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북프랑스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작성일 :
2007.11.22
조회수 :
5578
| 이 글은 김한종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김한종님은 2007년05월11일부터 05월20일까지10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북프랑스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북프랑스 여행기 ( 문화 예술 기행 ) | ||||||||||
| 글: 김 한종 사진: 이 영옥 | ||||||||||
![]() (사진: Mont-Saint-Michel 전경) | ||||||||||
| 1. 북 프랑스 여행지도 | ||||||||||
| Paris-Auver Sur Oise-Giverny-Rouen-Dieppe -Fecamp-Vaucottes-Etretat-Curverville-Honfleur-Deuville-Trouville-Lisieux-Caen-Omaha-Mont Saint Michel-Saint Malo-Loire(Chenonceau, Blois, Chambord)-Fontenbleau-Barbizon-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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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북 프랑스 문화 예술 기행 | ||||||||||
| 봄이 오는가 하더니 갑자기 여름철 날씨다 . 이번에는 프랑스 Normandy 지방과 Paris 남쪽 예술의 고장을 찾아가기로 한다. 07:50분에 인천 공항에 이르니 평일 이른 시간 임에도 사람들로 붐빈다. 이번에는 Air France 267기로 Paris Charles De Gaulle 공항으로 향한다.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서 Sarkozy 당선 프랑스는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인 대중운동연합의 Nicola Sarkozy 후보가 사회당 후보 Secolen Royal 후보를 결선 투표에서 54:46으로 누르고 유권자의 과반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프랑스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과반수 이상 득표자가 없으면 일차에서 득표한 1, 2위를 놓고 결선 투표를 하게 되어 있다. 또 투표일도 언제나 일요일에 실시한다. 이번에도 두 번 다 일요일에 실시하였다. 우리나라도 본받아야 할 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Hungarian 이민 2세로 전후 세대로는 최초로 대통령에 선출 되었다. “ Ensemble, tout devient possible ” (함께하면 모든 것이 가능해 진다)는 슬로건으로 Sarkozy 후보가 여성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것이다. ![]() (사진: 대통령 취임 후 축하 행사장에서) 날씨는 화창한 편이나 09:55분 예정된 이륙이 10:30분이 되어 겨우 이륙한다. 5,535 miles, 약 8,953 km를 베이징, 울란 바트로, 이르구 츠쿠, 페테스 버그 상공을 지나 발틱해 상공으로 해서 파리 북부 Charles De Gaulle 공항에 안착하였다. 이곳 시간은 한국보다 7시간 늦은 11일 오후 15:30분 이었다. 첨단 신도시 La Defense를 찾아서 우리는 먼저 Paris 시내로 들어오면서 1번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오다가 파리 동쪽 외곽도로를 타고 La Defense 로 향하였다 . 왼쪽으로 Montmartre (몽마르트) 언덕의 성당이 보이고 이어서 Eiffel 탑이 나타나며 시내가 환하게 보였다. 신도시 “ La Defense ” 는 새로운 건축 양식의 메카이다. 1958년부터 40년간에 걸친 office 중심도시로서 형성 되었다. 새로운 모양의 개선문식 빌딩이 40층 높이로 건축되었다. 주변의 빌딩이 모두 새로운 독특한 양식으로 주위를 둘러 싸고 있다. 우리는 중심에 있는 개선문을 본 딴 빌딩 가운데에 투명한 유리로 설치되 있는 엘리베이터 (성인 9 유로)를 타고 빌딩 위로 올라가 파리 시내를 조망 하였다. 개선문까지 일직선으로 보이고 둘레가 녹지대로 싸여있는 인구 1천만의 시가가 한눈에 보이는 통쾌한 풍경이다. (사진 : 개선문 모양의 La Defense 중심 건물 전경) ![]() 실내에는 현대미술 작품과 조각이 전시되어 잠시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사람들의 움직임이 개미처럼 보이고 파리시가 아주 평화롭게 보인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 Arc de Triomphe (개선문)을 향하여 간다. Champs Elysees(상제리제) 거리는 신록이 우거지고 사람으로 만원이다. 개선문 앞에 이르러 지하 도로를 나가서 개선문 앞으로 간다. 최근에 5월 8일 2차 대전 종전 기념 행사로 대형 프랑스기가 하늘 높이 펄럭인다. 오늘도 전쟁에 참여했던 노병들이 찬란한 훈장을 달고 문 주변에 모여있는 것을 보니 어떤 기념식을 가질 모양이다. 열두 곳 방향으로 길이 나있고 . 개선문 아래에는 무명용사의 대리석 무덤이 있고 꽃으로 둘러 싸여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시 천 여 명이 처형된 광장이며, 개선문 기둥 벽에는 프랑스를 위해 헌신한 당시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개선문을 떠나 Concorde(콩코드) 광장을 거처 파리 시청을 지나 파리 북쪽 Bagnolet Novotel hotel에 이르니 20:00시가 되었다. 저명 인사들의 영원한 쉼터를 찾아서 다음날은 시차로 인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몸이 무겁다 . 아침 09:00 시에 호텔을 출발 하여 이른 아침에 시내에 있는 Pere Lachaise (페르 라쉐즈) 지역으로 간다. 이곳에는 프랑스의 저명 인사들의 묘역으로 12만평이나 되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정문을 들어가니 묘역의 구분도와 안내판이 서있다 . 이곳은 나폴레옹 시절부터 최근까지 수많은 저명 인사들의 안식처이다. 묘역이 관광 지역화 되는 것도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남미 아르젠친에서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리콜레타 묘지가 아름답다. 특히 그 유명한 에바 페론 의 무덤을 보기 위함이다 . 이곳 묘역에는 발작크 , R. 프르스트 형제, 몰리에르, F. Chopin, 이브 몽땅, 에디뜨 피아프, 오스카 와일드 등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다. 대부분이 가족단위의 묘역으로 화강암, 대리석(오석) 등의 돌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이 돋보이고, 최근에 설치한 것은 검은 대리석이 대부분이다. ( 사진: F, Chopin 의 묘역 전경)) ![]() 그 중에 몇몇 저명 인사의 묘역을 찾아가 본다 . Chopin( 쇼팡 )의 묘역은 수많은 흰색, 붉은색의 장미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어 역시 예술의 나라답다. 프랑스의 지나간 시대의 왕의 묘도 있으나 인기가 없다. 그 몸을 돌로 조각한 것이 세월의 이끼를 잔뜩 끼고있어 무상함을 일깨워 준다. 또 Allan Kardec 라는 철학자의 묘역도 꽃으로 장식되어 프랑스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위로 가니 화장장과 납골당이 아주 크게 자리잡고 있다. 40여분을 돌아보고 살아있는 자의 허무감을 느끼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 Life is short, art is long ” 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프랑스는 55% 이상이 아직도 매장되고 묘역도 산이 없어 평지에 조성된다. 이 곳은 프랑스 콤뮨 혁명시 수백 명이 살해된 곳이기도 하다. Paris 시내를 걸어 다니며 이번에는 걸어서 Seine 강을 건너간다 . 영화 “ 뽕뇌프의 연인들 ” 로 유명한 “ Pont Neif ”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다 . 이 다리는 최근에 새로 단장하여 그 유명을 더하여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다. 세느 강변의 양 연안은 다 시멘트 벽으로 처리되어 모래톱이 없는 강이다. 이 강 위 도로 시멘트 담에는 고서적과 서화를 파는 노점상의 조그만 박스가 늘어서 있다. 담 위로 질서있게 설치하고 장사를 하나 아직 10시가 넘어도 푸른색 뚜껑이 그대로 덮여 있다. 교각의 아름다운 조각을 살펴보며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 넘어 왼쪽으로 강을 끼고 걸어서 간다. 다음에 찾은 곳은 Seine 강 가운데 Cite 섬에 있는 “ Notre Dame ” 성당이다 . 고딕 양식으로 건축하여 첨탑이 두개가 양쪽으로 솟아 있다. 문 위에는 예수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 위 중간에는 이스라엘의 28왕이 조각되어 있고, 탑 오른쪽에 그 유명한 큰 종이 있다. 이 성당 앞 중앙에는 프랑스 국가 원점이 동판으로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사진: Notre Dame 성당의 전면) 성당 안으로 입장 하니 수 많은 촛불이 밝혀지고 구원을 빈다 . 초 한 개가 2 유로다. 성현들의 조각상이 여러 개가 서있고 그 앞마다 촛불이 밝히고 있다. 그 위로는 창문과 벽면마다 스테인드 그라스로 아름다운 장미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뒤에 성단에는 십자가와 수난의 예수 그리스도의 상이 엄숙하게 서 있다. 밖으로 나와 성당 주위를 한바퀴 돌아본다. 뒷편에서 본 성당도 웅장하고 전체가 예술 품이다. 우리는 이번에 종탑으로 올라가려 하였으나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번에 15명씩 입장시키니 끝이 없다. 다시 걸어서 강을 건너 Hotel de Ville (시청)으로 간다. 시청 건물은 오래된 건물로서 광장에는 분수가 솟아오르고 프랑스 국기가 펄럭인다. 시청 앞에서 파리 지하철 메트로를 만난다. 파리 지하철은 100년을 넘었고 그물처럼 파리 시내를 동서 남북으로 관통한다. 우리는 버스로 이동하여 Vosges 광장 에 이른다 . 숲이 우거진 공원 주변에 정 사각형으로 궁이 조성되어 있고 지금은 개조되어 아래층에는 갤러리가 들어차 있다. 현대 조각과 여러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자유로이 감상할 수 있다. 