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몽골 고비사막과 홉스골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작성일 :
2008.09.09
조회수 :
5707
![]() 이 글은 김한종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김한종님은 2008년07월08일부터 07월16일까지 9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몽골 고비사막과 홉스골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초원과 사막의 나라 Mongol 여행기 |
| 글: 김 한종 사진: 이 영옥 |
![]() (전경사진: Gobi Desert 풍경) |
| 1. 몽골 전도 |
| Ulanbaataar-Terelj-Dalanzadgad-Gobi Desert-Murun-Khvsgul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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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몽골 고비사막 탐사와 홉스골 여행기 |
|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사막 탐사여행이 드디어 실천단계에서 바이칼 행이 어려워지면서 위기를 맞이하였다. 여행 매니아들의 모임이라 그래도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여권에는 몽골 입국 비자와 Russia 비자가 한 페이지씩 차지하였다. 비자내기에도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였다. 몽골의 수도 “Ulaanbataar” 의 밤 풍경 대한항공 국적기인 KE 867 기는 몽고의 수도 “Ulaanbataar” 를 행해 활주로를 박차고 힘차게 이륙하였다. 시차는 한 시간 늦은 곳으로 현지시간 10:30분 도착 예정으로 약 1988 km를 날아가야 한다. 비행기는 황해를 거처 발해만 상공을 나르고 한 시간 만에 Beijing 상공을 날라 사막 지대를 지나 어둠이 내린 가운데 “Chinggis Khan” 공항에 착륙하였다. 공항을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간다.
(사진: 울란 바타르 국제공항의 모습) 버스에 오르니 안내양 인사. 이름이 “아뜨거” 란다. 웃음을 자아내나 몽골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아가씨라 관심의 대상이었다. 시내로 들어가니 가로등이 밝지 않아 침침하나 정부청사가 있는 광장에 다가오면서 밝게 변하면서 서서히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온후인지 도로에는 물이 많이 고여있어 튀긴다. 도로 가에는 2~3층 건물이 보이고 컴컴하다. 중심가는 형광등이 밝게 켜지고 외국어 간판도 눈에 띤다. 정부청사 앞 광장을 지나 최근 선거부정 항의로 불에 탄 인민 혁명당 당사를 지나간다. 도심을 지나 우리는 몽고의 현대식 호텔인 한국계의 “Sunjin Grand Hotel”에 도착하니 11:30분. 호텔 정문에는 우리나라 모 지방 자치 단체장 내외가 이 호텔이 온다는 환영 프랑카드가 걸려있다. 몽골의 첫날밤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참고로 몽골은 선거부정 항의에 대해 최근 계엄령을 선포한 후 4일만에 정상화 되었다. Mongol 이란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Mongol 이란 용어는 원래 “용감성”이란 뜻을 가진 부족 명 이었으나 징기스칸이 부족을 통합 함으로서 민족명인 Mongol 로 변화 하였고 수도 Ulaanbaatar 란 “붉은 영웅”이란 뜻이다. 총면적 156,4 ㎢ 로 한반도의 7.4배, 국토는 목초지 80%, 산림 10%, 경작지는 고작 1%로 사막이 전국토의 40%, 평균고도 1500 m 의 고원 국가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 겨울이 길고 춥고, 여름이 짧다. 맑은 날이 연 250 일 이상, 4~5월은 바람의 위력이 초속 2~5 m 로 엄청나다. 행정구역은 21개 Aimag(도행정 구역) 으로 구성. 인구는 고작 280만, 인구밀도 1.6/㎢이다. 할흐 몽골족(Khalkh Mongol) 이 79%, 카자흐족 5.9%, 기타 17개 부족으로 구성. 언어는 할흐 몽골어를 90% 가 사용, 문자는 러시아 문자를 차용한 키릴문자, 종교는 라마불교 90%, 이스람교 5%, 이다.
(사진: 울란바타르 중앙광장 전경) 1인당 GDP(2006년) 950$, 자원으로 석탄, 동, 금, 철, 아연, 우라늄, 석유 등이 풍부, 매년 몽고 혁명 기념일인 7월 11일을 기해 7.11~13 일 까지 “나담 축제”를 개최하여, 씨름, 말 타기, 활 쏘기 등으로 전국적인 행사를 연다.
(사진: 몽골인의 옛 성황당의 모습) 뒤에는 하얀 Ger가 처져 있는데 “Art Shop” 이라 조그만 표지가 Ger 밖에 내걸려 있고 기념품 점이다. 도로 주변 멀리에는 괴상한 모양의 바위들이 늘어선 연봉이 이어져 있다. 날씨가 흐려지면서 빗방울이 던지기 시작하였다. 가는 도로변에는 이상한 바위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그 중에 한곳인 “독수리” 바위로 올라가 본다. 넓다 란 바위 사이에는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예전에 라마승들의 수도처든가 피난처로 보인다. 다시 버스를 달려 고개를 넘어가니 Terelj 공원 입구에 이른다. 도로변에는 곳곳에 10~20여 개의 Ger이 설치되어 있는 휴양지가 나오고 본부 건물은 하얗게 지어져 푸른 초원과 어울려 한가하고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다. 청록색 물감으로 칠한 듯한 초원 위에 드문 드문 흩어져 있는 하얀색의 Ger, 소, 양, 말떼가 노니는 목가적인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주위의 돌산들이 푸른 초원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초록색의 나무들이 신비를 더해준다. 가을 철에는 단풍이 더욱 장관을 이룬다.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과 소나무가 무성한 산에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곳에 흰 Ger 와 양떼들, 유목민의 모습은 복잡한 현대인에게는 시간과 문명이 정지된 느낌을 준다. 공원의 관통도로를 가면서 책 읽는 바위, 거북바위, 독수리바위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순수하고 자연 그대로의 때묻지 않은 평화로운 풍경은 답답한 문명사회에서 들어간 사람의 마음을 확 열어준다. ![]() (사진: Terelj 초원의 풍경) 초원을 지나 거북바위로 향하여 간다. 