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영-남미안데스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작성일 :
2011.07.09
조회수 :
4154
이 글은 함돈영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함돈영님은 2011년3월5일부터 3월24일까지 20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남미안데스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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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마 공항에서 걸레통에 머리를 담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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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안데스 여행을 하면서 탄 비행기의 총 시간을 합하면 68 시간가량 된다. 미국, 뉴욬이나 L.A이에서 갈아타야 그 거대한 남미의 당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 거다. 십년 전 남미를 갈 때는 L.A이에서 멕시코로 들어갔었다. 이번엔 뉴욕으로 가서 페루의 리마로 갔고 리마에서 다시 볼리비아의 라파즈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일단 13시간의 비행 끝에 뉴욬에 도착을 하였으며 리마행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시간 까지 6시간이라는 텀이 있었다. 일행 모두는 리마의 공항 의자에 길게 자리를 잡았다. 다행이도 의자는 한 칸씩 팔걸이가 되어 있지 않아 세 칸을 한 사람이 차지 할 수 있었다. 나는 기내용 작은 가방을 벼개로, 입고 있던 코트를 이불 삼아 누웠다. 처음부터 그 상황에서 잠이 든 건 아니다. 일단 시간도 밤이 아니었고. 그저 오랜 시간 비행기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어 구겨진? 몸을 쫚 필 요량으로 길게 누운거다. 그 땐 체면이고 눈치고 없었다. 앞으로 펼쳐진 힘든 일정에 대비하여 충분한 휴식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고 점점 그렇게 길게 눕는 일행들이 많아 졌다. 얼마쯤 그런 상태에서 잠이 들었고 눈을 떳지만 아직도 한참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그 때 우리 일행을 인솔 하던 사장님, 젖은 머리를 털면서 우리 앞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머리를 감았단다. 그러면서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삼일 동안 샤워는 물론이려니와 머리도 감지 않아야 한다는 주의를 준다. 첫 도착지인 볼리비아의 라파즈, 고산증 때문이다. 난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이다.(고산증에 견디려면 절대로 머리를 숙이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고개 숙여 머리 감는 일은 절대 금지다) 머리 감기는 커녕 여행 가방 정리 할 때도 절대로 바닥에 놓고 숙여서 하는 일은 금지고 될 수 있는 한 침대에 올려놓고 작업을 하라고 하신다. 그래서...사장님은 머리를 감았단다. 기다리는 시간도 그렇고 하여. 어디서 감았냐고 물었다.(화장실의 세면기는 턱이 높아서 불가능 함) 화장실 입구에 있는 청소용 대 걸레 빠는 통에서 감았다고 하였다. 하면서 그곳은 수도꼭지가 얕아서 머리를 들이 대느라 무척 어려웠다고. 사장님의 그 말을 듣고는 처음엔 모두들 웃어 넘겼다. 조금 있다가 일행중, '도' 여사가 그 걸레통을 점검 해 보고 오더니 자기도 머리를 감겠다며 마침 근처에 있던 면세점으로 가 샴푸를 사왔다. 그리곤 그 뒤를 따라 간 여자들이 나 외에 세 명이 더 있었다. 물은 찬 물이었지만 그리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머리를 들이 대기가 너무 힘들었다. 걸레통은 컷지만 수도꼭지가 허리 아래 정도에 달려 있었으니 몸을 숙여 머리를 이리 저리로 굴리며 들이 밀어야 했다. 게다가 그 걸레통은 남자와 여자 화장실 들어가는 가운데...즉,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오픈된 장소에 있었다. ![]() 그러니 그런 괴상한 동작으로 머리를 감는 우리 일행이 자연히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제일 많이 웃으면서 신기해하는 사람은 역시나 큰 대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던 현지인 아주머니다. 킥킥 대고 웃으며...그래도 사람이 좋아 바깥으로 물을 튀기며 흘려도 암 말도 않하며 그저...웃었다.마침 내 손가방엔 두터운 작지만, 두터운 타올지의 손수건이 있어 그것으로 감은 머리를 닦기에 충분하였다. 비록 걸레통에 머리를 대었지만 날아 갈 듯이 상쾌했다. ‘도’ 여사가 사온 샴푸의 성능?도 좋았구... 머리는 자연 상태로 다 말라졌으나 비행기는 아직도다. 다시 눕고 일어나고 책을 꺼내 보고, 일행들과 수다를 떨고... 드디어 라파즈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고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에 도착을 하였다. 원래 일정대로 라면 이곳에 도착하여 숙소로 가기 전 간단한 시내 관광이 되어 있었으나 비행기의 연착으로 곧바로 호텔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비행장에서 코타카파나에 있는 호텔 까지 버스로 한 시간 이상 이동함)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호텔에 도착을 하여 저녁을 먹는데 도저히 물 한모금도 입에 댈 수 없는 형편이지만 스프만 몇 숟갈 떴다. 그리곤 금방 화장실로 가 다 토해냈다. 그 이후론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한게 꼬박 여 덞 끼니였다. 그렇게 삼일 동안...심하게 고산 증세를 피해 가지 못한 사람이 나 외에 한 명 더 있었다. 보다 못한 어느 사람은 내게 리마 공항에서 머리를 감은 탓이라고 하였지만 절대 그건 아니다. 십 년 전에도 이곳 라파즈에서 똑 같은 일이 있었고 티벳에서도 역시 그랬었다. 원래 고산증은 움직임이 남들 보다 더 많은 사람, 건강한 사람에게 온다는 '설'?이 있다. 남들보다 산소를 더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럴까? 암튼 그렇게 리마 공항에서 노숙자 체험으로 이번 안데스 여행은 시작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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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행 첫 날, 홀로...일행들의 짐 가방을 지키며 고산증과 싸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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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비행 끝에 안데스 여행의 첫 번째 숙소인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에 도착을 하였다. 흔히들 볼리비아의 수도로 알고있는 라파즈(행정수도이고, 사법 수도는 수크레다)에서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두 시간 이상을 간 것 같다.(이 때부터 머리가 아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이곳에 호텔을 정한 것은 티티카카 호수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늘 아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3.800m)호수는 이곳 볼리비아와 페루에 걸쳐 있고 페루 쪽의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우로스 섬은 십년 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이번엔 볼리비아 쪽에서 가게 되는 티티카카 호수 내의 태양의 섬이다. 이슬라 델 솔이라 불리는 이곳은 잉카시대의 유적이 있다.
엇 저녁 도착한 호텔은 작지만 분위기가 아늑하며 종업원들의 친절로 머리가 아파도 안심?이 되었다.설마, 나를 이곳에서 죽게 내 버려두지는 않겠지 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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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은광의 도시 포토시로 가는 길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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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시의 포토라는 말은 은을 가공, 혹은 세공 할때 나는 뽀드독...하는 소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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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콜차니 마을의 소금호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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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4일 째 날이다. 어제, 즉 3일째 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라파즈에서 비행기로 수쿠레로 이동을 하였고 다시 수크레에서 3시간 반을 버스를 타고 포토시 까지 갔었던 거다. 버스로 포토시로 이동 중에 오로루 라는 작은 도시를 거치면서 그곳서 일행들이 점심을 먹을 때 나와 또 한명, 고산증에 시달리던 정 여사와 진료를 받았고. 포토시에서 하루 묵고 아침엔 시내 관광을 하고 지프차로 옮겨 타고는 드디어 우유니 사막으로 향했다. ![]() 신뢰가 안 가는 의사였지만 그래도 진료 덕분 일까? 고산증세는 좀 덜했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이제 얼마쯤은 적응이 되었다.SDAS 원래 삼일 정도 시달리다 보면 그 때 부턴 웬만큼 그 정도가 사그러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멈춘 건 아니고 그저 토 하는 것이 좀 덜했고 머리 깨지게 아픈 것은 새벽, 잠에서 깰 때마다 부서지게 아팠다. 우유니 까지 짚차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략 6시간 정도로 잡았지만 가면서 점심도 먹어야 하고 또 경관 좋은 곳에선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니 그 시간 이란 게 고무줄 이다. 