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벳 시가체에서 라싸 가는 길, 제법 먼 거리였기에 서둘러 호텔을 출발했다. 그런데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서는 영 움직일 줄을 몰랐다.여간해서는 교통정체가 없는 티벳이기에 황당할 뿐이었다. 알고 보니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아들이 시가체로 오고 있는 중이어서 도로가 차단되었다는 것이다. 이 교통통제는 장장 4시간 30분 동안 이어졌고,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관광객은 하루 일정이 완전히 뒤틀리고 말았다. 반나절이 날아간 셈이니 말이다. 더욱 황당한 소식은 라싸에서 들었다. 어제 후진타오의 아들이 머무르는 동안 포탈라궁, 조캉 사원 등 라싸의 모든 유적지가 폐쇄되었고 도로도 전부 통제되었다는 것이다. 힘들게 이곳까지 찾아온 모든 여행자의 발길이 사전 예고 없이 권력자의 아들 때문에 묶이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들이 묶었던 호텔에서는 중국인 여행객 두 팀이 후진타오 아들 일행에게 예약된 방을 빼앗겨 낭패를 보았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우리들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어렵게 웃돈을 주고 구한 칭짱열차표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우리에게 표를 판 관리가 암표를 팔았다는 이유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관리를 구속시킨 또 다른 관리로부터 더 많은 웃돈을 주고 다시 표를 구해야만 했다. 티벳인의 성지 포탈라궁과 조캉사원, 중국정부는 이곳을 철저하게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발길에 치여 티벳 순례자들은 기도할 공간마저 빼앗긴 듯 했다. 그리고, 담슝 가는 도로 위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만났다. 청해성에서부터 벌써 1년 째 오체투지 고행을 하고 있다는 그들은 며칠 전 권력자의 아들이 지나간다는 이유로 통제되었던 그 도로 위에 온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한번 오체투지 고행을 하고 나면 온몸의 관절이 망가져 버린다는 험난한 길, 그 길의 종점에서 과연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티벳 독립문제는 세계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그런 만큼 티벳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달라이 라마를 생각하고 티벳의 정체성 훼손에 분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억압받는 티벳'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티벳에 관한 이런 관념들이 참으로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도로가 막힐 때도, 관광지로 변모한 포탈라궁에서도 정작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여행 나온 한족들과 외국인들이었지 티벳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로가 막히건 말건, 관광객이 들이닥치건 말건, 현대식 빌딩이 들어서고 도로 가득 자동차 경적소리가 그들을 위협하건 말건 그저 마니차를 돌리며 바코르를 순례하고 온몸을 내던져 오체투지에 전념할 뿐이었다. 그들은 지금의 이 현실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의 눈은 오직 내세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티벳을 점령하고 정치적 탄압을 가하는 중국정부, 그리고 티벳의 인권과 독립을 운운하며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여행자들… 그들 모두는 티벳을 영혼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정치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속물들이었다는 새악이 들었다. 나 또한 그 부류였기에 부끄러움을 안고 황급히 칭짱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 백년의 세월동안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티벳인들은 내세를 바라보며 순례의 길을 묵묵히 돌고 있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