바위 두 개가 포개어져 있어 마치 거북이 기어가는 모양이다. 그 앞에는 낙타가 손님을 기다리고 선물, 기념품을 파는 사람도 있다. Ger로 된 “Art Shop” 에도 들어가 본다. 이곳에는 조그만 Ger 모형, 불상, 몽고의 전통모자, 의류 등 다양한 소품이 진열되어 있고 가격은 Us Dollar 로 표시되어 있다. 부부가 운영중인 곳으로 이곳이 아마 주거지를 겸한 모양이다. 여자 어린아이도 겔 안에 있고 엄마도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이곳에서 공원의 자연보호에 관한 오래된 책 한 권을 15$를 주고 구입한다. 걸어서 거북바위 위로 올라가 본다. 바위가 풍화되어 미끄럽지는 않으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다시 내려온다. 바위 주변에는 3~4군데의 Ger Resort 가 있고 그 주변에 Restaurant 이 있어 관광객을 맞이한다. 비가 오기 시작하여 우리는 차로가 식당으로 향한다. 점심은 우유, Soup (고기), 메인으로 밥과 고기접시가 나오고 후식이 따로 나온다. 비가 점점 굵어져 한 시간 정도 담소하며 기다린다. 이번에는 초원에서 말 타기가 예정되어 있는데 걱정이다. 그간 일행들의 함께한 여행이야기에 시간을 보내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비가 멈추지 않아 그대로 우중이라도 말 타기를 강행한다. 승마체험에 나서서 우비를 입거나 고어택스로 무장한 채 말에 오르니 의외로 편안하다. 각자 말을 타고 아까 오던 방향으로 공원 숲 속으로 길을 잡아간다. 말이 영리한지라 저이들이 싼 똥도 밟지 않고, 물이 고인 곳도 피해가며 빗줄기를 뚫고 나아간다. 비가 앞으로 갈겨오는 바람에 우비를 입은 것이 별 소용이 없다. 아랫도리가 젖어 말 안장에 까지 물기가 번져 제법 차갑다. 조그만 냇물을 건너가면서 물이 뛰기고 물살이 빠른 곳에서는 말들이 대각선으로 간다. 말들의 판단력이 놀라울 지경이다. 그러는 사이 깊은 곳에서는 물이 뛰어 올라 신발이 젖고 양말이 젖어 오른다. 숲으로 들어가면서 나뭇가지에 머리를 조심하여야 한다. 말은 자기들끼리 대오를 형성하여 함께 간다. 이곳의 말은 아주 잘 길들여진 말이라 손님을 잘 다룬다 할까? ![]() (사진: 비가 오는 가운데 승마체험에 나선 모습) 반환점에 도착하여 Ger로 들어가 난로 불에 몸을 말린다. 그 사이에 비는 점점 거세게 내려 Ger 천정을 때린다. 난로 가에서 우유를 한잔씩 마시며 모처럼의 승마행사에 비가와 다 함께 아쉬워한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왕복하기로 하니 한참 만에 다행히 비가 그친다. 어느덧 구름이 벗어지며 해가 나기 시작, 언제 그랬냐 듯이 하늘이 파래진다. 변덕스런 대륙기후의 탓인가? 아까 오던 길과는 다르게 가는데 말은 가면서도 먹이를 뜯어 먹는다. 제자리에 돌아오니 비가 그치어 모두 아쉬워하면서 말 주인에게 말을 인계하며 첫 번째 승마체험 행사를 끝내고 차에 오른다. 날이 화창하게 개면서 하늘이 파래지고 평원의 풀밭과 더불어 아주 전형적인 초원 풍경이 끝없이 전개된다. 우리는 도중에 차에서 내린다. 한없이 펼쳐 진 초원위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 곳이다. 우리는 지는 햇살을 맞으며 자연의 향기로움을 마음껏 음미해 본다. 노란 양귀비를 비롯한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한껏 화사함을 더해준다. 햇빛이 비추면서 푸른 초원은 점점 그 신비를 더해간다. 초록의 동산 “Tiara Resort” 에서 푸른 꿈을 간직하고 우리는 오늘 공원내의 “Tiara Resort” 라는 곳에서 하루를 묵기로 한다. 뒤로는 돌산이 둘러있고 앞으로는 건너 산까지 아주 넓은 평야 고원 지대에 하얀 Ger 의 모습은 낭만적이고 시적인 모습이다. 갖가지 들꽃이 만발한 풀밭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가운데 Ger이 20여 개가 2줄로 정열 하듯이 설치되어 목가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배정된 Ger 2 안으로 들어가 여장을 풀고 난로를 피우고 비에 젖은 옷과 신발을 말린다. 빛이 들어오는 천정 창구로 인해 안은 환하게 밝다. 우리는 나와서 이번에는 초원을 산책하며 야생화와 대화를 나눈 후 다시 바위산으로 올라 시야를 넓혀 보기로 한다. ![]() (사진: 우리가 들어간 Tiara Ger와 주변의 양떼 모습 ) 산 위의 바위는 오랜 풍화작용으로 표면이 부서져 미끄럽지 않아 편하게 걸어 올라 멀리 건너 산의 지는 태양의 음영을 감상하고, 지구상에는 참으로 신비한 자연이 골고루 존재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다. 오늘의 저녁 파티 장소로 출발하여 30여분 초원을 관통하여 가면서 마음까지 넓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마을에 도착하니 Ger 안에 식탁을 마련 중이었다. 우리는 테이블을 Ger 밖 풀밭으로 내놓고 풀밭에 앉아 파티를 벌이기로 한다. 식사로는 몽골 전통 양식인 “Hurgug” 이라는 양고기 찜에, 맥주, Chinggiskhan 보드카, 김치, 상추, 양파, 푸른 고추, 오이, 파, 마늘 등으로 상이 푸짐하게 장식된다. 밥이 등장하니 오늘 처음으로 식사를 해 본다. 초원에서의 서투른 만찬은 낭만적으로 한 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 (사진: 초원에서의 저녁 파티 전경) 민속공연과 별자리 축제 다시 오늘의 민속 공연과 별자리 찾기 장소로 옮겨가니 시간이 남아 다시 능선으로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한국에서 온 이화여대 “Habitat” 운동 회원들이 떠드는 소리와 더불어 대학생들과 섞이어 산으로 오른다. 산에서 어둠이 내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다시 내려와 식당을 겸한 홀에서 휴식하며 오늘의 민속 공연을 기다린다. 몽골은 7월 11일이 독립기념일이고 11~13일 기간이 이 나라의 최대인 “나담 축제” 기간이다. 십 여명의 남녀가 몽골 전통 의상과 모자를 쓰고,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불러 흥을 돋운다. 그러나 역시 언어의 소통 부재로 그냥 공연을 감으로 본다. 그들의 몸짓, 동작이 절도 있게 움직이고 노래도 유연하게 부른다. 중간에 “사랑밖에 난 몰라” “남행 열차” 가 한국어로 불러 지면서 분위기는 고조되어 모두 합창. 우리를 안내하던 Manager 여인의 남행열차 노래 솜씨는 오늘의 하일라이트. 남녀의 애정을 표현하며, 애정의 도피를 노래와 춤으로 공연하는 등 10여 가지의 공연이 끝나니 별이 총총한 어둠이 내리고, 추위가 엄습한다. 이번에는 “별자리 찾기” 설명회가 마련되어 실내에서 화면으로 해설을 듣고 1~5등급의 별과 16~20 등급의 별을 구별하는 방법도 배운다. 젊은이의 몽골어 해설에 통역이 영 아니다. 밖으로 나오니 북극성, 북두칠성, W 자의 카시오페아, 안드로 메타 등의 별자리가 뚜렸하였고 정 중앙의 삼각 점의 별을 찾아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태양계의 금성, 목성은 빛을 발하지 않는 별인데도 유난히 빛난다. 