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 딸아이와 눈높이를 맞춰볼 요량으로 TV 예능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소위 아이돌 그룹이니 걸그룹이니 하는 가수들은 그 이름부터 헷갈릴 뿐만 아니라 노래도 똑같은 멜로디로 들리고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춤사위로 보이니 도대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가사 내용은 아무리 집중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예능 프로그램에 집단으로 나와 떠들어대는 내용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건지 감도 잡을 수가 없다. 그래도 애써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정도를 기껏 외워놓고 대화를 시도해보려 했는데, 그새 딸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이 바뀌어 있다.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다고 하면 ‘신상품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요즘 가수들과 노래는 마치 공산품처럼 기계적으로 찍어서 나오는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최신 대중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차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여하튼 난 참으로 당혹스럽다.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는 창가에 서니 새삼 통기타가 그리워진다. 예전에 친구들끼리 여행계획을 세울 때 기타는 가장 중요한 준비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저녁시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통기타를 튕기며 불러대던 노래들을 통해 서로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 노래 속에는 시대의 아픔이나 젊은 날의 고뇌, 사랑, 우정, 아픔, 낭만 따위의 모든 것들이 다 녹아 있었다.
요즘 여행상품 광고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각 여행사마다 갖가지 특전을 내세우고 ‘특별한 여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특별히 색다른 점이 없이 거의 비슷한 여행코스에 비슷한 색깔이다. 그저 똑같은 멜로디에 똑같은 가사,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율동들이다. 이 여행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지, 이 여행의 테마는 무엇인지 본질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정도 싼 가격에 이렇게 놀라운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만 줄줄이 나열된다. 남의 여행사를 언급하려니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 혜택이라는 것도 사실 시덥지않은 것들 투성이다. 여행의 본질에 대한 하드웨어는 없이 가벼운 소프트웨어만 마구 나열되는 것이다.
통기타 같은 여행을 만들고 싶고 그렇게 떠나고 싶다. 진솔한 가사를 담고, 사색적이고 정겨운 분위기에서 낭만적인 멜로디를 담은 여행을 만들고 싶다. 아이돌도 좋고 걸그룹도 좋지만 여행길에서만큼은 송창식을, 유재하를, 그리고 김현식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