한정 없이 늘어날 시간을 현지 가이드가 몇 차례씩이나 재촉을 하고. 지프차엔 세 사람이 탔다.(운전기사 제외하고) 자동차는 우유니를 전문으로 들어가는, 소위 말하는 사막 전문 차량으로 얼마나 험한 길인지를 겉으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새 손님을 맞는다고 손을 보고 깨끗이 세차도 해 왔겠으나 앞 유리창은 크게 금이 가있었고 창문은 오르고 내리는 작동이 안 되었고 온통 흠집 자국에...엉망이지만 그래도 일제 렉서스다. 이 지동차로 우유니 소금 호수 투어를 마치고 또 하룻밤을 자고 칠레 까지 가는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를 넘어가야 한다. 우유니로 들어가는 초입에 작은 마을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무척이나 열악한 상태의 집들이다. 마치 캄보디아의 씨엠림 호수의 수상 가옥 들어가는 입구의 난민 촌(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같은 광경이다. 먼지가 뒤덮힌 길가에...그래도 우유니로 들어가는 관광객들을 의식한 작은 과일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먼지가 소복히 덮힌 과일 가게 앞엔 사람 하나 얼씬 거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고산증이 살 만큼 회복되니 그 과일가게를 그냥 지나치는 게 억울했다. 주머니에 돈도 있는데...게다가 삼일 동안 암 것도 못 먹고 살았는데...저 과일이라도 좀 샀으면...했지만 앞 뒷 차량들이 순서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잠시 멈추라는 명령?을 기사에게 하지 못했다. 다 허물어지는 집들 몇 채가 보이더니 그 마저도 안보이게 되고 이제는 소금 밭 사이로 차가 달린다. 굵은 소금 덩어리들이 조금 부서져 밭을 이룬 것 같은 상황이랄까? 암튼 그 소금 밭 사이로 씽씽 차는 잘도 달린다. 마침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넓디넓은 소금밭으로 지는 해가 연출을 시작한 거다. 기찻길이 보였다. 현재는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 기차로 소금을 나르던 흔적인거다. ![]() 오늘의 숙소인 소금호텔에 도착을 하자 해는 꼴각 넘어갔고 어둠에 잠긴 호텔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며 우리를 반겼다. 흥분상태인 일행들은 제각기 자기들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텔 안으로 튕기듯이 들어간다. 그리고 무에가 그리 바쁜지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이층으로 되어있는 호텔은 모든 것이 소금이다. 침대도 의자도 식탁도 호텔방의 기둥과 바닥도 양탄자 대신 소금 가루다. 소금으로 만들어진 침대는 대리석 같이 튼튼한 소금 돌바닥 위에 매트를 올려 놓았다. 이층이 전부 룸이었는데 한 쪽으로 방 배치가 되어 있고 방 앞으론 길게 응접실을 꾸며 놓았다. 즉 호텔 자체가 일자로 긴~~~형태로 지어진거다. 방 배정을 받은 일행들은 신기해하며 침 바른 손으로 소금 기둥의 맛?을 보기도 하며 희희낙낙. 저녁을 먹고는 그냥 잠들기가 아까워 방 맞은편, 긴 복도 전체가 다 응접실로 되어 있는 그곳으로 나와 노래도 부르고 수다도 떨고(일행 모두가, 특히 안식년을 맞아 함께 여행하셨던 신부님은 핸드폰에 다운 받아온 흥겨운 가요도 볼륨을 높여 틀어 주시고...) 마침 그곳에 있던 많은 촛대에 불을 밝혀 놓으니 분위기는 더 살았고. 그렇게 그날 우유니 사막에서의 밤은 호사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 아침, 여명을 보실 분들은 아침 여섯시 경이면 될 꺼라는 사장님의 멘트로 그 밤의 축제는 막을 내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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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우유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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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밀리언스 스타 호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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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소금물과 카메라 장난을 하고 이제는 다시 이동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호수를 빠져 나가는데 들어 온 곳과는 다른 곳이라 하지만 구분이 안 된다. 그래도 아쉬운 사람들은 자동차의 지붕위로 올라갔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안전장치를 해 놓았고 올라간 사람들은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도 환호성이다. 하얀 호수 위로 달아나는 자동차는 검은 색의 한 점으로 보인다. 이 시간 이후 우리가 이동하여 갈 곳은 '산 후안'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는 거다. 여행 오기 전, 이미 그 호텔에 대해들은 바가 있다. 호텔 전체의 방이 열 개 밖에 안 되어 이 여행을 신청 한 사람들이 더 있었음에도 다 못 받았다는... 그래 인솔자와 현지 가이드도 호텔 밖으로 나가 민박을 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다행이도 그 방 전부를 우리 일행이 예약을 하였다고 하니 오늘 밤은 온통 우리들의 잔치가 될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잠시 들린 곳이 있었다. 이름 하여 열차 박물관... 녹쓸어 버려진 열차들이 있는 노천 박물관이다. 오래전 볼리비아와 칠레를 오고 가던 열차들이었다. 두 나라가 영토 문제로 다툼이 있고 나서 부터 열차는 제 역활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제는 그렇게 버려져 오고 가는 사람들의 생리 현상을 도와주는 가림막 역활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설산의 안데스 산맥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따라 오며 재촉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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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극한의 아름다움, 알티플라노의 길을 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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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로 이동 한 시간들을 빼고...오늘로 여행 6일 째가 되는 날이다. 그렇게나 괴롭던 고산증은 이제 많이 덜해졌다. 완전 회복은 아니고 그만큼 이곳의 고원에 적응이 되었다는 뜻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사막을 달려 칠레로 넘어가는 일정이다. 이른 아침 산후안의, 작지만 밀리언스스타 등급?의 호텔에서 마련해준 따뜻한 우유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엇 저녁에 예고한 대로 정확하게 여섯시에 지프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안데스 산맥의 고원 평야 지대를 '알티플라노'라고 한다. 평균 고도가 3.600m된다. 사막 여행자들의 광기의 끝이 이곳 알티플라노를 넘는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재 작 년이던가? 티비에서 이곳을 소개 하며 ‘극한의 아름다움’이라고 제목을 붙였었다. 정말 그랬다. 세상 끝의 비경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울퉁불퉁한 비포장의 먼지 속으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왠지 아까웠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이 극한의 아름다움을 이번 여행 한 번으로 끝내야 하는 걸까? 여행의 긴 일정과 엄청난 비용도, 또 그 원수 같은 고산증도 다 감수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아니 두, 세 번 이라도 또 오고픈 마음이지만 그렇지 못할 현실 때문에 안타까운 거다. ![]() 병풍처럼 둘러 쳐진 설산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지금도 살아서 움직이는 활화산들이다. 몇 군데에서는 지금 막 뿜어내는 연기들을 볼 수 있었다. 출렁대는 안데스의 산맥들이 안내 하는 대로 따라 가다 보면 붉은 호수와 컬러플한 평야가 펼쳐지는데 안데스가 품고 있는 광물질 때문이란다. 붉은 호수뿐만이 아니다. 움직임이 없는, 낮고 고요하게 깔려 있는 호수는 마치 파란 시트지를 깔아 놓은 것 같았다. 아~~ 어찌 이 비경들을 글로 표현 할꼬? 호수 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었으나 굳이 그 이름들을 외우고 나열할 필요를 못 느꼈다. 어느 곳에선 플라멩고들의 서식지가 된 곳이 있었고 또 어디에선 그 아름다움의 극치에 호수에 몸을 던지는 일이 있어 자살 호수라는 이름이 붙은 곳도 있었다. 달리는 중간에 여러 차례 자동차는 멈추어 우리들의 광적인...표호를 부추겨 주었다. 애닯아 하는 사람은 현지 가이드뿐이다. 국경 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하고 그곳에서 세관 통과를 하려면 또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걱정인 거다. 그래도 손님은 '왕'인데, 우린 그 왕 노릇을 최대한 누려야 했고. 인솔자인 사장님은 우리 보다 한 술 더 떠서 시간에 구애 받지 말고 마음껏 누리자고...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그곳 역시 말이 식당이지, 다 허물어 져 가는 움집 정도다. 이미 먼저 도착한 유럽인들이 보였다. 좁은 공간 한 쪽에 테이블을 마련해 놓고 차려진 음식들은 마치 우리나라의 닭도리탕 같은...입에 맞았다. 옥수수와 감자 삶은 것, 과일로는 아보카드(볼리비아는 아보카드가 흔했음)와 오렌지,그리고 어딜 가나 마련해 놓은 와인과 콜라. 모든 음식들에서 정성이 보였다. 부지런히 떨어진 음식을 나르는 여 주인의 웃는 모습에 넉넉한 인심이 보였다. 다시 대 장정의 시작이다. 날씨가 맑아 하늘이 작품을 보여준다. 오전 출발 할 때는 기온이 쌀쌀 했지만 한 낮이 되니 전형적인 사막의 날씨를 보여준다. 더위에 자동차의 창문을 열었더니 앞서 가는 차량이 내 뿜는 황토의 먼지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침입한다. 문을 올렸다 내렸다 를 계속하면서 이번에 운전을 하는 어린 기사(23살이라 했음)의 깊은 눈을 주시한다. 행여나 졸지 않을까 하여... 