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동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공된 기내식은 닭고기요리와 비빔밥이 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앉은 승객들에게는 닭고기 요리가 떨어졌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일반적으로 비빔밥이 제공되었다. 나로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인도인은 비빔밥을 받고서는 무척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멀뚱멀뚱 비빔밥을 쳐다보며 튜브에 든 고추장을 만지작거리는 그를 보면서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외국인들도 비비밥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내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추장과 참기름을 섞어 밥을 비비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고, 그 사람의 관심사와는 상관없이 포장김치를 가리키며 김치 만드는 법까지 줄줄이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도 맛있는 한국의 전통음식이니까 꼭 먹어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나의 들뜬 표정과 관심 때문인지 그 외국인은 밥 한톨 남김없이 다 먹어 치웠다. 김치까지도. 그리곤 씩 웃으며 김치가 맛있다고 했다. 우쭐해진 나는 이런 포장김치보다는 한국의 가정집이나 식당에서 먹는 김치가 훨씬 맛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 인도인도 한마디를 거든다. " 전 세계 어디에서나 카레를 먹을 수 있지만 인도에서, 그것도 우리 집에서 먹는 카레가 제일 맛있다." '카레'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코끝에 카레향이 스치는 듯했다. 해외여행 중 김치에 대한 그리움 못지 않게 내 마음속에는 카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인도 라자스탄 사막 한가운데에서 먹던 짜이와 카레의 맛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음식은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묘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꼭 그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비빔밥이 여러 가지 재료들을 섞어 하나의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듯이 여행지에서의 음식도 그러하다. 내가 인도의 카레향에 향수를 갖고 있는 이유 또한 카레가 맛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라자스탄에서 먹었던 카레에는 사막의 독특한 풍광과 함께 같이 했던 여행자들의 우정, 그리고 짜이를 따라주던 라자스탄 할머니의 따듯한 마음이 함께 어우러져 비벼졌기 때문이다. 나 덕분에 비빔밥과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를 표시하는 옆자리의 인도인을 보면서 여행자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먹건 그 음식에 추억과 정을 담아 비빔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