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초 문화관광 해설사들과 백두산을 찾았다. 3월의 백두산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적하고 조용해서 너무 좋았다. 더욱이 며칠 전부터 내린 눈은 백두산을 새하얗게 수놓고 있었는데 마치 눈의 여왕이 살고 있는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키보다 높이 쌓인 눈은 백두산의 하이라이트인 천지를 오르는 데에는 커다란 복병이었다. 평소에는 천지 근처까지 지프차가 운행을 하지만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운행이 중단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먼길을 달려서 온 백두산이기에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결국 천지까지 도보로 오르기로 하고 신발끈을 졸라맸다. 천지로 오르는 길은 장백폭포 옆쪽의 가파른 계단길을 이용해야 했다. 이 길은 군데군데 허리까지 쌓인 눈들이 길을 막고 있어 오르기 쉽지 않았다. 더구나 좁은 계단이 이어지는 터널 속을 오를 때는 경사도가 심했고 짙은 어둠 속에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어 두려움과 불안감이 밀려 왔다. 이윽고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이번엔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칼바람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희뿌연 시야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눈 덮인 벌판과 산, 그리고 천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떼고 있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뿐이었다. 천지 가는 길은 길도 보이지도 않았고,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도 눈 속에 파 묻혀 앞서 간 일행 이 남긴 발자국만이 유일한 길잡이였다. 어느새 주변에는 날카롭게 휘감기는 바람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고요한 적막이 계속 되었다. 이 순간 모두 함께 천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새하얀 허허벌판 위에 오직 나 자신만이 홀로 남겨져 있다는 외롭고 허전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드디어 천지에 도달했다. 함께 동행한 가이드가 "이곳이 천지입니다"라고 알려줘 걸음을 멈췄을 만큼 천지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도 눈에 덮여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천지를 마주하고 섰다는 벅찬 감동과 함께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만세를 부르고 뒹굴며 눈 속에 몸을 내 맡긴 채 한동안 그렇게 말 없이 천지를 바라보았다. 비록 푸른 물빛을 눈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 이상의 훈훈한 무언가가 마음속을 채워 오는 것 같았다. 깊은 눈 속에 파묻힌 판자집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백두산을 내려오는 도중에도 가슴 가득 벅찬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악천후의 힘든 여건 속에서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오른 감동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함께 한 일행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분들이었으니, 아마도 그 분들의 감동은 더욱 컸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