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라자스탄에는 7세기 경부터 라즈푸트라고 불리는 자존심 강한 무사계급이 권력을 독점하고는 스스로 왕이 되어 각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런 라자스탄 지역에 12세기부터 이슬람 세력이 몰려들어오기 시작했고, 각 왕국의 라즈푸트들은 강력한 저항으로 맞섰다. 특히 치토르가르에 있는 메와르 왕조는 가장 격렬하게 끝까지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1,303년 치토르가르에 이슬람 세력이 진격해 들어왔다. 이미 전세가 기울어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왕이 주창한 것은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메와르의 여인들은 결혼식 때 입었던 화려한 옷을 입고 나와 남편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씩 불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이를 지켜본 남편들은 타버린 아내의 재를 얼굴에 바르고 울부짖으며 전쟁터로 돌진했다. 이를 조하르 의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처절한 각오로 임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치토르가르의 메와르 왕국 사람들은 이후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똑같이 조하르 의식을 행하는 것이 전통이 되고 말았다. 1,535년 구자라트 술탄에게 점령당했을 때도 수많은 부인들이 불길 속에 뛰어 들었고, 1,567년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침공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거듭되는 조하르 의식은 인구 감소에 이은 국력의 약화를 가져올 뿐이었고, 결국엔 악바르대제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하고 만다. 치토르가르의 마지막 왕 라나 프라탑은 치토르 가르 성을 되찾을 때까지 '편한 잠자리와 호화로운 거주지를 취하지 않고, 쇠로 만든 그릇을 식기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며 25년 간 싸웠다. 그러나 결국 "성을 되찾기 전에 어떤 명목으로든 저택이나 구조물을 건립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했다. 치토르가르의 후예들인 로하르 부족은 이 유언을 지키겠다고 맹세를 하고 도시를 떠나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유랑생활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이미 맹세 따위는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고, 그저 떠돌이 빈민으로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같은 시기에 치토르가르 왕족의 한명인 우다이 씽은 왕의 유언을 무시한 채, 일족을 이끌고 우다이푸르 지역으로 이주를 해와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그는 즉시 이슬람 무굴제국과 화해협력 관계를 정립하 였고, 상업활동을 장려하여 라자스탄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였다. 위기의 순간, 어던 지도자를 따랐느냐에 따라 영원한 떠돌이 빈민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위기가 새로운 기회의 순간으로 급반전 하기도 한 것이다. 지난 11월, 인도 라자스탄 여행 중 우다이푸르에서 숙박한 곳은 현재 왕이 거주하고 있는 시티팔래스의 궁전호텔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화려했던 궁전에서 이틀밤을 묵으며 한껏 호사를 부리고 있는 동안, 우리 일행들 사이에서도 불 속에 뛰어든 조하르 의식과 로하르 부족의 맹세, 유랑생활 등이 자주 언급되었다. 그들을 이야기 할 때면 항상 의리와 자존심, 투지 등의 미사여구가 접미사처럼 따라 붙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설과 영웅담은 궁전 식탁의 촛불 앞에서조차 이내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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