사실 차에 탄 우리 세 사람에게야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비경들이지만 기사에게는 돈 벌이를 위한 지루한 길 일 수도 있는 거였다. 앞자리, 기사의 옆에 앉은 나는 자주 그에게 먹을 것을 권하기도(한국서 가져간 오징어와 껌등)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말로..."졸지마" 하면서 말을 걸기도 하였다. 눈이 워낙 깊어서인지 늘 졸고 있는 것 같이 보였을까? 암튼 그 짚차와 함께 며칠 동안 운전을 해 주었던 그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가져간 볼펜과 맆스틱(그곳 여자들이 무척 좋아 한다고 하여 가져간것)을 주었다. 드디어 국경에 도착을 하였다. 저녁 여섯시다. 황량한 사막에 일자로 된 작은 시멘트 건물 하나, 그것에 국경 사무실이었다. 세관 통과를 해야 하는데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이미 먼저 도착한 대형 버스가 두 대 보였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유럽의 여행객들은 아닌 것 같고 어수룩한 모습이 마치 남미 어느 곳에서 칠레로 이민을 오는 사람들 같이 보였다. 그렇게 보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 단위였으며 우리가 이민가방이라 하는...그런 가방들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암튼 그 사람들이 다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이 우리가 지루하게 기다린 시간이다. 한 시간 반 쯤 기다렸으며 드디어 우리 일행의 차례가 와 한 사람씩 여권을 들고 커다란 짐 가방 까지 열어서 확인을 해야 만 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지루한 세관 통과는 하루 종일 감상에 젖게 한 알티플라노의 비경들을 잠시 잊게 하였다. 무사히 통과한 트렁크를 질질 끌면서 국경 을 넘었다. 우리들의 무거운 짐 가방은기다리고 있던, 덩치 큰 칠레의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부지런히 대형 버스의 아래, 짐칸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의 숙소는 산 페드로라는 마을에 있는 호텔이다. 얘기 들은 바로는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호텔이라 하였다(.하룻밤 요금이 무려 미화로 750불이라는...) 모두들의 기대가 컸다. 어두운 길을 삼십분 쯤 가니 호텔에 거의 다 왔단다. 그런데 이건 호텔 로 가는 길이 아니라 마치 우리들을 어딘가에 납치를 해 가는 것 같다. 일행들은 두런두런...아니 최고급의 호텔로 간다더니...뭐, 이리 캄캄한 길로... 정말이지 그랬다. 좁은 길은 대형 버스가 겨우 지나 갈 정도였으며 호텔에 도착하였다고 하는데 입구도 캄캄 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호텔 문이라고 하는 좁은 문을 열어 주는데 모두들 기막혀 하였다. 입구의 어디에도 또 호텔 까지 오는 그 어느 곳에서도 전깃불(이렇게 표현 할 수밖에 없음)은 없었다. 닫혀 있던 좁은 문을 열어 주자 우리 일행들은 본관 건물로 연결 되어 있는 긴 돌바닥을 걸어 드디어 로비에 안착. 그 때부터 눈이 휘둥그레 졌다.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 ||
| 8, TIERRA ATACAMA HOT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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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 도착한 이 호텔에서 이박을 하게 된다. 일단 그동안 사막을 다니면서 제대로 씻지 못하였고 밀렸던 빨래를 하게 되는 날이다. 룸 배정을 받고 각자의 방으로 찾아 가는데 일반적인 높은 고층의 호텔이 아니다. 초현대식의 건축물이 오히려 생뚱맞다. 이곳이 아니라면 무척이나 모던한 건물에 호의적일 텐데. 호텔 입구서 부터 가로등이 없는 건 '별'을 노린 것이란다. 이런 곳에 와서는 휘황찬란한 불 빛 대신, 별 빛에 의지 하라는 뜻이었다. 어제 도착하여 저녁을 먹는 식당에서다. 보이는 모든 사람들은 온통 유럽인들뿐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본의 대 지진과 쓰나미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유니에서 보았던 그 많던 일본인 들이 알티플라노를 거쳐 오면서 한 사람도 못 만난게 이해가 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호텔에서도 많이 보았을 텐데. 원래 안데스 종단의 코스가 우유니에서 시작하여...지금 우리 일행이 가고 있는 이 길이 정석이기에 이미 와 있던 일본인들을 만났을거다. 암튼 그날 저녁 메뉴는 여태와는 다르게(인솔자인 사장님이 알아서 시키는 것)각자의 앞에 메뉴판을 하나씩 가져다준다. 그리고 웨이터가 옆에 서서 주문하기를 기다리는 거였다. 애피타이저로 두 가지가 있었다. 시금치 스프와 해산물과 야채를 곁들인 샐러드. 메인은 소고기 스테이크와 후라이드 생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나 과일. 시금치 스프와 소고기 그리고 과일을 선택하였다. 이번 여행 시작하고 처음 먹어 보는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 그동안 고산증 때문에 못 먹었던 것에 한을 풀게 된 거다. 맞은편의 내 룸메이트는 스프 대신 해산물 샐러드를 시켰는데 내 시금치 스프를 한 숟갈 떠 먹더니 후회를 한다. 모처럼 입에 맞는 음식을 접시가 깨끗하게 비웠다. 둘러보니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다. 비싼 요금을 치룬 호텔이라고 궁시렁 거리던 일행들...그 값어치만큼 다 빼먹어야 할 태세들이다. 실내 수영장과 스파. 휘트니스 센터까지 다 무료로 이용 할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난 시간이 너무 늦었고 또 그 다음날은 아침 일찍 아타카마 사막으로 나가 역시나 저녁 늦게 돌아왔다. 이틀을 묵에 된 호텔이었지만 결국은 잠자고 밥 먹은 것 외엔 한 것이 없다. 아, 밀렸던 빨래는 속 시원하게 하였다. 이 호텔에서 재미있었던 건 룸에 달린 목욕탕 욕조에서 밖의 정원이 보이게 설계가 되어 있었다. 헌데 외부에서 목욕하는 모습이 보일 까 보아 내 룸메이트...불을 끄고 목욕을 하였단다. 그게 아닐 텐데... 밖으로 나가 확인 해 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그런 설계라면 유리창이 안에서는 외부가 보여도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는...그런 유리 일 텐데. 나는 그런 저런 상황, 무시하고 불이란 불 다 켜놓고 신나게 목욕을 하였다. 아, 얼마만의 목욕인가? 때 미는 타올이 없는 게 한이었다. 이렇게 일박에 700불이 넘는 호텔에서 한 일이 고작...빨래하기와 룸에서 한 목욕 두 번. 어쨋거나 머리 아픈 것도 덜 하고 목욕과 빨래까지 했으니 날아갈 것 같은 내 몸이다. 게다가...룸메이트가 가져온 햇반에 깻잎 짱아지로 호텔 식당의 아침 전, 애피타이저를 방안에서 하였다. 배부르고 등 깨끗하고 고산증에서 벗어났고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이제 아타카마의 소금 사막으로 나갈 차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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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척박한 땅... 아타카마 사막의 첫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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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에 호텔을 나와 제일 먼저 간 곳이 평지의 소금 사막이지만 버스가 내린 곳에서는 한참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지형이었다. 그 앞 까지 버스가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지만 일행은 누가 먼저 랄 것 없이 티켓을 끊으려고 차가 멈추자 모두들 뛰쳐? 내렸다. 헐 수 없이 버스는 우리 뒤를 따라 오게 하였고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이 덮힌 산으로 올라갈 듯 한 기상으로 씩씩하게... 그러나 손에서는 카메라의 작동 소리가 멈추지 않은 채로 소금밭으로 내려갔다. ![]()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호수 보다 아타카마의 사막은 소금 덩어리들이 더 단단하였다. 관광객들이 걸어 갈 수 있는 곳은 제한되어 있다. 끝도 없이 넓은 소금 벌판의 한 가운데에 길을 내 놓았다. 두 사람 정도가 오고 갈 수 있는 정도의 좁은 길 옆으로 큰 소금덩어리들로 얕은 담?이 쳐져있는거다. 일행 중의 어느 분이 사진을 찍으려고 그 경계선을 넘어 갔다가 현지 가이드에게 지적을 당하기도 하였다. 우리 일행은 일렬로 죽 나열을 하여 소금밭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면 그 끝에...조금의 미동도 없는 호수가 있다. 낮고 고요하게 깔려 잇는 호수가 얼마나 조용한지 마치 파란 색을 칠 해 놓은 듯하다. 해발 4.300m의 고원에 있는 미스칸티 호수다. 이곳에 호수가 생긴 것은 아타카마 염호로 흐르던 물이 화산 폭팔로 인해 막히면서 호수가 된 거다. 실제로 그 시간에도 병풍처럼 둘러쳐진 만년설산의 몇 군데에서 화산 활동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개 같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거였다. 아타카마 사막은 칠레 북부에 있으며 남북의 길이가 1.000km, 동서의 길이는 30km되는 엄청난 사막이다. 2000년 남미 여행 때 산티아고에서 칠레의 남쪽 푼타아레나스 까지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아타카마 사막의 그림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아타카마를 이렇게 오게 될 줄이야... ![]() 소금밭으로 한참을 걸어 나가 미스칸티 호수를 보고 이동한 곳은 홍학들이 서식하는 염호였다. 몸집이 거대한 현지 가이드는 그 홍학들을 가르키며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홍학들은 그 자태가 가히 세계 최고라는 거였으며 그 숫자도 만만치 않다고 자랑이다. 허나 그가 알티플라노의 길을 못 가본 모양이다. 알티플라노를 거쳐 오면서 그 많았던 홍학을 보지 못한 것이 분명하였다. 암튼 그래도 그가 안내하는 대로, 설명하는 것을 열심히 들어 주니 신명이 난 표정이 역력하다. 우리를 이쪽으로 오라며 데리고 가는데 특별한 무엇이 있는 줄 알았다. 작은 유리 상자를 가 홍학이 먹고 사는 미생물 담아놓은 것을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다. 일행은 그런 것 보다는 그냥 놔두어 주는 것이 더 좋은데. 이른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저 멀리 보이는 흰 눈 덮힌 산을 보았다. 요동이 없는 호수가 그 아래 보였다. 