추운 공기를 안고 다시 “Tiara Resort” 로 귀환, 12시 경에 난로 불을 다시 피우고 오늘의 하루를 마감한다. 천정 사이의 난 통풍구로 하늘의 별을 보며 꿈나라로 향한다. Ulaanbaatar 독립기념 행사와 시내를 둘러보고 다음날 아침에 늦게 기상하여 우리는 주변을 한 시간 넘게 산책 한 후 늦게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모인다. 우리 일행 만이 빵으로 아침식사를 여유 있게 마친다. 천천히 출발하여 다시 Ulaanbaatar로 가기 위해 어제 갔던 길을 되돌아 온다. 성황당이 보이는 곳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강을 벗어나 고개를 오른다. 어느덧 Terelj 공원을 벗어난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 까? 우리는 어제 올랐던 성황당에 다시 올라 무사여행을 기원 하며 이제는 익숙하게 세 번씩 돌무더기를 돌아본다. 강 건너 그림 같은 풍경을 사진에 담아본다. 어제 오면서 유목민들의 공동묘지가 비와 안개로 보이지 낳았는데 오늘은 산뜻하게 푸른 초원과 어울려 돋보인다. 여기서 또다시 부산 동의대 대학생 한국 봉사단을 만나 이국 땅에서 한국 젊은 이들의 기상을 느껴본다. 울란 바타르 교외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많고 트롤리 버스가 다니고 길이 자동차로 막힌다. 사원 옆에 Club이 보이고 버스에는 300, 정기 버스 100 등 가격이 써 있다. ![]() ( 사진: 독립기념 행사로 Chinggis Khan 동상에 참배하는 요인들) 13구역에 이르니, 씨름 경기장이 왼쪽으로 보이고 “Yonsei Friendship Hospital” 2층 건물이 보인다. 도로는 차로 만원, 울란 바타르 호텔, 선거 부정으로 불탄 인민 혁명당 당사, 문화 센터, 아파트 등이 시커멓게 탄 채로 있어 흉물스럽다. 중앙광장에 들어오니 7월11일 독립 기념일 행사로 의장대가 도열, 정부청사 앞에 거대한 “Temuchin”(테무친-징기스칸의 다른 이름) 동상 앞에서, 대통령 이하 정부 관리, 외교사절들이 동상에 경례를 한다. 순서대로 동상 앞을 통과하며 묵념으로 예를 올린다. 다음은 독립 영웅 “수흐바타르” 동상 앞에서 헌화를 하며 대통령부터 차례로 묵념순서이다. 1921년 7월 11일 이 독립 선포일이니 이번이 87 주년이다. 당시 러시아의 영향권인 외 몽골 만 독립, 내 몽골은 중국 영향권 하에 자치주로 편입되어 있어 내,외 몽골의 독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기념식을 한동안 관람 후 이번에는 정부청사를 지나 가니 한국식당 “Soraksan” 이 나오고 말고기 전문 식당이란 간판을 내걸고 그냥 지나가는 우리일행을 주시한다. 점심은 전통 “Altai Mongolian Barbecue”(1206년 창업)에서 뷔패식으로 진행한다. 말고기, 양고기, 되지 고기, 쇠고기 등 육류를 가져가면 익혀주는 방식이다. 고급식당에서의 한시간 정도 식사 후 담소를 나눈 후 오후에는 “Gandan” 사원을 방문 한다. ![]() (사진: Gandan 사원-대불이 안치된 곳) “Gandan” 사원은 17세기에 설립한 라마교 사원으로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사원으로150명의 라마승이 있다. 중앙사원에 거대한 불상이 화재거리다. 높이가 대단하여 올려다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동으로 제작한 후 도금하여 금빛으로 빗난다. “옴마니 밤배”하며 마니차를 돌리며 대불(大佛)을 한 바퀴 돈 후 나온다. 광장에는 비둘기가 너무 많으며, 먹이를 사라고 아이들이 졸라댄다. 다시 버스로 전승 기념탑으로 간다. 가는 동안 얕은 산에 돌 조각 2만여 개를 모아 징기스칸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 돋보인다. 2차 대전 당시 Russia와 더불어 참전한 탱크의 기념비를 보고 산 위에 세운 전승기념탑으로 오른다. 산길을 따라 등산로로 오르니 둘레에 색 갈을 내어 조각한 기념탑의 문양과 중 간에 우뚝하게 솟아있는 기념탑을 사진에 담아본다. 내려와서 이번에는 이 태준 기념공원으로 이동한다. Dr Lee Tae Joon Memorial Park 대암(大岩) 이 태준(李 泰俊) 선생은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 1911년 2회 졸업. 김 필순, 주 현칙과 함께 도산 안 창호의 “청년학우회”에 가입. 독립 운동을 하며 세브란스 병원에 인턴 근무 중 1912년 중국 남경으로 망명. 그 후 “기독회 의원” 의사로 근무. 김 규식 선생의 권유로 1914년 몽골 후레로 와서 “동의 의국” 이라는 병원을 개설. 당시 화류병 퇴치에 앞장 섰으며 몽골의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로 1919년 최고 훈장을 받았다. 1921년 2월 일본 군과 내통하던 러시아 백군에 의해 피살. 당이 나이 38세로 아까운 인재였다. 1980년 한국정부는 뒤늦게 대통령 표창 추서. 2002년 7월 7일 한국 몽골학회와 연세의대 동의 의학 박물관의 주선으로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이국 땅에서 순직한 애국자를 추모하면서 한 동안 조국이라는 단어를 생각 하였다. ![]()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면서 몽골인은 석기시대부터 남부 고비 사막에서 거주, BC 1 세기 청동기, BC 3세기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부족연합을 형성 하였고, 근대사는 Chinggis Khan 과 더불어 시작. 1189년 테무친이 징기스 칸에 추대되면서 몽골제국을 창건, 소수부족을 통합하면서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원(元) 왕조(1271~1368) 를 세우면서 중국대륙 통일. 수도 베이징으로 옮김. 국운이 융성하다 마지막 황제 “토곤데모르”(1330~1390)인 원 순제 때인 1368년 주 원장(朱 元璋)이 세운 명(明)에 멸망하였다. 그 후 몽골은 고비사막으로 쫓기어 북원(北元) 이라는 고립국가로 남았었다. 1616년 누르하치에 의해 건국된 후금(後金)이 1636년 국명을 청(淸)으로 바꾸고 내몽골 지역을 복속시키고, 1644년 중원을 제패함으로 몽골은 청 왕조의 속국이 되었다. 결국 17세기에는 몽골이 러시아와 중국에 병합된다. 바이칼호 주변의 브리야트 몽골 족은 러시아에 병합되고 내,외 몽골은 청조에 편입되고, 청의 속국으로 되니 몽골인은 황폐한 초원지대에서 유목민의 삶을 영위하였다. 1911년 청조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탄생 속에 몽골인 활불 제 8대 “젭춘 담바흐탁트”를 국가수반으로 (보그드 항) 추대하면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견제로 실패. 1915년 몽골, 중국-러시아의 카흐타 조약으로 중국의 자치구로 전락한다. ![]() (사진:대 몽골 제국을 건설한 주역들과 영역도) 1920년 러시아의 반혁명 백군 세력이 패주해 몽골로 들어오면서 울란바타르 지역에서 중국군을 몰아내고 달라이 라마를 수반으로 정부를 세운다. 