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함돈영-아프리카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12.05.17

  • 조회수 :

    6813

 
함돈영-아프리카
 
이 글은 함돈영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함돈영님은 2011년 11월 20일부터 12월 8일까지 19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1. 긴 비행 끝에 도착한 케냐

                  
 2000년, 아프리카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도 삼 주간의 일정이었고 이번 코스와 거의 같았으나 한가지 빠진 곳이 나미비아 였다.
사실 이번 여행은 그 나미비아 때문에 다시 가게 된거였다.
당시에도 꽤 여러번의 비행기를 갈아 타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은 이동을 하여 호텔에 도착을 하였는데 짐 가방이 오지 않아 애을 먹었었다.
헐수 없이 옷을 사 입고 세면도구를 사야 했던...난감 한 상황에 처했었다.
그런 일들이 아프리카에서는 당연지사인 것 같다.
이번 여행 출발 전에 여행사 측에서 짐 가방을 두 개로 꾸리라는 전화를 받은거다.
먼저 번 여행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져 어느 분이 정기적으로 꼭 먹어야 하는 치료 약이 들어있는 짐 가방이 도착을 안하여 애를 먹었다는 거였다.
분부대로 두 개의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섰고 23시간에 걸쳐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하였다.
여행 첫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의 오후 세 시 경이 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이로비는 교통의 지옥이었다.
질서라는 개념은 어디에서고 찾아 볼 수 없는 곳이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길에 본 무질서...
마침 우기 철이라 비가 내린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어쩌다 포장이 안된 거리엔 진흙탕 물이 고여 있고 그곳에 빠진 차량들의 헛 바퀴가 돌아가고..
호텔 까지 가는 길은 무척 시간이 지체 되었지만 그것이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이었고 앞으로 긴 일정의 어려움이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내를 요하는 연습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어렵게 도착한 사파리 파크 호텔에 들어서자 반가움이.
예전에도 이곳에서 묵었었기에...


제주도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을 운영하던....
그런 관계로 한국인들의 여행객들이 많이 숙박하게도 한다.
또 현지인인 종업원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켜 우리말을 매우 능숙하게 구사하는 흑인 종업원들이 많다.
2000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나 까지 인원이 다섯명이었다.
아니 우리를 인솔하고 온 사람 까지 여섯명이 맞겠지.
한식당과 중식, 일식딩에서 선택을 하라는데 다섯 명 모두 일식당을 선택하였고.
메뉴는 철판구이였다.
다섯명이 둘러 앉은 맞은 편의 흑인 요리사, 넓고 윤기나는 철판에 해물과 고기, 야채를 능숙하에 익히고 우리들 접시에 놓아주고.
요리가 거의 다 끝날 무렵 까지 아무말 없이 묵묵히 요리만 하던 그 종업원의 한 마디에 우리 모두 놀라움에 젓가락을 떨어트릴 정도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저, 밥 볶아 드릴까요? 누룽지도 해 드릴까요?" 였다.
깜작 놀라는 우리들 모습에 싱긋이 웃던 요리사는 정말이지 노릇노릇 하게 밥을 볶아 냈다.

이번엔...
마찬 가지로 약속된 저녁시간에 일식당으로 모인 우리 일행들 앞에 철판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요리를 하는 남자는 당시의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을 구분 못하듯이 나역시 마찬가지 이니...
암튼 우리들 앞에놓인 그 윤기 짜르르 나는 철판엔 각종 해물과 야채 부터 올라갔다.
잘 익은 해물이 우리 앞의 개인 접시에 나누어 올려 지는데 분배를 어찌도 그리 잘 하는지...
참으로 그 누구의 접시에 더 하고 덜 함이 없이 고루 놓아진 음식을 이미 놓여진 각자의 소스를 가르키며 찍어 먹으라고 일러준다.
물론 유창한 우리 말이다.
다음 순서로 고기 요리가 나오고 그 다음엔 김치 볶은 밥이었다.
참, 우리 앞에 이미 김치가 담긴 보시기가 있었는데 김치 맛이 괜찮았다.
알맞게 익어었고 맞도 있었다.
철판에선 김치 볶은 밥이 누릇 누릇...누룽지 까지.

일행 모두의 흡족한 얼굴들이다.
이 먼 곳 까지 와서 이렇게 입에 맞는 저녁으로 첫 테이프를 장식하다니...하는 맘, 눈에 보였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데 헤프닝이 벌어졌다.
워낙 이곳 호텔이(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호텔들이 다 그러함)메인 건물이 따로 있고 식당 건물과 객실이 구분 되어 있는 거다.
즉 룸에서 식당으로 가려면 메인 건물을 지나 식당 건물로 가게 되는데 그게...좀 복잡하다.
오죽 하면 예전엔 나 혼자서 방을 쓸때(이곳이 아닌 다른 곳이었지만)저녁을 먹고 룸을 찾아 오는데 길을 잃어 가지고 있던 룸 키를 마침 지나가던 호텔 종업원에게 보이고 룸 까지 안내를 받았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으로 갈 때는 종이에 가는 길을 그려 가지고 나가기도...
이번엔 함께 한 룸 메이트도 있었건만 방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었던 거다.
다른 일행 보다 좀 먼저 일어나 나왔기에 우리 둘은 이리 저리 해메다가 이번에도 역시나 마침 지나던 종업원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였었다.

이 호텔에 얽힌 에피소드가 또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호텔엔 담이 있고 정문은 굳게 닫혀 있다가 손님들을 태운 버스나 승용차가 도착하면 확인을 하고 호텔 정문이 열리는 거다.
그런 일이 생소했었다.
호텔에 담이며 닫힌 문이라니...
궁금증이 일어 물어 보았었다(예전에...)
지금도 그렇지만 아프리카는 물이 부족한 곳이 많다.
더구나 현지인들은 자기 목숨과도 같은 '소'가 재산이다.
어느 해인가 유난히도 가뭄이 들어 물이 무지 부족하여 사람은 물론 이려니와 소가 죽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현지인들은 소를 끓고 이 호텔로 쳐 들어 왔다.
호텔 야외 수영장에 넘쳐 나는 물을 소들에게 먹이고 자신들도 퍼 가고...
그 후 호텔엔 담이 생기고 철저히 정문을 잠구게 되었다고 하였다.

어찌 하였거나 우리나라 사람이 주인인 이 사파리 호텔에서 이박을 하는 일정이다.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 호텔에서의 첫 밤은 오랜 비행 때문에, 또 입에 맞는 배부른 저녁 탓에...곧 잠에 떨어 졌다.

 
 

2. 아프리카...집중 공략 시작

             
  사파리 호텔에서의 첫 밤, 마치 공주나 왕비의 잠자리 같았다.
싱글 베드 였는데 각자의 침대는 얇고 보드라운 망사 모기장이 쳐졌다.
물론 우리가 모기장 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을 먹고 온 후 이브닝 서비스를 하러 왔다며 메이트가 와 그렇게 쳐 주고 간거다.
이후...여러곳의 호텔에서 다 그렇게 이브닝 서비스로 모기장 치는 일이며 침대 시트 정리를...이브닝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나중에 귀찮아서 우리가 할 테니 관두라고 들이지 않았지만.
모기가 있었냐구요?
한 마디로 못 보았지만...암튼 거기에 관해서 앞으로 나올 글에...


아침 뷔페 식당엔 미역국과 김치 밥이 있었다.
밥도 날라다니는 알랑미가 아닌 찰진 우리네 밥이.
집 떠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모두들 다른 것 제치고 미역국만 탐한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말 그대로 거대한 계곡? 이었다.
그 밸리는 차량이 다니는 길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게 되어 있다.
이천 오백만 년전 시작된...지각 활동으로 생겨난 이 장관은 시리아 까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보는 쪽은 비록 뭐, 이런 것 가지고 그래...할 정도지만 사실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여기서 길이나 폭 같은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말해 봐야 실감이 안날 뿐더러 숫자 나열은 별로니까.)
암튼 이곳은 나에게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대신 버스를 세운 바로 옆, 몇 개의 기념품 가게와 콜라를 파는 작은 가게? 가 있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콜라는 안팔았지만 새카만 얼굴의 두 여인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었다.
너희 두 사람의 사진을 좀 찍고 싶다 하였더니 손 사래를 치며 얼굴을 돌린다.
그러나...내 카메라가 아주 멀리 까지 잡히는 망원렌즈가 있다.
슬쩍 저쪽으로 자리를 옮겼구 그녀들의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찍는 척 하면서 두 여인을 끌어 드렸다.


사실 이 여인들을 직고 싶었던건 흑과 빨강의 배색이 너무나 강렬하여 내 눈길을 잡았던 거다.
까만 얼굴과 빨간 원색...이런 원색은 이후 다른 곳을 다니면서 수 없이 보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오기전 들째 딸의 첫찌인 '서연'이는 내게 아프리카에 스컹크가 사는지 꼭, 반듯이 알아 가지고 오라 하였다.
스컹크는 아니지만 제 어미가 제일 좋아 한다는 '지브라' 엉덩이가 섹시 하다나 어쩌타나..하는 인솔자의 멘트를 들으며 도착한 곳, 나이샤바 호수.
이곳에선 쪽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 한다.
처음엔 그저 뱃놀인줄 알았다.
호수에 왔으니 당연히?...하는 뱃놀이.
일행들 모두 주홍색의 구명 조끼를 입고 푸른 하늘과 맞다은 호수 유람이라...
카메라의 랜즈를 들여다 보니 작품이다.


앗, 갑자기 우리가 탄 배 앞으로 나타난 하마떼들...
엄청난 크기의 놈들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손님들을 위해 사공은 배를 더 , 더 가까이 간다.
아니 이러다가 저 하마 떼들이 배를 뒤집으면 어찌 할라고.
저 덩치로 이까짓 쪽배 쯤이야 뒤집고 또 엎고 메치고도 남을 힘인데...
우찌 되었던 그 호수서 하마 구경은 실컨 했다.
어디 하마 뿐이랴.
호수 저쪽 건너 큰 나무위에 올라 않아 있던 독수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한 곳에 배를 세우고 사공이 무언가를 손에(독수리 막이꺼리) 올려 놓자 바람같이 와 채 가는 걸 연출하는 거였다.
처음엔 싸인이 잘 안맞았는지 실패를 하였지만 두, 세번 째는 용케도 날렵하게 채가는 거다.
독수리의 묘기?를 보고 옮긴... 다른 쪽에선 수 많은 물새들을 볼 수 있었고 고기를 잡는 까만 얼굴의 사람들 까지...

호수 옆엔 '반달섬'이라고 하는 작은 육지가 있다.
배에서 내려 그 육지로 올랐다.
이곳은 예전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촬영 할 때 일부러 동물들을 데려다 놓은 곳이라 하였다.
당시 풀어 놓은 초식 동물들이 번식하여 지금은 관광거리가 된거다.
처음 만난 동물은 기린이었다.
세 마리의 기린을 보고 쫓아 가는 일행들...
그러나 조금 후 부턴 그 섹시 하다는, 특히 엉덩이가....지브라를 보았다.
몇 마리의 무리였는데 특이 한 것은 어미인지...바로 앞에 새끼가 잠 자는 것을 지키느라 수 십분 동안 꼼짝 않는 것을 보고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식 사랑의 애 끓음은...
그 새끼의 잠자는 모습을 지키느라 앞, 뒤 옆에서 우리들이 카메라를 들이내며 소란을 피워도 역시나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호수의 물놀이, 반달 섬의 초식 동물들 구경, 그건 마치 초등생이나 유치원생들의 대공원 구경 같은 거였으나 이번엔 간 곳은 우리들에게 딱 맞는 수준의 구경꺼리다.
더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어 봤을 만한 혼외의 열애, 비록 나는 못하지만 남의 것이라도 흥미 진진한...그래서 영화로 대신 만족하는...
이렇게 말하면 뭐, 거창한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인 카렌 브릭센이 살던 집 구경이다.
영화에선 메릴 스트립과 미남 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했었다.
원작자의 나이든 사진과 함께 당시 영화를 찍으면서 주인공들이 입었던 옷들과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인공인 카렌은 이 집에서 남편과도 살았고 남편과 이혼후 사랑에 빠진 두번째 남자와도 살았던 곳이다.
덴마크 출신인 작가가 죽은 후 잠시 다른 사람이 그 집에 살기도 했지만 덴마크 정부에서 이 집을 구입하여 케냐 독립 오십 주년 기념 때 케냐 정부에 선물을 하였고 그 후 부턴 관광객들에게 관람료를 받고 입장을 시키게 된거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영화 촬영지가 되었던 곳을 적지 않게 가 보았다.
또 그런 곳만을 묶어 사진과 글을 실어 한권의 책을 낸 전직 기자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티비에 방영 되었던 촬영지가 관광용으로 짭짭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다른 어떤 곳 보다 이곳은 실제로 원작자가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현실감이 있었다.
물론 영화속의 주인공 처럼 멋진 남자와 분위기 있는 여인은 없었지만...
대신 몸집이 좀 큰 여자가 유머 스럽게 당시의 사정을 설명하는게 재밋꺼리였다.

하루 일정을 이곳에서 마무리 할 때쯤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우리들은 다시 내 집 같은 사파리 호텔로 돌아왔다.
이틀을 묵게 되는 사파리 호텔, 종업원들의 우리말이 하나도 서툴지 않았다.


3, 쇠똥에.... 자빠져도 이승이 좋더라 (암보첼리 국립공원에서)

                 

케냐의 사파리 파크 호텔에서 두 번째의 미역국밥을 먹었다.
뭐, 애 낳은 사람도 아님씨 미역국 밥에 김치 얹어서 꾸역 꾸역.
아침에 짐 가방을 대충 다시 꾸려야 했다.
사흘 동안...동물 사파리며 게임 드리이브를 하려면 커다란 트렁크는 짐이 된다.
버스가 아닌, 짚프차로 이동을 하여야 하고 황토 먼지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간단하게...핸드 캐리어용 작은 가방에 사흘 동안 필요한 짐을 챙기고 큰 트렁크는 이 사파리 호텔에 맞겨 놓고 가는 거다.

지프차엔 네 명이 탔다.
워낙엔 일곱명이 정원이지만 여유있게 즐기라고? 네명씩 태웠다.
로비 앞엔 이미 유럽인들을 태운 짚프차가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고 우리 일행들을 태울 차도 준비가되어 있었다.
              
