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몰래 엉뚱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불현듯 예전에 살던 집들이 궁금하고 그리워져서, 아니, 그 때 그 집에 살던 시절이 그리워서 지금껏 살아왔던 집들을 되짚어 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 나선 이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살던 집을 비롯한 대부분의 집들은 이미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려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다니던 학교만은 그대로 남아있어 교정을 한바퀴 돌아볼 수 있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귓전에 흘리며 난 그곳에서 초등학생인 나를 만났고, 이미 잊혀져버린 친구의 이름을 만났으며, 어린 시절의 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등하교를 하기 위해 다니던 길목에서 만난 빵집이 한동안 내 발길을 잡아매고 말았다. 30년 전, 옛 이름 그대로의 빵집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변해버린 와중에 내 소중한 기억을 증명할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어서 유난히 갈등이 많았던 대학시절, 결혼 후 살림을 차리고 첫아이를 낳았던 집과, 불과 5년 전에 살았던 집까지 돌아보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비록 이틀이라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지난 수십년의 세월과 내 살아온 흔적들을 되짚어본 나만의 역사여행이었고, 잃어버린 시간들을, 잃어버린 기억들을 되찾아 준 소중한 여행이었다. 게다가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날들을 차분하게 회상하며 중간정리를 할 수 있는 여행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삶은 한편의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수많은 사연으로 복잡하게 엮어져 있을 것이다. 차분하게 지금껏 살아온 집들을 찾아보면서 그 기억의 파편들을 주워 모으다보니 산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여름, 유럽인들의 과거를, 타인의 과거를 들춰보러 먼곳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한번쯤 짬을 내어 '나의 역사'를 찾아보는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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