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란-남프랑스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작성일 :
2011.08.10
조회수 :
3548
이 글은 박영란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박영란님은 2011년5월27일부터 6월5일까지 10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남프랑스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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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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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장이를 위해 건배’ 와인 잔이 부딪칠 때 나는 이렇게 외쳤다.누군가가 익명으로 테이블마다 와인을 돌렸다. 순간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도 잠시 그 ‘익명성’이 주는 즐거운 감동이 전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뭔가 깜짝 도모하는 일. 그 즉흥성과 가식없는 행동이 주는 흥겨움을 와인에 보태 건배를 한다. 모두 행복해 보인다. 평생 아껴 모은 돈으로 대학이나 불우한 사람에게익명으로 기부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와는 거리가 먼 대단하고 훌륭한 위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와인을 낸 그 ‘익명’은 나도 접근 가능한 행위이지만, 글쎄다.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좀 더 내부적인 성숙과 세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와인은 음식을 즐기는 촉진제가 되고 여러 사람이 모인 테이블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섞이게 한다. 맛있는 프랑스의 깔끔한 요리도 와인이 없으면 썰렁해지고, 음식의 재료들은 입안에서 겉돌며 잘 넘어가지 않는다. 사람과 음식과 기분을 동시에 상승시키고 정리하는 것이 와인의 매력인지 모른다. 와인을 마시면서, 순간 ‘익명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와인처럼 사람의 향기가 전해진다. 누구일까 유추하는 상상이 더해지고, 그냥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하는 말인사로 끝나지 않는다. 말은 사라지지만 마음으로 전해지는 여운은 혀끝에 남는 와인 같다. 여행자들의 마음에 그런 여운들이 오고 갈 때 여행은 괜찮아진다. 스무명이 넘는 부지의 사람들이 함께 여행하는 일은 때로 불편하고 때로 까다롭고 서로가 힘들다. 이럴 때 내가 누구라는 소개는 괜한 장애일지 모른다. 철저한 ‘익명’이 훨씬 편안하고 서로가 자유롭다. 적어도 여행을 와서까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할 필요는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지면 알고 모르면 그 뿐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던져지는 그 익명이 어쩌면 여행의 본질인지 모른다. 익명은 비밀스러움과 호기심 그것만으로 즐겁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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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즉흥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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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딜 가든 ‘아는 것만큼 보이’지만, 우린 지금이 기회다 싶으면 별 준비 없이 떠난다. 뉴질랜드에서의 두달도, 뉴욕에서의 두 달도 어느 날 갑자기 단행한 일이었다. 지도위에 주사위를 던지듯, 그냥 마음 가는 곳이었다. 다만 영어권이라는 점과 치안에 걱정이 없다는 점이 우선했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로 방향감각도 무디다. 이런 불편한 약점이 있지만, 우리의 장점은 완벽해서 떠나지 못하는 쪽보다 ‘뭐 해보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결정한다. 무 자르듯이 일상의 리듬을 왕창 토막내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 보기. 그런 순간적인 발상도 어느 날 저녁, 부부가 한산한 바람을 맞으며 온천천을 걸으면서 떠 오른 생각이었다. ‘여보, 한 도시에서 태어나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평생 한 곳에 산다는게 참 답답하다. 기회가 되면 어디 다른 곳에서 살아보자’ 는 그 즉흥적이고 엉뚱한 투정에 남편은 망설임 없이, ‘좋지. 한 번 해보지’ 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여행도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지, 어느 시기가 되면 이유없이 떠나고 싶다. 