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내 유럽여행은 딱 그 말 대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할 정도로 겁이 없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진짜 여행은 계획 없이 출발해서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이라는 말이 멋있게 보였던 나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준비도 없이 무작정 유럽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는 책으로 엮어도 충분할 만한 내용들이었다. 간단한 기차여행에서 벌였던 실수만 해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출발 30분전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아야 하는 국제선 유로스타 열차를 10분전에 타겠다고 우기기도 했고 2등석 표를 지니고는 천연덕스럽게 1등석에 앉아 있었던 적도 있다. 한번은 급하게 기차에 올라 타고는 느긋하게 한잠을 자고 나니 기차가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던 적도 있다. 반대 방향의 기차를 잡아탄 것이다. 결국 하루 이상의 시간을 엉뚱하게 소비한 셈이 되었 다. 이런 실수들을 연이어 저질렀던 난 스스로를 자책하고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라했었다. 어렵게 떠나온 유럽여행인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내가 너무 미웠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실수들마저 추억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경험을 남에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다시 해볼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기도 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매달리고 부탁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도 있었다. 사실 지금은 그때 방문했던 관광지나 유적지보다는 기차 안에서 만나 친절하게 내 사정을 들어주고 걱정해 주었던 영국인 가족에 대한 기억이 더 소중하게 생각되며, 기차역 매표소의 친절한 흑인 아줌마가 더 기억에 뚜렷하다. 나는 과연 이리저리 헤매면서 시간을 낭비한 것이었을까? 결론은 '아니다'이다. 여하튼 나는 그 시간에 유럽에 있었고, 유럽인들을 만나고 있었으며, 유럽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에 호텔방에 누워 빈둥거린 것이 아니었다면 '낭비된 시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