이곳 저곳을 들러 여유 있게 구경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껴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 보니 “ Victor Hugo ” 가 살던 집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그의 유명한 13:00시가 넘어서 이탈리안 스타일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애피타이트가 나오고 메인 디쉬가 나오기 전에 우리는 빵과 샐러드를 맛있게 먹는다. ![]() (사진: Vosges 광장 Gallery 의 조형물) O ' rsay 미술관을 찾아서 점심식사 후 다시 오던 길로 세느강을 건너 Muse ? d ' Orsay 로 간다 . 3 층으로 된 이 미술관은 Paris시와 Orleans시 간을 운행하던 기차역을 보수하여 미술관으로 사용한다. 1848년 부터 1914년 까지 전 유럽을 휩쓸었던 19세기 인상파와 자연주의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이 주로 전시된 곳이다. 입구에서 검은색 돌에 새겨진 미술관 표지석과 코뿔소 상을 만난다 . 미리 예약된 15:20분에 단체 입구로 입장한다.(7.50 유로) Mishell 이라는 전문 여자 안내인의 도움을 받으며 감상한다. 1 층에는 기차역의 둥근 돔에서 환한 빛이 들어오는 곳에 주로 조각작품이 전시되어 처음 입장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주변의 5,6,7 방에는 Fran c ois. Millet 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Edouard Manet (14, 17, 19 ), Claude Monet (18, 20)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 층에는 주로 조각작품으로 O. Roden 의 “ 지옥의 문 ” , “ 발작크 상 ” 등 빛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 층에는 주요 화가들이 다 망라되어 방을 차지하고 있다. Vincent Van Gogh (35 방), Mone t(29, 32, 34), Manet (31, 49), Paul C ? zanne (36, 47 ), Paul G a ugin (43,44) 등이다 . (사진: Van Gogh 의 Auver 교회 ? 유화 ) ![]() Van Gogh 방에는 <오베르 교회>, <시에스타>,<아브르의 별이 빛나는 밤>, 특히 <아를의 반고흐의 방 > ( La Chambre de Van Gogh a Arles, 57,5 ⅹ 74 ㎝ 1889년)은 비운의 천재 화가의 영혼을 담은 대표작이다. 그는 동일한 제목으로 3 점이나 그렸다. 최초로 그린 <반 고흐의 방>은 현재 암스텔담 고흐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 후 그가 1889년 요양원에서 나와 그린 2 번째 것은 시카고에 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어머니와 누이 동생을 위해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마지막 작품에서 엷은 남색의 벽과, 낡아보이고 금이 간 마루바닥, 노란색 의자 2개, 침대 모서리의 강한 색감, 오랜지 색 책상, 침대 위에 걸린 2 점의 인물화와 침대 머리맡에 풍경화 등 그림 속에 그림이 간결하고 단순하게 보인다. 이 모든 방의 구도와 색조가 그의 화가로서의 생활과 피곤한 정신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Manet 의 방에는 그의 대표작 <피리 부는 소년> ( Le Fifre, 161 ⅹ 97 ㎝ ,유채화 1866년)이 시선을 모은다. 왕실 근위병인 소년 병사가 피리부는 모습을 담고있다. 소년은 왼발에 중심을 두고, 오른발은 내딛은 자세로 안정감 있게 피리 부는 모습은 매우 간결한 구도이다. 소년의 해맑은 모습에서 안정감을 더해주며 강한 시선을 끌게 된다. ![]() (사진: Manet 의 피리부는 소년 ? 유화 ) Paul G a ugin (1848~1903), 그는 그림의 소재를 찾아 여러 곳을 여행 하다 타히티 섬에 안착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원주민 마리오족과 어울리며 자연에서 살면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다. 그의 일련의 작품 중 이곳에서 그린 <타히트의 여인들> (Femmes de Tahiti ou Sur la plage, 1891, 유채 69 ⅹ 9.5 ㎝ )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이다. 황금색 모래사장을 배경 삼아 두 여인이 전통의상을 입고 앉아있는 모습은 무언가 이색적인 모습이다. 열대지방의 옷의 강한 색 갈을 표현하여 강조한 두 여인의 표정은 영 다르다. 감상하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여러 평가를 내릴 수 있다. Millet와 Monet는 그의 고향을 직접 방문하는 곳에서 다루려 한다. (사진: Paul G ? ugin 의 타하티의 여인들) ![]() 이번 여행에서는 과거 방문 했던 Muse ? de Louvre( 루부르 박물관 ), Eiffel( 에펠탑 ) 등은 제외한다. 버스로 시내를 돌면서 콩코드 광장, 오페라 센터 등을 보면서 오후에 Printemps 백화점을 방문한다. 1 층 여성 용품관으로 들어가니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중국인들로 들어차 있어 그들의 대화로 정신이 없다. 1~2층을 둘러 본 후 밖으로 나와 Metro를 구경하기 위해 입구로 내려가서 메트로 상가를 둘러보고 역 안의 안내 센터에서 지하철 지도와 시내 관광 안내도를 만난다. 다시 나와 오페라 Center를 보고 나서 Laffayetta Gallery를 거처 제자리에 오니 18:10분 이다. 이제는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한 식당 “ 다미 ” 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 잡채, 돼지 고기 볶음, 야채무침, 순두부 찌개로 입맛을 돋우어 금새 식사를 마친다. 우리는 다시 시내를 돌아 황금색 탑으로 빛나는 Napoleon 묘를 지나 가장 번화가인 Les Halles(르 레알) 지구에서 내린다. 이곳은 지하철 역의 교차지점으로 가장 번잡한 곳이다. 도로에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넘쳐 나며, 흑인이 유난히도 많아 인종 전시장 같다. 문화 예술의 중심지 - Pompidou Center 를 찾아서 이번에는 길을 건너서 뽕삐두 센터로 향한다. 당시의 대통령 “ Georges Pompidou ” 가 대규모 문화 예술 센터를 당시에는 빈터였던 이 레알 지구에 지은 것이다. 이 센터는 국제 공모로 이태리 건축가 “ 렌쪼 피아노 ” 와 영국인 건축가 “ 리차드 로저 ” 의 합작품으로 지어졌다 .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모두 외면하는 양상이었다. 철골과 철재, 철관과 유리 만으로 투명하게 지은 최첨단 건물이다. 밖에서 에스컬레이터, 계단, 시설물이 등이 투명하게 보여 혼란을 야기시킨다. 유리와 철강, 강관, 강화 알미늄 등으로 지은 모습은 얼기 설기 엮어 논 모습이다. 그 당시 눈에 거슬리어 많은 부작용이 일어났으나 초창기에 Eiffel Tower를 연상 시키었다. 그러나 지금은 파리의 문화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 센터 안 국립현대 미술관에는 피카소, 마티스 등 초 현실주의 작가들의 첨단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도서관, 영상실, 극장, 음악당 등 모든 장르의 종합예술의 중심부이다. 5월16일~5월 25일까지 부조리 극작가 “ Samuel Beckett ” 의 연극이 상연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 사진: Pompidou Center 전경) 그 앞 에는 조각가 “ 땡글리 ” 가 설치한 스트라빈스키 분수가 솟아난다 . 뱀 모양의 조각 분수와 여러 모형의 조각들이 물속에 전시되어 있어 시선을 끈다. 분수 주변은 파리의 젊은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그 옆의 카페는 또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이 가득히 둘러 앉아 여유를 즐긴다. Seine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붐비는 생 제르망 거리와 솔본느 대학 거리 앞을 지나 이제는 세느강 유람선 선착장에 이른다. “ Bateaux-Mouches ” 크루즈는 14척의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창시자인 “ Jean Bruel ” 씨는 1949년 독특한 스타일로 배를 만들고 회사를 설립했다. 지금도 민영으로 운영하며 수 많은 관광객이 주야로 세느 강변을 관광하는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20:30분에 유람선에 올라 콩코드 광장, 루브르 박물관, 시청, 센스궁, 노틀담 사원, 최고 법원, 프랑스 아카데미, 오르세 미술관, 엥발리드,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등의 주.야간 경치를 두루 감상하고 다시 승선지점에 온다. 알렉산드리아 다리 , 까루셀 다리, 뽕네프 다리 등을 밑으로 지나면서 젊은이들의 환성이 다리 위에서 터진다. 유람선은 이렇게 파리의 모든 명소를 아우른다. 비운의 화가 Van Gogh 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틀간 파리시내를 뱅뱅 돌아 세느 강을 건너 다니면서 파리시내를 어렴풋이 익혔다. 어제 오르세 미술관에서 Vincent Van Gogh 의 그림을 감상하였다면 이제 그런 명화의 산실을 직접 방문하여 그 배경과 주변환경, 그의 생애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 한다. 먼저 09:10분 출발하여 시내를 벗어나 끄리앙 벼룩시장으로 접어들어 약 1 km 지나오니 Gogh가 살았던 Auver Sur Oise(오베르 쉬르 와즈)에 도착한다. 조그만 강 지류를 건너 기차 길을 지나 한적한 마을 시청 앞에 이른다. 상당히 설레는 마음으로 날씨도 좋아져서 마음도 가볍게 차에서 내린다. Gogh 는 광기와 열정의 화가로서 1853.3.30일 네델란드 남부의 시골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려 1891.1.25일 불과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였다. 그는 어린시절 태어난 마을에서 스케치하면서 습작시절을 보냈다. 이 당시의 그의 작품은 암스텔담 “ 반 고흐 미술관 ” 에서 전시되고 있다 . 이곳에는 500여 점의 스케치화, 200점의 회화를 소장하고 있다. 그는 평생 유화 870점, 회화 1,200 여 점 등 병약하면서도 엄청난 작품을 양산 하였다. 그 뒤에 작품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중요한 작품이 대부분 소장 되어 있다. (사진: 아를의 반 고흐의 방 -유화) ![]() Gogh 는 20세기가 되던 해 런던으로 가서 생활하면서 하숙집 딸을 사랑했으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2 년 후에 다시 파리로 온다. 이 후 변변한 수입도 없이 그림에 몰두하였다. 그때부터 그의 동생 Theodore 가 도움을 주어 하숙방에 기거하면서 그림에만 전념한다. 하지만 가난을 면치 못하고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다.