묵은 자리를 털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은 유혹이 강해진다. 이번 프랑스 여행도 그랬다. 특별히 계획을 세우거나 숙고 없이 ‘테마투어세이’의 남프랑스 일정을 보고 서둘러 신청을 하고 단체여행이 끝나면 파리에서 머물 숙소를 인터넷으로 구했다. 장기간 비워둘 집안을 정리하는 일도 여행 가방을 꾸리는 철차도 이제는 아주 간편하고 간단해 졌다. 점점 ‘노마드’ 해지는 기분이랄까. ‘백두대간 종주’의 등산로에는 나뭇가지에 달아놓은 무수한 리본들이 있다. 그 작은 리본에는 주로 산악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산악 단체나 개인이 걸어간 흔적을 남기는 동시에 다음 종주하는 사람들이 대간 길을 가는데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 때 ‘비실이 부부 백두대간 종주’라고 쓰인 리본을 보고 동병상련이라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게 웃었다. 힘들 때면 비실이 부부도 다녀갔는데 하고 힘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낙동정맥에서도 앞서간 이 비실이 부부의 리본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의지가 강한 부부의 표상처럼, 거기에 우리 부부의 모습도 함께 투영되는 것 같아 흐뭇했다. 내 삶에 ‘백두대간 종주’ ‘뉴질랜드’ ‘뉴욕’ ‘프랑스’ 이런 리본을 달게 되었다. 종주를 하면서 다져놓은 체력으로 ‘밀포드 사운드’트레킹을 겁 없이 했다. 발로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던 그 순간들은 대체로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지도를 보고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힘들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마치 산의 정상에서 스쳐가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처럼 그런 뿌듯한 기분이 스쳐갔다. 길 가의 카페에 앉아 마냥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여유와 자유로움이 참으로 좋았던 것처럼, 이 ‘특별한 리본’들은 살아가는데 나만의 에스프레소의 향기가 될 것이다. 아직 나에게 어디로 튈지 모를 즉흥성이 살아있다는 것-아마 그것이 삶의 에너지가 아닐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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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부러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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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브르미술관안의 소장품들을 보다가 지쳐버렸다. 9시 입장하여 오후 6시까지 열심히 보았지만 ‘드농관’ 일부에 머물렀다. 발바닥은 욱씬거리고 종아리는 뻗뻗하고 허리는 아프다. 다른 관람객들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다리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한 귀퉁이에서 아예 자고 있는 젊은이. 작품을 감상하는 대부분의 어른들의 표정은 굳어있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유적 그리고 그 많은 회화, ‘모나리자’ ‘니케의 여신’... 진기한 보물과 위대한 미술품들을 여행객들은 사진 찍고 그냥 스쳐간다. 엄청난 양의 소장품들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수많은 관람객으로 인해 오롯이 작품에 다가갈 집중력을 빼앗겨 버린다. 그냥 보다가 미로 같은 통로로 빠져버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수준에 머물고 만다. ![]() 곳곳에 견학 온 학생들이 보인다. 유치원에서부터 고학년에 이르기 까지 한 무리씩 바닥에 앉아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방법으로 관람하고 있다. 지나가는 통로를 방해하지 않고 한 쪽에 모여 앉아 한 작품을 바라보면서 큐레이터가 설명하는 것을 듣는다. 듣고, 보고, 감상하고, 그리고 종이 위에 그려보고 뭔가를 열심히 쓴다. 산만한 공간이지만 그들의 수업 과정은 참으로 진지하고 차분하다. 학생이나 선생님 모두 주의 깊고 성의 있는 모습이다.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난 어느 유명한 작품을 볼 때보다 더 리얼한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뒤돌아 다시 보고 훔쳐보고 사진도 찍고 그랬다. 참으로 부러웠다.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유산들이 정말 빛나 보이는 순간들이었다. 이런 문화환경에서 교육 받고 자란 아이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문화를 지켜가는 시민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美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과 교육에 의해 갈고 닦아지는 감각인지 모른다. 