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추석연휴 기간 중 이탈리아를 찾아갔다. 밀라노를 필두로 시작된 이탈리아 여행은 베니스나 피렌체, 로마 등 여행자가 자주 찾는 지역뿐만 아니라 토스카나 지방과 아말피 해안 등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더 설레는 여정이었다. 토스카나 여행은 중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아름다운 탑의 도시'라고 불리는 산 지미냐노에서 시작되었는데, 13세기에 만들어진 탑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어 멀리서 바라보아도 산 지미냐노만의 독특한 정취가 충분히 느껴졌다. 대단한 유적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골목길 모두가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너무나 사랑스럽고 정감 넘치는 모습이 펼쳐져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어서 찾아간 시에나, 아시시 마을 또한 각각의 색다른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거리를 거닐면서도 마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이 우리들의 정서를 자극했으며, 낡고 오래된 작은 마을과 돌길이 이어지는 좁은 골목들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시에나 그로사 탑에 오르니 토스카나 지방의 전원적인 풍경을 한 눈에 들어왔다. 완만한 구릉지대와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들은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스럽게 뚫어주었고 왠지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속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토스카나의 마을 답사가 이어지면서 우리 일행들 사이에 작은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문하는 마을마다 '이런 마을에서는 하룻밤 묵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정해진 일정 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발길을 돌리기엔 너무나 진한 여운이 남았었나 보다. 이번 이탈리아 일주 여행 중 인상 깊은 또 하나의 장소는 아말피 해안이었다. 여름이면 이곳으로 휴가를 즐기러 오는 많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 한 곳이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으로 알려진 곳이다. 해안을 따라 치솟은 절벽, 절벽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을들, 푸른 바다와 그 위로 펼쳐진 낭만적인 풍광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특히 아말피 해안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호텔 발코니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낭만적이어서 유럽의 대부호들이 부럽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아말피 시내로 산책을 나가 이번 여행 중 3번째로 자유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 날 저녁만큼은 많은 분들이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작고 앙증맞은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렸다. 늦은 밤, 호텔로 돌아오는 도중 어둠 속에서 달이 떠올랐다. 아말피 해안에 비친 달의 모습은 유난히 밝았다. 우리들은 달빛에 반하여 발길을 멈췄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낭만에 취해 가슴이 촉촉이 젖은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