나라를 되찾게 된 몽골인은 러시아 백군의 원조로 중국군을 추방하고 “수흐바타르”가 1921년 수도 후레 (후에 울란바타르)를 점령. 7월11일 독립을 선포. 1924년 몽골 인민 공화국을 선포함으로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내몽골 지역은 면적이 110만 ㎢로 한반도의 5배나 되고 인구도 2350만명이다. 2 차 대전 전까지 일본군이 장악, 그 후 일본이 패망하자 중국이 다시 내몽골을 장악하고 1947년 5월 1일 중국의 첫번째 자치구로 수도는 후허하오터(呼和浩特)로 되었다. 자치구가 되면서 몽골족은 중국화가 가속화되고 소수가 되고 있다. 외몽골 지역은 러시아의 영향력 밑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몽골 공화국(외몽골)과 내몽골 자치구(중국 자치구)로 분할되어 1961년 U.N 에 몽골 공화국으로 가입. 1964년 중국과 몽골의 국경이 확정되면서 내,외 몽골의 분열이 고착되고 통일은 요원한 것이 되고 말았다. Gobi 사막 횡단 탐사를 하면서 우리는 시내 관광을 마치고 16:00시에 울란바타르 공항으로 출발. 공항에 이르니 우리가 가야 할 Gobi 사막의 작은 공항 “Dalanzadgad”로 향하는 Aero Mongolia 여객기는 한 시간이 지연된다고 한다. 이유는 승객이 적다는 것이란다. 까다로운 국내선 세관검사에서 등산 Knife가 압류되는 사태 발생. 유치하고 증서를 받아두고 출국할 때 찾아가기로 한다. 무료하게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끝에 42인승 프로펠러 추진기에 오르니 승객은 우리 일행 외 3명이 고작. 모두 18명이 비행기를 타니 에너지가 비싼 요즘 사정에 이해할 만도 하다. Gobi 란 몽골어로 “풀이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을 의미한다. 사막은 생명체가 살아가기 힘든 불모지와 황무지, 모래사막, 자갈밭과 초원이 함께 있는 곳이다. 이곳은 황량한 벌판과 산악지대, 움직이는 모래산과 언덕 등 모든것이 혼재된 곳이 바로 남 Gobi 지역이다. 기내에서 내려다본 평원은 어제의 Terelj 와는 딴판이다. 오늘은 온통 황무지의 황량한 모습이다. 오후 20:10분 조그만 비행기는 “Dalanzadgad” 라는 남부 고비 사막지대의 관문인 한적한 시골 비행장에 사뿐히 내려 않았다. 연착된 시간임에도 아직 태양이 높다랗게 떠있다. 공항을 나와 러시아산 중고 Jeep차 4대에 16명이 분승하여 해가져 가는 사막고원을 달려간다. 비행기 연착시간을 만회라도 할 심산으로 멋진 일몰을 감상하면서 차는 달린다. 무서운 속도로 차는 달리며 어두운 가운데도 사막은 살아있는 모습이고 군데 군 데 풀이 돋아있고 방목된 말이 눈에 띤다. 약 100 km 의 거리를 2 시간 이상 달린다. 사막에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구름에 퍼진 신비한 석양을 감상하며 달린다. ![]() (사진: 사막에서의 일몰 광경) 10:30분이 되어서야 “Bayanjag” 이라는 곳에 캄캄한 상태에서 도착하였다. 서둘러 Ger를 배정 받고 저녁식사를 시작. 식당은 대형 Ger로 깨끗하고 우리가 들어가자 마유주, 전통 차와 빵이 나오고 밥과 더불어 종갓집 김치가 등장하여 놀라게 하였다. 징기스칸 보드가가 드디어 데뷰하였다. 우리 부부는 Ger을 배정받고 샤워장에서 모처럼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씻을 수 있었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 최초의 샤워시설이었다. Ger 에는 전기 불이 들어오고 아늑하여 난로를 피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따듯하였다. 모처럼 숙면을 취하였다. 다음날 아침 06:00 시경 기상하여 약 55 km 거리에 있는 “Moltsog els” 에 한 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서 작은 독수리 계곡, 일명 “Grand Canyon” 이라 불리는 “투그리김시레” 계곡에 이른다. 붉은 바위가 산화되어 부서져 내리고 뾰족한 봉우리가 수없이 돋아나 마치 미국의 Grand Canyon 을 방불케 하였다. 붉은 바위지대를 내려다보면서 자연의 신비한 색 갈에 감탄하였다. 능선을 건너가서 오래된 수령의 바얀작 나무 한 그루가 바위틈에서 기생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곳에서 이 일대의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감상하였다. ![]() (사진: 작은 Grand Canyon 이라 불리는 계곡 위에서) 이곳 아래 에서 1922년 고고 생물학자인 “Roy C Andrew” 라는 사람이 수 많은 공룡화석과 알 등을 발굴하였다. 이곳이 예전에는 수목이 무성한 곳이었으나 기후 변동에 의해 멸종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공룡 뼈 등은 울란바타르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다 한다. 이곳에서 나오면서 우리는 낙타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였다. 낙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토착민들의 조그만 기념품을 좌판 위에 전시한 것을 둘러보았다. 태양열 집열판을 축전지에 연결하여 냉장고를 가동시켜 시원한 음료수, 맥주도 파는데 생각보다는 비싸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낙타의 무리가 멀리 캐년사이에서 나타났다. 몰이꾼들이 낙타를 부지런히 몰아오느라고 바삐 움직인다. 우리는 여러 사람의 낙타 소유주의 안내에 따라 쌍봉낙타에 오르니 시야가 멀리 트인다. 상당히 높은 낙타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서서히 출발하니 불안감이 가시면서 차차 안정된다. 낙타가 빨리 가기를 바라나 말과 달리 고삐가 없으며 추락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천천히 낙타를 인솔하여 가는 몰이꾼들은 이제 그 옛날 사막의 대상(隊商)이 아니다. 사람에 의해 길들여진 상업용 낙타라 느낌이 다르다. 다리를 약간 저는 팀장이 4마리를 안내하고 우리는 각기 다른 소유의 낙타를 타고 2 km 정도를 낙타대열로 행군을 하면서 낙타와 호흡을 함께하며 간다. 그 놈들은 가면서 소변도 보고, 둥근 배를 씰룩이면서 초원을 서서히 간다. 2시간 정도를 타고 와서 내린다. ![]() (사진: 우리 일행이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이곳에서 우리는 오던 길로 다시 차를 타고 Ger Camp로 돌아오니 09:00시가 넘었다. 