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인간, 쿠마리의 삶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08.02.03

  • 조회수 :

    628

인간, 쿠마리의 삶

 
 지난 1월 4일 인도/네팔 출장 후 사진을 정리하면서, 네팔에 처음 방문했던 10년 전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틈틈이 썼던 여행기를 다시 펼쳐보았다. '소시민이라서 행복한 나' 라고 적어놓은 쿠마리 사진 엽서 한 장을 보며 여신 쿠마리, 아니 인간 쿠마리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하늘과 맞닿은 신들의 고향 네팔, 그 곳에는 살아있는 여신이 있다. 네팔의 절대권력자인 국왕도 그녀 앞에선 무릎을 꿇는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된 유일한 존재. 쿠마리의 신화는 약 천 년 전쯤 시작되어 네팔 네와르족의 전통이 되었다. 이 전설에 따라 쿠마리는 성이 '샤카(석가모니)'인 씨족에서 5세에서 8세의 여아를 대상으로 32가지의 신체적·정신적 기준에 따라 선발된다. 일단 기본적인 조건이 만족되면 쿠마리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테스트로서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에 갇혀 하루를 지내야 한다. 테스트를 통과한 아이는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짙은 화장을 하고 이마에는 '티카'라 불리는 제 3의 눈을 붙인 채 살아있는 여신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한번 쿠마리가 되었다고 영원히 여신으로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12세를 전후하여 첫 생리가 시작되면 신성함이 더럽혀졌다 하여 쿠마리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다시 세속으로 쫓기듯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화려한 여신으로서의 쿠마리만을 바라볼 뿐, 그녀의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인간 쿠마리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팔려가듯 여신이 되어 일년에 몇 차례 있는 축제에 금마차를 타고 나들이하는 것을 제외하곤 문 밖 출입이 금지된다. 한창 뛰어 놀 나이에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정규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있는 인형이 되어 대중들에게 가끔 손을 흔들 뿐이다.
 하지만 인간 쿠마리의 가장 큰 비극은 월경이 시작되어 환속했을 때 벌어진다. 쿠마리였던 여자는 액이 끼여 가족이 죽거나 남편이 일찍 죽는다는 전설을 믿고 있는 네팔인들은 그녀를 결코 가까이 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녀를 멀리한다. 결국 대부분의 쿠마리들은 국경근처 창녀촌에서 생을 연명하게 되는데, 이러한 쿠마리의 인간적 삶을 네팔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문제로 인해 최근 네팔 대법원은 쿠마리 문화의 인권침해적 요소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살아있는 여신은 법정에 서게 되기도 했다. '전통이냐 인권이냐' 라는 논쟁을 떠나 인간으로서 신이 된 아이, 쿠마리는 네팔인들이 만든 노리개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여신 쿠마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 쿠마리의 행복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