오래된 건물, 거리, 사람, 패션, 인테리어... 사회의 질서까지 이런 것들이 죄다 조화를 이루고 있는 프랑스만의 개성과 매력을 보고 있자면, ‘우린 언제쯤 ~’ 하는 시샘같은 부러움이 일어나곤 했다. 이들은 여유가 있다. 노선을 묻고 기차표를 끊을 때면 쉽게 설명해 주고 표정을 살피면서 몇 번이고 알겠느냐고 다시 물어온다. 사이렌 소리는 자주 심장을 멈추듯 깜짝 놀라게 하지만, 클랙슨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차를 멈추고 딴전을 피우고 있어도 뒤차는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앞 차의 창문을 두드리면서 차 좀 비켜달라고 몸짓을 하던 그 장면을 나는 불가사의하게 지켜보았다. 줄 서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듯 보여도 조급해 하지 않는다. 그냥 기다리다 자기차례가 오면 천천히 자기 볼 일을 보면서 뒤에 기다리는 사람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미술관에서 관람하는 것도 물건 사거나 식당에서 밥 먹고 계산하는 일상의 일들이 우리에게는 지극히 참을성을 필요로 할만치 느리다. 하지만 기다리고 , 기다리게 하는 사회시스템에 별 불평 없이 잘 사는 이 곳 사람들의 모습은 유연하고 여유롭다.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메씨’(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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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자유로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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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스 해변에 앉았다. 니스 백사장은 모래가 아닌 자갈밭이다. 거제의 몽돌처럼 통통한 돌이 아니라 납작하다. 길고 크고 동그란 모양에 상관없이 죄다 납작한 돌이 모래 알갱이처럼 해변을 덮고 있다. 오후 여덟시가 넘은 바다의 물살은 살에 닿지 않아도 을씨년스레 보인다. 한 소년이 파도가 오면 달려들었다가 도망가고 그러기를 반복한다. 백사장에는 그 아이를 지켜보며 빙그레 웃는 엄마가 있고, 반대편에는 아빠와 아이가 돌을 집어 들어 바다쪽으로 던지기를 한다. 아빠 돌은 바다 멀리 점으로 떨어지고, 아이가 던지는 돌은 돌에 떨어진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정겹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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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치열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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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아들, 딸. 니스에서 파리로 가는 TGV를 탔다. 오전 마티스 미술관을 갔다 오는 것으로 남프랑스의 투어를 끝내고 일행은 공항으로 떠났고 우린 니스역으로 왔다. 차창 밖으로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펼쳐지는 지중해의 코발트 물빛을 거슬러 기차는 달리고 있어. 생 라파엘, 칸느, 니스로 이어지는 이 해안을 ‘코트 다쥐르’ 라고 부르더구나. 우리가 거쳐 왔던 이 아름다운 해협을 역으로 거쳐, 프랑스 내륙을 관통하여 파리로 가고 있다. 풍요롭게 펼쳐진 끝없는 평원을 보면서 이 나라가 가진 것이 정말 많고 잘 산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지. 2011.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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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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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는 두 살이란다. 비행기 앞쪽에 매달아 놓은 간이 요람에서 아기는 겨우 잠이 들었다. 아기가 울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가슴에 꼭 안고 비행기 복도를 왔다갔다 하던 그녀들도 지쳐있다. 그냥 스쳐 갈 수 없어 아기를 한 참 들여다 보고,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로 입양을 갑니까? 하고. 홀트복지 직원인 젊은 여자도 마음이 편찮은 표정이다. ‘독일~’하는 목소리는 낮고 힘이 없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아기들은 수시로 깨고 징얼거리지만 다행스럽게도 울지는 않는다. 장시간 비행은 제 몸 하나도 무척 피곤한데, 홀트 직원들은 아이와 승객에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앞에 놓인 TV 속 영상처럼 계속 보였다. ‘운명’ 과 ‘숙명’에는 차이가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살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수 없다. 