잠시 후 식당에서 늦은 아침식사로 아이락(말젓 발효주), 전통 수태차가 먼저 나오고 빵, 흰 쌀밥, 야채, 김치, 치즈, 오이 등 다양하게 나온다. 기대이상의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트렁크 등 모든 짐을 차에 싣고 고비사막 남부를 향해 장거리 사막탐사 이동을 시작한다. 10:00 시경에 출발하여 우리는 오늘 사막을 종단하여 200 km 이상을 달려야 한다. 한 시간 이상을 달리다가 돌연 우리 차가 시동이 꺼진다. 어제부터 시원치 않아 보이더니 캬부레다가 말썽인 모양이다. 사실 사막 여행은 비포장길이라 차량 고장이 자주 일어나 전번에 예멘 사막에서의 고생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고장을 감안하여 차량대수를 4대로 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차로 이동하여 한 시간을 달리니 이번에는 넓은 호수가 나타나다. 호수 가에는 키가 작은 자작나무가 푸른 잎을 뽑내며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사막한가운데도 이런 곳이 있다니 예상을 뒤집었다. 이곳에서 내려 우리는 자작나무 숲으로 올라가 평원을 바라보니 Gobi 사막에서의 오프 로오드 코스 지도 ![]() 주위는 온통 불모지이고 이곳만이 푸른 물에 둘러 쌓인 모래 언덕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무와 물이 이토록 풍부하니 참으로 신기한 모습이다. 이곳에서 한동안 휴식하며 걸어서 호수 가를 산책한다. 조그만 물고기가 서식하며 물은 맑지가 않다. 사막에는 비가 오지 않는 지역으로 생각되니 가물 때는 어떻게 물고기가 견딜 가? 조그만 웅덩이는 말라 갈라져 진흙 바닥이 거북이 잔등처럼 무늬가 요란하다. 우리가 탔던 차가 고장을 수리하여 어느새 뒤따라 왔다. 이곳에서 시원한 물가로 산책을 한 후 다시 출발하여 사막을 가로 질러 달려간다. 화장실은 어쩔 수 없이 천연을 이용한다. 오늘은 하루 종일 고비사막을 종단하여 남쪽으로 가야 한다. 황량한 사막을 먼지를 일으키며 차들은 레이스 하듯 달려가니 앞차를 찾기가 쉽지 않다. 먼지를 일으키며 아주 멀리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덜컹대기를 반복하여 아침 먹은 것이 어떻게 되나 보다. 우리는 징기스칸의 기마병처럼 거침없이 달려가며 신기루 현상을 보게 된다. 거대한 호수가 멀리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실크로드 트레킹과 흡사한 정경이다. 그저 파란 하늘과 뭉게 구름이 드문 드문 나타나는 유목민의 하얀 Ger 와 어우러져 미지의 세계를 이어간다. 유목민의 터전을 찾아서 한 시간 정도를 레이스 하듯이 달려가다 선두차량이 언덕아래 풀밭으로 들어간다. 13:00시가 되어 점심때가 되고 자연배설도 생각하여 언덕 아래에 자리잡는다. 양쪽으로 갈려 사막에다 시원하게 방뇨하니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 모래 언덕아래 뙤약볕에서 차량을 그늘 삼아 도시락을 나누고 물 한 병, 빵 한 개씩을 차 안이나 모래밭에서 점심으로 먹는다. ![]() (사진: 가도 가도 끝없는 초원에 나타난 양떼들) 점심은 마친 후 쓰레기를 박스에 담아 사막에 가사들이 방치한다. 자연보호나 폐기물에 대해서는 영 관심이 없다. 음식물 쓰래기는 짐승의 먹이가 되고 기타 폐기물은 사막의 고온으로 다 녹아버리는 것이다. 식사 후 다시 사막을 끝없이 달려간다. 아주 먼 곳에 한두 개의 Ger이 나타나니 유목민들의 거처인 모양이다.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사막을 달리기를 한 시간, 이번에는 양떼 200~300마리가 우리 차 앞에 나타난다. 이곳에서 하차하니 양들은 샘터에서 물을 먹기 위해 이곳으로 이동하여 온 것이다. 양몰이 꾼이 큰 고무 두레박으로 우물에서 물을 퍼서 길다란 세멘트로 된 물그릇에 부으니 양들이 물을 먹고 물러난다. 신기하게도 양들은 차례를 지키며 물을 먹고 물러난다. 나머지는 차례를 기다린다. 그 앞에는 기념품 노점이 여러 개 있고 멀리로 마을이 보인다. 양떼의 모습을 한동안 보면서 사막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런 곳에 지하수를 개발하여 우물을 만들어 가축에게 먹이는 유목민들의 삶의 고단함을 몸으로 느껴본다. 차는 또 끝없는 사막고원을 달려 이번에는 바위산 언덕 밑에 멈춘다. 언덕으로 올라 휴식을 취하며 바위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아본다. 그 아래 멀리 유목민의 집을 방문하니 여름철이고 방목 중이라 비어 있다. ![]() (사진: 유목민의 빈 집 전경) 집이라야 돌로 둘러막고 겨울을 나기 위한 가축우리가 전부이고 그 옆에 겨울 한철을 거주하는 나무로 서린 거주지가 있다. 담 위로는 돌 위에 가축똥을 말려 쌓았고 마당도 가축분뇨 말린 것으로 가득하다. 이것이 아마 겨울 연료일 것이다. 똥으로 다져진 흙으로 담도 쌓았다. ![]() (사진 : Juulchin Camp 의 Ger 전경) 다음날은 모래 산의 능선을 바라보면서 사막을 달리니 길도 고르지 못해 이제는 허리가 아프고 궁둥이가 멍이 들 지경이다. 차는 바운딩을 게속하고 먼지는 꼬리를 물고 사막횡단은 정말로 고행길이다. 50 km 를 달려가야 다음의 목표지이다. ![]() (사진: Yolinam 계곡의 얼음 모습) 계곡입구에 이르러 말 타는 곳에 이른다. 이번에는 백마에 올라타고 개선 장군처럼 1 km 정도를 계곡으로 들어가 말에서 내려 다시 걸어간다. 우리는 “Yolinam” 계곡 얼음 골로 걸어서 깊이 들어간다. 독수리 계곡이라 이름 붙여진 계곡 입구에서 물을 따라 들어가니 계곡주변 바위 밑으로 2~5 m 정도의 두꺼운 얼음 층이 나타난다. 여름인데도 그대로 얼음이 쌓여있어 그 위를 디디면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이 골짜기는 10 km 이상으로 이어진다. 이 얼음 골도 겨울철에 얼음이 비교적 빨리 녹아 점점 온난화 현상을 보여주고 두께도 전보다 얇아졌다 한다. 이제는 다시 계곡을 나와 세워둔 말을 타고 40분만에 말 출발선에서 말을 반납하고 16:50분경 계곡을 나와 다시 오던 길을 나가 넓은 고원지대로 나아간다. 사막 횡단을 마치면서 먼지로 그을린 얼굴에는 안도감이 솟아나다. 이제 우리는 사막 오프로드를 완주하였다는 자신감이 자리잡았다. 고비 사막의 입구 “Dalanzadgad” 소도시에서 또 50 km 거리의 끝없는 황무지를 한 시간을 달려 굴뚝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이 보이고 그곳이 오늘 가야 할 “Dalanzadgad” 다. 얼마 나아가니 시내가 보이고 조그만 도시라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한산한 거리에는 주유소만 썰렁하게 서있다. Naadam 축제기간이라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아 몇 군데를 가도 식사하기는 불가능하였다. 한산하기 그지없는 작은 시내도 그나마 철시상태다. ![]() 하는 수 없이 Hotel “Pectopah” 를 빌려, 가지고 온 라면을 활용하여 라면 파티를 마련한다. 