(사진: <오베르교회> (유화 73 ⅹ 92㎝, 1890) 는 성당의 종탑과 아래로 창문이 3개나 있는 마을 교회를 밝은 화풍으로 그린다. 교회 앞길로 시골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교회는 창문이 모두 폐쇄되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바람대로 목사의 길로 들어가지 못한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마을 위 언덕에 있는 푸른 밀밭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 <밀밭>을 그리며 이곳에 내려 앉는 까마귀도 그린다. 이 때부터 그는 너무 정신적으로 피로하고 생활에 지친 나머지 마을 뒤편 그가 그림의 소재로 삼던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살하려고 한다. 자살 소동은 결국 미수에 그쳐 며칠 후 여인숙 2 층 방에서 숨진다. 그의 묘지는 이 마을 공동묘지 뒷편에 안장되어 얼마 후 형을 뒤따라간 간 동생 Theodore 와 나란히 누워있다. 그들 형제는 이 세상에서 어렵고 험한 생을 함께 마감하고 이제는 꽃 속에 묻혀 그의 작품과 더불어 영면 한다. 이 마을의 평온한 시골 풍경이 오늘날 Gogh의 천재성이 더해지면서 후세에 빛을 발한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유감없이 천재성을 발휘한 한 젊은 예술가를 추모하면서 그의 전원생활의 그림들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무덤과 그의 그림의 소재와 배경, 광활한 밀밭 등을 돌아보면서 프랑스의 전원풍경이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풍경화가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전에 한 예술가의 그림의 고향 순례를 마치고 이번에는 Giverny(지베르니) 모네의 고향으로 향한다. 도중에 “ La Bonne eatable ” 이라는 식당에서 생각에 잠기면서 조용히 식사를 한다 . 예측할 수 없던 날씨가 흐리면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식당에서 한동안 쉬면서 오히려 여유를 부리었다. Monet 풍경화의 고향을 찾아서 14:30분 경 하늘이 다시 밝아지면서 이번에는 걸어서 Monet 가 작품활동을 하던 집으로 간다 .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그의 집에 도착. 5.5 유로의 입장료를 단체로 4 유로를 낸다. Millet와는 달리 Monet는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그림에 몰두한 행운의 예술가 였다. 먼저 그가 살았던 집으로 들어가 목판화 소품 중 일본풍의 유채화 그림을 감상한다. 아래층 방은 모조그림이 대부분으로 벽에 2~3 단으로 조밀하게 전시해 놓았다. 다소 의아하고 실망감이 앞선다. 다시 2 층으로 올라가 그가 살았던 침실, 침대 등을 돌아보고 모두 최근 것으로 추정되어 아쉬운 느낌이 든다. Gogh와는 정반대로 진실성이 결여된 것이다. 2 층의 창문을 통해 그의 그림의 현장이었던 정원을 내다 보고 내려온다. Gogh는 그가 살던 하숙집이 원형으로 남았으나 Monet는 너무 개조하여 고전적 의미를 상실한 것이 유감이다.
(사진: Monet의 <수련> 의 연작화 - 계절의 변화를 그린 풍경화) 정원으로 나오니 넓은 장소에 장미 , 목련, 양귀비 등 이루 이름을 들 수 없는 아름다운 꽃들로 대단위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온갖 꽃이 만발한 정원을 거처 지하통로를 지나 연못으로 간다. 아직 연꽃은 피지 않았으나 오후의 햇살을 받아 더욱 화사해진 연못가를 산책한다.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를 상상하는 즐거움에 취해 마음마저 풍성하여 진다. 이곳에서 Monet는 그의 <수련> 을 연작으로 그리어 풍경화가로서 천재성을 발휘한 것이다 . 그는 이곳에서 1883년 부터 1926년 까지 43년간을 살면서 각종의 풍경화를 남긴다. 우리는 이렇게 머나먼 곳 화가의 고향을 찾아 끝없이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좁은 통로를 헤쳐나가는 수많은 방문객들도 모두 행복한 천사의 표정이다 .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으면 한 폭의 수채화가 되는 곳이다. 돌아서 앞쪽 다리에 이르니 이곳에는 흰 등나무 꽃이 만발하여 하얗게 줄줄이 매달려 바람에 날리니 그저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기념품 점에 들러 정원을 나오니 Gogh와 달리 너무 상업성에 매몰된 것에 마음이 허전하다. 정원의 아름다운 꽃들을 배경 삼아 사실적인 화폭에 유채화로 담았던 이 유복한 예술가의 일생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그는 실제로 1840.11.14~1926.12.6일 까지 86세로 예술가로 삶을 마친다. 이제는 Rouen 으로 가기 위해 마을을 나오면서 세느강 지류를 만난다 . Mantes를 향해 간다. 도로에 나와 13번 고속도로로 노르망디 쪽으로 향한다. 멀리 지평선이 아득하게 보이니 저 너머는 어디일까? 소나기가 온 후 바람이 시원하고 가을 하늘처럼 높다. 끝없는 푸르른 들판으로 축복 받은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 살면 국가와 국민적 자존심이 저절로 생길 것 같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 17:10분 출발. Rouen 18km 지점을 통과 다시 오른쪽 지방도로로 나간다. 르앙에 가까워지면서 주변 주택의 지붕의 경사가 심해진다. 바닷가로 다가가면서 바람이 심해 창문이 작아지고 폐쇄한 곳도 많다. ![]() (사진: Rouen 성당 전면- Monet가 그렸던) 멀리 르앙 성당의 첨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도 여러 곳에 성당이 있다. 시내로 진입 옛날 시청 로터리에서 돌아 17:45분 하차. 이곳에서도 유명한 <르앙 노트르 담> 성당을 찾아 골목으로 올라간다. 걸어서 성당에 이르니 그야말로 거대한 예술작품이 하늘 높이 솟아있어 놀라게 된다 . 전면은 현재 보수중이다. Monet가 이 성당을 모델로 20여 점이나 그린 그런 그림의 소재를 찾은 것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 중간에 고딕 양식의 기둥은 높이도 크고 균형미가 뛰어나다. 좌우 창문과 중앙 돔에 스테인드 그라스의 각종 문양이 아름답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에 햇살에 성당 전면은 유난히도 빛난다 . 이곳에서 한동안 유럽에서의 건축 문화가 바로 성당 건축과 성곽 건축으로 크게 나누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Jeanne d ' Arc(잔 다르크)의 화형장에서 성당 주변의 고딕양식의 상가 건물들 , 또 목조로 특징을 살려서 올린 건축물을 보면서 오후의 여유로움을 느낀다. 다음에는 성당 앞길로 해서 뻗어나간 대로를 가면서 이곳이 영국과의 백년전쟁 당시의치열한 격전지임을 상기한다. 잔 다르크(1412~1429)는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소녀이다. 그녀는 1429년 “ 프랑스를 구하라 ” 신의 음성을 듣고 시뇽소 성에서 당시의 왕 “ Charles 7 ” 세를 알현한 후 사기 충천하여 대승을 거둔다 . 그 후 왕 측근들의 질시 속에 1430년 5월 영국군에 사로 잡혀 1431년 재판에서 마녀로 찍힌다. ![]() ( 사진: Jeanne d ' Arc 의 순교 기념 성당 전경) 멀지않은 곳에 잔 다르크가 처형된 곳에 지은 아주 특이한 모양의 교회를 만난다 . 이 교회 왼쪽 30m 지점은 그 해 5월 30일 잔 다르크 가 화형에 처해진 곳으로 성당과 더불어 성역화 되었다 . 이곳은 르앙의 마르세 광장으로 수 많은 방문객과 참배객으로 넘쳐 난다. 