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축제다운 축제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09.07.30

  • 조회수 :

    902

축제다운 축제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참 많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구민의 날, 도민의 날, 하이 서울 페스티벌 등 각 지방마다, 자치단체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갖가지 축제가 연중 이어지는 느낌이다.
 
사실 나는 ‘축제’라는 말에 식상한지 오래다. 굳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언제 어디서 어떤 축제가 벌어지는 지도 모르고 지나가버리기 일수이며, 간혹 축제에 참여할라치면 주최자 위주의 진행에 염증이 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대부분 “이런 행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많이 와서 관람해 주기 바란다”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축제를 즐기고 싶지 축제를 관람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면에서 독일의 축제는 부럽기 짝이 없다. 작년에 뮌헨에서 만난 옥토버페스티벌에 참가한 우리 일행들은 단지 ‘맥주’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로 뜨겁게 달궈진 수만 명의 시민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그저 손에 맥주잔 하나만 들고 있으면 축제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7월의 독일여행에서도 정말 멋진 축제를 만날 수 있었다. 튀빙겐의 구시가지, 광장 전체가 객석이자 무대로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던 우리 일행은 딩켈스뷜이라는 인구 만여 명의 작은 마을에 이르러 대단한 축제행렬에 동참할 수 있었다. 30년 전쟁 당시 딩켈스뷜을 점령한 틸리장군이 마을 전체를 불태우려 하자 수많은 어린이들이 무릎을 꿇고 간청하여 마을을 구해냈다고 한다. 바로 이 날을 기념하는 킨더체헤(Kinderzeche)라는 축제였다. 마을 외곽의 벌판에는 중세시대 전쟁터의 막영장이 재현되어 있었고, 마을 중심부는 완벽하게 중세시대로 시계바늘이 되돌려져 있었다. 오후 2시,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정말 끝도 없는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중세 기사들과 병사들, 죄수들, 부상자들,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아녀자들의 모습,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인 아이들까지… 모두가 중세시대의 복장을 차려입고 거리에 몰려나왔고, 심지어 유아들도 나무로 만든 옛날유모차를 타고 나왔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만여 명의 모든 주민들은 예외 없이 각자 한 가지 이상의 역할을 맡아 행렬에 동참하고 있었으니, 현대적인 복장을 입고 있는 사람은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뿐이었다. 그야말로 마을 사람 개개인이 주인공이자 진행자가 되는 축제다보니 소속감과 일체감, 제 고장에 대한 자부심 등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축제의 부산물일 터이다.
 
딩켈스뷜을 떠나 하룻밤을 묵었던 오버아머가우라는 마을에서도 내년에 있을 축제 준비의 열기가 벌써부터 전달되어졌다. 10년마다 공연되는 「그리스도 수난극」으로 유명한 이 마을은 전체 마을 인구 5000명 중 2000명이 수난극 공연에 배우로 참가한다고 한다. 성인들 대부분이 연극의 배역을 맡고 있는 것이다. 온갖 프레스코화로 화려하게 장식된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그들은 삶 자체가 축제인 것 같아 부럽게만 보였다.
 
독일의 축제는 단체장의 생색내기도 없었고, 요란한 구호나 홍보전도 없었다. 지루한 개회사나 축사 따위도 없었다. 그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축제를 충분히 즐길 뿐이었다. 상업적인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들어 경제적 효과도 대단할 것 같았다. 독일의 축제는 ‘행사’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축제’였다. 점차 퇴색되어 가는 우리네 추석의 예전모습이 그러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