이렇게 정해진 것을 숙명이지만, 운명은 자신의 의지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금 독일로 가는 나는 단지 비행기를 트렌치하는 것 밖에 다른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겨우 두 살 난 아기들은 이 독일에서 숙명과 운명이 다 바뀌는 기로에 놓여있다. 아기는 과연 무엇을 알까. 이 엄청난 기로의 순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결정되고 그 결정으로 새로운 인생이 출발되리라는 것이, 생각할수록 섬뜩하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 저 어린 나이에 감당하는 인생곡절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삶이 아무리 거칠고 의혹투성이라고 하지만, ‘어쩌자고... 저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아기가 어떻게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성장의 아픔과 절망을 견디어야 할 시기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좋은 부모님 만나 많이 사랑받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난 그렇게 빌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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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숙소 | ||
| 낯선 나라에 도착하여 인터넷으로 예약한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경비실에서 집 열쇠를 건네받는 그 순간을 상상해 보라. 뉴욕 존 F케네디공항에 도착하니 캄캄한 밤이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주소를 보이면 그곳으로 달려갈 때에는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약속한 그 집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고, 네트워크의 국제화 사회를 실감하는 것이 자못 흥분되었다. 열쇠를 받아 구멍에 key를 넣어 돌리는 순간 철컥 문이 열리면서 한 눈에 들어오는 내부의 풍경은 예측할 수 없다. 뉴욕에서 렌트한 집은 쥴리아드 음대에 다니는 딸과 엄마가 사는 집이었다. 여름 하계연습을 가기위해 두 달 비워 둔다는 집을 인터넷으로 구했다. 임대한 집을 다시 임대하는 것을 ‘서블랫’이라고 했다. 복도에는 피아노가 놓여있었고 거실겸 침실인 원룸에 놓여있는 책장은 세계전도로 가려져 있었다. 창고인 듯한 문의 가장자리에도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다. 그들의 물건들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선반에는 물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주방 싱크대 서랍 안에는 한 뭉치의 편지봉투가 들어있었다. 객지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나무를 키우면서 유학생인 딸을 돌보는 한 여인을 떠 올려보았다. 이렇게 묘한 정감이 남아있는 타인의 집에서 먹고 자고 일상을 해 보면,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작은 메시지들이 문득문득 나타나곤 했다. 9.rue aramand moisant 75015 paris 이것은 파리에 있었던 우리 집 주소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쓸 때나 차를 빌린 때, 주소란에 이렇게 주소를 적을 때면, 우리가 정말 파리에 살구나 하는 즐거운 자각을 하게했다. 이 숙소는 ‘몽파르나스’역에서 아주 가깝다. 파리 중심 시테섬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여기서 tgv를 타면 프랑스의 북부나 중부, 남부를 갈 수 있고 국철과도 연계되어 근교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배낭이나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는 많은 관광객들로 늘 북적댄다. 버스와 지하철 노선도 많아 이동하기가 쉽고 편했다. 장거리든 단거리든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피곤한 목소리로 ‘정말 위치가 좋네’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떠내기처럼 잠시 머물다가 가는 여행객도 슈퍼 가깝고 환경 쾌적하고 교통 좋은 곳이 역시 좋았다. ‘그럼 그곳 집값이 얼마였냐고?’ 궁금해 할 것 같다. 아니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우린 모든 집값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까. 하루 70유로로 계약했다. 앞으로 프랑스에 머물 계획이 있다면, 70유로 전후 곱하기 날짜 곱하기 1600원 하면 숙박비의 비용이 한화로 산출된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냐고? ‘파리지엔’ 내친 김에 호텔, 민박, B&B, 유스호스텔, 성城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볼까 호텔방은 문을 여는 순간, 그 깨끗하게 정리정돈 된 상태를 맞이할 때 그 기분이 전부인 것 같다. 