그녀는 그 후 1456년 명예를 회복하고, 1920년에 카톨릭에서 성녀로 시성되었다. 오늘은 이곳을 출발하여 시내 외곽에 있는 Mercure Hotel에 도착, 오늘의 순례를 마친다. 호텔식당에서 편안히 대화를 나누고 휴식에 들어간다. 다음날에는 Mercure Hotel을 09:20분에 출발. 시내를 벗어나 15번 고속도로로 나와 Dieppe 로 간다 . 가는 도중에 48km 지점에서 우측으로 진입한다. 15번 고속도로 주변은 목장이 대부분이고 푸른 초원에 소떼, 양떼와 더불어 밀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잠시 후 사과 밭이 한없이 연결된다. 이곳에서는 사과를 이용하여 노르망디의 특산주 칼바도스를 만든다. 40도가 넘는 위스키로서 맛이 특이 하기로 유명하다. Dieppe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오른쪽 IC로 나온다. 가로수를 부채살 모양으로 전지하여 키운 나무가 일정한 크기로 서있어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다. Normandy의 해안가를 찾아서 10:15분 Dieppe 시내로 진입. 이곳은 대서양이 면한 항구도시로 인구 5만의 소도시. 항구 내항에는 수백 척의 요트가 정박해 있는 아름다운 휴양도시다. 건물은 4~5층으로 바닷가 해안을 끼고 서있다. 항구를 돌아 바닷가로 나가니 바람이 거세고 추위를 느낀다. 대서양의 푸른 바다를 향해 마음껏 심호흡을 해본다. 오른쪽 바위산 위로 보이는 성 같은 교회와 마을을 보면서 왼쪽으로 돌아 해안쪽으로 나간다. 여기서 대서양 해안을 30여분간 산책을 한다. 이곳은 Dieppe에서 Le Havre(르 아브르)에 이르는 해안으로 약 103km 의 해안풍경은 노르망디 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으로 꼽힌다. 해안은 포장된 직선 길 밑으로 둥글고 검은색의 자갈이 깔린 곳으로 바닷물이 빚어낸 천연의 해안이다. 제철이 아니어서 산책객이 없다. (사진: Dieppe 항구 전경) ![]() 해안가로 가면서 전방 산 위에는 “ Chauteu Muse ? ” 박물관이 고성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11:20분에 해안에서 나와 Dieppe를 출발하여 넓은 평야지대를 건너 해안도로로 향한다. 유채밭도 나오고 숲속 우로는 농가주택이 드문드문 보인다. 목초지에는 흰 양 과 흰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목초지의 구획은 낮게 친 철사 줄로 구분된다. 오른편으로는 다시 대서양이 나타난다. A 29번 도로로 간다. “ Le Havre ” 방향으로 간다 . 12:15분 Fecamp 시내로 들어간다. 바다가 들어온 한적한 끝자락 마을에 한국에 사는 이곳 출신 “ 이다도시 ” 여인의 고향으로 부모가 산다 한다. Fecamp의 모습도 Dieppe 시와 흡사하다. Maupassant 의 <여자의 일생> 현장을 바라보며 대서양 쪽으로 나간 곳에 해변으로 가서 이번에는 보고트 절벽을 가기 위해 소로로 들어간다 . 캠핑 사이트에는 캠핑 차가 몇 대 있다. 이곳에서 버스를 내려 바닷가로 걸어간다. 비가 흩날리어 우산을 쓰고 가니 “ 모파상 ” 의 <여자의 일생> 의 무대를 찾아가는 분위기가 음산하다 . 주변에는 잡초가 제거되고, 노란색의 애기 똥 풀, 민들레가 바람에 휘날리는 좁은 길을 걸어 보고트 절벽에 이른다. 단독의 2 층 주택 한채가 바다로 향해 외로이 서있다. 그 위 언덕으로 연결된 회색의 바위 절벽이 바다를 향해 돌출해 있다. ![]() (사진: 보고트 절벽 전경) Guy de Maupassant (1850~1893) 은 노르망디 출신으로 프로베르의 제자이다. 그는 “ 지방 덩어리 ” 를 발표 함으로서 자연주의 문학의 길을 연다 . 이어서 1883년 “ 여자의 일생 ” 을 발표 함으로써 일약 명성을 얻게 된다 . 주인공인 노르망디 귀족의 딸 “ Jeans ” 은 꿈 많은 소녀였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5년간 생활을 한 후 결혼을 한다. 그러나 첫날밤 남편의 야수성에 환멸을 느낀다. 남편 “ Julian ” (줄리앙)은 바람둥이로 하녀와 아이를 낳고 끝임 없이 바람을 피운다. 마침내 백작부인과의 불륜이 발각되어 이곳 절벽에서 바다로 투신한다. 그녀는 바람둥이 남편과 자식에게서도 배반당하고 손녀에게 지극한 애정을 쏟으며 쓸쓸히 늙어가는 기구한 여인인 것이다 . 이 소설의 무대가 바로 이 곳 보고트 절벽으로 소설에서 리얼하게 묘사된 곳이다 . 바닷가에는 잔잔한 자갈밭 위로 해초가 밀려온 것이 말라가고 , 비바람이 불어 쓸쓸함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절벽의 높이는 50m 정도로 수직으로 바다로 돌출되어 있다. <여자의 일생>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우리는 쓸쓸한 마음을 간직하고 다시 소로를 올라오니 13:50분. 이제는 Etretat 로 출발한다. 가면서 우리는 오래된 중세식 건물에 자리잡은 Benedictine 양주회사에 들렀으나 점심 시간이라 사람이 없다. 고급 카페식 매장에 들러 낮선 양주를 구경하는 것으로 지나간다. 오래된 조그만 소도시 Marie(시청) 앞에 이르러 차를 내리고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레스또랑을 물어서 찾아간다. 소로 사거리 Alphonse 거리 모퉁이에서 “ La Flottille ” 라는 ![]() (사진: 대형 코끼리 바위 모습) 15:30분 식사 후 걸어서 Etretat 소도시 해안가로 나온다. 멀리 세찬 바람 속에 바닷가 돌출바위 끝에 코끼리가 바다 가에 코를 박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양쪽으로 나타난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어 모자를 눌러쓰고 파레즈 절벽으로 오른다. 앞으로는 대형코끼리, 멀리 반대편에는 소형 코끼리가 바다로 돌출해 있는 사이로 해안이 있고 그사이에 Etretat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절벽으로 오르는 길에는 유채, 민들레의 노란 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절벽으로 오르니 바로 건너에 큰 코끼리 바위가 내려다 보인다. 가까이 가면서 사진 포인트로 올라가 카메라에 담는다. 해안은 검은 돌들로 덮여있어 신비스럽다. 다시 내려와 좁은 시내 길을 통과해서 주차장을 찾아 16:35분 경 출발한다. 프랑스의 지성 - Andre Gide 의 고향을 찾아서 이번에는 “ Andre Gide ” 의 고향이자 <좁은 문> 의 산실인 Cuverville로 향한다. Etretat 시내에서 나와 들판에 이르니 Cuverville 1.5km 안내판이 도로에 서있다. 좀더 한적한 시골길로 나아가니 Cuverville 0.3km, 묘지 500m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 Marie(시청, 읍, 동 사무소)옆 오래된 교회 앞에 멈춘다. 돌 담장으로 야트막하게 둘러막은 교회 안 무덤은 오래되어 풍화가 심하다. 담장 안 교회 주변 삼면은 모두 무덤으로 차있다. 왼쪽으로 돌아 맨 끝 담장 앞에 “ Andre Gide ” 의 무덤이 있다. 흰 대리석 밑에 그는 1951년 82세를 끝으로 잠들었고 그 옆에는 그의 아내가 나란히 영면하고 있다. 날씨만큼이나 음산하고 고독한 작가의 생을 보는 듯하다. 교회로 들어가보니 바깥 모양과는 다르게 아늑한 풍경이다. 교회를 나와 걸어서 밀밭 길을 돌아 지평선이 맞닿은 초원을 바라보며 Andre Gide가 살던 집을 찾아간다. 주변은 누군가가 잡초를 깎아 놓아 정돈된 느낌이다. 숲속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가서 붉은 벽돌로 지은 2 층 건물을 만난다. 다락방 창문이 여러 개인 제법 큰 건물이다. 1730년대 건축물로 뒷면부터 보수중이다. 넓은 마당과 정원이 있는 저택이다. 우리는 관리인의 허락으로 아래층으로 들어가 생전에 그가 사용했던 방 2개, 서재 등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서명하고 기록을 남긴다.