우리 15명에 기사 4 명 현지 가이드 1명 등 20명분의 라면을 호텔방을 빌려 인스턴트로 뜨거운 물을 부어 마련한다. 여행 중이라 비상식인 라면을 마련한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 였는데 적중한 것이다. 우리는 현지에서 구입한 도시락 라면과 컵 라면에 소주 2병을 추가해 그래도 즐거운 한때를 마련한다. 누구 하나 불평 없는 매니어 들이다. O! Pioneer 여! 여행 개척자의 진정한 모습이 이런 것인가? 한국최초의 그릅으로 Gobi 사막 Jeep Trekking 은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이런 사막 여행은 그야말로 고행길이다. 우리는 비행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향하였으나 공항 문은 닫혀있고 비행시간은 또 연기되었다. 현장에서 울란바타르와 전화로 연결하여보니 확신이 안 서 우선 호텔로 가기로 한다. 추가로 여행 스케줄이 확인될 때까지 Dalanzagad Hotel 로 들어가 임시로 휴식을 한다. ![]() (사진: 우리와 함께 사막 탐험에 나섰던 러시아 산 Jeep 차의 모습) 504호 에서 그 동안 못한 샤워도 하고 잠시 휴식하는 사이 갑자기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호텔 값만 지불하고 2시간도 못되어 다시 우리는 공항으로 황급히 이동하여 대기한다. 밤 11:00 시부터 대기한 승객은 우리 팀 16명과 미국인 모녀 팀 3명 등 모두 19명이 전부이니 어찌하나. 12시가 넘어 울란바타르에서 온 비행기가 착륙하니 기이하게도 주말인지라 40명의 승객이 출구로 나온다. 인원이 안차면 운행을 지연시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11:30분 Checkin 하니 여기서도 수하물 15 kg, 휴대품도 모두 카운트하여 합산하여 요금을 내야 한다. 올 때와 똑 같은 인원이 탑승자이다. 우리는 사막을 3일간 누빈 4명의 기사와 작별, 잠시 쉬는 사이 함께 온 우리 기사 딸에게 간단한 선물을 전달하고, 말은 안 통하나 몇 칠을 거친 사막여행을 안전하게 안내해준 기사와 악수로 작별한다. 최고의 청정지역 “Khuvsgol” 호수를 찾아 Aero Mongolia 소형 비행기는 01:00 시 이륙.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울란바타르에서 공수되어 온 우리들의 저녁식사 도시락을 펼 처 들고 또 한번 놀란다. 아마 여행 중 가장 먼 곳에서 공수되어온 것이리라. 한식 도시락에 포기김치, 튀김 등에 된장국까지 겯드린 기내식사를 즐기었다. 마침내 울란바타르 공항에 02:20분에 도착하여 다시 Sungin Grand Hotel 에 이르니 03:30분 이다. 밤새 휴식해야 하는 시간에 이렇게 이동하니 참으로 피곤한 여행이다. 잠시 방에 들어가 몸을 누이다 다시 06:00시에 기상하여 30 분 후 출발한다. Khuvsgul 호수는 울란바타르에서 북서쪽 약 700 km의 거리에 있고, 199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 ![]() (사진: Khuvsgul 호수 답사도(좌) Motor Boat 와 말탄 코스- 호수의 전경(우)) 호수크기는 2,760 ㎢, 제주도의 1.5배.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호수다. 이 호수로 흘러드는 지류는 111개가 넘고 이곳은 바이칼 호수의 발원지이다. 깊은 곳은 262 m, 그야말로 청정하고 크리스탈 같은 호수이다. 호수에는 12 종류 이상의 물고기, 그 주변에는 200여 종의 조류가 산다. 동물도 곰, 늑대, 산양, 순록 등이 주변 숲 속에서 산다. 08:00시경이 되어서 Mo 87 기로 Murun 공항으로 출발하여 09:30분 공항에 내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온 후라 하늘이 탁 트이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하늘이 멀다. 차량 4대로 분승하여 Khatgal 까지 180 km를 이동하여야 한다. 그런데 조수석에 임산부가 탄 것이 아닌 가? 기사 가족으로 여아 일명이 더 딸려 엄마 옆에 앉아간다. 가족이 우리여행에 따라나선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교통편이 불편해서 잠 간 탑승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점차 그것이 아니고 기사 한 가족으로 생각되니 이곳에서는 기사가 가족과 함께 다니면서 생활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참 어이없는 일로 생각되어 진다. 한동안 달려가다 교외를 벗어나면서 길은 비포장이라 심하게 굴곡지어 먼지가 길게 일어난다. 가면서 성황당 옆 풀밭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한다.(11:05~30)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풀밭에 앉아 늦은 아침식사다. 식 후 서둘러 출발하니 어느덧 Khuvsgol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13:00시다. 나무로 막아놓은 곳에서 입장료를 징수한다.잠시 내려서 쉬다가 다시 올라 공원으로 들어가서 주유소로 들어간다. 주유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뒤에 언덕으로 야생화 탐방에 나선다. 야생화가 너무 많아 바람에 나부끼며 가냘프게 흔들린다. 다시 출발하여 호숫가 언덕에 있는 Dalai Camp에 도착하니 14:15분. 점심으로 스프, 소고기, 보드카를 맛보면서 14:45분이 지나 이번에는 Motor Boat 장으로 내려간다. 캠프 앞에서 20여명이 승선할 정도의 조그만 Motor Boat에 오른다.(15:00) 바람과 구름과 푸른 물결을 가르면서 수정보다 더 투명한 호수 중앙으로 나가니 머리멀리 달려 섬에 이른다. 바위 벽으로 배를 대고 섬으로 오른다. 조그만 바위섬으로 호수의 사방이 조망된다. 구름이 걸 친 호수를 사진에 담고, 조그만 섬 바위틈에 솟아난 양생화의 물결 속에서 한 시간 동안 휴식. 고사목이 즐비한 자갈밭에서 사색하면서 산책을 한다. 호수에는 3개의 그림 같은 섬이 있다. 모든(나무)섬, 쇼른(흙)섬, 촐롱(바위)섬 등이 그들이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여 언제라도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사진: 세계에서 제일 청정 호수라는 khuvsgul Lake 전경) 17:05분 다시 배를 타고 이번에는 왼쪽 먼 호숫가에 있는 Ger Camp를 향해 달려간다. 18:00시경 “Blue Pearl Camp” 라는 곳에 도착하여 겔 2번에 자리잡는다. 이곳은 전기불도 없고 촛대만 덩그라니 테이블에 놓여있다.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곳으로 이제는 이런 불편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여행의 묘미를 깨달아 간다. 