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이향원-샹그릴라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10.11.04

  • 조회수 :

    1675


이 글은 이향원 님의 자작시와 수필 입니다. 이향원님은 2010년 7월 31일부터 8월 8일까지 9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운남고도와 샹그릴라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샹그릴라* (Shangri-la)

운남성 어디에
우리가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 있다던데
호랑이가 뛰어 넘던 바위 위로
황톳빛 장강은
황룡처럼 꿈틀거리며 치솟는다

호수에 잠기어
안개의 이끼 입은 듯 흐릿한 나무의 그림자

나직한 늪 위에 떠있는 야생화 사이로
한 마리 말이 얼굴을 비추며 목을 축인다

구름 가득한 옥룡설산**
잃어버린 세계는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나부끼는 버드나무
맑은 시냇물 저편

* 샹그릴라 :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그의 소설「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처음 사용한 말
                  
‘파라다이스’의 대명사로 쓰여왔다.

** 옥룡설산 :만년설이있는 북반구의 산중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5,596m,
                   1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있으며 아직 아무도 정상 정복자가 없는 산이다.




운남성의 소수민족

 중국에는 56개의 민족 중에 55개의 소수 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소수민족이 가장 많은 곳은 운남성으로 35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운남성 여행 7일째 되던 날, 이화호수로 둘러싸인 금사도의 백족마을에도 그 사건을 해결한 후, 한시름 놓고 다음 관광지를 향하던 중 들은 이야기이다. 가이드가 실제 경험했던 이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서 우리 일행은 한번 더 소수민족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었다.
 중국 소수 민족 중에는 아주 깊은 산중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민족들이 있다는데, 가이드를 하다보면 여행객들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 민족들만을 찾아다니는 관광객들이 있다고 한다. 그날도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소수 민족들을 찾아서 험한 산중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는데,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어떤 노인이 무엇인가를 차를 행해 던지더라는 것이었다. 놀라서 차를 세우고 내려 보니 닭 한마리가 차에 치어 죽어 있었다고 한다. 노인은 닭을 치어 죽게 만들었으니 닭 값을 물어내라고 했단다. 그래서 얼마를 물어 달라는 것이냐 하니 중국 돈으로 천 위안(한국 돈으로 이십만원)을 요구하더라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어이가 없어서 닭을 보니 차에 치어 금방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지 이틀은 지난 듯한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십오 위안이면 닭을 살 수 있는 것이어서 사태를 빨리 해결하려고 오십 위안이라도 주려고 하자 그 노인의 하는 말인즉, 천 위안 속에는 그 닭이 알을 낳고 그 새끼가 또 알을 낳는 오년까지의 세월을 합친 것이라는 것이었다. 조선족으로 전직 국어 선생이었다는 그 가이드는 그때 어릴 적 동화책에서 읽은 이와 똑같은 이야기가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문명이 거의 닿지 않는 이런 곳의 소수민족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중국인들의 셈법이 통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 했다고 했다. 거기서도 사태 해결이 나지 않아 실랑이를 하던 중 동네의 남자 노인들이 하나 둘 모여 드는데, 이상한 것은 한 이십여 명이 모두 조그만 나무 의자를 하나씩 들고 나타나더니 버스 앞에 길을 막고 죽 앉더라는 것이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채고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몇 시간 째 깜깜 무소식이고, 그러던 중 또 웬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더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청년들은 노인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 둘렀고 그러자 노인들은 혼비백산해서 산속으로 다 도망을 쳤다고 했다.
 나중에 일이 수습되고 보니, 중국 정부에서는 이런 난처한 신고가 들어올 경우 소수민족의 일에 잘못 끼어들면 민족 탄압의 일로 번지고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해결하는 데에는 또 나름대로 그들 민족의 건달들을 잘 이용해서 무리 없이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나는 중국이 90년대 초기 막 개방 되었을 때 북경과 계림을 여행 했었다.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역은 달랐지만 특히 곤명의 발전 모습은 우리나라 어느 대도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더구나 여강 고성의 밤거리는 고속 발전하는 나라의 흥청거리는 밤 문화를 느끼게 했다.
 중국은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잘 개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 극장에서 공연하는 ‘여수 금사 쇼’도 소수민족이 나타낸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었고, 예를 들어서 아름다운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야외에서 공연하는 그 유명한 장예모 감독의 ‘여강인상 쇼’에서도 나타나듯이 소수민족의 문화를 이용하여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하고 관광수입도 올리고 하는 것이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만 듣던 중국의 수많은 소수 민족에 대해 일부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운남성 여행의 큰 보람이었다. 장족마을에 가서는 예고도 없이 직접 민가를 방문해 그들의 수줍은 듯 손님대접을 하던 아직 때 묻지 않은 샹그릴라 지역의 넉넉함을 보았다. 여강에서는 중국내에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시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현존 최후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를 지닌 민족이라 했다. 그들의 흰색과 푸른색의 조화로운 복장도 특이했고 어느 곳이든 둥글게 모여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은 우리나라 강강술래와 비슷했다. 손을 잡고 끝없이 돌고 도는 춤은 누구나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각종 발동작을 배워가며 몇 시간이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운남성 관광지 어디를 가든지 또 다른 고유한 복장을 한 소수민족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하며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적 국가를 건립한 때부터 중국은 이미 다민족 국가였다고 한다. 
 발전하는 중국에서, 92%의 한족에 끼어 사는 8%의 소수 민족이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일 없이 동등하게 그들만의 전통을 지키며 평화롭게 잘 살기를 마음속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