![]() (사진: Andre Gide 부부 사진과 묘지 전경) 머나먼 동방의 코리아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우리는 진정한 문화 사절인 셈이다 . 모두 방명록에 기록하고 중앙에 걸린 “ Andre Gide ” 사진과 그의 아내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나온다. 이번에는 후원으로 나와 <좁은문>의 주인공이 드나들던 작은 쪽문으로 향한다.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이곳의 손님은 우리 뿐이다. 정문에 달린 녹슨 종을 울려 본다. 건너편 풀밭에는 애기 똥 풀이 지천으로 노랗게 피어 있다. 주변 어디를 보아도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좁은문> 은 1909년 N.R.F 지에 발표. 20세기 문학의 금자탑이다. 여주인공 아리싸는 자기희생의 계율에 갇힌 청교도적 신비주의자이다. 신에 헌신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서 고민한 나머지 심신이 피폐하여 죽음에 이른다. 제롬은 아리싸가 사랑하는 외사촌 동생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민한다. 이 소설은 Andre Gide 자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리싸는 성서에 있는 대로 “ 좁은문으로 들어가려 한다 ” 그래서 제롬에 대한 사랑을 안으로 삭히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을 제롬을 통해 볼 수 밖에 없으나 점점 더 순결하게 되기 위해 그를 잊으려고 고민을 한다. 마침내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른다. 지드는 인간주의와 프로테스탄트적인 이상주의와 갈등을 표현하고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는 신앙에 괴로워했다. ![]() (사진: Andre Gide 가 생전에 집필하던 집 ) 그는 아리싸와의 환영을 품고 독신을 지키려는 제롬에게 아무 해답도 이책에서는 주지 않는다. 도덕적 편견만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그의 부인을 일생동안 처녀로서 생을 마치게 한 데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벨기에에서 처녀 엘리자베스와 사랑에 빠져 ‘ 까뜨린느 ' 라는 딸이 생겨나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는 새로운 생활을 열려고 콩고로 여행하고, 소련 여행에 나선 후 작품활동을 중단한다. 1951년. 2월19일 자기자신에게 성실하고 청교도적인 삶을 마감한다. 우리는 지드의 여러 작품을 회상하며 이제는 그의 고향 마을을 나와 알베르트 해안으로 향한다 . 이곳 알베르트 해안가는 19세기 풍경 화가들의 산실이다. 북부해안의 자연 풍치가 그들의 화폭에 담기면서 절벽과 어촌 풍경은 그림 속에 살아있다. 터너, 보닝턴 등의 화가가 Dieppe 해안가를 그렸고 Monet, Renoire, Pissaro 등도 이곳 해안과 전원 풍경을 화폭에 옮기었다. 해안가 소도시 - 화가들의 그림의 현장에서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17:40분 Honfleur 로 가가 위해 12 번 도로로 나와 “ Le Havre ” 로 향해 톨 게이트를 나온다 . 컨테이너 트레일러가 넘어진 사고가난 지점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Honfleur 11km 남은 지점에서 대서양위로 놓인 멋진 다리를 건너간다. 밑으로는 세느강이 합류되어 대서양으로 나가는 곳이다. 다시 톨게이트를 나와 무지개형태로 걸린 큰 다리를 건너 칼바도스 지역으로 해서 Honfleur의 Hotel 을 찾아 시내로 들어간다. 18:30분 Castel Albertine Hotel에 여장을 풀고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식사. 연어 맛이 아주 좋은 식사를 한 후 해안가를 산책. 조그만 해안도시에 17세기부터 건축된 이어진 건물들을 보면서 산책을 마감한다. 조그만 해안도시로 외부 관광객이 주를 이룬다. ![]() (사진: Honfleur 항구 소도시의 아침 풍경) 다음 날 . 플뢰리 해안가 Honfleur 소도시에서 아침에 일어나 해안가로 산책을 나간다. 어제의 해안가를 이번에는 좌측으로 돌아가면서 산책한다. 아침 일찍이라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 청소부 1인이 청소차량의 호수로 물을 뿌리며 도로를 깨끗이 청소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방식으로 청소를 하면 시간, 인건비 등이 절약될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이 소항구 도시를 곳곳을 둘러보고 정원공사가 한창인 <장미공원>에서 나와 다리가 들리어지는 안쪽 길을 따라 산책. 백여 개의 요트가 정박중인 3면은 모두 레스또랑, 옥외 카페가 즐비하다. 시간이 일러 아주 한산하다. 17~18세기의 노르만양식의 아담한 집들이 서있다. C ? zanne, Renoire 의 작품에 등장하는 곳에서 한동안 자유시간을 갖는다. 10:05분. 이번에는 Resort 도시 Deauville 로 간다. 옹프뢰르 초등학교 앞을 지나 투숙했던 호텔 위에서 유턴하여 어제 저녁을 하였던 식당을 지나 도빌로 간다. 도빌은 “ 프로베르 ” 와 “ 듀마 ” 가 이곳을 방문하여 유명해졌다 . 대서양이 나오고 Le Havre 도시가 건너로 보이고 숲속 길을 간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꾼 집들을 지나고 사과나무가 들어찬 정원을 지나 숲으로 간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당나귀를 키우는 집, 사과 과수원이 꽃이 만발한 곳을 지나 해안가 경사진 지붕을 가진 마을을 지나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나온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내려가 Deauville 시내로 들어간다. ![]() (사진: Deauville 시내의 중세 풍의 명품상가 전경) 카지노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하천을 건너 Totes 거리로 나가 중세 풍의 화려한 3~5층 건물이 늘어선 거리다. 오른쪽은 바다, 왼쪽은 아름다운 건물이 늘어선 거리다. 그 앞 해변은 모래가 곱고 아주 광활하다. 탈의실이 수십m 나 늘어서있고 해변에서는 CF 촬영이 한창이다. 아름답고 날씬한 검은색 옷을 입은 모델이 출연한다. 이곳이 바로 영화 <남과 여> 의 무대이며 , 상류층들이 이곳에 와 휴가를 보내니 대형 카지노 장이 많다. 지금은 비철이라 Resort가 빈 곳이 많다. 지붕은 편마암 돌로 이어진 건물이 많고 가로수는 모두 같은 크기로 둥글게 손질한 곳에서 이제서야 잎이 나온다. 10:45분부터 한시간 가까이 Deauville 해안가를 거닐어 본다. 관광 안내소에 들러 지도를 받고 나와 이번에는 시청에서 결혼식이 거행되는 것을 본다. 시청 주변의 건물은 너무나 아름다운 도심가를 형성한다. Primtemps 백화점을 지나 Ralph Lauren, Gucci 등의 유명 상품의 매장을 거처 카지노에 들러 나와 Burberry 매장 앞에 이르니 이곳이 이 도시의 명품가를 이루는 곳이다. 11:45분 버스로 인근도시 Trouville 로 향하여 다리를 건너간다. 관광안내 센터 앞을 지나 Les Mouetes 식당으로 간다. Bar Brasserie로 이번에는 야외 Caf e 에서 식사를 한다 . 홍합요리, 대구요리를 먹는 동안 비가 쏟아진다. 날씨가 너무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다. 천천히 식사하며 하늘의 도움을 기다린다. 칼바도스 양주를 몇잔 걸친다. 성녀 Th e r e se 의 발자취를 따라서 오후 13:50분 이곳에서 24km 떨어진 Lisieux 로 간다 . 이곳에서 유명한 성녀 Martin Th e r e se 가 살던 곳으로 간다 . 그녀는 딸 5명의 집안에서 막내딸로 1873.1.2 Alengon 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4 자매와 함께 수도생활을 한다. 그러나 병약한 몸으로서 성령의 강림으로 치료된 후 회복되어 15세 때 Carmel 수녀원으로 들어가나 결핵으로 병사한다. (사진: 성녀 Th e r e se 와 Basilica 성당 ) ![]() <앉아서 만리 밖을 감화시킨다>는 성녀로 추앙 되어 그 유골도 해외를 순방한다고 한다. 비가 오는 가운데 그녀가 살던 집에 오니 한글로 된 설명서를 내놓아 놀라게 된다. 그녀가 살던 아래층 방을 둘러보고, 다시 그녀가 들어갔던 Carmel 수녀원으로 가나 보수중이다. 여기서 그녀는 “ The Story of Soul ” 이라는 책을 쓰고 1897년 9월 30일 죽었다. 그 이듬해에 책이 출판된다. 그 후 1997년 그녀는 < A Doctor of Church>로 추앙 된다. 집에서 나와 이번에는 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너 지하에 있는 홍보관 , 교육관에서 행적에 관한 사진 등을 둘러보고 기념품 점에도 들어가 본다. 이곳에서 나와 이제는 A 13 번 도로를 타고 Caen 으로 간다 . 옛날 Norman 공국의 수도로서 제법 큰 도시였으나 노르만 상륙 전으로 많이 파괴되었으나 재건된 큰 도시이다. 