조금 지나면 여행 가방에서 빠져나온 물건들과 자유롭게 사용한 욕실의 타월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한 순간 깔끔한 모습은 뭉개진다. 단체로 간 패키지 여행에서는 전망 좋은 방도 기대하기 어렵다. 주로 4성급이나 5성급에 투숙한다고 광고하지만 정작 좋은 호텔이 가지고 있는 부대시설- 하다못해 수영장이라도 여행객은 이용하기 힘들다. 시간에 쫓겨 새벽같이 나가고 들어올 때는 호텔 주위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늦은 시각에야 들어가게 된다. ‘빛 좋은 개살구’다. 거의 사각인 호텔방은 재미가 없다. 숱하게 사람들이 오고 간 자리지만, 객실은 사람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게 최고의 서비스인 듯. 깔끔한 침대시트와 세트를 이룬 커튼색, 그리고 물기 하나 없이 반짝거리는 욕실에 비치된 비품들, 벽에 걸린 장식용인 액자 등에 눈이 가지만 그것도 잠시다. 하지만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호텔’에서 잔다는 것이다. 깨끗한 방과 아침이면 하얀 식탁보가 깔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여자들에게 이상한 ‘로망’을 준다. 제 손 하나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는 그 ‘우아한’ 상황에 대해. 여행이 아니면 이 호사를 어떻게 누리겠는가. 여행사가 정해 놓은 최고급 호텔을 많이 이용해 봤지만, 전혀 기억에 남는 호텔이 없다. 그냥 쾌적하게 잤다는 것 밖에. 오히려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외국에서의 한국 ‘민박집’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딸이랑 배낭여행을 갔을 때는 호텔은 열외였다. 대학생들의 배낭수준대로 유스호스텔, 민박만으로 숙소를 정했다. 영국에서 내가 경험한 한인이 경영하는 민박의 형태가 ‘민박’을 대표한다 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에서 ‘숙박업’(대개 불법으로 하고 있지만)을 한다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개념으로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숙박은 방의 수에 맞게 사람을 받아야 하고 깨끗한 요와 이불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무튼 그 민박집은 썰렁한 거실에 요를 줄줄이 갖다 놓고 고무줄 늘이듯 손님을 받았다. 예약에 없던 사람이 갑자기 소개를 받고 왔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슬쩍 양해를 구해 조금씩 밀어 붙여 요를 슬쩍 끼워 넣었다. 이층침대가 ㄴ자로 놓인 좁은 방바닥에도 즉석에 잠자리를 깔아주는 민첩함이 있었다. 마치 이웃집에 사는 이모집에 놀러갔을 때 이모가 주섬주섬 장농에서 요이불을 깔아 조카를 재우는 그런 정서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단지 한국 사람들 끼리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고, 아침이면 된장국에 김치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피차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아침이면 달랑 하나 뿐인 욕실을 이용하려는 나그네들의 사정이 참으로 곤혹스러웠고, 새 수건 하나 제공되지 않았다. 아무리 성수기 한철이라고 하지만, 좀 제대로 했으면 하는 이 바램은 나만의 생각일까. 유스호스텔은 우리의 민박보다 반값정도의 숙박료을 받지만 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새 베개잇과 매트리스 커버, 이불을 안겨준다. 그리고 퇴실할 때는 사용한 커버들을 벗겨 반납해야한다. 하지만 이곳에도 약점은 있었다. 투숙한 젊은이들이 밤 고양이처럼 밤새 들락날락하는 통에 잠이 편할 리 없었다. ‘오늘은 몇 명이 자니?’ 여행하면서 딸에게 투정하듯 그렇게 묻곤했다. B&B는 bed와 breakfast를 제공하는 현지의 민박집이다. 현지인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 볼 수도 있고, 현지인을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다. ![]() ‘루아르’는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다. 1000킬로가 넘는 강을 끼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곳에는 11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고성들이 백여개 흩어져 있다. 우린 렌터 카로 ‘샹보르 성’ ‘슈농소 성’ ‘아제르 리도 성’ 등 몇 개의 고성을 둘러보면서 그곳 마을에서 일박을 했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목에 눈에 띤 예쁜 B&B 간판과 대문 앞에 수북하게 핀 하얀 수국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호기심에 문을 살짝 밀고 들여다보니 집 안은 온갖 꽃과 나무들로 풍성한 정원이 보기 좋았다. 