여장을 풀고 다시 말을 타고 이번에는 순록을 기르는 원주민 차랑 족의 Ger를 방문하기 위해 30여분을 간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원주민의 생활상을 보기로 한다. 삼각형의 겔 형태로 안은 바닥에 양 가죽을 깔아놓았고 가운데는 난로를 설치한 원시적인 생활형태이다. 순록은 뿔이 큰놈이 숫 놈이고 나머지는 새끼 순록을 낳는 암놈으로, 뿔은 약재로 쓴다. 이곳은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야 한다. 다시 Ger로 돌아와 쉰 후 몽골 전통 양고기 요리 “허르헉” BBQ 요리에 아이락, 전통 수태 차, 감자 찐 것, 잡채 등에 빵과 더불어 저녁파티를 푸짐하게 진행한다. 39도인 Chinggis khan 보드카로 피로를 풀고 목을 추긴다. 우리는 겔 안에서 나무로 난로를 후끈하게 피우고, 촛불을 키고 하루를 마감한다. 겔 주위에는 야크의 무리, 소들이 풀을 뜯고, 주차장 왼편에는 캠프화이어 준비를 위한 쌓아 논 나무에 불길이 올라 사기를 충천시킨다. 밤이 이슥하여 침상에 누웠으나 겔이 더워 잠이 오지 안는다. 잠시 잠이든 사이 난로가 꺼져 추위가 몰려온다. 다시 난로에 불을 부치려고 애를 썼으나 신문지 등 쏘시게 만 없어진다. 다른 겔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고 난로 불 피는 소리가 시끄럽다. 잠시 후 우리 겔에도 노크 후 들어와 여직원이 가스 분사기로 난로 불을 순식간에 피워준다. ![]() (사진: Blue Pearl Camp 전경) 아가씨의 능숙한 솜씨로 다시 난로는 과열되고 새벽공기는 따듯한 공기로 바뀌면서 어둠은 물러갔다. 천장 통풍구로 아침은 밝아오고 5시가 넘자 해가 뜨기 시작. 호수 저편은 벌겋게 물들어 온다. 호숫가로 나가 오늘의 일출을 맞이한다. 구름 사이로 붉고, 노란색, 황금색의 구름 띠가 퍼지면서 호수 수면 위는 찬란한 색 갈로 반사된다. 추위를 참을 수 없어 다시 겔로 돌아오니 야크 무리가 주변에서 풀을 뜯으면서 우리를 경계한다. 동물과 함께하는 자세도 자연에서는 중요하다. 승마체험의 날 오늘은 말을 타고 장거리 행군을 하는 날. 호수를 따라가다가 힘들면 차를 타기로 하며, 어제 점심식사를 한 “Dalai Camp” 로 가기로 한다. 09:15분부터 우리들은 각자가 선택하고 말 팀장과 마부들이 제공하는 말을 타고 대열을 이루면서 호숫가를 따라간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상큼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가다가 한 시간 만에 휴식. 모두가 오늘의 말 타기의 전 일정을 소화할 듯이 차분하게 진행한다. 15분간 휴식 후 호숫가를 따라 햇살과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호숫가 습지에서 2차로 휴식. 이곳은 영상미가 뛰어난 곳이라 모두 사진에 담아본다. 호수에 반사되는 태양빛에 주변 나무와 습지의 풀은 녹색의 조화를 이루어 잔잔한 영상의 배경을 이룬다. 여기서는 좀더 긴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코스로는 산을 넘어가는 행군코스로서 차를 탈 사람은 말 타기를 종료할 수 있다. 3차로 이번에는 호수 변 길을 벗어나 “Uran Dosh” 산 밑 장하이 산길을 넘어가는 곳이라 먼지가 일고 고르지 못해 차량도 심히 흔들리는 길이다. 2000 m 이상의 고원지대, 산밑으로 길을 따라 가다가 어느덧 12:30분이 넘는다. 오른쪽 위로 말 길이 나고 그 위로 산이 솟아있는 초원지대다. 우리는 나무 밑 풀밭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뒤따라오는 차가 싣고 오는 도시락이다. 주변에는 이곳 특유의 소나무가 쭉 뻗어 올라가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시원한 그늘을 형성하여 선선한 느낌이다. 해가 내려 쬐는 초원에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어 마치 꽃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고기를 볶아 넣은 도시락, 햄과 야채를 넣은 빵 한 개와 물 한 병으로 마치 소풍 나온 학생과 같았다. 우리는 야생화 방석에 주저앉아 점심을 즐긴다. 식 후 야생화 탐사 시간을 갖고 각자 영상에 담아본다. 눕거나 앉아서 야생화의 향기를 마음껏 음미한다. 생리 현상도 자연으로 되돌려 주면서 한동안 여유를 부린다. 이곳이 오늘 말 타기의 반을 통과하는 지점으로 오늘의 전 과정 35 km의 반이다. 그러나 차를 타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 (사진: 전 일정 백마를 타고 이동 중에) 식 후, 1차로 행군을 시작한다. 말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나무나 바위에 푸른색으로 칠해 논 길을 따라 나무 숲을 지나 또 초원지대로 나가고, 이번에는 넓은 풀밭에서 20분간을 쉰다. 야생화는 더 다양해지고 오랜지 색의 처음 본 야생화가 두드러진다. 각양각색의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감상하며 개울을 건너 오후 들어 두 번째로 휴식을 한다. 오후 거리의 65%를 지나온 곳이니 모두 대단한 실력이다.(15:00) 마지막 구간에 들어가면서 개울 옆 숲 속으로 난 길을 이어가면서 쉬 임 없이 말고삐를 조이며 이제는 제법 의젓한 자세로 말을 몰아간다. 16:00시가 되어 마방과 산양 우리 밑에서 최종으로 휴식. 여기까지 28 km의 여정이다. 마방집에서 우유 한잔씩과, 마른 우유도 맛보며 산양의 젓을 짜는 여인의 모습도 살펴본다. 이곳의 산양은 100여 마리, 목조 단층 집안에는 거울, TV가 있고, 입구에는 지금도 난로가 피어있다. 요새도 밤에는 춥고 불씨가 귀하니까? 방안에 침대에 걸 터 앉아 생활상을 살펴본다. 밖에는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고 수신용 둥근 접시형 안테나도 설치되어 있다. 휴식 중에 양 젓도 맛보고 우유 말린 것, 마유도 맛본다. 16:30분에 출발하여 마지막 구간으로 도로에 나오니 호수가 보이고 앞이 시원하게 트였다. 길가에서 한동안 휴식, Jeep 차가 따라오고 이제는 걸어갈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마지막 구간을 강행군하여 호숫가를 따라 17:50분.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Huvsgul Dalai Tourist Camp”에 도착하여 오늘의 대 장정을 마감한다. ![]() (사진: 35 km 전구간 말을 타고 이동중에 야생화 밭에서 휴식) 우리 부부는 09:15분 부 터 18:00시까지 장장 8시간 40분 말을 타고 온 것이다. 어린 마부와 선물로 작별을 고하고 Ger 4호에 둥지를 튼다. 처음으로 산뜻하게 샤워를 한 후 소주 한잔과 육포로 피로를 푼다. 