 치장하였다. 식당: 유럽 정상회의가 영국에서 열렸을 때 이곳에서 만찬을 하였다 한다. 저녁 3시간 사용료가 750 파운드라 하며 음식은 일인당 38 파운드라 한다. Dining Room: 식탁 가운데 둥근 구멍 밑으로 부터 포도나무를 기른 것에서 포도를 따먹는 곳 이라는 설명. 믿거나 말거나 한 설명이다. 도서실: 벽에는 세계 5대 최초 문자로 쓴 판이 걸려 있는데 이집트의 상형문자로 쓴 것 만이 낫 익다.
 (사진: Cardiff Castle 의 전경) 이 성의 모든 시설은 개안 소유이던 것이 1947년 정부에 기증하여 지금은 Cardiff 시에서 관리한다. 가운데에 쌓은 석성 주위에는 해자가 둘러 있다. 오래된 고성이었고 올라가서 내부를 보니 견고한 축성이라 수 백년 간을 견디어 온 것이다. 성안이 정 사각형이라 넓게 보였다. 17:00시경 Cardiff 성 순방을 마치고 Bath 로 가는 길 M4 도로에 들어오니 체증이 심하다. 이제 Scot 와 Wales 의 여행이 끝나면서 도로에 나오니 다시 유채 밭의 노란 색이 현란하다. London 140 mile 지점을 지나면서 Bath 시내로 진입하니 19:10분이다. Pulteney Bridge 앞에서 잠시 다리 위의 상점을 보며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다시 올라 Royal Hotel 에 들어온다. 건너편에 기차역이 있고, 길가에 위치한 호텔에는 30년 전통의 “Steak” 전문점이란 홍보판이 입구에 붙어있다. 5월 12일: 아침 일찍 일어나 Royal Hotel 의 불편한 잠자리를 벗어나 기차역으로 가보기도 하고, 어제 보았던 Pulteney Bridge 와 공원을 다시 둘러 보았다. |
|
14. 고대도시 Bath- 문자 그대로 고대 목욕탕이 자랑인 도시 |
|
아침식사를 마친 후 Bath 시내를 보기위해 나섰다. 먼저 Royal Crecent 지역으로 가서 반달형으로 건축한 아파트형 3층 건물을 보는 것이다. 지붕에는 굴뚝이 여러 개씩 규칙적으로 솟아있어 인상적이다. John Adams 가 Town House (Apt) 로 건설한 것으로 Victoria Park 앞에 있어 경치가 좋고 한적한 곳이다. 창문 3개가 한 구획으로 한 가구씩 이며 2, 3층은 기둥이 길게 올라가 질서있게 보인다. 아래로 내려와서 교차로에 세워진 3층 아파트는 각층에 2개의 기둥이 창문마다 세워졌다. 1층 기둥 위에는 고딕씩,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고린도식으로 기둥 위를 정점 올라가면서 정교한 조각을 하고 세개의 Horizontal line 으로 건축한 특이한 “Town House” 이다.
 (사진: 중세 목욕탕의 내부 모습) 다음에 찾아간 곳은 1771년에 문을 연 “Assembly Room” 으로 지금은 Ball-Room, Tea Room, Dancing, Card Playing등 아주 우아하고 고급 사교장으로 쓰이고 있다. 다음에 간 곳은 Bath Abbey 로 이곳은 Parish Church 로 수도원 내부의 천장이 부채살 모양으로 조각되고 정면과 측면의 Stain Glass 창에는 성경의 예수의 일대기를 그려 넣었다. 이 수도원의 크기는 길이 67 m, 높이 22 m, Tower 는 49 m 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그 옆에 광장에 서있는 “The Roman Baths” 는 고대 유적지로 로마인이 영국을 지배 하였을 때 건설한 대규모의 목욕탕이다. 로마인들의 목욕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며 30~40분이나 걸려야 둘러볼 수 있다. 지금도 세 군데서 온천수가 솟아난다. “The Roman Sacred Spring” 은 3000 m 아래에서 솟아나고 43 가지 Mineral 을 보유한 온천수로 섭씨 46.5 도로 매일 12.500 Litter 가 분출된다. 찬물도 나오고, 지하에는 그 옛날 로마시대의 목욕시설이 발굴되어 관광코스가 되었다. 지금도 목욕탕을 운영중이다. |
|
15. 불가사의한 수수꺼끼 “Stonehenge” 를 찾아서 |
|
A 36번 도로를 간다. Salisbury 가는 길에는 군 부대도 있고 돼지를 기르는 우리도 보인다. 전원 풍경이 아주 친근하게 전개되고 유채 밭이 노란색으로 눈이 부시다. Stonehenge 에 도착한 것이 11:20분이다. 벌판에 돌로 둥그렇게 기둥을 새우고 그 위로 언 저 놓은 듯이 보이는 단순한 구조로 보인다. 누가 만들었을까? 1135년에 M. Geoffrey 경이 쓴 “영국왕의 역사” 책에는 거인 부족이 Africa 에서 아일랜드로 가져온 것을 마법사 “멀린”이 바다건너 “Arther” 왕에 대한 충성으로 솔스베리 평원에 쌓았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Kelt” 족의 조상이 만들었다고 주장 한다.