젊은 할머니가 손녀인 듯 아기를 안고 책과 아기 장난감이 널려있는 거실을 지나 우리가 잘 방을 보여주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방에는 오래된 나무탁자와 의자, 페치카가 놓여있었고, 천장에서부터 흘러내린 붉은색 커튼을 걷자 하얀 덧문 사이로 잔디와 파란 하늘이 들어있었다. 호텔도 아니고 집도 아니었지만, 그냥 놓여있는 살림 가운데 손님을 위해 정갈하고 소박하게 갖추어 놓은 것들이 참으로 달랐다. 우리의 민박과는. 아침은 B&B에 투숙한 여행객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중에는 생후 팔개월과 두 살난 남자아기들을 데리고 자전거로 프랑스를 종단하여 피네레 산맥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간다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부부 각자 자전거 바구니에 아이를 담고 간다는 이야기에 하루도 아니고 3개월 정도를 그렇게 여행한다는게 놀라웠다. 그들의 그런 꿈과 체력과 현실이 대단하고 부러울 뿐이었다.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아이와 엄마와 아빠가 걱정스러웠지만, 그들은 고생스런 표정도 힘들다는 하소연도 하지 않았다. 맑은 햇살이 창가에 쏟아지던 아침, 창문에는 정원의 꽃과 나무들이 싱그럽게 비쳤다. 프랑스의 아침식사로 요쿠르트, 커피, 햄, 치즈, 바케트빵이 나왔고 할머니는 빵과 뜨거운 커피를 서빙하느라 주방을 왔다갔다했다. 여행객들의 담소와 웃음들 - 여행의 노스탤지어가 될 아련한 풍경으로 남는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귀족의 집을 보면서 저런 집에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턱도 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남프랑스 여행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살지는 못했지만’ 꼭 그런 배경과 크기와 분위기를 가진 성에서 하루 밤을 묵은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성城을 샤또 Chateau라고 한다. 우리가 묵은 ‘Chateau de Roussan' 호텔은 12세기부터 ’생 레미‘에 거주한 대지주 가문의 대저택이었다. 입구는 하늘을 치솟은 우람한 플라터너스가 쭉 뻗어 있는 길이 장관이었다. 그 마차길을 따라 들어가니 성은 단단하고 견고한 귀품을 한 채 숲 속에 싸여 있었다. 짐을 풀고 이 숲 속을 거닐면서 맛 본 고요와 편안함이 이 여행의 백미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 여기서 혼비백산 할 일이 있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귀신이 나타난 건 아니고) 샤또에는 과거 집 주인의 호사스런 안방도 있고, 하인방도 있고 손님 접견실 등 다양한 방이 있다. 이제 그 방들을 여행객들은 자신의 복불복대로 배정을 받는다. 자신이 전생에 백작부인이었는지, 하인이었는지.... 키를 받아든 표정에는 약간의 긴장이 숨어있다. 모든 방들은 방마다 구조가 다르고 그 다른 구조에 맞게 고풍스런 가구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기물들이 城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예쁘고 중후한 무게를 지닌- 그런 정감들을 나는 무척 좋아하며 즐겼다. 옛 주인의 서재에는 그 시대의 책들과 체스 판, 책상 등이 고스란히 놓여있었고 복도에 걸린 오래된 액자와 복도와 로비 군데군데 생화가 가득히 꽂힌 꽃병들은 여전히 고고한 성의 자태를 보여주었다. 내 방의 창문으로는 플라터너스의 가로수가 쭉 뻗어있는 멋진 정경이 정면으로 보였다. 아마 옛 주인은 저 멀리서 달려오는 마차소리가 들리면 이곳 창가에 서서 누가 오는지 호기심으로 지켜보았으리라.오래된 ‘성 루이스’ 수도원을 호텔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느낀 것은 건물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정체성’을 없애지 않는 것이었다. 복도에 붙여 놓은 건물의 배치도에 작은 성당이 있어 찾아가니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기도실을 만날 수 있었다. 묵직한 문을 밀고 들어서니 어둠에 잠겨있던 실내가 서서히 밝아지면서 성모상과 희미한 촛불와 제대가 놓여있는 이 의외의 공간과 맞닥뜨렸다. 호텔과 수도원이라는 두 이질적인 공간이 서로 포용하고 있는 그 장면은 아주 특별한 인상을 주었다. 최고급 호텔보다 ‘성’ ‘수도원’ 이런 곳의 숙박료가 더 비싼 이유에는 그만한 한 감동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ㅁ자형의 이 호텔 중정에는 수령이 오래된 플라터너스가 몇 그루 솟아 있었다. 그 나무들은 1600년경에 지어진 ‘성 루이스’ 수도원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 그 자태가 아주 엄숙하고 기이해 보였다. 옛 수도원의 긴 회랑이었던 자리는 지금은 우아한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그 창가에 앉아 밖의 플라터너스를 바라보던 무념의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숙소는 낯선 곳에 머물러 묵는 곳이다. 하루 밤 자고 떠나는 곳도 있었고 여러 날 머물며 생활도 해 보았다. 내 집을 떠나 타인의 방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나그네임을 가장 실감케 하는 것이었다. 