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유학시절, 벼르고 벼르던 카카두 국립공원으로 떠났다. 호주대륙 북쪽 해안에 위치한 다윈에 도착하는 순간, 4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첫날부터 나를 지치게 만들었지만 때묻지 않은 대자연의 품에 안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 분히 견딜 만 했다. 자동차보다도 큰 개미집이 우리의 시선을 잡는가 하면 홍수가 날 듯 폭우가 쏟아지다가 금새 해가 나오는 하늘은 인간에게 감히 자연을 예측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을 때의 일이다. 전기시설이라곤 하나도 없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랜턴 하나에 의지해 밥을 지었다. 언제나 야외에서 먹는 밥은 꿀맛... 하지만 밥을 먹다가 그릇 속을 들여다 본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밥알보다 많은 날파리들이 나보다 먼저 식사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 순간 저녁식사는 끝나고 말았다. 이어서 혼자 샤워장에 들어가 샤워를 시작하려는데 이곳에서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 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좁은 샤워장 안에서 여러 마리의 도마뱀과 셀 수조차 없는 날파리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그들만의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던 것이었다. 사람을 보고도 도망갈 줄 모르는 벌레와 그 벌레를 잡아먹는 무서운 곤충들, 그리고 그 무서운 곤충을 간식처럼 생각하는 도마뱀들을 보면서 도저히 샤워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대강 물만 끼얹고 나왔다. 식사시간에, 그리고 샤워하는 도중에도 끝없이 귀찮게 만드는 존재들이 나를 짜 증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텐트에 들어와 몸을 누이고 나니 정작 벌레들이 나를 귀찮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귀찮게 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카카두 국립공원의 하늘의 별과 후덥지근한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까지 원래 이 자리에 존재하던 것이었을 뿐, 내 것이 아니었었다는 생각 말이다. 카카두 국립공원의 밤은 대자연속에서, 그들만의 생존법칙에 따라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난 불시에 그 안에 뛰어든 이방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자연의 주인은 결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단지 대자연을 잠시 빌려쓰는 것일 뿐이라는 호주 원주민 애버리진의 생활철학을 새삼 되새기게 만드는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