암보첼리 까지의 거리는 대략 250Km가 된다.
시내를 벗어나자 아프리카의 실 생홛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의 남루하고 작은 가게들이 보이고 혹 집들이 몆 채 보이면 그 주변엔 어김 없이 쓰레기 더미들이 보였다.
특이한 것은 우리네 50, 60년대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게 있었는데 양철 지붕으로 된 집들이다.
아니 지붕 뿐만이 아니라 담도 벽도 그렇게 양철로 감싸져 있었고 대체로 지붕은 빨간 색을 칠했다.
여행 오기 전 어느 방송국의 피디인 분이 쓴 책에서...이곳에 대한 글을 읽었었다.
그 역시 양철 집으로 가득한 이곳의 사진도 올렸었다.
차를 타고 지나 가면서 나도 특이한 그 양철 집들의 풍경을 찍으려 노력 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그저...아, 저 양철집들...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빨래줄의 허름한 옷들에서 찐한 향수를 느꼈다.
그렇게 흔들거리며 짚프차 안에서 내다보는 풍경...여러가지 였다.
한참동안 보이던 양철 지붕들이 물러가자 이번엔 바나나 숲이다.
주식이 되기도 하는 바나나는 저렇게 널려져 있어도 다 주인이 있다고 한다.
어느 곳을 지날 때는 우리네 오일장이 서는 것 처럼 장이 펼쳐져 있다.


긴 길이었지만 보여지는 거리의 보습에 지루 한줄 모르고 도착한 암보첼리 국립공원의 숙소.
우리를 맞는 거인? 이 있었다.
마사이 전통 의상을 입은...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들을 마사이 부족의 실 생활을 보여주는(관광객들을 위해 마련한 이벤트임) 안내를 맞은 촌장? 이었다.
일단은 짐 가방 부터 내려야 했기에 빌라 한채 씩을 분양 받았다.
로비에서 그 빌라 까지 한참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안내 멘트가 있었다.
워낙 전기가 딸리는 곳이라 밤 열시 까지만 더운 물이 나오고 열 두시가 되면 전깃 불도 나간 단다.
그렇게 끊긴 전기와 더운 물은 다음날 새벽 다섯시에 다시 들어 온다고...
룸에 들어오니 침대 옆의 탁자엔 '초'와 성냥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두워 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위 사진의(얼굴을 안 찍히려고 하였음) 거인이 우리를 델리고 간 곳이 마사이족의 어느 집.
순전히 관광용이다.
이미 맞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헌데 그 집(작은 움막 집이 몇 채 있었다)들 한 가운데가 마당이고 그 마당엔 쇠똥이 깔려 있었다.
우기라 하더니 하필 이곳에서 비를 만났다.
롯지(아프리카에선 빌라 식의 호텔을 롯지라 한다)에서 조금 떨어진 그곳 까지 짚차로 갔는데 차에서 내리면서 큰 비를 만난거다.
쇠똥이 깔린 마당은 미끄러워 여간 조심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도...우리를 맞는 주인이나(마사이 족의 여인들과 아이들) 손님인 우리 일행들 모두가 함께 어울려 빗속의 파티가 열렸다.
방방 뛰고, 알지 못하는, 그러나 단순한 음절의 원주민 노래 따라 부르기...
쇠똥에 자빠져도 이승이 좋다더니 그 말을 확인 할 수 있는 광경인거다.
그 와중에(나는 사진 찍느라 뛰지도 않았는데...)내 신발이 미끄러지며 하마터면 옴 몸에 쇠똥 칠을 할 뻔 하였다.
점점 비가 더 세차게 내려쳐 모두들 집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집이라야 동물과 사람이 한테 기거하는 좁은 움막이다.
캄캄하기 그지 없는 그 좁은 공간 안에서 반작이는 수 십 개의 눈망울 들.
아이들은 훈련 받은 만큼 열심히 우리의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수줍지만 동정심을 일깨우는 표정도 하고...


그 와중에 눈에 띄이는 소녀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우왕 거릴때 혼자 벽에 기대어 우리를 쳐다 보는 묘한 눈길...
마치 너희들이 무언데, 돈 몇 푼 집어주고, 우리를 무슨 동물 구경 하듯이, 그런 값싼 동정 따윈 필요없어...하는 표정이다.
소녀는 입을 앙 다물고 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데...나는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러나 잽싸게 사진 한컷엔 성공.


미안한 마음에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건넸지만 받지 않았다.
대신 뒤에 있던 다른 여자 아이들이 받아 챙겼다.
그곳에 오래 머물수가 없었다.
워낙 좁은 공간이라 그들과 우리 일행이 북적거리자니...
짧은 시간에 아쉬워 하는 일행들이지만 그들에게 횡재 인가?
일안당 미화로 이십 불 씩을 주고 간곳이다.
물론 오래 있게 되면 그들에게 수입이 더 될 수 있긴 하다.
그들이 손수 만든 공예품을 파는데 그날은 비 때문에 그 수입을 얻지 못한 그들.

그곳을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개었다.
암보첼리 공원을 지프차로 한 바퀴 돌게 된다.
그 과정에 많은 동물들을 보게 되었다.
네 대의 차가 움직이는데 제일 먼저, 혹은 앞의 차에서...암튼 누구라도 먼저 동물을 발견 하면 무전으로 다른 차에게 연락을 하는 거다.
어디 쯤에 어느 동물이 나왔다고...
그러기 이전에 벌써 동물이 보이는 곳엔 표시가 난다.
다른 일행들의 차량들이 몇 대 씩 멈추어 있기 때문이다.


암보첼리에서의 에피소드가 너무 많기에 이장에선 이것으로 끝내고 다시 계속.


4, 믿거나 말거나...(암보첼리 국립공원에서)

 
 암보첼리 공원에서의 동물 사파리
짚프차를 타고 공원내를 돌아 다니면 동물을 구경 하게 된다.
마침 내리던 비도 그치고...
내가 탄 칲차는 네 대 중 3번이란 커다른 쪽지가 운전성 앞 유리창에 붙여져 있다.
1번 차량 부터 순서대로 출발하게 되어 있지만 우리차의 기사는 자신이 제일 앞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 차를 타는 동안 어디를 가나 늘 일등이었다.
그렇게 앞서 가면서 기사겸 가이드 역활을 하는 거다.
저 멀리, 혹은 바로 앞에 동물이 모이면 차를 세우고 뒤에 오는 다른 차량한테 무전으로 전하는 게 그의 일이다.
한 차에 탄 우리 네 사람이 감탄 한건 그의 눈이 밝다는 거다.
저 멀리 까막득히 보이는 동물을 보고 우리에게 가르켜 주는 거다.
물론 그도 때론 망원경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차량의 기사들의 눈이 좋았다.
늘 그렇게 다녀서 인지 동물들이 모여있는 장소 또 나오는 시간도 잘 알고 있기도 하지만...


워낙 동물 사파리라 하면 세렝게티나 마사이마라를 꼽는다.
헌데 이곳 암보첼리 국립공원에서도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동물 얘기는 세렝게티에서 하기로 하고...
인상적인 곳은 공원안에 있는 전망대였다.
차에서 내려 십 분 정도 올라간 곳, 옵저베이션 힐이다.
이곳에선 저 멀리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암보첼리 공원의 조망가 함께 조금 떨어진 곳, 저 아래로 보이는 늪지.
마침 석양에 일행들은 근사한 포즈로 내 카메라에 들어왔다.


롯지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돌아 다니며 본 동물들 얘기가 나왔다.
서로 무엇을 보았다는등...비교 분석하는 거다.
그래, 믿거나 말거나...말 하는 사람들 신이나면 그걸로 만족이다.
자녁을 먹는 식당 밖에 마사이복장을 한 남자가 서성거렸다.
그 다음 날 아침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 였고...
그래 다음날 아침을 먹은 후(그 로지에서 떠나는 날)그에게 다가가 웃으며 접근? 하였더니...
저 멀리 보이는...만년설이 덮힌 킬리만자로를 가르키며 자기를 넣어서 사진을 찍으라는 거였다.
물론 돈을 내야 하고.
그래, 좋다...카메라를 꺼냈고 이왕이면 다른 일행들도 찍으라고 불렀다.


이날은 아침 부터 서둘러야 했다.
암보첼리를 떠나 탄자니아로 가는 거다.
국경을 통과해야 했다.
국경이라 하지만 허술한 만큼 통과의례도 간단하고 쉽게 통과하였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부터 타고 다니던 짚차, 기사와 이별을 하였고 탄자니아에서 마중 나온 버스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로서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점인 케냐에서의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다시 돌아갈 일은 있다.
세렝게티와 옹고롱고로를 다녀서 케냐의 나이로비로 가 사파리 호텔에 남겨 놓고 온 짐을 찾아 다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로 간다.
사흘 뒤...

탄자니아 국경을 넘어 버스로 처음 간 곳은 아류사다.
이곳을 오면서 '모시'라는 곳을 지났다.
예전 생각이 났다.
당시의 잪차 기사가 자기 고향이라며 이곳을 지나는데(역시 세렝게티로 가려고...) 혹시라도 자신을 아는 사람에게 자기 과시를 하려고 자동차를 얼마나 천천히 몰던지...
그곳에선 운전기사를 하는게 큰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이기에 그는 자랑 하고 싶었던 거다.
모시를 지나 아류사에선 점심만을 먹고 이번엔 자동차가 아닌 경비행기를 타고 세렝게티로 가는 거였다.
다시 돌아올땐 버스를 이용하지만 갈 때 만큼은 비행기로 간다는 사장님, 똑 같은 길을 가고 오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5,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

 

  탄자니아의 아류사는 킬리만자로나 세렝게티를 가려는 사람들로 몰려드는곳이다.
오래전 이곳엔 대우자동차의 르망이 판을 쳤다.
김우중 씨가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기부도 많이 하였다고...
당시엔 경고등이 달린 경찰 차량들이 전부다 대우 자동차였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았다.
또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를 이곳에서 들을 수가 있었다.
당시 고인이 된 조용필의 부인과 조용필이 이곳을 방문한였던 이유가...그 노래 때문이었다고.
탄자니아에서 그 두사람을 초청 하여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타고 다녔던 짚차에도(2000년에 갔을때)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가 쉬지 않고 흘러 나오기도...
암튼 그 아류사에서 이번엔 예전과 달리 경 비행기로 세렝게티로 출발하였다.
일곱영이 탄 비행기는 평원을 소리 없이...조용히 날라가며 저, 아래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우리에게 선물하였다.
공중에서 내려다 보는 평원...한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가끔씩 물줄기가 흐르던 흔적이며 실제로 지금도 물이 보이는 주변엔 마사이족들의 집들이 조그맣게...눈에 띄였다.
마사이 집이란 걸 확실히 알 수 있는것이 일단은 동그랗게 원으로 담을 되어 있다.
그 원은 작게 혹은 크게 자리 잡은...다양한 크기다.
집주인인...추장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원 안에 작은 움집들이 몇 채 있다.
첫번째 마누라 부터 몇 번 째 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둘, 셋 이상씩 되는 마누라의 집들이다.
한 시간이 채 안되어 비행기는 도착하였고 디신 짚차로 갈아탔다.
이제 부턴 본격적으로...동물의 왕국으로 입성이다.

제일 먼저 눈에 뜨인 동물은 커다란 나무 위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표범이다.
운전기사가 가르키는 나무위의 표범은 얼굴 쪽은 나무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대충 이런 시간이면 그렇게 오수를 즐긴다나...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요지부동이었다.
표범의 짙은 무늬가 선명한 것을 보며 몇 년전 부터 한창 유행인 레오파드 무늬의 옷이며 핸드백, 머풀러가 떠올랐다.
사실 그 레오파드 무늬는 모든 디자인 업계의 영원 불멸의 소재인것 같다.

유행이 따로 없이 오래전 부터 선호하는...
그런데 부쩍 몇 년전 부터 여성들의 온갓 악세사리며 걸치는 옷이며...암튼 지하철을 타면 한 칸에서 그 무늬 스카프나 옷, 가방 혹은 구두를 수 없이 부딧친다.


한치의 미동도 없던 표범을 아쉽지만 그렇게 보고 옮긴곳, 아니 기사가 보라고 가르켜 준곳...사자라는 거였다.
좀 멀었다.
망원경으로 아무리 보이도 내 눈에는 띄이지 않았다.
함께 차를 탔던 오교수님이...소리를 질렀다.
보인다는 거다.
"저기, 저쪽에,,,검은 머리를 한 사자가 보이네요"
그 말에...오교수님의 룸 메이트인 배여사가...
"아니, 검은 사자도 있나요, 사자는 갈색인데..."
한 바탕 소란과 웃음의 결과는, 우린 모두 검은 사자를 보았다, 였고 아프리카, 특히 세렝게티엔 검은 털을 가진 사자가 있더라...하고 서울 돌아가 말하기로...
어쨋든 이곳에선 누구가 무엇을 보았다고 하면 그대로 믿어주는 게 예의고 믿어야 한다.


표범을 보았을땐 저 표범을 잡아다 가죽으로 핸드백을 만들고 옷을 만들면 기막힐 텐데...하는 맘이 들었었지만 사자의 무리를 보고선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았다.
그 이유는 사자의 무리가 한 가족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새끼들을 끼고 혹시라도 다른 강자의 접근을 막는 듯, 주위를 살피고 있는 어미사자.
옅은 갈색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사자의 등.
만져 보고 싶은 충동 까지...
사자의 무리는 우리들의 차 안에서 지켜 보고 있는것에 이미 익숙한 듯, 사람들의 주시에도 아랑곳 없이 무심한 채로...

먼저 보았던(아니 오교수님 빼고 아무도 못보았던)사자와 달리 정말 갈색의 사자를 보자, 배여사가 한마디 하였다.
"교수님, 사자, 검은 털 아니죠? 갈색이라구요...우리가 여지껏 알았던 사자는 모두 다 저렇다니까요..."

(그러나 며칠 뒤, 배여사의 그 말을 뒤집을...즉 오교수가 보았다는 검은 털의 사자를 우리도 직접 볼 수 있는 상황이 온다.)
세렝게티를 오면서 가장 걱정이 많은 사람은 인솔자인 사장님이였다.
혹시라도 기대 했던 것 만큼 동물을 못 보게 될까 보아 우려했던 거다.
동물이란게 이동 시기도 있고 또 날씨의 변화등에 민감하여 못 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거였다.
허나 기우는 기우일 뿐, 그런대로 만족할 만큼의 여러 동물들을 보게 되었다.
더구나 이곳 게렝게티 뿐만이 아니라 내일 가게 되는 웅고롱고로에서도 볼 수 있으니...
그렇게 세렝게티 평원을 돌고는 다시 오늘 숙소인 세렝게티 세레나 롯지로.

이곳 롯지 역시 메인 건물과 손님의 숙소인 룸이 엄청 떨어져 있다.
들어 갈 때 짐을 포터들이 가져다 주었고 팁은 여행사측에서 일괄적으로 주기에 개인이 따로 주지 않아도 된다.