가는 길 좌우에는 사과 밭, 목장 등이 들어차 있다. 17:00 경에 Caen 시내로 들어가 Mercure Hotel 앞 큰 도로를 지나 좌로 간다. 곳곳에 오래된 성당이 보이고 중심가에는 전차가 다닌다. Ducal Castle 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며 여기서 우선 1027년 축조한 Ducal Castle 로 간다. 이곳은 1066년 정복 왕 William 공이 England 의 왕이 된 후 Henry 왕이 이성을 축성하고 요새화 하였다. 1204년 프랑스 왕 Philip Augustus 가 Normandy 를 정복하고 이곳에다 ![]() (사진: Ducal 성안의 조각 작품) Ducal Castle을 순방하고 17:30분 부터 저녁식사를 자유롭게 하기로 한다. 우리는 시내 중심가의 여러 곳을 걸어 다니며 곳곳을 방문한다. 수시로 비가 오는 날이라 중심가 대형 주차장 앞에 있는 Caf e -Brasserie 여섯째 날 . 오늘은 09:05분 Caen 시청을 방문한다. 11세기 중엽 잉글랜드 정복 왕 William 과 왕비 Matilda 의 주거지 였다. 2 차 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의 격전으로 도시의 75%가 파괴 되었으나 현재는 복원되어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곳에는 남자, 여자 수도원이 따로 있어 이채롭다. 1063년 William 이 건축하다가 그의 사후 20년 후에 나 완성되었고, 현재 남자 수도원은 시청으로 일부가 사용된다. 여자 수도원은 왕비 마틸다가 건축. 1060년에 시작 6년 뒤 완성하였다. 검은 대리석 밑에 William 의 무덤이 있다. 2 차 대전- Normandy 상륙 작전의 현장을 찾아가서 시청과 수도원의 일부를 돌아보고 시내를 벗어나니 밀밭이 전개되고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나타난다. 흰 소들이 풀밭에서 드문드문 풀을 뜯고 건너편으로는 유채꽃 밭, 오른쪽으로는 대서양이 보이고 그림 같은 주택이 띄엄띄엄 나타나다. 네비게이션의 의거 10:25분 시골 마을로 진입하여 좁은 골목길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길을 잘못 가다가 다시 가까스로 해안도로를 찾아 나온다. 그제서야 Gold Beach 안내판이 나오고 해안으로 주택이 늘어서 있다. 검정 얼룩소가 한가로이 논다. 왼쪽 해안위로 전망대가 있고, 캠핑 마을을 지나서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나무들이 있는 곳을 지나니 오래된 시골 교회는 공동묘지로 가득하다. 마을마다 영국과 미국과 자매결연을 맺은 것이 표시되어 있다 . 11:20분 ![]() (사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상륙 지점에는 기념비만 서있고) 이곳 해안가가 1944년 6월 6일 06:30분에 미국 1사단 16th Regiment가 상륙한 곳이다. 상륙 시 수륙양용 탱크를 이용하여 신속히 교두보를 확보하고 07:10분에 적군 진지를 분쇄하였다. 독일군 88mm 대전차포를 설치한 진지를 파괴하였다는 전적이 기록되어 있다. 멀리 언덕위로는 상륙기념비가 서있고 주변에는 당시 독일군 벙커가 남아있다. 신비의 수도원 Mont-Saint-Michel 에 올라 대서양을 바라보며 12:00시에 출발. 다시 Caen으로 향하는 도로에 나와 Caen 진입 4km 전방에서 우회전 Saint Ro 방향으로 간다. A84 번 도로로 산이 없고 계속 녹지대만 계속된다. 길가엔 흰 들꽃, 노란 들꽃이 만발하여 바람에 나부끼고 시야는 하나도 막힘 없어 시원하다. Mont -Saint-Michel IC를 통과하여 15km 전방인데도 성이 신비스럽게 보인다. 자욱한 안개와 바다로 둘러 쌓인 신비의 섬이다. 이제는 제방 길로 연결되어있다. 몽. 토브 (언덕위의 무덤)라는 섬으로 요새화된 수도원이다. 708년 성자인 Aubert 주교가 75m 섬 돌산에 조그만 예배당을 지음으로써 시작. 그 위에 10세기 말에 Benedictines 수도원으로 개축되었다. 13세기 초에 완성된 후 중세 교육의 중심지로 계속 증축 보수 하였다. 백년전쟁동안 영국의 대한 난공불락의 방어 요새로서 성벽을 구축하였다. 프랑스 혁명 후에서 1863년 까지 반혁명 성직자들의 감옥으로 사용하였다. 1874년 역사적 기념물로 분류되어 전반적인 보수작업을 거처 1897년에 기념관으로 되었다. 그때부터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관리하게 된다. 중세인 들은 이 수도원을 지상의 낙원으로 생각하였다. 성으로 오르는 길은 12세기 까지는 순례자의 길이었다. 1979년 UNESCO 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식당과 기념품 점이 성으로 오르는 길에 즐비하다. 이 복잡한 골목을 지나야 수도원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성안에 ![]() (사진: Mont-Saint-Michel 전경) 식사 후 2시간 동안 성안을 구석구석 탐방한다. 성은 크게 하층, 중간 층, 상층부로 나누어진다. 하층부분은 주로 바위산을 둥글게 둘러 쌓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우선 Guard Room 1 부분을 건너가서 수도원 입구로 간다. 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교회와 왼쪽으로 수도원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이 건물들은 14~16세기에 지어 졌고 수도 원장들의 기거 처이다. 중간 충에 속한 서쪽 테라스는 수도원의 앞뜰이었다. 본당은 18세기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전면은 1780년에 재건축 되었다. 여기서 바다를 잘 바라볼 수 있다. 테라스에서는 신고딕 양식의 나선형 교회 탑이 멋지게 보인다. 1897년에는 꼭대기에 금박을 입힌 1017년 초기에 지은 중간의 수도원 바위 위에다 바다에서 80m 높이로, 80m 길이의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본당은 3 단계로 구성되었다. 본당의 천장은 둥근 나무 판넬로 되어 있다. 1421년에 붕괴되어 백년전쟁 후에 화려한 고딕 스타일로 다시 건축되었다. 여기서 기도와 명상을 하는 곳이다. 정작 수도원은 13세기 초에 . (사진:기도실의 모습) 이런 것을 대충보고 북서쪽의 계단으로 해서 서쪽 테라스로 내려간다. 내려가다가 다시 본당으로 연결된다. 그러면 아래층으로 연결되어 안내의 방으로 가게 되고 다시 들어갔던 입구가 된다. 수도원 Mont-Saint-Michel 의 건축은 두개의 중요한 명제인 수도원 생활과 지정학적인 문제로 가장 주목 받는 중세의 건축물이다. 2시간 만에 바람이 거세나 아름다운 성을 내려오면서 주위의 바다로 둘러 쌓인 갯벌을 보게 된다. 어느새 갯벌로 걸어 들어가 체험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밀물이 되면 제방도로를 제외하면 모두 침수 될 텐데? Saint-Malo 해안 도시의 성벽에 올라 17:00시에 다시 나와서 176번 국도를 타고 Saint Malo 로 간다. 40분만에 시내로 들어오니 현대 자동차 매장이 유럽과 일본차의 매장과 나란히 있다. 이번에는 Saint Malo 성을 방문한다. 부두를 가로 질러 성으로 가니 항구가 상당히 큰 곳이다. 물동량이 엄청나다. 1424년에 쌓은 성으로 국가 박물관이 있다. 성곽으로 오르니 바다와 해안 풍경이 뛰어나다. 해풍에 날아갈 지경이다. 정방형으로 4km 정도의 성곽위로 바다를 바라보며 걸어간다. 바다 앞에는 또 조그만 성이 솟아있는데 ![]() (사진: Saint Malo 성벽에 대포들) 성안으로 들어오는 길은 2개의 석문이 있고 승용차만 통행이 가능하다. 성안의 건물들은 빽빽하게 지어 졌고, 골목마다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 입구의 건물 1 층은 대개가 레스또랑이나 기념품 점이다. 성을 한바퀴 돌아오니 벌써 18:00시가 지나 안내 센터가 문을 닫았다. 너무 중세적이고 견고한 성곽도시로서 5월 중순인데도 추위가 상당하나 꽃은 한창이다. Hotel Alexandra Best Western, France 101 호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에서 저무는 바다를 바라보며 Wine 과 더불어 Steak로 저녁 식사를 화기애애하게 진행한다. Loire 계곡의 아름다운 성을 찾아서 일곱째 날 . 07:40분 Alexsandra Hotel을 떠나 137번 국도로 Tours 지방으로 간다. Loire강을 따라 Orleans, Blois, Tours로 이어지는 계곡에 산재한 중세 발루아 왕조와 부르봉 왕조 때의 왕과 귀족의 성들을 찾아간다. A 81번 도로로 바꾸어 Lennes로 가다가 Le Mans 83km 지점에서 Tours 방향으로 간다. 도로변에는 주유소 거리와 오일의 가격을 알리는 안내판이 자주 나온다. 버스는 2 시간을 달린 후에 휴게소에서 30분을 쉰다. 다시 A 28로 Tours로 간다. 비가 그치니 소, 양들이 밖으로 나온다. A 10 을 거처 인구 30만의 도시인 Tours 시내로 들어가 다시 교외로 나가 Chenonceau 성 방향으로 간다. 좌우로 포도밭이 나오고 붉은 양귀비 꽃이 만발한 곳을 지난다. 12:30분 Au Gateau 로터리에서 나가 강 위에 세운 중세의 고성 Chenonceau 식사 후 쉬농소 성으로 가서 9.50유로(단체 7,50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성으로 입장. 