우리가 걸었던 소금밭이 끝없이 펼쳐졌으며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언덕이나 평지의 땅엔 억센 가 시풀 덩어리들이 깔려 있었다. 이름 하여 시어머니 방석이라는... 이 광경들이 지구상의 어느 한 부분 이라는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뒤 따라 온 버스가 재촉을 한다. 이제 또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여야 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일행들. 버스에 올랐고 다시 도착한 곳은 죽음의 소금계곡이었다. 이 소금계곡은 오래전 아타카마 사막이 바다였다는 것을 증면하는 곳이다. 모래와 흙 위로 마치 눈이 덮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이 소금이다. 엄청난 크기의 돌기둥 같은 것들이 모두 소금으로 뭉쳐진...소금 기둥이며 기기묘묘한 형태로 되어있다. 소금의 결정체들이 마치 주상절리처럼 되어 있는 곳도 있었으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소금 덩어리들이 뚝, 떨어져 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오늘 하루는 완전히 소금 속에서 절여졌었다. 해 질녁에 들렸던 달의 계곡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0년 동안 단 한 방울의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이곳은 생명의 흔적을 볼 수 없는 곳이다. 완벽한 불모지의 이곳이지만 땅의 특정상 우주인들이 훈련장소로 사용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달의 계곡이라고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이롤 무렵에 오른 이 달의 계곡에서 일행들은 잠시 지나온 여행길의 정리를 하는 것 같이 보였다. 주홍빛으로 물 들여 지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침묵에 잠기기도 하였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인솔자인 사장님은 저 멀리 혼자 뚝 떨어져 바위 끝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는 것이 보였고. 이곳의 이 순간을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 하루는 아타카마,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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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산 페드로에서의 둘 째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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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에라 아타카마 호텔에서 2박을 하고 오늘의 관광을 마치고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오후 6시 반에 떠나는 비행기라 시간의 여유는 넉넉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 것은 노천에 있는 간헐천으로 가 일출을 보자는 뜻이었다. 시간이 일러서 인지 쌀쌀했다. 버스에 오르자 안내양? 이 담요를 하나 씩 나누어 준다. 호텔에서 빌려온 건지 아님 현지 여행사 측에서 준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암튼 무릎을 덮으니 따뜻하였다. 아, 여기서...그 안내양에 대해 설명을 해야 겠다. 우리가 이곳 산페드로에 도착을 하고나서 부터다. 몸집이 거대한 남자, 현지가이드가 칠레 국경까지 마중을 나왔었고 그 날은 밤늦게 티에라 아타카마 호텔에 투숙을 하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소금 사막으로 가는 첫 출정?부터 버스에 그 남자 가이드 외에 젊은 처자가 한 명 더 탔다. 뭐 이렇다 저렇다, 하는 설명도 없이. 그녀가 처음 한 일이 버스를 탄 우리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고 그 다음에 작은 디카로 우리들의 사진을 찍는 거였다. 그 당시의 생각엔...아, 우리 일행을 이렇게 가이드 했다...하고 여행사 측에 보고용으로 찍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녀도 현지 여행사 직원일 줄 알았고. 헌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건 그녀는 남자 가이드가 데리고 온, 조카라 하지만 정말인지 아님 여자 친구인지. 암튼 그 두 남 녀 는 우리 일행을 목적지에 내려놓으면 그 때 부터 자기 둘의 사진이며 주변 경관부터 우리 일행의 사진까지 정신없이 찍어 댔다. 인솔자인신 사장님, 처음에 기막혀 하시더니 헐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아신 뒤부터는...잘, 논다, 하는 표정으로 관망. 우리의 스케줄에 영향은 안 끼쳤으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 그렇게 새벽부터 부지런히 간 간헐천. 뜨거운 김이 여기저기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이미 우리 일행 보다 더 먼저 도착한 유럽인들이 여러 군데로 흩어져 뜨거운 김을 쏘이며 즐기고 있다. 그 시각,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의 산이 조금씩 설익은 토마토 같은 색이더니 점점 붉어져 잘 익은 홍시처럼 변해간다. 또 그쯤에 우리 버스의 운전기사, 가이드와 문제의 그녀가 아침상을 보아 놓았다. 버스에 싣고 온 작은 탁자에 식탁보를 씌우곤 쥬스와 샌드위치를 제공하는 거다. 샌드위치는 가이드가 일회용(절대로 일회용이 아닐 것이라는 사장님의 말씀)장갑을 끼고 직접 만들어 주는 거다. 식빵에 치즈 한쪽과 햄 을 넣은 것인데 나는 내키지 않아 먹어 보질 않았으니 그 맛을 설명 할 길이 없다. 암튼 그 일회용 장갑(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은 그날 점심 역시 그렇게...식당이 아닌 길에서 먹게 되었는데 그 때도 사용하였다. 어찌 되었던 그렇게 아침을 먹게 되었는데 커다란 페트병에 물을 담아 뜨거운 온천물에 담가 놓았더니 무지 뜨거워 진거다. 그 물에 탄 코코아가 추워서 인지 그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이런 곳에서 쌀쌀한 아침에 해장으로 컵라면을 먹었다면, 우와~~ 라면 회사 사람들 이런 곳에 와서 광고 찍으면 대박 날텐데...하는 생각이 났다. 추워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찾아 낸 곳이 있었으니 그야 말로 온돌 방 이었다. 꽤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제법 큰 평평한 돌이 있는데 그 아래에서 뜨거운 물이 끓고 있는 거다. 한 동안 앉아 있던 사람이 방을 빼 줘야 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런 곳을 찾아내어 자리 잡고 앉은 일행들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으쌰 으쌰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이번엔 노천온천으로 갔다. ![]() 수영복은 준비 해왔지만 여자들은 들어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자들 역시 단 한 분만이 용감하게 들어갔다. 더운 소금물에 수영을 하고 난 후의 절차가 귀찮아서 다들 구경만을 즐긴거다. 혼자 입수 하신 ‘이’ 선생님, 유럽 여자들 틈에서 기분 좋아 싱글 벙글. 와이프 되시는 ‘김’ 여사, “여보, 너무 뜨거운 데 조심 하슈, 어디 어디...데이면 안 되지” 그렇게 간헐천에서 이른 새벽을 보냈고 역시나 길에서 점심을 먹게 된 곳으로 옮긴 곳은 칼라마. 이곳엔 볼리비아 원주민 들이 스페인 지배를 받기 전 부터 다녔던 성당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은 입구부터 황량함 그 자체였다. 무너지다 만 흙담이며 양철 지붕을 얹은 , 금방 이라도 허물어져 버릴 것 같은 집들이며. 내 앞에 가던 사장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저, 이곳 분위기가 마치 예멘 같지 않아요?”하고. 그랬다, 예멘의 쓸쓸하면서도 황량함이 비슷했다. 동네를 한 시간 쯤 돌아다니다가 큰 나무가 그늘이 되는 곳에 식탁이 다시 차려졌고 일회용이 아닌, 구멍 날 때 까지 사용할 것 같은 그 장갑 낀 손으로 만들어 주는 점심 샌드위치가 준비되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관광지는 얼마 전 사고가 났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추타카마타 광산이었는데 아쉽게도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 되었다. 탄광 사고 난 후 정부의 조치가 그렇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 근처까지 갔으나 버스안에서 탄광 구경을 하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린 산티아고로 가기 위해 비행장으로 향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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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산티아고에서 생긴 해프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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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10일 째다. 어젯밤 늦게 산티아고에 도착하였다. 푸에르토몬토를 가기 위해 거치게 되는 산티아고에서 시내 한 가운데 있는 별 다섯 개짜리의 최고급 호텔에서 잠만 자고 아침만 먹고 떠나는 거다. 아홉시에 로비로 가방을 가지고 내려오라는 지시가 있었고 단 한명의 지각생도 없이 전원이 모였다. 워낙 부지런한 일행들이라 늘 버스나 현지 가이드, 도착 보다 우리가 빨랐다. 다들 그렇게 모였는데 일행 중, 어느 분이 ..."저, 어제 샤워 하신 분 계셔요, 제 방 샤워기가 안 되던데..." 그 말끝에 여기저기서 똑 같은 말이 나왔다. 역시나 다들 샤워기 트는 꼭지가 없었다는 거였다. 내 습관은 아침에 샤워를 하는 타입이다. 하루 종일 관광지를 쏘다녀 피곤 하지만 그 피곤 때문에 눈이 감겨 저녁엔 이 닦고 세수와 발 씻는 것으로 대충 끝낸다. 그래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해 늘 아침에 샤워를 한다. 그날 저녁에도 내 룸메이트가 샤워를 한다고 목욕탕엘 들어갔고 한참 만에 나와서 하는 말이..."함 선생님, 이 목욕탕에 샤워기 트는 곳이 없어서 머리 감느라고 무척 애 먹었어요."하는 거다. "그럴리가..."하고는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무엇이든 궁금증과 알고자 하는 것은 기어코 알아내야만 하는 내 성격이다. 