그 다음날 아침이다.
모닝 콜 시간 보다 늘 일찍 잠에서 깬 나는 밖으로 나갔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는데 두 남자가 우리 방 앞에서 있어 깜짝 놀랐다.
엇 저녁에 혹, 동물들이 돌아다니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하더니만...우리 방 앞에서 보초를...밤새도록 서주었던가?
잠시 그 생각이 들었지만 곧장 알아챘다.
팁 때문이었던 거다.
우리가 짐을 들고 나설 세간이 한 사간 가량 후였고...그 집을 들어다 주고 일 불 씩을 받으려고...
주변을 보니...다른 방들 앞에도 그렇게 두 명씩 포터들이 비를 맞으며 서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 재미 있었던 건 인솔자인 사장님, 혼자 방을 쓰는데 포터들은 그 방도 두 사람인 줄 알고 두명이 있었단다.
헐 수 없이 그 두명에게 다 팁을 주었다고...


여행 가기전 일불 짜리를 오십장 바꾸었다.
오지일 수록 일불의 값어치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비교적 쉽게 건네 줄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여서...
그렇게 바꾸어간 일불 짜리를 두장 남기고 다 쓰고 왔다.
물론 침대 머리맡에 놓는 팁으로도 사용하였지만.
현지 사람들에게 특히나 강렬하게? 자신의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주던 모델?들에게 많이 썻다.
아낌 없이.
돌아와 후회 없도록...
세렝게티 에서 하룻밤을 잤고 옮기게 되는 곳은 옹고롱고로다.


 

6, 거대한 분화구 옹고롱고로

 
  유치원생인 첫 외손주 '한솔'이.
아프리카 여행 을 결정 후 녀석에게 할미, 아프리카 간다고 하였더니...
첫 반응이 "할머니 이번엔 독수리 에게 점심 빼았기지 마세요."였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2000년 역시 이번에 갔던 옹고롱고로에서 점심 도시락으로 호텔에서 싸준 닭다리를 손에 잡는 순간 독수리에게 강탈 당했었다.
한솔이가 태어나 서 삼년간 길러 주면서 늘 들여 주었던 세계여행 얘기 중에서도 그 옹고롱고로 독수리 강탈 사건을 제일 재밌어 하였다.
아프리카 출발 열흘 전 우리집에 온 큰 딸에 식구들, 한솔이가 내게 큰 사건인양...자기가 독수리에게서 할머니 점심 빼았기지 않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거였다.
무엇이냐고 물으니..."크고 넓은 테이프를 가져가 독수리의 발과 입을 막으라"는 거엿다.
일곱살 짜리 아이 다운 발상에 모두들 웃었지만 기특했다.
할머니가 이번에도 도시락을 빼았겨 못 먹으면 어쩌나 하는...
당시, 우리 일행은 가이드 까지 여섯이였고 짚차는 두 대였다.
내가 탔던 차의 가이드와 또 한사람, 도시락을 들고 적은 연못가에 한 그루 있는 큰 나무 아래로...
가면서 보니 두 명의 운전기사는 짚차 아래로 들어가 엎드린다.
아마도 차량 점검을 하는지...?
상관 않코 나무 아래 자리 잡고 도시락을 열고 닭다리 하나를 드는 순간 언제 어디서 날라 왔는지 독수리가 잽싸게 손 가락 하나 울림 없이 채 간거다.

나 뿐만이 아니라 함께 있던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 였다.
모두들 두 개 씩의 닭다리를 빼았긴후, 안되겠다 싶어 차 안으로 들어가자는 일치를 보았고 짚차로 올라가면서 보니 운전기사들...

자동차 아래 엎드려 도시락을 먹고 있는 거였다.
세상에나...지들만 안 빼았기고 먹으려고...

그 옹고롱고로엘 이번에도 갔는데 아쉽게도? 이번엔 점심을 먹고 갔다.
반가웠던 건 그 호수, 그 나무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화장실...하나도 변한게 없이 그대로 였다.
아, 아쉽다...나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도시락 빼았기는 것 재미좀 보려 했더니만.
이상 한건 사람들이 그 나무 아래로 몰리면 독수리들이 오는데...단 한마리도 볼 수 없었다.
독수리들도 점심 시간이 지난 것을 아는지...?


옹고롱고로에 오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나무 아래서 점심 도시락을 먹게 된다.
이곳이 혹 있을 줄 모르는 동물의 침범에 제일 안전한 곳이라 한다.

오전, 세렝게티의 호텔에서 나와 다시 한번 세렝게티의 평원을 돌고 옹고롱고로의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과 점심을 한 후 분화구로 내려왔다.
내려왔다 함은 이곳이 분화구여서 짚차로 빙글 빙글 가파른 길을 돌아 내려온거다.
크기, 숫자로 말하자면 몇 만 평방킬로라 해야 하겟지만 예전에 들었던 것을 기억해 내면 강원도 전체 크기만 하다고 하였던 것 같다.
이곳의 특징은 여기에서 사는 동물들은 절대로 분화구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거다.
즉 분화구 안에서 갇혀 산다는 말이렸다.
왜 그럴까? 하는 이유는 분명 가이드(운전기사)의 설명이 있었을 텐데 딴짓(동물들 보고, 사진 찍고) 하느라고 듣지 못했다.
암튼 이곳에서도 많은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을 보았고...
문제의 그 검은 털의 사자(동행했던 오 교수님이 암보첼리에서 보았다고 하였던...)를 보게 되었다.
털 전체가 검은 색이 아니라 사자 머리(대가리 라고 해야 더 어울리겠지만) 부분의 털이었다.
많이 늙은 사자였다.
힘없이 축 늘어져 어디론가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누워 버렸는데 사자지만...사람과 마찬가지로 생각이 있는것 처럼 보였다.
한때, 이곳의 제왕이되어 누렸던 용맹과 제 일인자의 자리는 물러가고 멋있게 사라져갈 일만 남아 다른 무리들을 지켜 보고 있는 심정.
긴 검은 색의 털만이 예전의 영광을 알고 있은듯...


오교수님이 보았다고 하였던 검은 사자, 이곳에서 입증 되었다.
비록 털 전부는 아니라도 검은 색이 보였던 거다.

사실, 세렝게티와 암보첼리 또 이곳 옹고롱고로에서 동물 사파리를 하면서 알게 되었던 것들.
죽은 듯 하였으나 살아 있었고 살아 있는듯 하였으나 죽어 있던 나무들, 돌들, 흙들, 온갓 것들이 그랬다.
심지어 가끔씩 보이는 마사이 족 사람들 까지도...
오래되었던 쓰러진 관목의 잔해들이 마치 동물...같이 보였다.
흙이 쌓인 무덤들, 돌 무더기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겐 다 동물의 형상 같이 보였던 거다.
동물인줄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아닌 것을 알고 깔깔 거리며 웃기도 여러차례.


옹고롱고로는 시간 제한이 있다.
저녁 여섯시면 출빙객들이 다 나와야 하는 거다
들어가는 입구(표를 귾는 곳)에 있는 차단기를 내린다.
이미 들어간 버스들이 다 나온것을 확인하고 그렇게 문을 잠구게 된다.
이번에는 아니었지만 들어갔던 일행들이 갇힐 뻔한...일이 있었다느 인솔자의 말이었다.
몇 년전 역시나 이 여행사에서 온 손님들믈 모시고 이곳에 왓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체 되었단다.
부랴 사랴 출입구로 나오닌 이미 문을 걸어 잠구고 관리인인 퇴근 하는 바람에 삼십분 이상 그곳에서 머물며 혼이 났었다는 얘기였다.
날은 어두워 지고 그렇게 되면 동물들이 사냥에 나선다는 거였다.
어렵게 연락을 하여 관리인이 다시 오고 난리를 쳤단다.

사실 이 분화구는 너무 넓은 곳이라 이번엔 갔던 곳 말고도 볼 곳이 너무 많다.'
예전에는 그 주변에 있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도 갔었고 또 동물로 부터 안전한 곳의...너른 평지가 있었다.
그곳에선 유럽인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광경을 보았는데...
역시나 도시락에서 바나나를 꺼낸 여자가 바나나를 손에 드는 순간 독수리와 원숭이가 동시에 달려드는 것을 목격했다.
원숭이가 빨라 잽싸게 낚아 채어 바나나를 들고 저 쪽으로 가 껍질을 벗기는데 어느 순간 나타난 독수리가 원숭이 한테서 바나나를 채가는 것이었다.
너무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재미가 잇어 그 얘기도 손주에게 해 주었더니 무척이나 흥미로워 하였다.
이렇게...내 여행 애기는 손주와 손녀들에게로 전해 지니... 남편이시여, 내 여행비 충당에 아까워 마시라!!!


7, 옹고롱고로에서 아류샤로....

 
천 오백년 전 이집트의 나일강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지평선이 안보일 정도로 드 넓은 평원을 보고...평원이란 뜻의 세렝게티라고 불르던 것이 세렝게티의 원조다.
또 옹고롱고란고 불리우게 된 것은 소의 목에 걸린 방울들에서 나온 소리에서 연루되었다고 한다.
소 떼들이 몰려 다닐때 목에 걸린 방울이 흔들리는 소리가 옹고롱고로...로 들린단다.

세렝게티와 옹고롱고로 에서의 숙소는 모두 다 세레나 롯지였다.
체인점인 폭이다.
그래서 인지 실내 장식도 음식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롯지엔 어김 없이 작은 기념품 가게 가 있었고 손 재능이 뛰어난 아프리카 사람들이 손수 만든...핸드메이드의 목걸이 팔지 등 장신구가 주 였다.
어느 곳을 여행 가던지 그런 참새 방았간이 있기 마련이고 비록 사지는 않더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긴 장거리 버스에서 졸다가 드디어 호텔에 도착하여 룸 키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동안 기념품 가게가 보이면 눈이 반짝 거리며...둘러보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들은 계산이 느리다는 거다.
어쩌다 하나 사고 싶어도 그 느림때문에 포기하는 나.
숫제 몇 년 전 부턴 여행 갈때도 올때도 늘어나는 품목이 단 하나도 없다.


어느 일간지에 요즘 인기가 잇는 세시봉 멤버인 윤형주가 연재를 하는 코너가 있다.
금요일인가...인데 당시 자기와 함게 활동하던 세시봉 멤버들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글이 조용남에 대한 거다.
어느날 조용남의 집에가 그와 함께 방안에서 뒹굴고 잇는데 마당에서 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시금치 장사가 와 조용남의 엄마에게 시금치를 사라고 하는 소리였단다.'
한 단에 삼백원이라고...
그 말에 조용남의 엄마는 깍아 달라고 하고 장사는 안된다고 싱갱이를 하던 중.

조용남의 엄마가 하는 말이..."그러면 석 단에 천원 하면 되겠네, 그렇게 줘요."하더란다.
방안에서 그 흥정을 듣고 있던 윤형주, 조용남에게..."형, 이상하지 않어, 한단에 삼백원 하는 것을 석단에 천원에 달라니..." 하였더니
조용남 왈, "야 임마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맞지, 그러면 싸게 사는 거지."

그런 상황을 실제로 옆에서 보았다.
그것도 아프리카의 옹고롱고로에서.
일행이었던 어는 분과 또 한사람, 막 은퇴하신 여 교수님이다.

두 분이 냉장고에 붙이는 마그넷을 사면서 헷갈린거다.
그곳 가격표가 붙은 것을 미 달러로 바꾸어 계산하는 동중에 발생한 헤프닝...
두 사람은 깍는다고 그리고 둘이 함께 계산을 하고 물건을 건네 받고.
다시 계산을 맞추어 보니 깍은 것이 아니고 달라는 금액 다 주고 산거였다나...
싱갱이 하는 시간만 허비하고 결국은 바보짓 했다고...한바탕 웃었다.
웃음이 보약이니 고 기념품은 보약을 산거나 마찬가지다.

아류사로 가는 길은 그동안 타고 다니던 짚차로 갔다.
세렝게티로 올 때는 경비행기를 이용했지만 이번엔 짚차로 가게 되니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볼거리가 많았다.
어느 곳에서 장이 서기도 했고 가다가 기름을 넣는 주유소엔 죄다 여자들이 일을 하였다.


두 번 쉬어 가게 되는 곳의 기념품 가게에선 차가 멈추자 우루루 몰려 나오는 남자들.
별 볼이 없자(일행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 갔지만 하나도 안샀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 긴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는 우리에게 일불씩 내라고 하기도 하고 신고 있는 운동화를 달라커니, 볼펜이 있으면 주고 가라고 손을 내밀기도.


아류샤로 가는 길에 타랑기레 라는 작은 공원엘 들리게 되었다.
이곳에 차가 멈추게 된 이유는 오랜 시간 달려왔으니 화장실도 그렇고 기사들도 한 숨 쉬어 가야 했기에다.
거기에다 이곳엔 상당히 오래된 바오밥 나무가 있기에 그것도 볼 겸 하여...
사실 이날 (이동중에 점셈을 먹게 된 호텔) 은 바오밥 나무 군락지로 들어가는 스케줄이었다.

아쉬웠던 건 그 나무들이 있는 평원을 차로 달리면서 제대로 사진을 못 찍었다는거다.
시간이 촉박했기에...서둘러 점심을 먹고 아류샤의 호텔로...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을 해야 함이었다.


아류사 가는 길에 점심을 먹으려 들렸던 호텔의 종업원들.


일명, 소세지 나무라 하는 이런 나무들이 많이 있다.


8, '삶'...이 움직였다.

               
  아프리카에서 살아있는듯 하였으나 죽어 있었고
죽은 듯 하였으나 살아 있던 많은 것들을 보았다.
세렝게티 평원의 잡 풀들과 나무 들이 그랬고 지평선이 안보일 정도의, 아득한 길.
오고 가는 차량들이 안보이는 그래서 마치 쓸모가 없어진 길 같았고.
사람의눈을 피하거나 혹은 죽은 듯이 숨 죽이고 있던 동물들 역시 그랬고.
너무나 새카매서 몸에 걸친 원색의 옷이 아니면 마치 나무 토막 같았던 현지인들.
그들의 움직임엔 빈 손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나 길을 가는 여인들...늘 손에 무었이 들려있거나 호근 머리 위에 아니면 등짐을 지고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었다.
남자들 보다 여자들이 더 눈에 뜨였음은 아마도 일상을 꾸려 가는 , 즉 생활방편을 여자들이 이끌어 가는것 같았다.


아루샤로 가는 길은 멀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지프차는 타랑기레 국립공원을 들리고 다시...점심을 먹은 호텔서 재충전을 해 다시 서둘렀다.
오늘 숙소인 아루샤에서 일박을 함으로 아프리카 여행의 삼분의 일 일정이 마감된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시작한 여행은 나이샤바, 암보첼리외 세렝게티 옹고롱고로등에서 동물 사파리를 한 것이 그 지난 일정이었다.
아류사에선 내일 제일 먼저 들렸던 나이로비로 간다.

