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도에 집계된 세계 관광기구(WTO)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는 63억 7,496만 명이고, 같은 해 1년 동안 해외여행을 나간 사람들의 숫자는 63억 7,7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숫자상으로만 본다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매년 1회 이상 해외여행에 나섰다는 결론이다. 물론 '나가본 사람이 또 나간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실로 놀라운 숫자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2006년에 해외여행객 수가 약 1,4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니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이 여행목적으로 출국했다는 뜻이다. 확실히 여행은 이제 생활의 일부분으로 정착된 듯한 느낌이다. 이런 와중에 작년 여행수지 적자가 850만 달러에 이른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여행수지 적자의 책임을 해외여행객에게 돌리는 듯한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소위 '놀러 가는 일'에 외화를 낭비한다는 듯한 비판이다. 하지만 여행수지 적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답답한 부분이 발견된다. 최근 몇 년간 해외출국자 수는 끊임없이 증가추세지만 외국관광객의 입국 수는 소폭 줄거나 별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국내 인바운드 관광산업은 2년 연속 7-8%씩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으니 관광대국 건설이라는 탁상행정의 구호가 무색할 뿐이다. 이러니 당연히 여행수지 적자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행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해외여행자의 증가만 탓할 것이 아니라 외국 관광객 유치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 관광지를 소개하는 변변한 공식 영문 사이트 하나 없이 관광 적자를 논하지 말자는 말이다. 해외여행을 일부 계층의 사치스런 소비형태로 치부하는, 그런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여행은 문화생활의 일부다. 그것도 지극히 일반적이고 투자가치가 있는 지적인 문화활동이다. 글로벌 시대를 외치는 현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인 수입의 30% 이상을 여행비로 지출한다는 독일인들이 여행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혹시 아직도 여행을 '놀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여행은 배부른 사람들의 여유가 아니다. 오히려 지적, 문화적 호기심에 굶주린 사람들의 문화활동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다. 21세기 세계 여행업계는 소리 없는 전쟁중이다. 여행시장은 날로 확대되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산업 중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부가가치가 높으며, 가장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에 세계 각 국이 자국의 여행산업 부흥을 위해 퍼부은 예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작년의 여행 수지 적자폭이 자동차 수십만 대를 판매해서 얻은 수익에 버금간다고 한탄한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여행산업이 자동차 산업에 필적하는 중요한 경제활동이라는 결론이다. 해외여행을 자제해서 외화낭비를 줄이자는 단순하고 구시대적인 호소는 참으로 공허한 느낌이다. 그에 앞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세계 관광산업 전쟁에 대처할 큰 그림이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서 그려지기를 기대한다. 최소한 그게 아니라면 '여행은 놀러 가는 것'이라는 사고라도 바뀌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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