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친구가 한국을 방문한다기에 어디를 추천할까 고민하면서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전국 수많은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자기네 고장을 홍보하는 문구들을 잔뜩 올려놓고 있었는데, 유독 나의 눈길을 끄는 몇 군데 도시, 아니 시골이 있었다. 바로 슬로시티(Slow City)로 선정된 마을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언론에 자주 소개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슬로시티는 현재 17개국 123개의 회원도시가 있다.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오르비에토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은 느린 삶을 주창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사는 따뜻한 사회,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느림과 여유의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이다. 느리게 살면 몸도 마음도 한결 좋아지고,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환경도 건강해지기 때문에 느리게 살자고 말한다. 최근 유럽에 가면 식당 간판에 ‘SLOW FOOD’라는 문구가 가끔 눈에 띈다. 20세기 음식문화의 트랜드인 ‘FAST FOOD’의 반대개념이다. 최소한 식사시간 만큼이라도 여유를 찾자는 것이다. 이 또한 슬로시티 운동의 일환이다. 아침 출근시간에 문이 닫힐세라 온몸을 던져 지하철에 오르고, 건널목에서는 파란불이 깜박이면 멈춰서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를 하는,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타는 동시에 닫힘 버튼을 눌러야만 안심이 되는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슬로시티운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국내에서는 2007년 말 아시아 최초로 신안 증도와 담양 창평, 장흥 유치, 완도 청산도 등 4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됐고, 올 초 경남 하동군 악양면이 추가됐다. 그리고 지난 9월, 충남 예산군이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슬로시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슬로시티는 빼어난 자연 경관이 있는 곳도 아니요, 오래된 유적·유물이 있는 곳도 아니어서 여행할 당시에는 조금은 밋밋하고 심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바쁜 일상 속에 뛰어들라치면 자꾸만 그리워지는 곳이 곧 슬로시티다. 늦가을, 슬로시티로 훌쩍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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