일단 샤워 꼭지가 없는 것을 확인 하고는 샤워기가 달린 벽을 더듬었다. 벽, 어디에도 숨겨질 만한 곳이 없었다. 다음 벽위에 달린 샤워기를 보려고 욕조의 난간에 올라 쳐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더듬어 만져보았지만 손에 잡히는 아무런 것도 없었다. 다음 수도꼭지 여 닫는 곳을 더듬어 보고 또 물을 틀어 보고 혹시나 하여 세면기로 가서 그곳의 수도를 틀어 보기도 하였다. 아니 도대체 어디에다 샤워기 트는 열쇠를 감추어 두었던 말인가? 머리꼭지가 돌기 직전이 되었다. 퉁퉁...애굿은 벽을 쳐 보기도 하고. 점점 더 약이 올라 기어이 해내고 말겠다는 오기로 다시 시작. 욕조에 달려 있는 수도의 물 나오는 곳을 다시 더듬어 보았고 물을 틀었다. 좔좔 물은 잘도 쏟아져 나왔다. 그 쏟아져 나오는 물을 손으로 받으면서 물 나오는 곳을 만져 보았더니 뭔가 까칠하게 잡혔다. 아니 이게 뭐야? 하며 잡아 당겨 보았다. 갑자기 머리 위로 물세례...그게 샤워기를 여 닫는 거였다. 아니, 이런 것을 물 나오는 곳에 숨겨 놓으면 어찌 찾으란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성공을 하고 나와선 룸메이트에게 가르쳐 주고 나는 다음날 아침 룰루랄라 하고 샤워를 마쳤던 거다. 그랬더니 일행들 중, 어느 한 부부만 빼놓고 다를 샤워 꼭지를 못 찾았다는 거였다. 안식년을 맞아 여행오신 신부님은...샤워하기를 포기 하였다고 하였고. 또 다른 부부는 물 먹고 난, 빈 페트병 두개에 수도 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그것으로 샤워를 했다하였고. 또 다른 방의 두 여인은 찾다 못해 수도꼭지를 망가트리고도 결국엔 샤워를 못했단다. 인솔자인신 사장님마저도 머리를 욕조에 낮게 달린 수도꼭지에 대고 감느라 고생 하였다고. 암튼 샤워를 제대로 한 사람은 나 까지 세 명이 전부였다. 아니 그렇담, 프론트에 물어 보면 될 것을 왜들 안 물어 보았는지? 대부분이 나만, 재수 없이 샤워 꼭지가 없는 방이 걸렸구나...하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우리나리의 워커힐 호텔 옆에 있는 W 호텔. 젊은 사람들이 선호 하는 곳이다. 나도 구경을 (워커힐 아파트 사는 친구 덕에 호텔 로비의 커피숖)해 본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신세대에 맞는 인테리어였다. 로비의 화장실을 갔는데 하나의 룸으로 되어 있었다. 혼자 들어가게 되어 있었고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 세면기며 일인용 소파까지 있는 넓은 룸이 화장실이었던 거다. 들은 얘기론 그 호텔의 룸에서 목욕탕에 들어가면 그렇게 샤워기 트는 꼭지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거다. 찾는 재미를 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지만 산티아고의 그 호텔처럼 그렇게 까지는 아니겠지. 암튼 우리는 산티아고의 그 호텔에서 치른 한바탕의 해프닝에 한참을 웃었고 이제는 어느 곳, 어느 호텔에 가도 기필코 그런 일이 없을 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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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앙헬모 항구에서 비를 맞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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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트몬트에 도착을 한 시간이 점심때다. 바다 같은 호수가 있는 앙헬모 항구로 이동을 하였다.(호수인데 항구라고 지칭 하는 것은 워낙 넓은 호수라 그런가 보다) 처음엔 바다라 믿었다. 가이드가 설명 할 때 잘 안 들은 탓이었다. 누군가가...“함 선생님, 여기가 호수라 그랬지요, 너무 넓어서” ...하는거다. “설마, 바다겠지요, 그러니 항구라고 하지 않았겠어요?” 헐 수 없이 다시 물었다, 가이드에게...호수라 는 답이 돌아왔다, 에구구...멋 적어라. 일단 배꼽시계의 신호가 왔다. 점심때가 살짝 지난거다. 예약된 식당은 호숫가 옆, 식당 건물은 호숫가에 걸쳐 있다. 즉 물 위에 지은 건물이다. 모처럼의 특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니, 처음엔 현지 가이드가 스테이크를 주문해 놓았다고 한 것을 인솔자이신 사장님이 랍스타로 바꾸었다. 시간은 좀 걸렸다. 그러나 모처럼의 특식인데 그런 기다림 즘이야. 처음 나온 브르콜리 스프도 맛있었고 금방 구어 내온 정성이 깃든 따끈한 빵도 입에 딱 이었다. 그 후 나온 가재 요리 역시 완전 짱. 점심을 먹은 후엔 항구 주변거리를 어슬렁거릴 수 있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곳에 도착해서 부터 내리던 비가 더 세차게 내린다. 수산물 시장으로 이곳이 제일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눈에 보이는 건 우리나라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가락동 시장의 몇 분의 일 만도 못한...별 구경 꺼리가 못되었다. 대신 항구를 끼고, 또 가운데 찻 길을 낀 양 옆의 작은 가게들이 눈을 끈다. 그러나 정작 살 만한 물건들은 못되었다. 그저 여행 온 기념으로 한 두 번 쯤 보고, 어루만지다가 팽개칠...그런 수준들의 물건들이다. 비가 와서인지 아님 늘 이런 정도인지...여행객들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그 작은 가게 안에서는 주인들이 부지런히 손 을 놀리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이곳이 유럽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라 는데... 워낙 질 좋은 물건들에 익숙해 져 있으며 이런 가게들도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 되는 정도라 별 흥미를 못 느꼈음은 나뿐만이 아닐 꺼다. 다른 곳 같았으면 약속한 시간 보다 항시 늦는 몇 명이 있기 마련인데 그 시간 보다 앞서 버스에 탄 사람들이 거의 다였다. 게다가 세찬 비를 맞는 것도 그렇고 하여서 이겠지만. 숙소인 호텔로 이동. 저녁을 먹기 전 시간도 여유가 있었고 저녁 후에도 치안이 안전하니 거리로 나가도 된다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으나 나는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을 방에서 즐기기로 했다. 내 룸메이트는 옆방의 도 여사와 거리 구경을 한다고 나가더니 운동화를 하나 사가지고 들어왔다. 신고 온 신발이 좀 문제도 생겼거려니와 눈에 띄인 것이 있어 구입했다는 빨간 색의... 모양도 편해 보였다. 하면서 호텔 뒤 쪽의 골목 전체가 작은 가게들이 있는데 분위기가 예뻤다고. 그 얘길 들으면서 혼자 속으로 참, 나도 많이 변했고 나이가 든 표시가 이런 때 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호텔 방안에 틀어 박혀 있지 않았다. 어디를 가서고 치안만 괜찮다면 이른 새벽에도 산책을 나갔고 조그만 틈새의 시간만 나면 가게들을 기웃거리려 나갔었다. 그래도 이렇게 모처럼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너무 좋았다. 모처럼 가지고 온 책도 들여다보고 내일 스케줄을 점검도 하고, 카메라를 작동 시켜 그동안 찍은 사진 정리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이곳에 도착하여 만난, 현지 가이드는 참 순하면서 이곳에서 만났던 다른 가이드와는 뭔가 좀 다르게 사색적이었다. 이십대 중간쯤으로 보였다. 이 안데스 여행이 여행사측에선 처음 기획된 것이라 인솔자인 사장님도 현지 가이드들을 다 처음 만나게 되는 거였다. 여행지가 어디이던 간에 몇 번씩 다닌 곳엔 단골 가이드가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진행상 편리한 점이 많다. 이 여행사가 추구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굳이 많은 것을 요구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해 주고 또 그 해 준만큼의 댓가 를 받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이번 여행에선 그런 기대를 할 수도 없었고 현지 가이드의 자질...운운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처음 만났던 볼리비아의 가이드는 자기 본분에 충실 하려고 하였다. 아쉬웠던 건 현지에서 예기치 않았던 볼거리 같은 것을 구경하고 가자고 하는 요구를 들어 주지 않는다던지 하는 게 좀 아쉬웠다. 포토시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거다. 시내 중심가를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보게 된 결혼식 장면이나 볼리비아의 축제 기간이라 거리에서 전통 복장을 한 남녀들이 춤을 추는 것 등을 볼 수 있었는데 잠시 내리겠다고 하니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이유인 즉, 그들이 좋은 날이라 술을 많이 마셨을 터이고 그렇게 되면 술 곤조가 있어서 위험 하다는 거였다. 정말인지 아님 가야 할 시간상.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아쉬웠었다. 칠레에서의 가이드는 여자를 동행하여 마치 저희들의 여행 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고. 암튼 이 날과 다음 날 하루, 우리를 안내할 현지 가이드의 분위기에서 동양에서 온 여행객을 맞아 들뜬 기분,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차분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보이는 그 이유를 인솔자인신 사장님이 대충 설명을 하신다. 여러분은 여행객이기에 이런 곳이 좋아 보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선 참으로 척박한 생활이라고. 더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사람들의 슬픔이라고도 하였다. 비가 내려서 인지 더 쓸쓸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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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이른 아침의 산림욕과 페트로우 폭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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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도착했을 때 그렇게도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싹 개었다. 오늘은 아침 시간에 좋은 공기를 마시러 간다. 가라앉은 분위기의 현지 가이드는 오늘 아침 역시도 어제의 그런 표정이다. 