앞에 탑은 13세기에 먼저 건축하였고, 성 가운데 네모난 부분은 강 다리 위에 지은 것이다. ![]() (사진: Chenonceau 성 전경) Chenonceau 성은 16세기 Le Cher 강 위에 Tomas Bohier 가 원래 있던 성을 헐어버리고 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Marques Tower는 르네상스 스타일로 변화시키었다. 앞 마당은 해자로 구분된 옛날 중세의 성으로 다시 배치하였디 . 탑 옆으로는 Marques 가문의 상징인 괴물과 독수리로 장식한 우물이 있다. 성으로 들어가면서 Fran c ois 1세 때부터 나무로 조각된 Thomas Bohier 의 방패 모양 문장이 왼쪽에, 오른쪽으로 그의 아내로 이성의 건립자인 Catherine 의 불 도마뱀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 들어가면 Guard Room이 있는데 이곳은 이성을 지키는 무사들의 방이다. Thomas Bohier의 무기가 16세기 굴뚝을 장식하고 있다. 벽에는 16세기의 프란더스의 타피스트리 에 결혼과 사냥을 그린 성에서의 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도어를 지나 예배당으로 들어가면 성모상이 서있고 제단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다음에는 Diane Bedroom이 있는데 그녀는 Henry 2세의 아내로서 왕은 그녀에게 이성을 새로 보수하여 주었다. 이방에는 2 장의 16세기의 큰 타피스트리가 걸려있다. 다음 방에는 Green Study로서 그녀의 남편인 Henry 2세가 죽자 섭정인 Catherine의 서재로 그녀는 이방에서 프랑스를 통치하였다. 벽에는 여러 가지 그림이 걸려있다. 도서실에서는 Cher강과 Diane의 정원이 환하게 보인다. 벽에는 성 Benedict 의 그림이 걸려있다. 조그만 통로를 벗어나면 다리 위에 지은 Gallery에 이른다. 길이가 60m, 폭이 6m 인 들보로 천장이 된 무도회장을 만난다. 이 성의 부엌은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 식료품 저장실이 크고 빵을 굽던 오븐도 볼 수 있다. 우리는 Louis 14세의 방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왕족들의 화려한 궁중생활을 생각해 본다. 성에서 나와서 이번에는 정원을 둘러 본다. 오른쪽으로 Diane 정원이 있다. 정원 가운데에는 가장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이 정원은 Cher강 범람을 막아주고 있다. 왼쪽으로는 중앙에 풀이 있는 Catherine 정원이 있다. 정원은 둘 다 너무 계획적으로 조성되어 보라색 등 엷은 3가지 꽃들이 푸른 나무와 앙상블을 이루어 아주 미적으로 뛰어나다. 양쪽 정원너머로 해자 역할을 하는 Cher강과 앞으로는 수로가 있어 완벽한 요새를 이룬 성이다. 15:05분 주차장으로 나왔다. 다음은 Amboise 로 출발 . 소도시를 지나 르와르 강변에 이르니 Amboise 성이 보이고, 이 성은 전투를 위한 성이고 다빈치 무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건축술의 종합 Blois 성을 찾아 A10 도로로 Blois 로 가니 도로변은 옥수수 밭과 양귀비 꽃이 만발하였다 . 강변도로 밑에는 백조가 거닐고 인구 5 만의 Blois 구 시가를 보면서 우리는 (사진: Blois 성의 건축 구조도) Blois 성은 가운데 정원을 두고 4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진다. 4 개의 성은 각기 프랑스 건축의 특징을 이룬다. 우선 A 구역은 13세의 중세의 성으로 고딕 양식으로 보인다. B 구역의 성은 Louis 12 세 (1498~1503)때에 벽돌과 돌로 지은 현란한 고딕 양식의 성이다. 아래층에 왕의 거주처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C구역은 르네상스식 건물로 1515~1524년간의 Franc c is 1세 왕이 이태리식 스타일로 지는 것이다. 둥글게 돌아서 올라가는 계단은 아주 독특한 혼합 양식이다. 다음 D 구역의 Gaston du Orleans 성은 1635~1638년에 Fran c ois Mansart가 지은 것으로 프랑스 고전 건축의 걸작이다. 이렇게 이 성은 각기 특징을 가진 4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 프랑스 건축의 가장 독특한 양식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 성의 각기 다른 여러 방을 둘러보면서 건축 전문가의 식견을 가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 17:50분 성에서 나와 건강한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Blois시 중심가를 25분 걸려 돌아본다. 관광 도시라 마차가 도로를 가도 차들이 뒤에서 기다린다. 시내 마차 관광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호텔로 출발한다. 주차장 앞의 공중 화장실 관리인은 18:00시에 퇴근하여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으니 참 어이없는 일이다. 화장실 문화와 음료수(먹는물)를 사먹는 관행은 한국인에게 너무 불편하니 이 방면에서는 우리가 선진국 아닌가? 18:50분이 되어 Blois Novotel Hotel (1 rue,de L ' Almandin) 136호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사냥을 위해 세운 아름다운 성 -Chambord 이튿날 08:30분 Hotel을 출발. 이번에는 Chambord 성으로 간다. 르와르강 건너서 A10 도로로 가다 Chambord 표지판에서 들어가 로터리에서 Orleans 방향으로 간다. 안개가 낮게 드리어진 강가에서 탑이 아련하게 보이고 조금 가다 오른쪽으로 간다. 안개 낀 날의 성은 괴기스러운 모양으로 보인다 한다. 이 성은 Fran c ois 1 세가 사냥을 할 때 사용한 성으로 숲이 무성한 진입로를 통해 09:00시에 도착. 입장료 단체 5.50 유로. ![]() (사진:사냥을 위해 세운 Chambord 성의 위용) 성은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있고 가운데 높은 탑은 채광 탑 , 왼쪽에는 성당, 중앙에는 나선형 탑이 유명하다. 1519년 25세에 왕으로 등극한 젊은 왕 Fran c ois 1세가 성을 건축하였다. 길이가 156m, 77개의 계단의 높이 56m, 282개의 벽난로, 426개의 방을 가진 호화로운 사냥을 위한 성이다. 그는 32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이성에서 32일간을 머무른 기록이 있다. 이성은 본성 중심부에 3 층에 성을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하였는데 오르고 내려가는 방향이 다르게 설계되어 매우 독특한 건축이다. 계단에 새겨진 조각은 프랑스 르네상스 예술의 걸작이다. 1516년 Fran C ois 1 세가 성 내부를 살펴보면 왕실 가계도를 그린 방을 지나 사냥개가 짐승이나 멧돼지 등을 물어뜯는 그림이 걸려있는 방이 흥미롭고 사냥 그림이 4개가 걸려있다. 다음 방에는 Louis 14세의 어린시절 초상화와 어머니를 그린 그림, 또 Louis 13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2 층으로 올라가면 Louis 15세의 침실이 나오며, 그의 초상화와 가족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 (사진: 사냥한 짐승의 뿔들의 모습) 다음 방에는 Fran C ois 1 세의 침전이 나오며 그 당시의 침대가 전시되어 있고 침대 주위로 커튼을 칠 수 있게 되어있다. 다음에는 17세기의 화가가 그린 Henry 2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2층 빈방에는 천장에 여러 가지의 뱀의 모습이, 특히 3 층의 회랑에서 밖으로 나와 탑 주위를 돌아볼 수 있으며 건너편 성당의 탑과 장식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내려오면서 성의 기념품 점을 통과하면서 성 관련 책과 기념품이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정원이 해자와 더불어 광활한 숲에 둘러 쌓여 있고 유럽에서 가장 넓은 삼림 숲으로 각종 동물들이 살고 있는 사냥터로 유명하다. Napoleon의 거처 Fontenbleau 우리는 이제 11:10분이 되어 Chambord 성을 떠나 Paris 방향으로 향해가다 Fontenbleau 성으로 간다. 버스는 Orleans 방향으로 가다 르와르강의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간다. 강 너머에서 직진 A10 고속도로 안내판에 Paris 142km라고 나오는 곳에서 Fontenbleau 로 간다. 넓은 평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Orleans은 잔 다크가 시뇽소성에서 왕을 알현하고 사기를 얻어 이곳 전투에서 영국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곳이다. 다시 A 10 고속도로로 나가 휴게소에서 12:10 분 부터 주문식 식단으로 각자 선택하여 식사를 한다. 고속도로 상 하행선 위에 자리 잡은 식당은 아주 크고 사람들로 붐빈다. 각자 만족한 중식을 끝낸 후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고속도로변에는 노란색의 스카치 블루 꽃이 군데군데 군락으로 피어 있고, 초원에는 풍력 발전기가 돌아간다. 