비행기가 도착하면 곧장 사파리호텔로 가 맏겨 놓았던 짐가방을 찾아(세렝게티 갈때 맏겨 놓았던...) 다시 비행장으로 가 요하네스버그로 간다.
그 요하네스버그에선 곧바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행 비행기로 옮겨탄다.
즉, 오늘 내일은 순전히 이동 하는 일만 있는거다.
아프리카 일정이 긴~~이유가 다 이렇게 움직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전역도 아닌, 불과 서 아프리카 몇 나라를 갔음에도 그렇다.
암튼 그렇게 아류샤로 가는 길에 버스안에서 보여지는 풍경들에 지루한줄은 몰랐다.
더구나 내 핸드폰의 이어폰에선 분위기 있는 음악들이 내 귀로 전해지고...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는 나에게 웃음을 보이던 모자, 아프리카에서 사진 찍을 때 유일하게 웃어 주던 여자였다.


이곳에 보이는 집들은 부촌인 듯...


대부분의 집들이나 가게들은 이렇게 원색으로 페인팅 되있다.

드디어 도착한 아루샤의 호텔.
역시 세레나 롯지의 체인이였지만 이곳은 특별했다.
숙소인 건물의 본채는 오래전 유럽의 귀족의 집이었다.

본채의 건물 앞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고 관광객이 묵는 숙소는 그 정원에서 한참을 가야 했다.
역시나 한 동 한동 따로이 있는데 동과 동 사이의 정원의 조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우리의 인솔자는 그 아름다운 정경들을 해 떨어지기 전에 만끼 하라구 저녁 시간 까지 넉넉하게 늦추어 놓았지만 워낙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늦어서 아름다운 정원 산책은...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아루샤의 숙소에 도착하여...정원의 아름다움에 취해 사진 찍기에 바쁜 일행들.


본채 건물 앞에 있는 정원에서...


어두워 지기 전에 서둘러 정원 구경을 하고 룸으로 들어와 오랜 시간 오느라 뒤집어 쓴 먼지를 떨어내야 했다.
날은 이미 어두어져 불을 켜야 했고.

씻은 다음 본채 건물로 가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내일도 하루 죙일 이동을 해야 하니 일찍 잠자리에도 들어야 했구.
룸 메이트가 먼저 샤워실에 들어갔고 한창 씻고 있는데 전기가 나갔다.
갑자기 암흑세계다.

그동안 다녔던 곳들에서도 전기 사정이 나빠 시간제로 불이 들어오고 더운물이 나오고 하였었는데...
두 세번 그렇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였다.
아마도 한 꺼번에 여러 방에 손님이 들어(유럽인들도...) 전기가 딸렸나 보다.

그렇게 한바탕 헤프닝을 벌이면서 씻고 먹고, 잠자리에 들고...
내일을 위해 힘을 축적하자고...룸 메이트였던 김 선생님과는 그렇게 죽이 잘 맞았다.
이십 여일 동안...

 

9, 아프리카의 스튜어디스들은...

 
  하루 죙일 이동만 하는 날이었다.
일단 케냐의 나이로비...
나이로비 까지는 차로 이동을 하였다.
역시나 차창 밖의 풍경들이 지루 하진 않았다.
아직까진 탄자니아였고 나망가라는 곳에서 국경 통과를 해야 했다.
국경을 통과하게 되는 나망가...
예전 모습 그대로였던게 얼마나 반가웠던지.
조금 다른것은 예전 보다 기념품을 들고 따라 다니는 현지인들이 적어 진거다.
살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참 북적였고 또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들로 넘쳤났던 그 때의 풍경이 잠시 그리워 지기도...
그래도 국경인지라...잠시 여권을 내고 통과 의식을 치루었고 또 큰 짐차들과 어디론가로 이동을 하는 현지인들도 보였다.


나망가의 국경에서 기념품을 파는 여인들...

무사히 탄자니아의 국경을 통과하였으나 문제는...나이로비 시내로 진입을 하면서 부터였다.
마침 일요일이라 꽃 장식을 한 웨딩카를 여러대 볼수 있었다.
헌데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도 교통 체증이 심한지...
통 질서라는 개념이 없었다.
혼잡하게 얼킨 길엔 고장난 차량들과 충돌하여 지체하고 있는 차량들 때문에 더욱 난장판이었고
그런 광경들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 까지 북새통이었다.
별 할 일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겐 그런 사고들이 큰 볼거리 였던 거다.


이 정도의 차량 소통은 무척 양호한거다.


사고가 난 차량 구경 때문에...

어찌 하였던 긴 시간 움직여 나이로비에 도착하였고 참으로 오랫만에 한식을 먹게 되었다.
현지에 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불고기와 된장 찌게, 김치와 나물등을 먹으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것 만 같았다.
일주일 만에 먹어보는 한식에 모두들 말이 없이 바쁘게 수저 움직이는 소리만...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그 식당으로...우리가 사파리 호텔에 맏겨 두었던 짐 가방이 왔다.
물론 현지 여행사 사장님이 지시하여 우리가 호텔로 가는 번거로움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배려한거다.
식당의 정원에다 풀어 놓은 짐가방에 그동안 가지고 다니던 또 하나의 짐보따리를 정리하여 챙겨 공항으로...
요하네스 버그로 가야 했고 그곳에서 다시 케이프타운에 도착하면 밤 열한시가 넘는다.
점심은 한식으로 잘 먹었으니 별 다른 밥 생각은 없지만 암튼 저녁은 기내식이다.
비행기 안에서 대부분의 일행들은 잠에 골아 떨어 졌다.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이용하게 된 남아공 비행기의 스튜어디스들.
모두들 검은 피부의 얼굴이다.
게다가 나이도 들었으며 몸집도 큰 편이다.
거대한 몸집에 제복을 입었지만 마리들은 한결같이 빡빡 이다.
완전 민대머리로 밀은 거다.
마치 스님들 처럼...
이곳의 스튜어디스들은 예쁜 것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가 그런 이유는 워악 이곳 흑인들의 머리가 살로 파고 든단다.
그래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가발을 착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말하는 레게 머리라고 하는...쫑쫑이 땋은 머리...그것도 다 가발이다.
레게 머리건,아님 바둑판 처럼 사각모양이 가로 세로로 정렬되어 딱 붙게 만든 머리건 다 가발이었다.
그렇게 여러 모양의가발을 이곳서 보게 된거다.
그런 가발로 머리 모양을 내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다.
일반 중산층 정도의 샐리맨 월급 한달치가 소요 된다고...


사진속의 두 여자, 다 가발이다. 앞의 짧은 머리도...

가발을 사용하지 않는 여인들은 대개 머리에 수건을 둘러 장식을 한다.
그 수건으로 잔식한 모양도 갖가지 형태다.
수건의 색상도 또 장식한 모양도...
그런 형편인 관계로 돈에 상관 없이 근무에 바쁜 스튜어디스들은 머리 손질하기가 어려운듯, 숫제 민대머리였던 거다.
늘 여행을 다니면서 느꼇던 것은...우리나라 승무원 처럼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그 어떤 곳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케냐의 현지 여행사(우리 나라 사람이 하는...) 사장님의 말이 생각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학교에만 갔다 오면 운다는 거다.
이유는...
아이들이 자기 머리를 (윤기 나는 긴 생머리) 만지고 잡아 다닌단다.
그들에게는 신기하고 부러운 것이기에...


10, 테이블마운틴 (케이프 타운 1)

 
   남아프리카 공화국, 줄여 말하면 남아공.
인종 차별과 민주화 운동에 투옥 되기도 하였던 흑인 넬슨 만델라가 끝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던 나라.
이 나라엔 세 군데의 수도가 있다.
행정 수도인 프레토리아, 사법 수도인 블롬폰테인, 그리고 입법 수도인 케이프타운이다.
사실 행정, 사법 수도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 지지 않았으며 관광객들도 그곳은 거의 가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은 실상 상업도시인 요하네스버그다.

상업 뿐만이 아니라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한 요하네스버그는 아프리카 전체를 통 털어서도 가장 번성한 곳이다.
암튼 그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이번에도 몇 번 씩이나 들락 거렸고 케이프 나운에 밤 늦은 시간에 (열 한 시 반)도착을 하였다.
이곳에선 나흘을 묵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 일정인 나미비아의 입국 비자를 받기 위해서다.

첫 날 아침, 그동안 세렝게티며 옹고롱고로를 다니며 뒤집어 썻던 옷 가지들을 챙겼다.
빨래 꺼리들을...
긴 팔 남장 셔츠하나와 반팔 티, 바지 두개 모자 하나...모두 물 빨래가 가능한 면 종류였다.
직접 빨아 볼까 생각했지만 말릴 곳이 마땅치 않았다.
룸 메이트도 빨래 할 것들이 있고...
속옷만 빨아 널려고 맘 먹고는 룸에 비치된 빨래 봉투에... 위에 나열한 빨래들을 담고 메모지에 빨래 부탁한다고 크게 적었다.(물론 쬐깨 알고 있는... 영어로.)
침대에 올려 놓고는 일정에 따라...느즈막히 호텔을 나섰음이다.
이곳에서는 시간 여유가 많아 아침 일찍 서두를 필요가 없는게 좋았다.

먼저 갈 곳은 케이프타운 시내 어느곳에서도 조망이 되는 테이블마운틴이다.
말 그대로 산 이고 그 높은 산위에 마치 테이블 같이 넓고 반듯한 바위덩어리가 있는 거다.
사실 2000년 이곳에 왔을때 그곳을 가지 못했었다.
이유는 바람이 워낙 강해서 였다.
그곳을 올라 가려면 케이블카를 타야 했는데 바람이 세면 그 케이블카의 운행이 금지되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날씨가 넘 좋았다.
일행 모두의 큰 행운이였다.
현지 가이드인 '홍'선생의 입이 연신 벙글 거리며 우리 보다 더 신이나 했고 자신도 카메라 까지 들고와 사진찍기에 바쁘기도...
버스가 오르막길을 올라 입장권을 파는 곳에 우리를 내려 놓았으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로(주로 유럽인이었다)줄을 서 있었다.
긴 줄을 한참 기다리고...드디어 케이블카 타는 곳 까지 입성.
꼭대기...케이블 카가 올라 다니는 곳을 쳐다 보니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트레킹이 아닌, 360도 회전하는 케이블카였지만 정상에 올랐다.
정작 올라와 보니 굉장히 넓은 곳이다.
축구장 11개 넓이만 하다니...여기를 골고루 다 걸어 다녀 보는 건 시간 상 못할것이 뻔했다.
관광객들이 일반적으로 다니는 산책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산책로라 하지만, 그리고 산이었지만 흙산이 아니고 순 바위돌의 산이었다.
그 바위들 틈새로 이미 져 버린 꽃들의 흔적과 세찬 바람에 맞서 아직도 버티고 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의 강한 힘이 오히려 측은하게게 보였다.
자신이 직접 만든 유리 공예품을 파는 남자가 진열해 놓은...파란 색의 작품이 저 아래로 넘실대는 대서양의 몰 빛깔과 같았다.


한 시간 반 정도 머문 테이블 마운틴.
이곳 저곳 많은 볼거리 들 중 특이학 이름 붙은 바위들 몇 개를 가이드가 설명해 주지만...그렇다고 생각하고 봐도 영 아니다.
그저 특이한 바위이니 그렇게들...사자 허리같다고 사자바위다. 악마의 봉우리다...하는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겠지.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이름을 붙이는(바위던 건물이던...하다 못해 돌맹이 하나라도.)걸 좋아하는 곳으론 중국의 관광지가 최고다.
이곳은 어느때 누기 자나가면서 이런 기이한 형태의 길이 되었다는 등, 혹은 이 넓은 계곡의 물은 호랑이가 단번에 건너 뛰어 저 바위로 올랐다는 등...
암튼 여행을 다니면서 듣고 보게 되는 그런 터무니 없을 것 같은 사실?은 믿어 주는게 속 편하다.
그렇게 가르켜 주는 바위 중에 유일하게 들어 맞은 것이 거북이 모양의 바위다.
그건 일부러 말 안해 주어도..세 살 먹은 아이 까지도 다 알만큼 정확?한 형태의 바위 거북이다.


악마 봉우리


눈이 다 시원해 지는 것 같았다.
불과 어제 까지만 해도 황토 먼지를 뒤집어 쓰며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수풀 사이에서 혹시라도 나타날 동물을 찾느라...또 나타난 동물을 주시 하느라 눈이 빠질 뻔 했었다.
그렇게 혹사를 하던 두 눈을 이곳...저 아래서 넘실 거리는 푸른 바다를 보면, 또 기이한 바위들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으며 자시 집에 두고온 남편과 아이들 생각도 났다.
이렇게 다닐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가족들이 고마웠고 견딜 수 있는 내 건강에도 감사했다.
사실 이날 테이블 마운티에서 내려와 들린 곳이 또 있었지만 그곳은 내일 소개 하려 한다.


11, 하라레와 시그너 힐 (케이프 타운 2)

 
 케이프타운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때문인지 마더 씨티라고도 불리운다.
400년 전 유럽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세운 도시로서 지금도 그렇지만 흑 백 인종의 분쟁이 심한 곳이기도 하다.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의 집권 이후 많이 달라지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흑인들은 백인 부자들의 운전기사나 하우스 키퍼로 일을 하고 있다.
주로 줄루족 출신의 그 흑인들도 원래는 중부아프리카의 내륙지역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이주를 시작하였다.
줄루족은 마사이 족과 서로 용맹성을 견주기도 한다.
그런 형편의 흑인들을 정부에서 한 곳에 모아 생활 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준 마을이 하라레다.
케이프 타운의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지붕과 담이 낡은 양철로 되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예전에는 화려한 색으로 칠해 졌을 빛 바랜 양철들을 보며 그들의 삶이 짐작 되기도...


버스가 도착한 곳은 하라레 마을 입구였다.
관광객들이 직접 들어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곳일 수록 궁금하기 마련...
우리의 마음을 짐작한 현지 인솔자는 마을의 리더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고 부탁을 하여 우리가 탄 버스를 잠시 주차할 수 있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마을의 몇 여인들을 데리고 왔다.
전통 복장을 한 여인들은 중후한 몸집에 사십대 중반 쯤으로 보였다.


버스에 오른 그녀들은 노래로  우리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단조로운 움률의 노래는 우리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 함께 어우러 졌다.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안은 북새통이 되어 흔들거렸다.
누군가의 가방에서 먹을 것이 나오고...우리 일행들이 잘 놀아 주어서인지, 아님 그들이 보기에도 우리의 진심이
전해져쓴지...암튼 그녀들으 신명을 다해 즐겼으며 정해진 시간이 있었을 터인데도 내릴 생각을 안했다.
우리들에게 다음 스케줄이 있어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고 그녀들과 작별을 해야 해다.
억지로...버스에서 내리는 그녀들에게 팔이 떨어져라 하고 흔들어 주었다.