우리를 인솔한 사장님의 말이 이런 곳에서는 할 일이 없으니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이라곤 그저 여자 친구 사귀는 일이고 그렇게 하여 조혼을 하게 되고 몇 번의 이혼과 재혼을 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할 것이 너무 많은 풍요 속에서 그들과 반대로 결혼은 점점 기피 하는 현상이다. 나라는 우리나라 보다 몇 배나 덩치가 큰데 경제수준은 훨씬 뒤 떨어지는 나라다. 오래전 유럽의 강대국인 스페인의 점령으로 문화는 유럽의 것을 따르지만 현재로선 그런 것들을 찾아 누릴 만한 여유가 안 된다. 예전의 영화는 간곳이 없고 현실은 너무나 초라 할 뿐, 어떻게라도 먹고 살아야 할 사람들 중에, 그래도 영어와 독일어 등, 몇 개국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가이드라는 직업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거다. 먼저 방문했었던 볼리비아의 가이드 역시 4개국어를 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 가이드 역시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 하였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그 4개국어를 하는 장점으로 학원 내지는 일반 회사에라도 즉시 채용될터인데... 암튼 그도 표정이 밝지가 않았다. ![]()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얼마 안 되어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물안개가 자욱히 올라오는 페트로우 폭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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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남미의 스위스, 바릴로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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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이동 시간 등을 빼고 나면 20일 여행 중에 삼분의 일을 보낸 것 같다. 어제 장거리 이동으로 칠레에서 이곳 아르헨티나로 넘어왔다. 비록 긴 시간을 버스에서 보냈으나 오는 길의 아름다움에 지루 한 줄 모르고 왔다. 산간 길을 오면서 알티플라노의 길을 달리면서도 그랬듯이 제일 문제가 용변 보는 일이었다. 간혹 주유소 같은 데서 화장실을 다녀 올 수 있는 곳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노상 방뇨로 해결했다. 정확하게 그 시간이 오면...인솔자가 먼저..."저 이쯤에서 우리의 뜨거운 맛을 보여 줄 까요?" 라며 익살을 떤다. 버스가 멈추고 일행들이 내리기 시작하면 다시 한 마디..."절대로 남자 분들은 지장 장소 외에 기웃거리기 없기예요" 그 지정 장소라는 것은 여자들은 남자들과 반대 방향으로 가 자리를 잡는 거였다. 내가 벌판에다 용변 보고 다닌 일은 인도에서 부터였지 싶다. 그 후 티벳, 차마고도, 코카서스, 호주의 킹스캐년...에서 수많은 죄를 짓고 다녔었다. 많은 죄를 지었으니 오래 살 것 같은데...그건 하나도 반갑지 않다. 바릴로체는 남미 전체를 통 털어 최고의 휴양도시라 할 수 있다.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유럽의 부유층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곳에서 이틀 동안 머물며 그동안의 험하고 힘들었던 여정을 정리도 하고 여독도 풀게 된다. 일행 모두들의 마음이 약간은 들 뜬것 같았다. 쾌적한 날씨와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여 진, 아름답고 차분한 정경들이 남미가 아니라 유럽의 어느 휴양지로 가는 것 같은 기분 때문 일게다. 유럽의 부자들은 이곳으로 온다던데 반대로 우리는 유럽의 어느 곳으로 가는 것 같은 기분...참, 아이러니 하다. 버스가 숙소를 향해 가는 길에 시내 중심가를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모두들의 눈이 반작 거리는 것을 보고 사장님은 "내일 오후에 이곳에 풀어 놓아 드릴께요."한다. 더불어 "허지만 나가셔도 살 것이라곤 아웃도어(스포츠용 옷들)나 쵸쿄렛 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 만큼 이곳이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스포츠를 하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는 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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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바릴로체, 캄파나리오 전망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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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도착한 바릴로체의 산장 같은 호텔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신선하고 맑은 공기가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작은 정원엔 여름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는 빨간 장미가 이슬을 머금고 있는 게 처연해 보인다. 먼저 나와 있던 '장'여사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마지막 가는 길...같은 장미꽃을 찍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인원은 다섯 부부를 포함하여 모두 23명이었다. 긴 일정의 여행에 혹시나 튀는 사람이 있어 언짢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잠시 하였지만 기우였다. 모든 분들이 아량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 씀이 역시나 이런 곳에 올 만한 분들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장' 여사는 안식년을 맞은 신부님(친정 조카)과 동행을 하여 항시 챙겨 주시는데 참 보기가 좋았다. 상쾌한 아침 공기의 기를 받아 오늘의 긴 하루(이날의 일정이 많았음)의 스케줄이 무사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누면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캄파나리오 전망대에서 2인용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바람이 불면서 무척이나 쌀쌀했다. 옷을 추수리고 머풀러를 칭칭 동여매고 내 룸메이트와 짝을 이뤄 리프트에 탑승. 이른 시간인데도 반대 편 내려오는 리프트에 유럽인들이 보였다. 오르고 내려오면서...서로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며 눈인사를 한다. 이런 곳에 오면 어느 누구라도 다 그렇게 한 마음이 되는 거다. 속으로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바위고개, 님 이 오시는지...하는 가곡에서 부터 가요까지... 옆에 앉은 짝지도 따라 부른다. 노래 소리는 리프트를 따라 올라가는 허공으로 퍼져 내려오는 사람들의 박수도 받고 앞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손을 흔들기도. 드디어 전망대에 도착.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움직임이 없이 고요히 보여 지는 저 광경들은 결코 살아 있는 자연이 아닌 것 같았다. 근사한 액자 속에 끼워져 있는 그림이었다. 만년설 산의 아래로 아무 미동도 없이 깔려 있는 호수는 '나우엘우아피'라는 이름이다. 정말이지 이름의 가운데 글자처럼 우아 그 자체다. 내 카메라는 쉴새 없이 작동을 한다. 한참을 그런 지경으로 움직이다가 아차, 이게 아니지 하는 생각에 어른 배낭 속으로 카메라를 던졌다. 언제 어디서 다시 이런 곳을 만 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급해 지기 시작했다. 나무로 데크를 만들어 놓은 이쪽 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눈이 짓무르도록 그 정경들에 취하고 또 취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일, 다시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장소는 한 여름, 관광객이 한창 붐빌 때 이곳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도 하면서 판매도 하던 장소다. 여름철과 달리 지금은 비교적 한가한 상태라는 가이드의 말처럼 조용한 시장판이다. 호수를 등지고 개인 가판대를 만들어 놓고는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는 예술가들. 집에서 만들은 와인부터 그림은 물론이려니와 실생활에 필요한 먹거리와 단추, 악세서리등 다양한 종류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각 나라의 동전들을 깍아 다듬어 목걸이나 귀걸이를 만드는 여자였다. 손님이 자기나라 동전을 주면 그것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였고 아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전에서 선택을 하면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나는 아무런 기념품 하나도 사지는 못했지만 그 작은 가게들이 늘비해 있는 그 장소를 죄다 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장소란 게 나우엘우아피 호수가 저 아래로 한 눈에 내려다 높은 언덕이었으며 가판대가 마주 보이는 곳은 야산이다. 작품들을 진열해 놓은 가판대 사이로 사람들이 다니면서 작품 감상도 하고 기념품 헌팅도 하는 거다. 자유로움 속의 질서가 있었고 무언의 침묵 속에 예술가들의 감성이 나에게 까지 전해지는 듯한 그곳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높은 곳에서만 바라다보던 호수의 아래로 내려와 배를 탔다. 비가 내렸다. 제법 많은 양이다. 비옷을 챙겨 입고도 우산을 써야 했다. 아라야네스 숲으로 갔다. 이곳은 특이한 나무들이 있다. 마치 사슴의 몸 같이 갈색과 흰색 반점들이 있는 나무들의 숲이다. 실제로 워트디즈니가 이곳에 와보곤 아기사슴 '밤비'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나무들 숲속 어느 곳에서...사슴이 툭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여행 오기 전 에 읽었던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장편 소설)이 생각났다. 물론 이곳 분위기와 소설의 내용은 판이하지만 그래도 그 숲...