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휴가를 이용해 미얀마를 다시 찾았다. 배낭여행으로 미얀마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7년 전 처음 미얀마를 찾았을 때 내 손에는 낡은 필름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지털카메라가 많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카메라 같지가 않았기에 무거운 수동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애틋한 옛날 이야기지만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배낭족들에게 사진 한 장의 의미는 디지털 카메라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필름값을 아끼기 위해서는 마구 셔터를 누를 수가 없기에 한장 한장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필름 카메라는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볼 수 없다. 현상하기 전까지 어떤 모습이 담겼을까 생각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나를 흥분하게 했었다.
7년 전 미얀마 바간에서도 내 나름대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찍었던 필름 몇 통이 배낭에 쌓여 있었다. 그러다가 쉐지곤 파고다에서 한 사진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관은 내가 본 사진관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기억된다. 사진관이란 말보다는 상자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 작은 상자는 두 사람이 들어가서 무릎을 쪼그리고 앉으면 옴짝달싹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빈 틈 없이 꽉 차는 크기다. 사진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보다는 이 작은 상자 속에서 할아버지는 어떻게 작업하실까 궁금해서 필름한통을 맡겼다. 할아버지는 내 필름을 가지고 그 조그마한 상자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렇게 좁은 상자 속에서 정성껏 한장 한장 나의 추억을 뽑아 주셨다. 그리고 지난 달 다시 미얀마를 찾았을 때, 내 손에는 필름카메라 대신 디지털 카메라가 들려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할아버지의 사진관을 찾았다. 그런데 그 작은 상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3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때 사진관도 모두 부셔버렸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핑돌았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는, 7년 전의 추억을 되찾는다는 설레임에 바간행 버스에서 잠도 제대로 못잤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멍해졌다. 사원의 황금빛에 해가 져 붉은 빛이 더해질 때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일 것만 같았다. 미얀마에서 부서져버린 바간의 작은 사진관을 보고 온 후, 한장 한장에 정성을 다해야 하고 사진이 인화되어 나올 때까지 많은 기다림이 필요했던 필름 카메라 시절이 무척 그리워진다. 정성을 다해 직접 쓰는 편지가 아닌 이메일이, 보드게임보다는 컴퓨터게임에 더 익숙해지려 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좀더 빠르고 좀더 편한 디지털의 세상에 갇혀 나도 모르게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주말에는 장롱 속에 넣어두었던 나의 오랜 필름카메라를 다시 꺼내봐야겠다. 삭제버튼 하나로 추억을 걸러버리는 디지털 카메라 대신, 잘못 찍힌 사진도 삭제되지 않아 오히려 더 진솔한 추억을 남겨주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지나간 시간들을 찍으러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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