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휑하게 뚫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서있는 모아이 석상들 사이로 바람이 분다. 납작 엎드린 누런 풀들이 바람에 일렁이고, 쉼 없이 밀려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는 모아이의 눈빛만큼이나 무심하다. 무원고립의 외로운 섬 이스터, 온통 수수께끼 투성이의 이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온 몸에 감겨오는 스산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 발을 디딘 이유가 그 황량함과 쓸쓸함을 즐기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막상 모아이석상을 마주 하고 서는 순간, 이스터섬에 오기 전에 읽었던 여러 책들, 분석기사들, 그리고 가이드의 설명…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저 바람결에 실려 오는 아득한 전설에 귀를 기울이고 모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 이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허공을 응시한 모아이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도 같은 생각인지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그저 각자 흩어져 모아이석상 주변을 천천히 배회하고 풀밭에 앉아 모아이처럼 허공을 응시하곤 했다. 이스터섬은 절대고립의 세상이다. 그래서 이스터에서는 모든 것이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날갯짓을 쉬고 있는 새한마리도 이스터 섬을 떠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날갯짓을 시작하면 육지까지 3,700km, 가장 가까운 섬까지 1,700km를 쉬지 않고 날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망망대해 태평양의 한 가운데 점으로 존재하는 이스터섬,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바람과 모아이뿐이었지만, 우리 일행들 또한 개개인이 각별한 의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스터섬에 있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모아이들… 왠지 나도 그 옆에 서서 같은 모습으로 허공을 응시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타히티의 보라보라섬, 만일 지구상에 천국과 가장 비슷한 곳을 찾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곳일 것이다. 섬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매혹적인 파란물빛에 완전히 매료당한 우리 일행들은 작렬하는 태양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묵은 힐튼 보라보라 오버워터 방갈로는 아방궁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현관을 열 고 나오면 바로 발밑에 펼쳐지는 투명한 바다, 그 속에서 유영하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이고,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사라지고 나면 밤하늘은 온통 총총한 별들로 가득 메워졌다. 섬에서 보트를 타고 나가 아쿠아 사파리를 감행했다. 수중헬멧을 쓰고는 산호초와 열대어를 감상하며 바다 속을 걷는 프로그램이다. 반나절은 무인도로 피크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헬기를 타고 너무나 다양한 파란 물빛을 하늘에서 감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보라보라섬에서 해야 할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방갈로에 누워 책을 보면서 빈둥거리는 것이었다. 낙원에서는 무엇을 해도 아름다웠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아름다웠다. 타히티와 모레아, 보라보라섬에서 우리 일행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행복’이었다. 연신 행복하다고 외치는 일행들 사이에서 간간이 탄식이 새어오기도 했다. ‘아까운 시간이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