하라레와 비교되는 마을은 케이프타운의 백인 부자들이 사는 곳이지만 그곳에 대해선 언급을 않겠다.
어느 나라던 부자들이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니까...
한가지 특이한 것은 부자들이 사는 어느 한 동네...찻 길에서 한참 언덕에 집들이 있다.
자동차는 아래 쪽에 세워 놓고 자기 집으로 올라가야 하는데...언덕을 오르느게 힘든거다,
그래 길에서 부터 자기집 까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어 놓았다.
실내가 아닌, 실외엔 그런 에스컬레이터를...그것도 자기 개인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부자 티를 확실하게 내느 곳이다.

  이런 부자들이 사는 곳은 아니지만, 또 한군데의 집단 마을이 시그너 힐이다.
힐 이리 함은 언덕을 말하는데 정작 그리 언덕진 곳은 아니었다.
이곳은 인도네시아 인들의 집단 마을이다.
마을은 길거리 즉 차량들이 다니는 양쪽편에 집들이 있었다.
단층의 아담한 슬라브 모양의 집들은 화사했다.
파스텔 색조의 단색으로 칠해진 거리는 색으로 인해 화사했다.


마침 저녁 시간 대라 저물어 가는 해에 반사되어 집들은 더 화사해 보였고 어느 집 앞엔가로...한쪽엔 나이든 할아버지들이 또
어느 한쪽엔 할머니 두 분이 담벼락에 기대어 정담을 나누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어느 집 창가에선가 쌍둥이 소녀 둘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우리에게 웃음을 날려 주기도 하였고...
글쎄, 내부는 어쩐지 몰라도 암튼그렇게 화사한 칠의 집들을 보니 거리의 사람들 마음 까지도 환한 것 같이 보였다.
엊 테이블 마운티
한 도시안에 있으면서 흑인들 마을인 하라레와 인도네사아 집단촌인 시그너 힐, 두 마을의 비교됨에 마음이 짠해왔다.



12, 세 시간의 점심 (케이프타운 3)

                
어제 하라레 마을의 방문을 마치고 시그너 힐 마을로 가기 전에 점심을 먹게 되었었다. 
현지 인솔자는 우리에게 케이프타운에서 젤루 멋지고 품위있고 게다가 왼만한 사람들은 갈 수 없는, 그런 곳으로 간다하였다.
워낙 고가의 음식에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며 식사 시간이 길기 때문에 시간 여유도 많아야 하며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사람들만 갈 수 있다나...?
서울에서 오는 고위층도 잘 못가는 곳이라는 뻥?도 치면서 데리고 간 곳은 와이너리 안의 식당이었다.
와이너리라 하지만 식앙 주변에 보이는...무지 넓은 포도 밭만 구경 하였을 뿐 곧바로 식당 내부로.

  농장의 입구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긴 입구 양 옆, 커다란 가로수가 경호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그 길을 한 마리 말이 앞서서 가고 있었다.
방문객을 확인한 경비가 차량을 통과 시키고도 한참이나 더 올라가는 길, 언덕 왼편에 큰 건물이 하나 보였다.
얼른 봐서는 무슨 창고 같은...사각의 시멘트 건물이다.
누군가가...저 건물이 식당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에 좀 실망.
애초에 설명한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근사한 식당이라 했건만...


어쨋든 도착을 하여 식당 안으로...
그 때 부터 벌어지는 입과 눈이 휘둥그래 지면서 모두들 한 마디 씩.
예약이 되어 있어서 우리를 이층으로 안내를 하지만 모두들 올라 갈 생각 않고 일층 구경부터.
그러나 일층과 이층이 오픈 되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도 또 이층의 난간에서도 아래층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구조였다.
아래증의 오픈된 주방 앞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요리사 들도 다 보일 정도로.
심플 하면서도 고급스러움 정갈함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순백의 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과 서브를 하는 두 남녀의 새 카만 얼굴이 대비되어 마치 흑백의 논리 정돈의 완성 품 같은 느낌 마저...


일반 손님들이 일층에 자리 잡았고 우리는 이층, 세팅이 된 자리로 갔다.
이층엔 우리 일행 뿐이다.
자리 잡고 앉았지만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에 또 한편으로 창가 쪽으로 가 밖이며 실내를 관망하는 일행들.
우리 앞에 다시 와인잔이 놓여 지면서 점심 메뉴의 설명.
생선 요리란다.
이제껏 다니며 주로 먹었던 고기 대신 생선이라니 모두들 좋아라 한다.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근사한 접시에 비해 양은 티 스푼 하나 정도다 (조금 과장하면...)
푸아그라(거위 간)다.
맛은?
맛을 느끼기도전에 그 적은 양은 입안에 스르르 녹았다.
다 먹은 커다란 접시를 서브하는 얼굴 까만 여인이 다 거두어 가고도 한참이나 지나서
이번엔 야채 샐러드다.
기막히게 얇게 포를 뜬 오이와 생 크림이 담긴 위에 견과류를 갈아서 얹은...
접시에 올려 놓은 게 작품이다.
다시 한참을 기다려 메인과 후식 까지...
족히 세 시간에 걸친 점심이었다. (물론 입장해서 먹기 까지 지만)


세 시간 짜리 점심은...예전에도 한번 있었다.
예멘 여행때 였다.
두바이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오는 길에 드른 두바이.
그곳엔 셰게에서 단 하나 뿐이라는 별 일곱개 등급의 버즈 알 아랍 호텔이 있다.
그 호첼은 들어가 구경만 하느데 미화 백불을 내야 한다.
인솔자인 사장님은 이왕이면 돈 더 내고 저녁을 먹자고...
그것도 대중적인 뷔페식당이 아니라 근사한 룸에서 우아하게 하는 주문식으로...
오래 기다렸다.
그 저녁 이후엔 두바이의 유명한 금 시장 구경이 있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세 시간을 밥 먹는 것으로...

  케이프타운에서 세시간 짜리 점심은 그렇게 끝이났다.
호텔로 돌아와...
룸에 들어가니 이곳에 와 첫날 부탁하였던 빨래가 세탁되어 돌아와 있었다.
내 옷 중에 최고로 호강한 것들이다.
집에서 물 빨래로 세탁기에 둘둘 돌려 대충 말려서 입던 것들이 이곳에 와 반지르르 하게 다림질 까지 되어서 비빌 커버에 씌어져
옷걸이 채로 걸려져 있는거다.
그렇게 호강한 빨래 비용은...
미달러로 이십불, 드라이크리닝도 아니었건만 줌 비싸긴 했다.
다림질 처리 값인가?
돈이 들은 만큼 기분은 좋았다.
윽~~ 집에 돌아가서도 내 대신 누군가가 이렇게 해주었으면....


 

13, 바람을 따라 희망봉 오르기 (케이프타운)


 나미비아 입국 비자 때문에 나흘이나 한 호텔에 묵게된 케이프 타운.
호텔은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별 다섯개의 호텔 답게 규모며 시설이며 ...호화롭다기 보다는 실용적이고 깔금했다.
시내에 있다보니 주로 사무적인, 즉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 위주라 그런지 룸에도 커다란 책상이 있고 노트붘을 연결할 수 있는 컴퓨터 선도 장치되어 있고.
그외에도 다리미며 작은 금고도 있는 것을 보니 이곳으로 일을 하러 와 며칠 씩 묵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우리가 묵었던 시기에도 그랬다.
처음 도착한 날부터 체크 아웃 하는 날 까지 죽~~우리 일행과 함께 하였던 단체가 있었다.
'포르쉐' (젊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자동차로 우리 아들도 그 차에 대단한 관심 내지는 욕구를...) 회사에서 신형 모델을 광고하기 위해 유럽의 세일즈 맨들을 초청한거였다.
이 백명 쯤 모였다고 했고 호텔 로비엔 포르쉐 스포츠카가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우리나라의 자동차도 경쟁 대상이 되어 이런 행사를 치루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늘의 일정은 물개섬을 갔다가 희망봉으로...
물개섬을 구태여 가자고 우긴 건 현지 인솔자다.
그곳에 가야만 이곳에 와 첫날 갔던 테이블 마운튼을 제대로 볼수 잇다는 거였다.
실제로 올라 갔으면 제대로 본 것 아니냐 하였더니...그건 체험이고 이번에 그 전체를 멀리서 다 보는 건 관광용이라는 말에 모두들 웃으며 따라 주기로.
어쨋든 오라는 대로 가자는 대로 따라 다닐 수 밖에 없다.
이곳 케이프타운에서의 사박 오일 일정은 죄다 그 인솔자에게 맏겼기 때문에...
그동안 다닌 여행에서 수 없이 보았던 물개들..
비단 나 뿐아니라 일행 모두들 다 그랬지만 이곳의 물개는 혹, 다른가? 하며 하나 둘, 물개가 보이자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카메라 들이대고.
아니...물개를 보라는 게 아니라 테이블마운틴 다시 보라는 건데...
암튼 그도 저도...다~~ 움켜 잡아라 였다.


물개 보다 더 많던 다시마...


물개섬에선 물개 보다 다시마가 둥둥 떠다니는게 더 많았다.
양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지 많은 다시마다.
우리 같으면 채취하여 건조시켜 먹거리로 만들어 낼텐데...
 
희망봉으로 가는 도로가 공사중이어서 다른 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오히려 행운이었다.
대서양을 저 애래로 한 눈에 담으며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로 가게 된거다.
마치 예전 대관령 고갯길 같이 그렇게 휘어진 길로 바다는 저 한참 아래로 보이는 절경으로 왕복 이차선 도로의 좁은 길이다.
버스 창문을 조금 열으니 거센 바람이 확~~
창문을 열 생각을 한건...우리가 탄 버스와 반대편에서 오는...포르쉐의 일행 때문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그 호텔의 일행들이 탄 포르쉐의 행열이었던 거다.
그들은 신형 포르쉐의 스포츠카, 일반 승용차, 또 커다란 웨건등, 전시장에 있던 모든 종류의 차를 직접 몰고 시 운전을 그런 식으로 하고 다녔던 거다.
끝 없이 이어져 오는 그 차량 행열, 큰 볼거리였기에 사진을 찍으려고 창문을 열었다가 바람 때문에 실패하였다.


버스 안에서 찍은 것이라 제대로 잡히지 않았음, 또 차도 달리는 중이었고...


희망봉으로 올라가는 길 양옆은 온통 꽃이 진 흔적들이었다.
얕으막한...언덕은 마치 눈이 내린것 같이 보이는 곳도 있었는데 흰 꽃이었다.
땅에 짝 달라 붙어 피어있는 꽃은 소금을 뿌려 놓은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솔자의 말에 의하면 이 일대의 야생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야생화 전문가들이 제일로 쳐 주는 곳으로 매년 8,9월이 절정이라고 한다.
세찬 바람속에서... 그 바람 때문에 높이 자라지는 못하고 땅 바닥에 달라 붙은 듯이 피어서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야무지게 견디는 이름 모를 꽃들.
어쩌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도 하고 뜯기기도 하면서 견디어 내는 끈질긴 생명력.


그 야생화들이 만발 할 때를 상상하며 드디어 오른 희망봉.
역시나 센 바람 때문에 오래 머물기는 힘들었다.
기념 사진들을 찍고 부지런히 내려와선 올라올때와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음) 달리 내려갈때는 트레킹을 하기로...
마침 점심도 거하게 먹은 후였기에 좋은 제인이었다.(사실은 미리 그렇게 하기로 하였던 것이지만)
올라와 있던 버스는 트레킹 하여 내려 가는 곳에서 만나기로 하였고 모두는 만반의 준비를...


트레킹 코스 저 아래로 넘실대는 대서양과 인도양.
일행들은 모두 각자의 상념에 젖어 묵묵히 걸어간다.
느린 걸음으로 가다가 가끔씩 멈추어서 경관을 둘러 보기도 하고 카메라 셔터도 누르고...
이런 곳에서는 그렇게 누구와 어울려 걷기 보다는 혼자  즐기는 것이 더 좋다.
함께 하는 여행이지만 혼자 하는 여행처럼...다만 주어진 시간 때문에 제한되는 것이 문제지만.


희망봉...
처음 발견 당시에는 거센 바람 때문인지 폭풍의 곳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 후 포루투칼의 왕이 (처음 발견한 사람도 포루투칼 인이다) 이곳을 지나게 되면서 희망의 곳이라 개칭하였다.
천 사백년 대의 일이다.
바람을 안고 올랐던 희망봉에 오른 사람들...어떤 생각과 다짐을 품어 보았을까?


14, 케이프타운의 와이너리들

 
   케이프타운에서 사박 오일, 지난번 얘기한대로  순전히 나미비아 비자 발급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시간과 경비가 많이(나미비아의 호텔 값이 엄청 났다) 들어서인지 그곳으로 가는 한국사람들은 거의 전무하다.
실제로 그곳에 가 보니 동양인들은 중국사람들만 간혹 보이기도.(나미비아는 중국에서 진출해 있다)
암튼 케이프타운의 마지막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내일 아침 비행 시간을 알려 주면서 그 외에 알림도 같이...
그러자 일행중의 한 분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늘 몸에 걸고 다니던 가방에 여권이 없다는 거였다.
질린 얼굴에 가방을 수선스럽게 뒤지며 여권이 없어졌다고...
순간 모두들 당황한 표정.
그러나 모두들 금방 제 정신으로...
우리의 여권은 비자 때문에 현지 인솔자가 찾아서 내일 아침 가지고 올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
잠시의 해프닝으로 웃으며 떠드는 동안 도착한곳 '스텔란보시'라는 작은 도시다.
케이프타운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이곳에 온 목적은 대를 이어서 내려온... 이름난 두 군데의 와이너리 방문이다.
사실 이런 곳 방문은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간 허비다.
나 같이 술, 관심도 입에도 못대는 사람들에겐 별 의미가 없는 곳이다.
허지만 케이프타운에서 오래 머물다 보니 따로이 갈 곳도 없고 하여 와이너리로 가게 되었다.
 
와이너리야 어쨋든 가는 길이 좋았다.
처음엔 고속도로를 달렸지만 어느 정도 가다가 다시 일반도로로 갈아 타면서 보이는 경관이 와이너리 보다 좋았던 거다.
딸기 농장의 간판이 보이면서 많은 흑인 여자들이 딸기를 따는 게 눈에 들어왔다. 
딸기밭 고랑이마다에 몇 명씩 허리를 반쯤 굽히고 일하는 모습이 마치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 같은 풍경이다.
그들은 하루 품삯을 받고 따는거지만 일반인들은 돈을 내고 입장하여 마음껏 가져 가고 싶은 만큼 딸기를 따간다고...
딸기밭 입구엔 커다란 프라스틱 딸기 모형이 이리로 들어오시오...하고 안내를 하는 것 같다.