밭에서는 스프링 쿨러가 물을 뿜어낸다. 푸른 밀밭의 끝없는 도로를 지나 파리 교외선 철도 길을 건너 A6 도로를 타고 Fontenbleau 와 Barbizon 방향으로 간다 . 숲이 너무 무성하여 도로만 빠끔하게 뚫린 길로 달려간다. 17: 05분에 성에 도착하니 입장료 5 유로이다. 성의 정면으로 입장하여 오른쪽 통로로 들어간다 . 이 성은 12세기에 지은 곳으로 그때부터 왕이 살았고 이후 계속해서 확장하고 이후 20세기 까지 왕들의 거처로 사랑 받는 곳이었다. (사진: Fontenbleau 성의 전경) ![]() 첫째 방에는 1713년에 Pierre Denis Martin 이 정원을 확대해 그린 대형 그림이 걸려있다. 이곳에서 1814년 4월 6일에 Napoleon 1 세가 왕위를 이양한 곳이다 . 그는 여기서 그의 아내 Josephine과 함께 살았으며. 당시에 많은 치장을 하였다. 다음 방에는 천장에 다양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어 상당히 인상적이다 . 이동하면서 Trinity의 교회를 들어가니 벽과 천장에 성경을 그린 그림으로 내부가 화려하다. 다음에는 연회장으로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식당에는 벽과 천장이 같은 크기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침실로 들어가니 침대가 높고, 옛날에 사용했던 시계가 인상적이다. 그 옆방에는 그 당시 사용했던 변기가 놓여있어 궁중에서의 화장실의 궁금증이 풀리었다. 무도회장은 좌, 우로 4개씩의 기둥이 서있고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을 하였다. 도서관으로 이동하니 회랑 양쪽 벽으로 책장이 높이 장식되어있고 천장에는 각종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다음 방은 회의실로 황금색의 빛나는 장식이 되어있고, 왕이 집무실로 사용했고 황금색 의자가 중앙에 놓여있다. 나폴레옹에 침실에 이르니 과연 절대 황제답게 극도로 화려하였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성당에는 천장과 벽에 성경을 그려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 성이야 말로 루아르 지역 300여 의 성 중 가장 화려한곳으로 평가된다. 이 성은 30 hectares의 푸른 녹지대로 둘러 싸여있다. 먼저 인상파 화가 - Millet 의 그림의 산실을 찾아서 이제는 마지막 코스로서 Barbizon 으로 간다 . Millet 가 머물며 그림을 그리던 곳이다 . 조그만 마을로 온통 풍경 화가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배어있다. 당대에 그를 따르던 루소, 코로, 도비니 등 여러 사람의 발자취가 골목마다 드리어 있다. 좁은 골목을 걸어 그가 살던 2 층집에 이르니 문에 안내판이 반갑게 맞이한다. ![]() (사진: Millet Mus e e 의 입구) Millet의 아트리에로 들어가니 그가 그리던 그림 등이 어지럽게 걸려있고, 그의 가족 사진 등 그의 살아 생전의 모든 발자취가 배어있는 예술의 산실이다. 그는 가난했던 파리시절에 초상화를 그려 돈을 만져보기도 하였다. 1846년 <몽마르트의 인부들>, <키질하는 사람> 등이 성공을 거두면서 어느 정도 돈에서 해방된다. 그래서 그는 파리를 떠나 본격적으로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Barbizon 마을을 찾아 전원생활을 하면서 농부와 시골 풍경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그러나 여기서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1867년 만국 박람회의에서 1 등상을 받게 된다. 이제 화가로서의 기반을 다진다. 이곳에서 그의 만년의 대작 <만종> 과 <이삭줍은 여인> 등의 명작이 탄생한다 . 석양에 해질 무렵 하루의 농촌 일을 마치고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기도 드리는 시골 농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저 평화로움과 마음의 안정을 느끼게 된다. 그는 원래 영불 해협의 작은 마을 그뤼시에서 태어났다. 그가 언제나 생각하는 것은 전원 생활로의 돌아가는 것이다. 1849년 그의 나이 35세 때 그림 공부를 위해 도시를 방황하다가 마침내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돌아온 것이다. 그는 <이삭줍는 여인>에게서 자연의 숭고함과 소박 한 농촌 여인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나타내어 보는 이의 감동을 자아낸다. 이곳에서도 그림에 몰두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1875년 1월 20일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 (사진: Millet 의 만종) 우리는 그의 산실을 나와 바르비종 마을을 산책하며 그를 따르던 도비니 , 루소 등이 머물던 곳도 돌아보고 그가 화폭에 옮겼던 마을과 전원을 찾아 나선다. 넓은 보리밭 초원의 어디가 그가 화폭에 옮겼던 곳인가를 추측해 보면서 해지는 저녁 들판으로 나온다. 18:20분 이제 예술가의 고향을 찾는 순례자의 길을 마치고 해지는 Barbizon 마을을 떠나 파리로 간다. 6번 고속도로로 파리 남쪽으로 진입하니 개선문이 보이고 시내로 들어와 미라보 다리를 지나 다시 한식당 <다미>에 이른다. 이제 모든 지방으로의 순례가 끝나면서 종료 파티를 겸한 자리가 마련되어 소주와 와인을 함께하며 여행을 마감한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며 이번 여행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마지막으로 내보인다. 시내로 나오니 전차길 노선에도 잔디를 심어 전차로도 푸른 풀밭이다. 20:30분 Mercure Hotel에서 휴식을 한다. 다시 Paris 의 시내를 걸으면서 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 비행기 시간이 13:15분이다. 아침에 파리시내 산책을 한다. 루브르 박물관 앞을 지나 Le Jardin du Luxembourg 로 간다. 마르디 패르치가 설계하여 만든 공원으로 정문으로 들어가면 너도 밤나무거리가 직선으로 뻗어있다. 그 너머로 분수대와 광장이 보인다. 그 끝에 상원 의사당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구도상 아주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시인 묵객들이 산책했던 곳이며 정문 건너 일대는 솔본느 대학 등 학문의 전당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공원 중앙은 Henry 4 세의 명에 의해 가장 프랑스다운 정원으로 가꾸었다. 공원을 산책하며 한동안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주변의 조각 작품도 감상한다. ![]() ( 사진 : Luxembourg 공원 의 너도밤나무 숲 ) 이번에는 Montparnasse 60층 빌딩이 바라보이는 곳으로 이동한다. BD st German 10:15분 출발하여 책 모양으로 보이는 국립도서관 건물을 지난다. 이 도서관 건물 지하수장고에서 아무도 모른 채 100년을 넘겨온 우리나라의 < 외 규장각 > 도서 296책을 인 명선 박사가 찾아낸 것이다 . 선진국 박물관에서 (대영, 루브르 등)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종종 찾아낸다. 우리나라는 고종 3년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인천과 서울 근처를 처 들어 올 때 약탈해간 문화재이다. 당시 고종의 섭정인 대원군은 프랑스의
(사진: Caf e Margot 와 Caf e Flore ) 경부선 TJV 계약 당시 Fran C ois Mitterrand (프랑소아 미태랑)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한권을 가지고 와서 반환을 약속하고 고속철도 계약을 성사 시켰다. 우리는 수백 년 동안 이웃나라의 침탈을 당하면서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었다. 언제나 국력이 약해서 당한 비통한 역사 현실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11:00시경 Charles De Gaulle 공항에 도착하여 이번 여행의 대미를 내린다. AF 264 기로 14:00시가 되어 이륙 하여 이튿날 06:45분에 인천공항에 안착하여 내일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07.05.30) 프랑스를 탐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Themesaytour의 발전을 빌며, 서경미 대리와 함께한 회원 여러분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Home Page:http://myhome.naver.com/leeook12 http:// blog.daum.net/leeook11 E-Mail:leeook11@hanmail.net (여행기에 지도 조언을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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