 (사진: Stonehenge 의 전경) “Stonehenge” 란 “매달려 있는 바윗돌” 이라는 뜻으로 기원전 3100년에서 1600년 사이 3세기에 걸 처 축조되었다고 고고학자 “David Miles” 는 주장한다. 둥글게 세워놓은 돌은 “사슨석”인데 3000년 전 30 km 떨어진 “말버러” 언덕에서 옮겨졌다 한다. 또 삼석 탑(2개의 수직 받침돌이 하나의 수평 돌을 받치고 있는)을 스톤헨지의 바깓 원안에 말 발굽 모양으로 세웠다. 가장 큰 것은 높이가 7m 나 된다. 그러나 이 거석의 용도가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것인지, 또 천문관측을 위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로 인해 이것은 세계 8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다. 우리는 싱그런 풀밭에서 옛날을 회상하면서 샌드위치와 과일로 점심을 초원에서 해결하고 산책을 하였다. 오후 에는 Salisbury 성당을 찾아간다. 이 성당은 1220년 부터 38년간 건축 하였다. 화가 “Constable” 이 그림으로 그려 유명해 졌다. 고딕 스타일로 첨탑이 123 m나 된다. 1215년 “Magna Carta” 의 서명을 받아 보관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1386년에 세운 시계탑이 자랑이다. 오늘도 성당에서 거행되는 조촐한 결혼식을 볼 수 있다. 주교 등 수많은 성직자가 묻처 있는 아주 유서 깊은 사원이다. |
|
16. 영국의 역사가 남아있는 London 시내를 가다. |
|
15:30분. 이제는 M 303 도로를 통과해서 London 으로 간다. 19:00시가 넘어 시내로 들어가니 주말이라 교외로 나가는 차로 붐빈 다. 이태리 식당에서 저녁을 마친 후 근처 “Glouster” 역에서 지하철로 시내로 들어가 “Covent Garden” 역에서 내려 우리는 시내를 야간에 둘러보기로 한다. 광장에는 수 많은 관광객이 운집하여 먹고 마시고 떠든다. 각종 쇼군들도 사람을 모아 놓고 재주를 부린다. 또 시내 버스를 타고 London 근처로 가서 Thames 강가를 산책하고 저무는 가운데 “Tower Bridge” 올라가 도로를 건너 산책을 하고 인파 속에 파무 처 본다. 돌아오는 길에도 지하철을 타고 Heathrow 공항 역에서 내려 H 8번 샤틀 버스를 타고 밤 11:30분이 넘어 Crown Plaza Hotel 로 귀환하여 피곤한 하루를 마감한다.
(사진: Tower Bridge 전경) 5월 13일: 오늘은 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London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09:00시에 출발 시내로 들어오니 주말이라 차량이 좀 덜하다. London 시는 시장인 “캔 리빙스턴”이 Zone I 인 동부를 발전시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London 중심부는 “The City” 라 부르고 동서로 각기 6개의 Zone 으로 나누었다. 동부의 낙후한 지역을 주택, 상업지구로 Olympic 를 계기로 발전 시키려 한다. 영국의 교육은 개성을 살리는 교육이며, 페어 플레이 정신, 법 집행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 국가 운영의 기본이다. 그들의 준비하는 성향, 옛 것을 좋아하는 정신, 도박과 경마를 즐기는 면도 강하다. 시내에는 다리가 많으며 “Albert” 공작이 건축한 Albert Bridge 는 상당히 아름답다. London은 예전에 겨울철에 화력 발전소에서 발전할 때 석탄을 때서 나오는 연기와 London Smog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한 스모그 현상이 바람이 없어 2주간 이상이나 계속되는 바람에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당하는 대란이 일어났다. 그 후 Thames 강가의 화력발전소는 “대처”수상이 폐쇄하여 이제는 다른 용도로 쓰여진다. 의회건믈 정면에는 Winston Churchill 의 동상이 세워졌고 첨 탑 위에 “Big Ben” 은 London 의 명물로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일년에 4초의 차이가 난다 한다. 지금도 사람이 손수 시계 태엽을 감아 준다 한다. 또 하나의 명물은 Millenium 기념물인 “London Eye”를 수 있다. 이것을 타고 오르면 시내를 다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사전 예약을 하여야 한다. 구 시청 건물은 호텔과 갤러리로 운영되며 County Hall 로 불린다. “ The City” 는 시내 중심부로 세계 금융의 메카이다. 동서 남북 1 Mile 로 되어 있다.고색 창연한 옛 건물이 대부분이다. 강가에 있는 “Tower of London”은 대영제국의 역사와 London 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이다.