딸기밭 입구에...


조금 더 가다 보니 이번엔 근사한 가로수 길이다.
한 여름 같지 않은, 무성한 나무 잎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아직은 잎들이 건재한 가로수와  오래된 나무의 빈 가지들이 넝쿨 처럼 얽혀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상을 떨치고 있었다.
일행들은 버스를 세우라고 아우성.
빈 버스는 그냥 보내고 일행은 걷기 로 한거다.
물론 어느 정도만큼만이다.
이차선 차도는 한적했다.
오 가는 차량도 없고 바람은 조금 불엇지만 걷기엔 오히려 상쾌한 정도.
와이너리고 뭐고 이렇게 좋은 길을 걷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일행중, 마라톤 매니아가 있었는데 그 분은 마라톤 하기에 넘 좋은 곳이라고 군침을 ...
 
어느 때 부터인가...빈 나무가지에 매료 되었다.
소나무가 아닌 것들은 가을 되면서 옷을 벗는다.
여름 내 무성하던 잎들을 하나 둘 씩 걷어 내면서 나무, 그자체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거다.
요즘 같은 한 겨울, 길가의 가로수나 혹은 공원의 빈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한 번 쯤 관심있게 보시라!
어느 것은 흰색에 가까운 가지를 또 어느것은 황금색, 갈색 등 종류 별로 다른 가지들이 보여주는 예술 작품들 이다.
특히나 눈이 내린...다음날, 빈 가지에 사뿐이 허락도 없이 내려 앉은 눈을 떠받히고 있는 나무들.
별 신총치 않은 나무들이라 해도 잎을 보낸 겨울 나무들의 발거벗은 모습이 왜 그리도 좋은지...
암튼 우리 일행은 그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고 나가고 하면서 길을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겉에서 보기엔 그리 크지 않은 규모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어서 인지 기다리고 있던 안내자가 순서 대로...우리가 들어 갈 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설명을 하고 시음장소로 델구갔다.
몇 가지 종류의 와인을 시음하게 되는데 크랙커외 치즈가 안주로 나왔고.
술을 못하는 나는 받는대로 술 좋아하는 다른 사람의 컵에 잔을 채워 주었고...
작은 방 바다 종류가 다른 와인이 저장되어 있다.
그 방들이 있는 벽은 온통 와인 병으로 도배? 가 되어있다.
어쩜 그리도 가지런히 쌓아 올렸는지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안내를 담당한 여인은 쉬지 않고 설명을 하지남 관심이 없는 난 들을 생각 않고 다만 실내에 장식된 병이며 와인잔...그런 것들에게 눈길을...


와인 공부?


스텔란보시에서 두 군데의 와이너리를 갔었다.
각기 다른 특성이 있겠지만 그런쪽에 무식한 나로서는 그저 와인을 만들어 내는 공장일뿐.
케이프타운에서 갔던 ...근사한 세시간 짜리 점심을 먹었던 와이너리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날 점심을 먹은 곳 역시 몇 대로 내려오는...적지만 품위 있고 격조있는 호텔이었다.
이곳에 온 다른 광관객들은 뷔페 식으로 먹는대 비해 우리들은 주문식으로...정식의 정찬이었다.
그들이 보기엔 우리들이 동양에서 온 귀족같이 보였으리라...
더구나 오늘 일정이 와이너리 방문만이라 하여 다른 때와 달리 옷차림도 넉셔리 했고...
이로서 케이프타운의 일정은 붉은 색의 와인으로 끝을 맺었다.
일행들의 얼굴과 마음속에도 마침 지기 시작한 노을과 붉은 와인이 번지고 있었다.


내일은 드디어 나미비아로 입성한다.
다시오게된, 아프리카...순저히 그 나미비아 때문이었다.
여행 후기를 쓰는 지금도... 나미비아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15, 왈비스베이의 샌드위치 하버 (나미비아 1)

 
  케이프 타운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나미비아의 왈비스베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정오를 막 지나고 있었다. 
이곳은 나미비아의 수도인 빈트훅에서 몇 천 킬로 떨어진 곳이다.
이 왈비스베이에서 부터 수도인 빈트훅...까지 4박 5일을 나미비아의 체험이다.
 
나미비아 는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네 배, 남한 만을 비교하면 여덟 배다.
그렇게 큰 면적의 땅덩어리 지만 인구는 통 털어 200백만 이다.
그럼 이런 곳에 뭘? 보러 왔는가?
게다가 비자 받기도 여간 까다롭지 않고 비자피도 다른 아프리카에 비하면 비싼 편인데...
비자를 발급받는 서류 작성에 왜? 이곳에 들어오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고 하였다.(남아공의 현지 인솔자가 다 작성하여 제출하였는데...)
물론 관광이 목적이라 하였고 예약된 호텔이며 적을 것 다 적어 제출하였음에도 또 다시 여기 온 이유가 무어냐고...두 번, 세 번 묻더라는 거였다.
왜? 그토록 까다롭게 굴까, 아니 누가 자기 나라 땅 떵어리라도 훔쳐 갈까봐?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은 아닐테고...
여행 내내 그 이유를 머리속으로 추적해 보았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고.
그곳에 우리나라 사람 가이드라도 있었으면 혹 답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도착한 왈비스 베이 공항은 말 그대로 황량했다.
게다가 바람 마저 세차게 불어 절해고도에 떨어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왈비스베이의 공항.


비행기에서 내린 승 객들이 비행장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

이런 비슷한 공항에 내린 적이 또 있다.
지난 봄, 안데스 산맥 횡단때,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 공항이 꼭 이랬다.
바람이 부는 벌판에 달랑 하나...가건물 처럼 있던 청사 건물?
이곳이 그곳보다 더 나을까? 아닐까? 비교가 안될만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어쨋든 일행들은 궁굼증과 한숨과, 그러나 자신들이 기꺼이 택한 여행지에서  몸소 체험할 기대에 부풀어 여권을 챙겨 입국 심사를 하는 곳으로...
재미있던 건 이곳에서 여권을 내고 입국심사를 할때 미화 오십불의 비자피를 내게 된다.
여행사측에서 두 사람당 백 불씩을 내주게 되엇는데 잔돈이 부족하여 룸 메이트 끼리에게 백 불씩을 나누어 주었다.
문제는 그 두사람들이 함게 심사를 받으면 그 백불을 내면 그만인데 따로 떨어져 받을 경우...그들이 거스름 돈을 내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였다.
모두들 자기 가방 뒤져 잔돈 확보 하느라고...
실제로 내 앞에 섯던 분, 백불 을 내고 룸메이트와 떨어져 심사를 받게 되자 그들은 자잔돈이 없다며 기다리라고 ...
다행이도 뒷 사람들 중에서 잔돈이  있어 지켜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거스름돈을 받았다.
 
미리 와 있던 버스의 기사는 독일인 남자였다.
기사는 우리가 버스에 오르자 우리의 인솔자와 몇 마디 하더니 그 다음 부턴 입을 굳게 닫았다.
어쩜, 반갑다는 인사는 못해도 자기 이름과 미소 쯤은 날려야 할 것 아닌가베...
그는 우리가 나미비아의 사박오일을 책임질 기사를 겸한 가이드이기도 한거다.
그런 막중한 책임을 진 ? 사람이 저렇게 뚝뚝해서야...
우리의 인솔자도 이미 눈치를 채곤 우리들에게...
" 참 문제네요, 저 사람 저렇게 입 다물고 있는 것 보니까...세 가지 중 하나일꺼네요.
 과묵하거나...수줍음이거나...아니면 싸가지... 그 셋중 어느것일까요?'
그것이 우리의 숙제였다.
세 가지 중 어느것이 될런지...오일 동안 함께 하면 답이 나올테지.


오른 쪽의 남자가 문제의 그 가이드를 겸한 운전기사 이고 왼쪽은 그 기사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준(기사는 독일인이었다) 독일어 교수님.
 
 기사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호텔이 아니라 곧바로 투어를 하게될 장소로 데리고 갔다.
물론 점심도 아직이었다.
이곳에서 일행들은 네 명씩 짝을 지어 지프차로 옮겨탔다.
버스는 그 장소에서 몇 시간 후의 우리를 다시 태우려고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여권등, 중요한 소지품만 넣은 적은 가방만 갖고 짚차로...
이제 부터 가는 곳이 샌드위치 하버다.
말 그대로 샌드위치...다.
오른 쪽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왼쪽으로 모래 사막과 모래산이다.
그 해변가를 짚차로 달리는 거였다.
이렇게 바다와 모래사막이 나란히 같이 있는 곳은 세계에서 이곳 한군데다.
그 길이가 장장 이천킬로라 하였다.
우리가 그 이천킬로는 다 다닐 수는 없다.(몇날 며칠이 걸릴테니...)
 
행운이었다, 내가 오교수와 한 짚차에 탄것이.
짚차의 가사는 중후한 노인으로 독일인이었다.
사실, 짚차를 배정할 때 그 기사가 오교소가 유창하게 독일어를(기다리면서 모든 기사들이 독일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오교수가 끼어 들었었음) 하자 우리 네 명을 자기 차에 타라고 손짖을 하였던 거다.
우리가 탄 차는 4호차였다.
오교수가 기사 할아버지? 옆에 앉아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일호차에 탄 우리의 인솔자가 그차의 기사에게서 들은 말을 우리말로 통역을 하면 무전기인지...암튼 모든 짚차에 다 동시에 들리게 된 장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차엔 동시통역을 해 주는 오교수 때문에 더 확실한 정보며... 알고 싶은 것을 즉각 해결되었다.
 
영화속에서만보았던 해변을 달렸다.
처음엔 바닷가에 딸린 염전부터 나왔다.
소금 가공 공장 까지 있는, 범위가 상당히 넓은 염전이다.
그 소금밭 한 가운데로 자동차 한대가 다닐 수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갔다.
운전을 하면서 우리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할아버지 기사...
사진을 찍으라고 차를 세워준다.(물론 다른 차들도 다 멈추었다)


염전의 좁은 길을 나오자 이제 부턴 본격적인 해변드라이브다.
그때부턴 설명이 필요없었다.
대신 우리 네 사람의 환호성이다.
아무것도 없는...보이는 것이라곤 앞서 달리는 차량의 꽁무니 뿐이고 저들 차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네 사람의 눈들이 반짝거릴것이다.
갑자기 달려가던 차가 느려졌다.
모래사장에 무언가 보였던 거다.
물개였고...달리다 또 한번 차가 느려진 건...사람이 보였던 거다.
두 남자였고 한 사람은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데 막 바닷가에서 모래사장쪽으로 올라오는 남자는 완전 누드였다.
좀 멀어서...망원렌즈 끝까지 다 땡겨 보았지만 희미하다.


점심을 먹지 않았지만 배고품도 잊은채 그렇게 해변 드라이브에 빠져 있다가 멈춘곳에 점심식탁이 차려졌다.
물론 짚차에 미리 싫어 준비해 가지고 온 것들이다.
기사들이 우리가 차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늘때 차려 놓은 식탁엔 여러가지 해산물과 크랙커, 삶은 계란 와인과 쥬스등.
차려진 음식들을 보자 그 때부터 일행들은 갑자기 바빠졌다.
껍질 채로 나온 석화(굴)와 삶은 큰 새우가 제일 인기였다.
와인잔을 채워 모래사장에서의 만찬은 화화롭게 끝났고 다시 짚차는 방향을 틀어 이번에 왼쪽의 모래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사막 매니아인 나로서는 이런 모래 산에 오르는 것이..., 특히나 요즘은 여행 금지 국가가 된 예멘의 알 사바틴 사막과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 이집트의 흙사막등의  경험으로 이미 익숙해 있지만 이런 곳인 처음인 일행 몇분은 열광한다.
더구나 다른곳과 달리 이 모래 산에선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니....
고운 모래 언덕에서 잠시 누워도 보고 뒹굴기도 하면서 모두들...나이를 잊었다.
아니 이런 곳에서 구태여 그런 것들을 의식할 필요는 없지만.
 
공항에서 이곳 까지...몇 시간 동안 푹 빠져 나와 각자의 삶에 한 페이지가 기록될 그런 순간들을 만끽하곤 드디어 우리가 묵을 호텔로.
사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움직이면서도 우리가 탔던 짚차의 기사와 매욱 친숙해 졌다.
비록 몇 시간이지만...
그 역시 버스 기사와 마찬가지로 독일인이고 오래전 이곳에 정착하여 두 달과 아들 하나를 키워 결혼을 시켰다고 했다.
그에게 이곳이 왜? 독일보다 좋으냐고 물었더니....넓은 땅이 좋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 라고 답한다.
그는 어쩌다 독일을 가게되면 일주일을 못 넘기도 되돌아 온다는 말도 하였다.
그렇게도 이 나미비아라는 곳이 매력적인지...
내일 부터 나도 본격적으로 느껴 볼 것이다.


16, 왈비스베이 2 (나미비아)

 
개발도상국이나 오랜 집권으로 소위 말하는 독재 통치라는 말을 든는 나라들의 특징이 부패다. 
글쎄? 이곳의 정치현상이 어떤지는 몰라도 우리가 목게된(왈비스베이에서) 호텔로 들어가는데 우리의 인솔자가 (서울서 같이간...)하는 말이 호텔은 이나라 대통령의 가족이 하는 거라는 말을하였다.
그 말 한마디라면 그렇구나 하고 느낄 수도 있었지만 며칠 뒤 나미비아의 수도인 빈트훅에서 묵은 호텔도 역시나 대통령 일가의 것이라지만 대통령것일 꺼라고...
두번 씩이나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이 나라도 부패가 심하구나 하는 생각이...
 
나미비아에서 생산? 되는 것 중의 하나가 '핵' 연료가 되는 유랴늄이다.
엄청남 규모의 광산에서 나오는 우랴늄...
우리가 첫날 묵었던 왈비스베이에서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으로 옮겨 가는 도로에 설치된 파이프 관을 보았는데 그 관이 우랴늄을 공수하는 거였다.
헌데 그 도로며 설치며...죄다 중국인들이 들어와 작업을 하였다 한다.
그러고 보니 샌드위치하버를 다닐대 우리짚차를 운전해 주던 기사가...우리를 처음 보았을때 중국인이냐고 물었었다.
동양인이라면 거의 중국 사람만 이곳에 왔다고...
하면서 중국인들이 많이 이곳에 투자를 하는 중이란다.
심지어 자기가 살던  집도 중국인에게 팔았다며 샌드위치 하버에서 시내로 들어올때 자기가 팔았다는 큰 저택을 가르켜 주었다.
중국은 외화가 남어나는 나라다.
그러니 세계 어디라도 투자할 곳을 찾고, 가치가 있다 생각되면 즉각 실행에 옮기나 보다.
이곳에 오기 전에 들렀던 케냐의 세렝게티 국립공원, 그곳도 군데 군데...도로공사가 한창인 곳이 있었다.
그 공사들을 다 중국에서 맡아 한다는 거였다.
이 넓은 나라...아까웠다, 부지런함이 으뜸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어오면 확실하게 무슨 일이던 잘 할텐데...하는 마음에.
 