이란 단어가 떠오르면서 그 숲이 주는 신선한 생명력에 도취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오히려 습한 숲속의 분위기에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늘을 찌를 듯 한 거목의 메타쉐콰이어가 즐비한 빅토리아 섬까지 다녀와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계속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선택 사항이 주어졌다. 시내 중심가로 가서 쇼핑을 할 사람들과 그냥 호텔로 돌아가 쉴 사람들로 나누어지는 거다. 반쯤으로 나뉘었다. 나는 물론 호텔 쪽이다. 호텔을 택한 사람들이 먼저 내리고 다른 일행들은 시내로 나갔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의 여유로움을 호텔 안에 있는 사우나에서 보내기로 했다. 여행지에서의 호사를 누리게 되는 이런 일이 쉽게 오지는 않는다. 더구나 여행지에서 처음 보게 된 사람들과 벌거벗고 한 공간에서 만나는게 쑥스럽게 생각되기도 하였지만 지금 이 나이에...더구나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인데. 그래도 용감한 몇 명의 여자들이 있었고 오후 내내 맞았던 비에 움추려 졌던 몸은 뜨거운 맛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남미 최고의 휴양도시인 바릴로체의 밤은 깊어갔고 이제 며칠 안 남은 여행을 아쉬워하며 내일을 준비하였다. 내일은 비행기로 이동을 하는 날이다. 파타고니아의 중심 도시인 칼라파테로 가야 하는 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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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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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일정은 비행기로 칼라파테로 이동을 하여 그곳 공항에서 다시 버스로 엘찰텔로 가게 된다. 칼라파테는 파타고니아의 중심도시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남극을 제외하고 제일 큰 빙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항으로 나가니 문제가 생겼다. 3시간 이상 딜레이 된다는 얘기였다. 어찌 할 것인가를 놓고 우왕좌왕 하던 끝에 인솔자가 내린 결단은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갈 사람들과 그냥 공항에 남아 있거나를 선택하자는 거였고 반 반 식으로 나뉘었다. 역시나 나는 남는 쪽이었다. 예전 같았음 기필코 시내로 갔을 텐데,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그런 쪽으론 눈이 안 갈 것 같다. 처음 해외여행을 시작 하던 때가 생각난다. 기념품 가게나 여행사측에서 데리고 가는 쇼핑센터에서 남보다 하나라도 더 사려고, 또 왜? 그렇게도 줄 사람이 많이도 생각나는지...암튼 쇼핑하러 여행 온 것처럼 정신없이 질러 댔었 다. 세월이 많이도 흘러 나이를 먹고 보니 그런 것이 다 헛된 것 이란걸 깨우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그 나이엔 충분히 그럴 만하였다고 본다. 지금도 해외여행,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거나 젊은 나이라면 그런 쪽에 눈이 많이 간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마치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런 분들을 보며 즐기는 쪽이다. 공항 한쪽에 있는 식당,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오랫 만에 책을 펼쳤다. 한참 전에 구입했지만 여태 읽지 못했던 김훈의 '칼의 노래'다. 김훈의 글은 문장이 짧고 경쾌하여 좋아한다. 시간이 되어서 시내로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왔고 식당에 모여 점심을 그곳에서 먹게 되었다. 워낙에는 칼라파테의 어느 식당에 점심을 예약 해 두었다고 하였지만 점심시간은 이미 훨씬 지난 후였다. 탑승한 비행기가 칼라파테에 거의 도착했을 때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의 풍경이 광활한 벌판이었다. 공항이 보이는데 얼마나 허술 하고 작은지 마치 우리나라 어느 시골의 농장, 축사 같이 보였다. 그래도 그런 소박한 공항이지만 이곳을 찾는 세계인들을 맞이하고 보내고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곳이다.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는 젊은 여자였다. 비교적 여지껏의 가이들과 다르게 밝은 표정이 우선은 맘에 들었다. 오후 세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이미 공항의 식당에서, 또 비행기 안에서 준 간단한 먹거리를 먹은 후라 일행 모두 예약되어 있는 식당엘 안가도 된다는 의견 일치였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그 식당에선 우리의 예약 건 때문에 일부러 장을 보아 다 준비 해 놓았을 테니 가서 먹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는 답이다. 아니, 장을 보았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서 먹으면 안되나? 하는 궁금증은 그 식당에 가서야 풀렸다. 공항에서 빠져 나온 버스가 달리는 길엔 아르헨티나 강의 물줄기가 줄 곳 따라 붙었다. 움직임이 보이는 것이라곤 그 강의 작은 물줄기뿐이지, 지나는 차량들도,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황량함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맞는 길을 한 없이도 간다. 어쩌다 방목해 놓은 말 몇 마리가 보이자 모두들 소리를 지르는 정도의...그런 지경이다. 앞자리의 현지 가이드는 운전기사와 줄 곳 대화를 하는데 너무 심하다 할 정도였지만 한편으론 이런 길이 운전하는 사람의 졸림 방지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암튼 그렇게 한 없이 달리다 드디어 나타난 게 식당을 알리는 대문을 겸한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통과하여 다시 4킬로를 더 달려 식당 본채 건물에 도착 했다. 오로지 이 건물 한 채와 역시 그 식당에서 지어 놓은 팬션 서 너 채 뿐, 넓디넓은 목장이다. 마치 서부 영회에서나 본, 그런 광경이다. 반갑게, 큰 웃음으로 맞아주는 주인 여자 역시 서부영화의 주인 공 같은 복장이다. 긴 부츠에 뒤로 묶은 머리며 하얀 브라우스 차림의 여자는 우리를 자리로 안내하곤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두 번의 점심을 먹었음에도 또 점심 취소하자구요 하였던 일행들이지만 정성스레 준비해 내온 음식이 입맛 에 흡족한지(닭다리 구이와 브로콜리 슾) 남김없이 먹었다. 후식까지 챙겨 먹고선 그 때부턴 식당 내부의 인테리어에 환호를 한다. 여지 저기서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쉴새 없이 났고 그 소리는 이제 식당 밖으로 옮겨갔다. 우리 일행의 뒤를 따라 나온 여 주인은 이곳저곳을 안내 하기도 하고 우리와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슬하의 남매와 셋이서 이곳에서 식당을 하며 여행객들을 맞는다는 그녀, 이렇게 손님이나 들어야 사람 구경을 하는 거다. 그래서는 아니 지만 어쨋든 정성어린 음식과 친절에 고마웠고 짧은 시간 머물다 가게 된 게 아쉬웠을 정도였다. 이 여행이 끝날 때 쯤 아르헨티나에서의 일정이 제일 맘에 안 들었고 사람들 역시 그랬다는 사장님, 이곳 식당만큼은 제외라는 말을 하였다. 오케이 목장의 결투는 아니었지만 목장의 분위기를 흠씬 느끼며 늦은 저녁 같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삭막한 길을 달렸다. 그 삭막함에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어느새 일몰이 시작되었다. 설익은 토마토 같은 색의 붉은 빛 구름이 떠다녔다. 그 붉은 구름과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산봉우리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가 묵을 숙소가 있는 엘찰텐의 중심 가 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공항에서 허비한 몇 시간과 칼라파테에 도착하여 끝없이 달려온 길...그것이 전부였다. 아, 하나 더...점심을 먹은 그 식당은 잊지 못하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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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엘찰텐, 피츠로이 산 트레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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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파테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고 엘찰텐으로 가는 길은 벌써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구름에 가린 피츠로인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거의 완만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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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칼라파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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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파테의 일정은 엘찰텐에서 피츠로이 산 트레킹이 전부였지만 비행장에서 엘찰텐 까지 이동하는 그 길 자체가 볼거리 였으며(아무런 볼거리가 없는 그 자체가...)이런 여행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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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페리토 모레노 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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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안데스 여행 스케줄엔 빙하 가기가 없었다. 일행 중 삼분의 이 이상이 이미 다른 남미 스케줄로 빙하를 다녀 온 곳이다. 나 역시 2000년, 비록 이곳 칼라파테에서는 아니지만(2000년 칠레와 1994년 카나다 쪽에서 보았음) 빙하 체험이 있다. 허지만 이곳 칼라파테 까지 왔는데...