 (사진: Tower of London 전경) 이곳은 최초에는 로마인이 탑을 쌓은 기록이 있고 그 후 정복자 “William” 이 새로 그 자리에 성과 탑을 쌓고 살다가 나중에 감옥으로 이용되어 악몽이 서려 있다. “White Tower” 에는 고문실이 있었고 Thames 강쪽으로 Traitor’s Gate (반역자의 문)가 있으며 강을 통해 배에 실려 이 문으로 들어오면 살아 나가기가 어려운 반역자 였다. Henry Ⅷ 가 여섯번이나 결혼한 후 국교를 카도릭에서 “Anglican Church”(성공회)로 개종한 것이 “천일의 여왕” 인 “Anne” 때문이고, 그 당시 반대자의 목을 처서 성밖으로 걸어 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당시 단두대가 있었던 자리에는 1536년 부터 1601년 사이에 7명의 목을 처형한 장소로 명단이 쓰여져 있다. 박물관에는 Elizabeth 여왕이 대관식에서 섰던 왕관이 빛나고 있다. 530 카레트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왕관이다. 이곳에는 역대 왕관과 검, 왕실의 집기가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전시되어 있다. 그 많은 금이 다 식민지 개척에서 가져온 것이라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Wine Cistera” 는 1829년에 Wine 을 차게 하려고 금으로 만든 어름 그릇이다.그곳에 어름을 넣고 Wine 통을 넣게 되었고, 밖에는 용머리, 말 등의 장식조각이 정교하다. 큰 국자도 황금으로 되어 있어 놀라울 뿐이다. |
|
17. 대영 제국의 위대한 유산- Westminster Abbey |
|
 ( Westminster Abbey 전경) 이 사원은 AD 960 년에 Benedict 수도원으로 세워졌다. 석조건물로 웅장하게 지었고 첨탑도 압도적이다. 내부가 화려하고 섬세하여 엄숙한 분위기를 간직한다. 이곳에서는 1066년 정복자 William 이 대영제국의 왕으로 화려한 대관식을 가진이래 역대 왕의 즉위식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천 여 년간에 걸친 영국의 유명한 국가적 인물들의 무덤과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국가로 부터 재정지원을 받지않고 기부금이나 입장료로 유지된다. 입장료는 ? 10으로 미리 예약을 하여야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사원 내부를 소개해 보자. 1-7 구역에서는 EdwardⅠ, Henry Ⅲ 무덤과 Edward 의 왕좌를 볼 수 있다. 8 구역에서는 Elizabeth Ⅰ(1533-1603) 와 Mary Ⅰ(1516-58) 의 여왕의 무덤, 여기에는 Elizabeth 의 상(像)이 있다. 9-11 구역에는 Henry Ⅶ 와 그의 왕비 Elizabeth 의 무덤이 있고 기도 방이 있으며 부채꼴의 천장이 조각되어 있다. 12 구역에는 Scot 의 Mary (1542-87) 여왕의 무덤이 있고 Mary 의 아들인 JamesⅠ 가 이 무덤을 만들었다. 13 구역에는 130년에 Oak 나무로 만들어진 왕좌가 있으며 대관식 때마다 사용된 것이다. 의자 뒤에는 Edward 의 성골 함이 있다. 14-17 구역에는 William Shakespeare 를 위시한 영국의 대문호의 묘나 묘비가 있다. Geoffrey Chaucer, A. Tennyson, R. Browning, T. Hardy 등 영국을 대표하는 120여 명의 시인 소설가, 배우, 음악가 등이 잠들고 있다. 18-19 구역에는 Alter(제단), 성가대가 있다. 22-23 구역에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고 그 앞에는 “Winston Churchill”, “ Newton” 등의 기념물이 바닥에 대리석으로 안치되어 있다.
 (사진: Westminster 사원의 무명 용사의 무덤) 사원을 방문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이제부터는 시내를 걸어서 다니기로 한다. St. James Park, 다우닝 가, 처칠 박물관 등을 보며 Tralfargar 광장에서 “Alice Repar” 의 두 팔이 없는 장애인 상을 본다.(최근 우리나라에 와서 아들과 더불어 장애인의 의지를 보여준 여자) 마지막으로 National Gallery에서 한시간 이상 안내인 “Rosa”의 “Diero di Cosimo”(1480-1515) 작품인 “A Satyr mourning over a Nymph” 라는 그림 앞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분의 정성어린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Royal Opera 극장 앞으로 산책을 하여 본다. 극장가 Square 에서 모여 Charlie Chaplain 조그만 동상도 본다. 이 주변은 극장가로 Empire, Odeon 등 시사회가 열리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이태리 식당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한 후 서둘러 Heathrow 공항으로 나와 아쉬운 작별을 고한 후 K E 908 편으로 오후 10시 이륙. 이 튼 날 오후 4시 30분에 인천에 내렸다. 이번 여행에 함께한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우리를 안내한 조 과장님과 현지에서 10일 이상을 정성을 다해 우리에게 영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Rosa”님과 기사 Badger 에게 행운을 빈다. -End-
(사진: 우리와 함께한 Coach 와 기사 Badger)
Home Page: http://myhome. naver. com/leeook12 E-Mail : leeook11@hanmail.net (02) 2659-2254 (고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