어쨋든 우리는 샌드위치하버를 드라이브 하던 짚차를 버리고 다시 공항으로 마중나왔던 버스를 타고  대통령 일가가 한다는 호텔에 들었고 체크인을 마쳤다.
저녁은 이곳 호텔이 아니고 다시 버스를 타고 외부로 나간단다.
외부라 해야 ...작은 도시라 공항서 샌드위치하버로 이동을 하면서 보았던...소규모의 건물과 집들이 다 였다.
이 작은 도시? (우리나라 읍정도..)에서 제일 크고 유명하다는 식당은 바닷가에 있었다.
우리가 자리잡은 이층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이다.
적은 도시지만 이 식당에서 이곳에 도착한 후 제일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관광객이 아닌것 같은데...
 
자리 잡고 앉았는데 식사 주문을 하러 갔던 우리의 인솔자, 씩씩 거리며 우리 테이블(두 테이블로 나뉘었음)로 와 내 앞에 자리 잡는다.
뭔가 일이 터진것 같아 물었더니...
이곳 현지 인솔자겸, 버스 기사가 우리가 먹을 메뉴를 보여주는데 신통치 않았다는 거다.
그래 그 음식은 싫다며 다른 것을 골랐다는 거다.
그랬더니 기사는 화를 내며...당신네가 준 돈으론(현지 랜드 여행사 측에 준 나미비아 일정의 전 금액) 그 음식은 안되다고 하더란다.
그렇담 그 추가 비용은 내가 더 낼테니...내가 주문한 음식으로 하겠다 하였더니 정말이냐고 몇 번씩이나 다짐을 하였고 음식을 주문하더란거다.
하면서 역시나 우리가 처음 공항에서 올때 부터 예감하였던...셋 중의 하나, 싸가지가 틀림없다는 거다.
싸가지냐, 과묵이냐, 수줍음이냐...그 셋중 어느것일까? 하고 숙제를 내었는데 이미 싸가지라고 단정을?
 
식사가 끝나고 곧바로 호텔로 돌아가려니 좀 아쉬운 맘들이었는데...일층에서 혼자 식사를 마친 기사가 바닷가 산책을 해도 된다는 거였다.
얼마간의 시간을 준다는 거다.
거의 다의 기사들이 이런 경우...얼른 호텔로 데려다 주고 쉴 생각을 하는데...더구나 내일부터는 긴 시간 운전을 해야 하고.
엉? 그러면 싸가지가 아닌가?
더 두고 볼 일이었다.
웃지도, 필요한 말 외엔 다른 어떤 말도 없이 입을 닫고 있는 기사다.
케냐에서의 운전기사와는 전혀 딴판이다.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고 웃어주고 장난을 치기도 하였던 케냐의 기사처럼 대부분의 기사들이 다 그렇다.
참, 이 버스기사 역시 짚차의 할아버지기사와 마찬가지로 독일인이라 하였다.
마침 일행중에 독일어 교수를 하시던 오교수가 있다.
그 교수님께 내가 싱거운 부탁을 하였다.
"교수님, 저 기사 좀...웃게 만들어 보세요, 책임 지고 저 남자를 좀 녹여 보시라구요."
바닷가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교수에게 미션을 주었던 거다.
그 결과...
내일 부터 나타 나기 시작합니다.
 
 
***왈비스베이의 시내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버스로 이동을 하며 다녔고 또 저녁을 막으로 나갈땐 어두워 지기 시작하여 카메라를 두고 나갔습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17, 아무것도 없다...(나미브, 나우클루프트로 이동하면서...)

 

  오늘부터 본격적인 나미브 사막으로 들어간다. 
나미브라는 뜻은 나미비아 말로...'아무것도 없다 라는 뜻이다.
오전 이른 시간에 이동을 하게 되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숙소 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을 버스안에서 보내게 되고 가는 길에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감동을 줄런지...?
 
아프리카 하면 고정관념이 '더운곳' 이다, 라는 생각은 누구나 같을꺼다.
이번 여행 짐가방을 꾸리면서도 거의다 여름옷으로 준비했지만...어느곳은 어느때 가더라도 항시 준비해야 할 두터운 점퍼는 넣었다.
사실 한국서 떠날 때가 겨울이라 따로이 챙기지 않았고 추우면 그 겉옷을 입으면 되었다.
케냐의 세렝게티와 옹고롱고로 에선 우기 철이라 약간의 비를 맞기도 했다.
자연히 날씨는 선선할 수 밖에...
우리나라 가을 철 기온이였다.
케이프타운도 역시나 덥지 않은게 그곳은 바람이 강한 곳이다.
모두들 가지고 온 두터운 점퍼에 스카프들을 둘렀다.
그래도 일행 중에는..."뭐, 이렇게 춥냐며...두꺼운 옷만 가져 오라고 해주었어야죠" 하며 인솔자에게 투정을 하는 분도.
모두들 춥다 춥다, 하니까 인솔자는 좀 당황하였고 (평균 기온 27,8도 라고 하였음) 나미비아만 가면 틀릴 것이라고...
정말 그랬다.
일단 햇살이 강했고 한 낯엔 40도 까지 올라간다는 말이 맞았다.
 
더시 버스안...
16명의 일행 중에 여자가 열 세명이었다.
그 중 부부가 세 팀이나 혼자 온 여자들이 나 까지 열명이었다.
그 열명 여자들...모두 복면 강도차림이 된거다.
썬그래스에, 모자,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에 모자 위에 다시 긴 스카프로 칭칭 둘러매었다.
물론 버스안에 에어컨도 나오고 커텐도 있었지만 버스안으로 파고드는 햇살이 그보다 더 강했기에...
흉해도 할수 없다.
더구나 나는 햇빛 알러지가 있어 어제 부터 얼굴이 가려웁기 시작하며 벌겋게 부어 올라 가져온 약을 먹기 시작했기에 더욱 싸맬 수 밖에...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일행은 어느곳인가로 쳐 들어 가는 전사들 같았다.
 
차가 달린지...한 시간 이상되었는데도 보이는 것이라곤 이차선 도로 양 옆의...우라늄을 공수하기 위해 만든 파이프와 전선줄을 받치고 있는 전봇대다.
또 있다,  길 양 옆으로 어디가 끝인지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광활한 벌판에 펼쳐진 황금색의 긴 풀이다.
간혹 바람이 불면 한 쪽으로 쏠리며 흔들거리는 풀들은 햇빛을 받아 황금색이 되기도 하고 노란 유채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다가 약간 억덕이 진 길이 나오면 신기루 현상이 나타 나곤 했다.
아련히 아른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는데 막상 그곳에 차가 지나가면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거다.
그렇게 미주 치는 차량 한대 없이...버스안의 일행들도 숨 소리 조차 아끼는 것 같이...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것 같았다.
복장은 복면 강도 같이 하구선.


아, 어제 오교수에게 내준 미션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 호텔에서 나오면서 약간의...달라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오교수가 먼저 기사에게 말을 걸었던 거다.
우리 같은 한국사람을 예전에도 가이드 해 본적이 있냐는 말로 물꼬를 튼거다.
중국사람들만 태워 보았다는 말과 함께 약간의 웃음기를 보일락 말락.
그러던 그가 버스를 세운곳이 있었다.
출발해서 한 시간 반쯤 지났던 시간이었고 세운 이유가 있었다.
그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도 생물이 살고 있었다.
또 지나가다 보면 간혹 동물들도 나오고 도로엔 도마뱀도 나왔다.
그럴 때 마다 차를 세우곤 우리에게 사진도 찍을 시간도 주었으며 차에서 내려 설명도 해 주었다.
어...그렇담 싸가지는 아닌건가? 아니지, 그건 자기의 책임 완수 하는 것일 테고...더 두고 봐야지..
처음 세운 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달의 계곡이라고 이름 붙은 곳이었다.
갑자기 뒤틀린 땅덩어리들이 시커먼 색을 띄우고 있다.
지구에서 보는 달의 표면과 흡사하여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
수억년전, 지구 생성과 더불어 형성된 계곡이다.


버스에서 내려 내려다 보는 광경은 한마디로 장관이라는 표현 밖에는...
계곡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보이진 않는...마치 커다란 무덤 같은 것들이 겹겹이 포개져 이어지고 있다.
그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구경하고 있는 우리들, 달의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 한 점...이었다.
사진을 찍는다고 내 앞에 서있던...일행의 뒷 모습이 허허한 한 점처럼 보인거다.
잠시 그렇게 관망을 하고 다시 출발하여 다시 멈춘곳, 이 사막에서 생존하는 희귀한 식물을 보여 주려는...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려는 기사의 갸륵한 맘.
독일 태생인 그는 영어보다는 독일어에 익숙한게 당연지사.
우리의 인솔자에게 영어로 설명을 하는데 독일식 발음이라 인솔자도 조금씩 못 알아 듣는 부분이 있는거다.
그런 부분을 오교수가 다시 독일어로 물어 다시 우리에게 전달.
이번 나미비아 여행의 보물단지다.


길을 가다가 점심을 먹은 곳, 호텔서 나올때 싸준 도시락이다.


길에서 보게된 동물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 길, 또 길...
그 길에서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던 ...자연의 기이함과 위대함, 감히 인간이 도전 할 수 없는 영역에 머리 숙였고 말을 줄였다.
아~~ 이럴때...무슨 말로 어떻게 이 광경을 전해야 할까? 가 내겐 가장 큰 숙제였고 그저 카메라만 만지작 거리며 작동시킬 수 밖에.
그렇게 긴 길을 달려 드디어 도착한 숙소, 소수스밸리 롯지.
덥다, 무지 덥다.
인솔자의 말대로 40도가 넘는것 같았다.
평원에 한 채씩 지어져 있는 빌라 형태의  찜통이다.
한채씩 분양받아 들어간 집의 창문은 유리가 아니라 군대용 침대 천 같은..국방색 텐트지다.
지퍼로 올리고 내리게 되었는데... 내리니 밖의 열기가 들어와 더 더웠고 닫으니 갑갑하고.
에어컨...있으나 마나다.


짐가방을 던져 놓고 일단 샤워 부터...찬 물을 뒤집어 쓰고 나오니 금방은 괜찮았지만 십 분 정도 지나니 도로아미타불이던 더위는 저녁 여섯시쯤 되자 꺽이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시간 일곱시...야외에 마련된 식탁에 앉으니 막 지기 시작한 노을이 평원을 벌겋게...
메뉴는...여지껏 우리가 보았던 온갓 동물들, 즉 야생동물 바베큐다.
인팔라, 얼룩말, 버펄로, 스타 벅, 악어, 그외에도 생각나지 않는 몇 가지가 더 있다.
그것들을 가지런히 놓인 그 옆엔 양념이 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도 있었다.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을 고르면 숫불에 달궈진 팬에 구워 주는 건 종업원들이 한다.
모두들 생소한 먹거리에 흥미를 느끼고 이것 저것 골라 담지만...나는 도저히 손이 안 갔다.
늘 먹던대로...돼지갈비와 닭고기만.
이곳의 소고기는 맛이 없다.
그 외엔 갖은 야채와 해산물, 혹은 육류를 스파게티 국수, 소스와 함께 자신이 접시에 담아 주면 즉석에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이 아가씨 앞에 놓인 것들이 양념이 된 야생 고기들이다. 고르면...옆에 있는 석쇠에서 즉석으로 구워 준다.


대단한 저녁을 끝낼때쯤 어두워 진 하늘에선 하나 둘 별이...
방으로 들어갈 생각 않고 모두들 별 헤아리기에 나선 경쟁자들 처럼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로...
그런 우리 일행의 모습을 보던...그 싸가지 일까? 아닐까? 하던 기사, 우리에게 별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단다.
아니 이게 무슨 보너스...
더구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데.
이제 판명이 났다.
결코 그는 싸가지가 아니었던 거다.
이미 낯에...이곳에 오는 길에 몇 번씩이고 차를 세워 설명을 하고 사진 찍으라고 또 세워주고 혹 평원에 짐승이 나타나면 또 세워서 보라고 일러주고...
그리고 웃음도...딱 한번이지만 보여 주었고 오교수와는 사진도 짂었다.
싸가지가 아니라 과묵함이라고...우리 모두 그렇게 판결을 내렸다.
게다가 더 보태서...굉장히 유식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별을 따라 길을 갔다.
캄캄 한 밤, 소리도 빛도 다 차단된... 옆 사람의 숨 소리 까지도 다 들릴 정도의 적막함.
십 오분쯤 달려 내린 곳, 캄캄한 도로 위에서 올려다 본 하늘엔 별들이 빛의 점으로...빈 틈이 없었다.
기사는 우리들에게 별자리며...한참동안 설명하였다.
어찌 그리 많이 아냐고 물으니 전공은 아니고 손님들을 위해 천문 공부를 계속하고 있단다.
그 말에 모두들 박수.
돌아오는 길, 버스는 빈대로 그냥 보내고 우리는 걸어서 가자고... 누군가의 제안에 환호.
아무것도 없다는 나미브의 밤, 별은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빛을 따라 숙소로 돌아오던 그 길.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도록 남을 순간으로 자리 매김하였다.
내일은 또 어떤 것들이 나를 침묵하게 할런지...


