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12.01.25

  • 조회수 :

    337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대는 황량한 초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누떼가 두 갈래로 갈려 내달렸다. 하이에나의 습격이었다. 바로 눈앞에서는 일찌감치 사냥을 마친 하이에나 가족이 누의 머리를 뜯고 있었다.
 
누에겐 미안하지만 운이 좋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지근거리에 웅크리고 있는 사자도 보았고, 멸종위기라는 코뿔소도, 표범도, 치타도 보았다. 케냐와 탄자니아를 잇는 동물 사파리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나미비아의 나미브 나우클루푸트 국립공원에서 아프리카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맞았다. 왈비스베이에서 소수스플라이까지 이어지는 호쾌한 드라이브 코스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쓸쓸함에 가슴에 멍울이 질 지경이었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오면 대지에 누워있던 누런 들풀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서로 부대끼며 아우성을 쳐댔다. 그들의 공허한 몸짓이 모여 세월이 되는 것 같았다. 우린 그 곳에 난 외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감탄과 탄식을 번갈아 토해내면서…
 
그렇게 달려가서 만난 소수스플라이는 파란 하늘과 날카로운 대비를 이룬 붉은 모래언덕의 강렬한 색감에 눈을 껌벅이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였다. 소수스플라이의 세상은 둘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늘이거나 모래언덕이거나. 또는 파랗거나 빨갛거나. 그 절묘한 경계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데드플라이. 바짝 말라붙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대지에 박혀있는 고사목들이 깊고 무거운 침묵에 잠겨있었다. 살을 파고드는 무시무시한 광선을 쏘아대는 태양 아래 손바닥만큼의 그늘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앙상한 주검들은 천년의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을 기세였다.
 
고사목 사이로 점점이 흩어져가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마른나무가지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물어보았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곳에 버티고 서서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지… 돌아오는 대답은 바람소리뿐이었다.
 
케이프타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케이프타운 여행은 ‘원주민을 몰아낸 정복자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여행 같았다. 그래서 짬을 내어 남아공 정부의 흑백 분리정책에 의해 형성된 흑인거주지역(타운쉽)을 방문했다. 그들은 백인들의 멸시와 시혜를 동시에 받으며 모여살고 있었다. 엉덩이 큰 흑인 아줌마들이 환영의 뜻으로 불러준 합창은 경쾌하고 흥겨웠지만 동시에 서글펐다.
 
아프리카를 다녀온 지 4일 만에 호주의 아웃백으로 날아갔다. 아프리카와 닮아서인지 생소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360도를 빙 둘러보아도 지평선만 아득하게 보이는 대지 위에 붉은 바위덩어리 하나가 우뚝 솟아있었다. 에어즈락이었다. 에어즈락 앞에 서는 순간 세상에 진행 중인 모든 활동은 정지되고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이곳에서도 예의 그 바람은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른 새벽, 에어즈락 앞에 다시 섰다. 거센 빗줄기가 쏟아졌다. 거대한 에어즈락 곳곳에서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애버리진(호주 원주민)의 회한에 찬 눈물이었다. 감히 바위 덩어리에 오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3시간에 걸쳐 에어즈락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 길은 비를 맞고, 바람을 끌어안았던 수도자의 길이었다.
 
한 달여를 아프리카와 호주 아웃백에서 보내고 다시금 콘크리트 벽에 포위된 도시로 돌아왔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하루에도 몇 번씩 나직이 혼잣말을 해본다.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