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페르시아의 아랍인들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07.11.21

  • 조회수 :

    166

 우리가 아랍의 심장부에 도착했음을 실감한 것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도착하면서 모든 여성은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고 내려야 한다는 딱딱한 어조의 기내방송을 듣는 순간부터였다. 드디어 이슬람율법에 의해 통치되는 아랍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사실이 약간 흥분되기는 했지만 우리일행이 이란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였던 만큼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이드로 나온 알 자하드 압둘라씨는 이란의 페르시아유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호텔까지 이동하는 동안 숨쉴 틈도 없이 위대한 페르시아를 이야기하던 압둘라씨는 말미에 이르러 화제를 이라크 전쟁으로 돌렸다.

 이미 다 알고 있다시피 이란과 이라크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 이상으로 숙명적인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세인을 비난하고 이라크의 이슬람 노선을 은근히 비판하다가 결론은 침략자 미국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현재 이란인들의 정서를 응축해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테헤란-쉬라즈-이스파한으로 이어지는 고대 페르시아 문화탐방에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흥미를 가졌던 부분은 소위 '무슬림'으로 불리는 아랍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었다.

 그랜드 바자르라고 불리는 재래시장에서 만난 아랍인들은 지구상의 그 어느 민족보다 다정다감하고 싹싹했으며 너무나 쉽게 마음을 열고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동안 서방언론에 의해 소개된 아랍인들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던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호의는 오히려 우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형제'를 외치며 사심 없이 건네는 차를 마시면서 그들과 함께 동화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스파한에 이르러서는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 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 얼마전에 소개된 이란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천국의 아이들」에서 배경으로 나왔던 곳처럼 가장 이란다운 마을을 방문해 보자는 의도였다. 도로변의 마을을 찾아 들어가 약 30분 정도 마을 분위기를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촌장급 원로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몰려나와 너무나 순수한 눈망울로 우리들을 반겨주었기 때문인데, 우리를 환대하는 이유는 '우리 마을에 들어온 손님' 이라는 단 한가지였다. 결국 우리일행은  이곳 마을사람들과 차를 나누어 마시고 이란식 전통과자를 먹으며 훈훈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저녁식사를 거르게 되었지만 정말이지 먹지 않아도 배부른 날이었다.

 지난 페르시아 문화탐방 기간 중 겪은 많은 경험들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쉬라즈 박물관 앞에서 만난 이란 여학생들과의 사건이었다. 전체가 현장학습을 나온 듯 수백 명의 여학생들이 박물관 앞에 모여있었는데, 모두 검은색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내 눈에는 하나의 거대한 검은 물결처럼 보였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버스에 내리면서부터 실로 황당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잠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학생들 중 용기(?) 있는 몇 명이 함께 사진 찍기를 요청해 왔고, 이내 우리 모두는 학생들에게 포위되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선생님의 불호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에워싼 학생들 틈에 끼어서 팔이 아플 정도로 사인을 해주어야만 했다. 나로서는 약 3년 전에 이 지역을 여행했을 때와 같은 경험이었지만 다른 분들은 적잖이 놀란 모습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란지역을 여행하면서 순수하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아랍인들을 만났고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한 발랄한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소박한 눈빛을 겨냥하고 있는 서방세계의 총부리가 그들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하염없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하에 묻힌 그 옛날의 다리우스나 크세르크세스대왕이 오늘의 중동현실을 본다면 어떻게 대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