우리나라와 몽골의 관계 우리나라는 고려 고종 19년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당시 무신인 최 우(崔 禹)에 의해 강화도로 천도한다. 그 후 1259년 몽골과 화해 후에 100여 년 간을 조공을 바치면서 부마국(駙馬國-사위의 나라)으로 전락한 치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 다음 원종 11년 1270년 다시 개경으로 천도 하였다. 고려사 고종 41년 1254년 기록에 의하면 몽골 병사에게 잡혀간 남 녀가 20만 6800명이라 하였으니 참 어이없는 비극의 시대였다. 그 후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고려왕이 25대 충렬왕 부 터,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31대 공민왕 에 이르는 100여 년 간을 부마국으로 치욕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 (사진: 13세기 당시 Chinggis Khan 의 세계정복시 상상도) 징기스 칸이 1206년 유목민을 통합해 3대에 걸 처 세계사에서 전무 후무하게 동유럽에서 티베트, 중앙 아시아, 중국 대륙, 아시아 남방에 이르기까지 대 제국을 건설 하였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테무친이라는 영웅이 다양한 수소민족을 통합한 탁월한 영도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기마 민족으로, 말을 탄 기마병을 앞세워 질풍 노도와 같이 세계 정복을 이룬 것이다. 그들은 유목민의 기질을 잘 이용하고 목축으로 나오는 고기를 말리고, 각종 젓을 말리어 군량미를 작만하고 말을 초원에서 잘 사육하여 기마병을 양성한 것이다. 말을 타고 전광석화같이 영토를 석권하였으나 통합기술이나, 통치술의 미숙으로 오래 가지 못하고 불과 1 세기간의 일장 춘몽으로 전설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조 인조 14년(1636년) 그들의 후손이 청나라를 세우고 3 대왕 태종이 조공을 안 바친다는 구실로 20만 기마병을 이끌고 또 1주일 만에 한양을 함락하였으니! 우리나라는 병자호란을 겪고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오랑케에게 치욕의 항복을 하는 상항이 벌어졌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세계 속에 한국인으로 자리잡아 가면서 역사의 쓰라린 교훈을 늘 거울삼아 나라를 슬기롭게 이끌어 가야 한다. 이런 것이 우리가 여행에서 배우는 교훈인 것이다. 대장정을 마감하면서 저녁은 식당에서 하기로 되었는데 호수에서 잡은 은어 큰놈이 등장한다. 회를 친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지 몰라 내장만 뺀 채로 통째로 접시에 놓여 등장한다. 작은 생선은 씻은 채로 접시에 사람 숫자대로 올라오고, 고추장 단지가 나오니 모두 때아닌 폭소가 터져 나온다. 통째로 잘라 회를 먹는 것으로 주방장이 오인한 것일까?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하기야 이런 내륙지역에서는 생선회를 먹는 일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전원이 오랜만에 폭소를 터뜨리며 한동안 즐거워했다. 생선은 나중에 구워먹을 요량으로 하고 Soup 와 빵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 (사진:호수에서 잡은 대형 은어 모습) 식사 후 해가 지기 전에 아래에 있는 Camp Fire 장에서 야외 파티가 준비되고 아까의 큰 물고기는 잘라져 튀김으로 등장하고, 작은놈은 은박지에 쌓여 불 속으로 넣어둔다. 삼겹살, 소주, 맥주, Wine 등 푸짐한 파티가 어둠이 내릴 때까지 계속되고 합창으로 “모닥불 피어 놓고”를 모두 부르며 11시가 넘어서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곳 캠프는 전기와 충전 코드가 겔마다 있고 샤워장과 세면장이 깨끗하여 그 동안 묵었던 캠프 중 가장 좋은 곳이다. 12시가 넘어 겔에서 나오니 캠프 앞으로는 호수가 밤하늘에 빛나고 그 주변에서는 젊은이들의 환성이 울려 퍼지고. 난로불의 2차 점화로 잠 못 이루고 아침은 찾아오고 햇살은 호수 위에서 구름과 함께 빛난다. 마지막 날에 식당에서 라면을 끓여 아침식사. 먼 이국 땅에서 가지고 간 라면으로 향수를 불러오고. 식사 후 07:30분 차량 3대로 출발하여 먼지가 자욱한 길을 달려 09:15분 무릉공항에 오니 옆 문으로 청사에 들어가 11:50분 Check-in, 그사이 만두 한 개와 우유 한 컵으로 간식을 하면서 기다린 끝에 12:30분 드디어 출발. 34인승의 소형기로 일본 항공계인 EZNIS Airway로 모처럼 제 시간에 이륙하니 창 밖으로 보이는 구름의 모습이 장관이다. 한 시간 20분 만에 초원과 산과 벌판을 넘어 울란바타르 공항에 이른다. 공항에서 나와 영치된 물건을 30여분 기다린 끝에 찾아 버스에 오른다. 공항을 나서니 일본이 조성한 가로수를 심은 곳이 낮은 울타리 철책으로 둘러 막은 것이 눈에띤다. 다시 시내로 들어와 수흐바타르 광장을 지나 한식당 “Chaplin” 에 15:00시에 도착. 오랫만에 한식을 보니 반가웠다. 식당에서는 4인조의 즉석연주회가 식후 열리고 “잣을 까는 여인” 등 남녀가 몽골 전통의상에 모자를 쓰고, 피리, 기타, 타악기 등을 연주하며 한목소리로 두 가지 창을 하는 청년, 저음과 굴리는 소리가 특이하다. 머루호른, 피리, 요칭의 3가지 악기가 등장. 음악은 소리로 이해해야 한다. 고비 사막에서 신기루를 쫓다가 실망하는 노래 까지 들려주면서 영업에 힘쓰는 한국인 사장. 이국 땅에서도 부디 성공을 빈다. 마지막은 “아리랑”으로 장식한다. ![]() (사진 : 한국 식당 전경) 울란바타르 시내에는 한국에서 설립한 학교가 19개나 되며 대학도 하나가 있다. 한국인이 몽골에 학교, 지하수 개발, 건설, 요식업 등 다양하게 진출해 있다. 특히 호텔, 병원 등을 운영하며, 선교단체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시내에는 신 축건물이 여기저기 올라가고 크레인이 솟아있다. 우리는 시내에서 Vinus Massage 라는 곳에서 한 시간 30분 간 몽골에서의 여독을 풀고 휴식. 다음으로 백화점도 구경하고 “Torgo” 라는 “Silk Fashion Show” 를 19:00시부터 50분간 감상하고 몽골의 실크제품을 둘러 보았다. “서울의 거리”를 지나면서 “Modern Nomads” 에서 저녁식사. ![]() (사진 : Torgo Fashion Show 전경) KE 868을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 00:30분 이륙하니 1988 km를 2시간 35분에 걸 처 비행 후 04:10 분에 인천공하에 도착. 새벽에 내리니 세관통과 빠르고 모든 것이 속행이다. 다시 무더운 여름속으로 정말 무사하게 돌아왔다. 함께한 여러분 감사 합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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