조금만 움직이며 빙하를 볼 수 있는데 하는 맘에 인솔자인 사장님은 예외의 스케줄 단행을 하였다. 오늘은 우수아이아로 이동을(비행기로)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빙하로 갔다. 맑은 기운의 하늘은 긴 무지개를 보내며 우리가 가는 길을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하며 따라 붙었다. 남미 대륙을 여행하다 보면 빙하를 자주 만나게 된다. 얼음덩어리인 빙하는 수 백, 수 천 만년 동안 땅위에 내린 눈이 쌓여서 압축되고 재결정되어 생성된다. 지구 전체에 있는 빙하 중 84프로 정도가 남미 대륙에 분포하고 있으며 카나다와 알라스카 그린란드에서도 볼 수 있다. 대부분 고위도 지역에 위치한 빙하는 녹아서 바다로 들어간다. 지구 전체 표면의 십분의 일을 덮고 있는 빙하가 전부 녹는다면 지구 전체의 평균해수면이 60미터 정도 상승한다고 한다. 서둘러 온 보람이 있어 다른 관광객들이 없어 조용하였다. 빙하를 잘 볼 수 있는 곳 까지 내려가는 길은 나무로 만든 계단이 있다. 아직, 아무도 지나치지 않은 계단은 미끄러웠다. 조심스레 내려가는데도 몇 번씩 미끌. 드디어 눈앞에 푸른빛이...빙하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빛은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환상 그 자체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 갈수록 넓디넓은 빙하가 펼쳐졌고 잘려나간 단면의 푸른빛은 더욱 빛났고 어느 쪽에선가 빙하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천둥소리를 내며 떨어진 빙하의 조각들은 햇빛을 받으며 바다로 떠내려가는 게 마치 제 생을 다 한...생명력을 가진 미물 같이 보였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빙하에서 서둘러 나와 공항으로 달렸다. 아르헨티나에 와서 제일 힘들고 안타까웠던 것은 비행기 타기였다. 단 한 번도 제 시간에 출발 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점심을 우수아이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게 되는데 특식으로 킹크랩을 맞추어 놓았다고 하였는데 물 건너가게 된 거다. 이렇게 아르헨티나의 비행기가 제 시간에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노조 탓도 있다고 했다. 오래전 세계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던 에바 페론 에비타 때 노동자들을 우대 하던 정책에서 비롯된 노조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아르헨티나의 정치는 1980년 대 이후 극도의 혼란에 빠져 경제에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 까지도 극심한 경제란에 허덕이고 있다. 우수아이아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젊은 여자 가이드는 무슨 말 끝에 자기 얘기를 하면서 살고 있는 게 슬프다는 표현을 하였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다른 세상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게다가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들은 죄다 (농, 수산물)수출되고 있으며 자기들은 그 나머지 찌꺼기만 먹고 산다는 말도 하였다. 슬프다는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이...슬퍼 보였던 게 이해되었다. 그러면서 기억 저 편의 친구가 생각났다. 대학 이학년 때였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아르헨티나로 간다는 말을 하였다. 그것도 결혼을 하러. 사실 그 당시만 해도(1967년)우리네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대학 공부도 만만치 않던 때였다. 게다가 식솔들은 많고. 친구는 자기 집, 다른 형제들들 위해 맏딸로서 희생타가 된 거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남자에게로...그것도 우리 땅과 정 반대인 곳으로 사진만 보고 갔다. 아르헨티나 이민자한테로. 친구가 떠나고 두 번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당시엔 편지가 오고 가는데도 몇 달이 걸렸다) 이번 안데스 여행, 아르헨티나로 들어오면서 죽 그 친구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의 어느 곳에서 살고 있을 터인데... 가이드의 얘기를 들으면서 또 이곳에 와서 직접 보고 체험한 이곳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그 친구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 아르헨티나의 땅, 어느 곳에서든 그 친구만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 뿐,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우수아이아, 남미 대륙의 땅 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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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남미 대륙의 땅끝, 우수아이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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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여행은 막바지에 도달했다. 그 끝은 남미대륙의 땅 끝 우수아이아 에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기분이 묘했다. 우리가 묵을 호텔 주변이 그랬다. 호텔 앞으로 나있는 좁은 길 가로 고목의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있었고 느티나무만 보면 왠지 모를 감상에 젖어 버리는 내 습성 탓인가, 암튼 우수아이아의 이름처럼 우수가 깃들여 진 거리다. 여행의 막바지엔 늘 가슴이 뛰고(여행이 끝나는 게 아쉬워서 일께다)허 했는데 이곳에서 만큼은 예외였다. 차분한 마음으로 지나쳐 온 그동안의 일정들을 정리해 보기도 하였다. 이곳에서의 일정은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꼬마 열차를 타는 것 부터였다. 이 열차는 원래 죄수들을 실어 나르던 거였다. 오래전 이곳에서 벌목 사업이 시작되자 이 험한 오지로 일을 하러 올 사람은 없었고, 대신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을 데리고 왔다. 꼬마 열차를 타게 되는 작은 역사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단 하나의 빈 좌석도 없이 꽉 찬 손님들을 태우곤 열차는 푹푹 소리와 함께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증기 기관차다) 달리는 구간에서 보이는 것은 방목하는 말들과 밑둥만 남고 잘려나간 나무들,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자라난 잡풀들이다. 거친 들판을 그렇게 한동안 달린 기차가 멈춘 곳은 아시가미 호수 주변이다. 호수 주변으론 허리 까지 오는 무성한 잡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제 자리를 지키느라 애 쓰는 모습 같이 보였다. 일행들 모두 잠시 그곳에서 산책을 하다가 마침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페치카의 장작불 앞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부려본다. 다시 발걸음이 옮겨 간 곳은 해안선을 따라 땅 끝이 보이는 장소였다. 땅 끝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 곳에 다다르니 작은 우체국이 있었다. 이곳에서, 세상의 땅 끝에서 누구에겐가 편지를 띄운다...얼마나 로맨틱한 발상인가? 모두들 우루루 몰려 들어갔고 자기 취향의 엽서를 고르기 시작하였고 또 누군가에게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아무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하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편지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낭만을 가져다주나 보다. 다들 열심히 쓰는 것이 보였다. 나도 손녀, '서연'이에게 한 자 적었다. 유람선을 타고 비글 해협으로 갔다.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 섬과 칠레, 최남단의 섬 사이에 있는 바다를 비글해협이라고 한다. 세 시간 여 동안 배를 타고 바다에서의 유희를 즐기는 거다. 배가 바다 깊숙이 들어가면서 눈 덮힌 설산을 배경으로 고즈녁히 보이는 우수아이아의 시내 전경이 멀어져 한 점으로 보인다.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자 작은 돌섬에 다닥다닥 붙은 펭귄들과 물개들의 기름진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바위에 드러눕기도 하고 기어오르는 형태를 한 물개들의 하품과 여유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듯 한 모습이다. 이곳의 펭귄은 모습만 펭귄이지, 사실은 새다. 하늘을 날기도 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고기도 잡고 하는 마치 중국의 가마우치 같다. 배가 돌아가는 기점에 빨간 등대가 있었다. 마젤란이라는 이름의 등대다. 마침 그 등대 위로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왔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덮치면서 한 폭의 그림이 되어준다. 왠지 우수가 곁들인 것 같은 도시, 우수아이아에 이 여행의 끝을 맺게 되었다. 이곳에서 다시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 다시 칠레의 산티아고로 가야하고 또 그곳에서 뉴욬, 서울로 이어지게 된다. 그 과정은 돌아가야 할 일정이지, 여행의 최종 끝은 결국 이곳 우수아이아에서다. 인솔자인 사장님은 이 아르헨티나가 몹쓸 곳이라 하였다.(수 없이 비행기가 딜레이 되고 호텔 측의 야료등에 넌덜이를 냈음) 그러나 내겐 아련한 아픔과 왠지 모를...함께 공유하고픈 슬픔이 있는 곳이었다. 육지의 끝이라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돌아갈 길만 있는 이곳에선 공허한 마음이 누구라도 들었을 터이다. 여행의 끝이 땅 끝과 맞물려 지면서 내 가슴속도 짠 해왔다. ***이곳 땅끝 우체국에서 손녀에게 보냈던 엽서는 내가 돌아와 이십 여일이 지난 후에야 작은 딸네 집에 도착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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