호텔, 민박, 렌트한 아파트, B&B, 성 등, 이렇게 적고 보니 쪽방 같은 곳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고, 성에서 귀부인처럼 멋진 호사를 해 본 나는 과연 전생에 무수리였을까, 마님이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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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해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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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 머플러, 지하철노선도, ‘Just go 프랑스’ 책, 전자사전, 생수병, 선글라스, 여권, 초클렛 - 배낭에 넣고 다녔던 것들인데 제법 무겁다. 우린 부부배낭족쯤 될까. ‘배낭여행’이라는 의미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등에 배낭만 맨다고 해서 다 배낭여행은 아닐 것이다. 이번 여행의 남프랑스 부분은 단체 투어였고, 나머지 이십일은 파리에 있으면서 자유여행을 했다. 여행의 질質을 이야기할 때 기준은 정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유여행이 고생스러울 때는 모든 것을 묶어서 해결해 주는 패키지여행이 생각났다. 돋보기를 들여대고 촘촘한 글씨의 지하철 노선도를 살펴야 하고, 짧은 영어로 차 렌트를 하고, 메뉴판을 보고 대충 감을 잡아 음식을 시키고, 슈퍼에서 생수와 먹거리를 사서 들고 와야 하는... 그런 상황들이 진짜 여행답지만 사실은 피곤하다. 여행을 하고 있는지, 생활을 하는 건지, 극기 훈련을 하는지 항상 애매모호한 경계들이 섞여있다. 자유 여행은 자유롭게 해보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유’는 온갖 시행착오를 해보는 자유랄까. 마치 세상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지하철 표 하나 끊는 일도 그렇다. 무인판매기 화면에 뜨는 진행과정을 몇 차례 걸쳐 시행 해보다가 티켓이 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 순간 흐뭇해진다. 목적지에 가는 노선이 맞는지 거듭 확인하다가 어느 날 표 끊는 일도 버스 타는 일도 느긋해진 자신을 본다. 어이없게도 그 작은 일들에 긴장했고 뿌듯했다. tgv를 타고 다시 국철로 갈아타고 마지막에는 렌터카를 해서 ‘루아르’와 ‘몽셀미셀’을 다녀왔던 그 경험들은 ‘야, 이제는 차 빌려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랄까. 하지만 기본적인 이런 일상도 틀에서 조금 바뀌면 서툴고 허둥대는 것을 보면 우리의 능력이라는게 참 보잘 것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만한 일들은 고민도 고생도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차를 빌리려 했을 때, 사무실 직원이 계약하고 나서 열쇠와 레비게이션만 주고 차를 찾아 나가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할까. 우리나라에서는 뒤 트렁크까지 열어 청소도구까지 설명해주는 친절을 보이는데. 프랑스에서 차를 몇 번 빌렸지만, 어느 한 곳도 주차장으로 안내해 주는 곳이 없었다. 약도를 보고 역전 구석을 빼져 나가 미로를 돌고 돌아 번호표가 같은 차를 찾아내는 것부터 심상치 않는 일이었다. 차를 반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약속 시간이 조금 늦으면, 사무실은 여지없이 닫혀 있었고, 돌아갈 기차를 타야하는데 손에 든 키를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몰라 난감했던 일. 밤늦게 차를 입고시키고 나오는데 출구마다 엘레베이터가 차단되어 주차 빌딩에서 허둥대며 빠져나왔던 일 등등. 이런 잡다한 '해보기‘ 하다보면 ‘간’이 조금씩 커진다. 유일한 짝, 남편에게 삐졌을 때 혼자 버스 타고 휑하니 집으로 왔을 때의 통쾌함이라든가, 지하철에 빈자리가 보이면 ‘Excuse me ’외치며 좁은 통로를 뚫고 덩치 큰 흑인 옆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는 그 배짱 등. 이렇게 긴장과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시점이 되면 보따리를 사서 돌아가야 할 때다. 자식은 여행을 보내 고생을 시켜보라고 했다. 많이 큰다고. 우린 지금 많이 크고 있는 중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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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들은 1600년경에 지어진 ‘성 루이스’ 수도원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 그 자태가 아주 엄숙하고 기이해 보였다. 옛 수도원의 긴 회랑이었던 자리는 지금은 우아한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그 창가에 앉아 밖의 플라터너스를 바라보던 무념의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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