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초, 오랜만에 여행 이외의 목적으로 혼자 집을 떠났다. 그리곤 일을 마치고 난 후 일본인 고문인 가네자와, 중국인 리꽝시 등과 의기투합, 중국과 베트남 국경 주변의 소수민족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험한 산길을 따라 하니족, 보이족, 묘족마을 등을 찾아다니다가 국경을 넘어 예정에 없던 베트남의 사파까지 가게 되었다. 사파는 이미 유럽인들에게 잘 알려진 관광코스였던 터라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는데, 관광코스에 포함된 소수민족 마을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태국의 치앙마이가 그렇듯 소수민족 사람들에게서 순수성은 사라져 버리고 오직 영악한 상술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주변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곳이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몽족마을이다. 몽족마을에 들어서자 지나다니는 여자들의 모습이 왠지 흉하게 보였다. 앞머리를 전부 삭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몽족마을에서 바친 황제의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를 본 황제가 격노한 것은 당연한 일, 결국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몽족여인의 앞머리를 밀어버리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전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마을로 들어서자 마침 한 집에서 큰 결혼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이 호기심에 잔치집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마을 촌로가 안을 향해 뭐라고 소리지른다. 아마도 외부에서 손님이 왔는데 접대하지 않는다고 질책을 했나보다. 집주인이 황급히 뛰어나와 굳이 우리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청하더니 상석을 내줬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교대로 찾아와 멋드러진 가락으로 권주가를 불러주고는 정체불명의 독주를 연거푸 권한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술이야 죽기살기로 마시면 되는데 문제는 안주에 있었다. 술잔을 들이키면 몽족 처녀가 안주를 쟁반에 받쳐들고 서 있다가 친절하게도 직접 입안에 넣어주는데, 그 안주라는게 전혀 익히지 않은 돼지비계를 시큼한 소스에 찍어주는 것이다. 입안에서 씹히는 날비계덩어리의 그 비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는 몽족사람들의 맑은 눈동자 때문에 태연한 척 덥석 덥석 받아먹을 수밖에... 술잔을 들이키고 비계덩어리를 삼킬 때마다 그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결국 어느 정도 취하고 나서야 그 마을을 벗어났는데,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비릿한 입맛에 토하기 시작해서 밤에는 설사로 하루를 마감해야 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이날 맛본 돼지비계는 큰 의미로 남게될 것 같다. 그냥 스쳐갈 순간의 인연이지만 돼지비계 때문에 몽족마을 사람들이 영원히 기억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돼지비계만 보면 몽족마을 사람들의 맑은 눈동자가 떠오를 것이다. 돼지비계가 질긴 인연의 끈을 맺어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