18,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 (나미비아 삼일째)

 

  무지 덥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이 퍼기기 전...오전 다섯시 반쯤이다.
룸 앞에 마련된 테라스에 나가 앞으로 보이는 전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침 식사 때 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올때 가져온 '난설헌'이다. (허난설헌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
룸메이트인 이 선생임은 룸에서 책을 읽시겠다고...(박칼린에 대한 이야기를 쓴 소설로 이문열씨가 쓴 '리투아니아여인'이다.
어쩜 한 방을 쓰는 우리가 선택한 소설의 주인공이 다 '여자'가 주인공이라니...
여행을 다닐때 마다 가져가는 한 두 권의 책, 진도가 빠를때도 있고 느릴때도 있는데 비교적 이곳에서는 휴식 시간이 많아 잘 나갔다.
게다가 룸메이트인신 이 선생님도 나이가 드셔서 인지 귀가 잘 안들리시어 대화 보다는 조용히 앉아 책읽기를 즐기시어 나와는 잘 맞았다.
탁자엔 룸에서 끓여 가지고 나온 커피, 귀에는 핸드폰에 다운 받아온 분위기 있는 음악, 눈으론 술술 잘 넘어 가는 조선시대 여자의 일생...
더 광범위 하게는 막 뜨기 시작한 해가 평원을 달굴 준비를 하면서 함께 동행한 솔솔 부는 바람에 누워있던 풀들이 잠을 깨고...
삼십분 정도 그렇게 즐기고 있는데 옆빌라의 주인?인 우리 일행의 인솔자가 나오며 인사를 한다.
그 때 부터 이쪽 저쪽의 룸에서 사람들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를 보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한 낯엔 너무 뜨거워 움직이는게 힘드니 아침 일찍 움직이기로 했다.
게다가 가는 길에 있는 모래사구인 듄 45의 명암을 보려면 일찍 가야 한단다.
해가 떠오르면서 그 모래 사구에 명암으로 인한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대비를 보는거다.
나미비아를 소개하는 사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듄 45는 국립공원에서 부터 이곳까지의 거리를 말하는 거였다.
즉, 다른 사구엔 듄 4, 듄 49...이런 식으로.
많은 모래 사구중 듄 49가 제일 아름담다고 평이 난 곳이다.
듄 45까지 가는 동안...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붉은 흙, 모래사구들.
우리 보다 이른 사람들이 있었는지 저 멀리서 열기구가 떠 다니고 있는 것도 보였다.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네번째이고 아프리카에선 첫 번째의 크기다.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을 가진 나미브 사막 또한 첼레의 아타카마 사막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이다.
나미브의 사막 대부분은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사구들이 워낙 높고 크기 때문에 지금껏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나미브와 나우클루푸트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모래 사구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 빈공간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3대 자연 풍경 중 하나인 이곳에서의 이틀, 내 가슴속 좁은 공간에 넘치도록 담어 가려고 한다.


듄 45의 모래사구를 오르는 사람들.

오교수님과, 내 룸메이트였던 이 선생님, 그리고 오른쪽의 나.


듄 45에서는 타고왔던 버스 대신 다시 두 팀으로 나누어 짚차를 타게 되었다.
모래 사막으로 들어가려면 버스는 불가능 하고 타이어의 공이 압을 뺀...사파리용 짚차를 타야 한다.
이상하게도 이곳 사막엔 낙타가 안되는지 중도의 사막이아 중국의 사막에서 짚차 대신 타게 되는 낙타가 없다.(그 이유를 물어 본다는게 깜빡 잊어 못 물어 보았다)
짚차도 어느 정도 까지만 들어갈수 있었고 걸어야 했다.
가는 곳은 소수스플라이.


앞서가던 차가 고장이 나서...


배낭을 짊어지고 고행?의 길을...

나미브_ 나우클루프트 국림공원에서 제일 으뜸 가는 소수스플라이는 크고 아름다운 모래 사구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이다.
붉은 색의 모래 사구들은 해가 뜨고 질 때 마다 사구의 색도 변한다.
이유는 모래 속에 산화철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짚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들.
더운 탓에 짊어진 배낭조차도 귀찮았다.
마침 버스 기사(문제의 그 싸가지가 아닌, 과묵으로 판명된...)가 자기 버스를 세워두고 우리가 탄 짚차에 동승을 해서 따라 왓다.
사실 버스에서 그냥 쉬고 있어도 되었다.
이곳에선 특별히 설명한 것도 없고 그저 각자가 알아서 걷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탄하면 되는 곳이었기에...
(중요한 모래 사구의 설명은 미리 받은 안내문에 사진과 함게 설명이 다 있었기에 확인만 하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묵의 기사는 우리를 따라 왔고...
우리가 배낭을 귀찮아 하자 자기가 지켜 준다며 다 내려 놓고 가라 하였다.
모두들 작은 물병 하나 씩만을 들고 소수스플라이의 모래 속으로 발을 빠트렸다.
올라 가는 도중에...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유럽인들이 사진을 찍는데 우리와 달랐다.
우리는 모래 사구를 향해 렌즈를 맞추는데 그들은 우리 일행에게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거였다.
왜? ..우리의 복장들이 구경꺼리였던 거다.
그들은 대부분이 반 바지에 민소매 티, 썬그라스와 모자...차림이었다.
우리들...긴 바지와 긴 부라우스, 썬그래스에 모자 그 모자 위에 스카프를 두르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했다.
철저하게 햇볕을 차단 시키려고 취한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신기하다 못해 호기심이 가득...
이렇게 강한 햇살에 단 삼십분만 노출되어도 확실하게 나타나는 동양인들의 피부 성질을 모르기 때문일 꺼다.
반대로 그들은 우리와 달리 해만 나타나면 어디서고 벗는기질...
암튼 우리는 그들 앞에서 잠시 구경꺼리가 되었었고 그러거나 말거나...소수스플라이를 지나 데드플라이로 들어갔다.


소수스플라이의 사구.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데드 플라이...
아, 이 플라리라는 말은 '물엉덩이' 라는 뜻이다.
십년 내지는 십 오년에 한 번 정도 엄청난 비가 내리는데 그 대 이곳에 물이 찬다는 거다.
일년에도 몇 번씩은 비가 오기도 하는데 내리는 양이 그 몇번을 다 합쳐도 사 백 미리 정도라고...
그런 지경에 십, 십오년 주기로 엄청 많은 비가 쏱아지면 국가적으로 큰 축제를 벌인다고.
이 데드플라이의 바달은 다른 지역과 달리 흰색이었다.
마치 소금 바닥 같이...
더구나 육각형의 형태로 갈라진게 마치 거북이 등 같이...그런 특이한 바닥이다.
바닥은 이렇고 그 바닥위에 듬성 듬성 보이는 관목들, 그 뒤로 보이는 붉은 모래 사구와 또 다른 색의 사구들.
이런 기이한 절경 때문에 사진 작가들이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 일순위란다.
주어진 자유시간 한 시간...
일행들은 순식간에 뿔뿔히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데드플라이의 바닥.
 


데드플라이...
 
데드플라이에서 나와 다시 짚차로 이동한 곳, 크레이지 듄.
이곳도 만만치 않은 높이의 모래 사구다.
바람결에 따라 급격히 무늬 와 모양이 바뀌는 사구다.
올라 가는 길은 한줄로...
바람이 만들어 놓은 사구의 칼날 같은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에 선명하게 파인 곳을 다시 밟고 지나며 오른다.
 


크레이지 듄으로 오르는 일행들.
 뜨거운 햇살에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며 타는 목에 힘들어 하면서도 이곳을 오르며 걸으며...아무것도 없다는 이곳에서 건진건 무었일까?
바람과 햇살로 만들어낸 이런 모든 광경들이...세월의 흔적이 아닐까?
데드플라이의 하얀 바닥에 언젠가 부터 있었을런지 모를 짙은 갈색의 고사목들, 언제 까지나 이렇게 버티고 있을런지...
돌아 나오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 보게 하는 곳.
무한정 있어도 아쉬워 할 시간들이었다.
 



19,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의 세스리엠 캐년 (나미비아)

 
  한 낯의 더위 때문에 아침 일찍 찾게 된 나우클루푸트 국립공원의 순례? 마지막 코스가 세스리엠 캐년이었다. 
세리스엠이란 뜻은 '모래 언덕 밭' 이다.
셀수 없이 많을 정도의 모래 사구들이 있는 곳이니 그 뜻이 맞을것 같다.
수 만녀의 세월 동안 대서양에의 바람을 타고 날아온 모래들이 쌓여진 결과다.
이 모래사구 들 옆에 아담? 한 캐년이 있었다.
개년이 아니고 캐년이다.(그랜드 캐년을 우스게 말로 그년도 개년 이라고 ...)
깊이, 30m 길이는 그리 길지 않은 3m 되는 곳이다.
이곳은 가까지 가서 보기 전에는 잘 안보인다.
백 만년 전 샤우브 강의 하식 작용으로 이런 계곡이 생긴거다.
버스가 정차된 곳에서 내려다 보니 유럽인들이 계곡 안에서 걷고 있었다.
인솔자는 자유시간을 주면서 계곡으로 내려갈 사람은 내려가고...맘 대로 하라고.
 


 내려 가는 길은 기암괴석이 양 옆으로...
그 바위들이 허물어 지기도 하면서 흩어진 조각들을 밟으며 아래고 내려갔다.
막상 내려 가니 길이 일자로 쭉 뻗은것이 아니라 구불 구불...계곡을 만들고 있는 양 옆의 기암괴석들이 구불거리는 그 길을 가로막아 마치 막다른  길...같이 보였다.
아, 이런 곳을 어디서 보았더라.
머리속이 재빨리 회전하고 잇었다.
금방 생각이 났다.
몇 년전에 남편과 함게 다녀온 모로코의 토드라 협곡이었다.
바위의 색갈이며 높이며...다른게 있다면 그곳은 계곡이 아니었다는 것 뿐.
  
 모로코의 토드라 협곡
 


계곡을 내려가 얼마쯤 걷다가 올라온 일행들을 태운 버스는 호텔로 돌아가는 중이다.
한 낯엔 너무 더워 호텔서 휴식을 하고 다시 저녁 때 움직이기로 한거다.
오전이 지나온 길을 다시 가는데 분명히 왔던...그 길 이건만 새삼 다른 분위기다.
아마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사간대와 한 낯의 그림이 달라서겠지.
막 아침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하던 , 도로 양 옆의 풀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바람에 다라 이리 저리로 쏠리며 황금 물결의 춤을 추기도 하고 어느 곳은 억센 힘으로 더욱 높이 뻗으려 몸부림 치는 것 같기도 하고.
 버스 안의 일행들을 둘러 보니 모두들 꿈나라다.
일찍 일어나 높은 모래 사구들을 힘겹게 오르 내리고 다녔으니 고단들 할꺼다.
운전을 하는 기사와 나를 제외하고 인솔자 까지 모두 단잠에 빠졌다.
 


호텔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인솔자는 우리가 다시 모일 시간을 알려 주면서 식당 뒤, 야외 수영장 뒷편에...작은 도서실이 있고 그 안이 무척 시원하단다.
낯 잠을 안 주무실 분은 책을 가지고 그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고...
너무 더우니 밥 먹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사방이 툭 터진 식당 천정엔 네개의 큰 날개가 달린 휀이 돌아가지만 있으나 마나다.
옳거니, 그래야지 하고 맘 먹었지만 그 역시 포기했다.
이유는...그곳 까지 가는 것 조차도 못하겠다...였다.
단 한 발자국도...저 햇빛 아래로 다시 걸어나간다는 게 도저히...
샤워 하고 에어컨 켜고 침대에 누었으나 덥다, 더워라 입에서 연방 나온다.
그래도 시간대가 좀 지나니 참을 정도는 되었고 다시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다.
 
이번엔 사파리용 짚차로 비교적 큰 차다.
일행은 두 팀으로 나뉘어 차에 올랐고 이번엔 오전의, 모래 사구들 사막이 아니라 평원이다.
짚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평원의 풀 사이로 나있다.
누런 풀들은 우리의  무릎 정도 까지 오는 정도다.
어쩌다 스치면 무척 게세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오전과는 완전 다른 풍경이다.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 않는 평원의 저 쪽엔 바위 산들이 수 없이 포개져 있다.
이곳은 또 마치 중국의 계림 같기도 하고 호주, 아웃백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가던 차가 갑자기 멈추는 곳엔 동믈들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온 것들이라고...맘 좋게 생긴 운전 기사가 농담처럼 던진다.
이곳을 지나면서 본 것들 중 제일 신기한게 새 집이다.
나무 가지에 만들어 놓은(새들이) 새집이 마치 어느 동물이 나무 가지 위에 누워 있는 것 같은 모양이다.
평원의 누런 풀을 쪼아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새집이 수도 없이 많았다.
참으로 대단한 새들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오기전 케냐의 세렝게티 에서 보았던 개미집도 그랬다.
길 가에 모래 둔덕이 있는데 그 둔덕에 몇 개 씩의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런 둔덕이 자주 보이고.
궁금하여 기사에게 물었더니...개미들이 만든, 개미집이란다.
개미들 아파트라...(한 둔덕에 여러개의 구멍이 둟려 있으니...)
높이며 크기도 엄청 났다.
도저히 그것을 개미의 힘으로만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이라는데야...
(그 사진을 못 찍은게 아쉽다)
 


 


나무위에 걸쳐 있는 새집.  


한참을 그렇게 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질 시간이다.
짚차는 아늑한 곳, 우리가 자리 잡고 앉을 수 있는 야트막한 바위들이 있는 곳에 멈추었다.
차에서 내리던 일행들...와우~~ 하고 환호성이다.
우리를 위해서 작은 탁자에 와인과 쥬스등의 음료와 간단한 안주 꺼리가 마련되어 있었던 거다.
일단은 모두 와인을 채운 잔을 부딧치며...부라보...
그렇게 한 두 잔씩을 마시곤 각자의 취향대로 앉을 곳을 찾아 자리 잡고선 일몰을 기다렸다.
 
이렇게 자리 잡고 일몰을 기다리는 이 장소를 Sundower Overlook 라고 한다.
오늘 저녁 나도 분우기에 취해 보려고 호텔서 나올때 긴~~길이의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긴 자락에 끌려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러이 걸터 앉을 바위를 찾아 올랐다.
내 옆으로 세 사람이 더 온것은...내 스마트 폰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때문이었다.
조용한 이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틀었더니 너무들 좋아라 한다.
 

 


그렇게 상념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짚차로 오르고...어디 쯤 갔을까? 이제는 완전히 해는 넘어갔고 어둠이다.
부스럭 소리도 안 났는데 차가 멈추며 운저기사가 내리란다.
왜? 냐고 물었더니 저 숲속에 동뭉리 나타 났다는 거였고 조용히 해야지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도망을 간다나...
먼저 내린 사람들은 뒤에 내리는 사람들에에 입에다 손가락을 갖다대면서 조용히 하라고..
헌데 아무리 눈 크게 뜨고 보아도 동물은 보이지 아노았고 앞서 안내를 하던 기사는 자꾸 앞으로 걸어간다.
자연히 우리 일행도 뒤 따라 갈 수 밖에....
그렇게 얼마쯤 가다 보니 갑자기 어두운  평원 한가운데 희미하게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왠 불...점점 다가 갈 수록 훤해 졌고.
그 때 부터 우리 모두는 놀란 눈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카메라의 후레쉬에 문제가 생겨 부시 만찬의 현장이  잘 나오지 못했음.
 


평원 가운데, 좀 넓은 공간이 있었다.(행사 용으로 미리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주위엔 바위들이 병풍처럼 휘둘러져 있고.
그런 곳에다가 자녁 만찬을 준비해 놓은 거다.
순전히 우리 일행 열 일곱명만을 위해서.
호텔측에서 엇저녁 식사때 있던...똑 같은 메뉴였다.
야생 고기며 스파케디와 각종 야채와 과일, 스프, 술과 음료 등등.
물론 숫불로 야생고기들을 그자리서 직접 구어준다.
그렇게 하려고 주변이 촛불을 밝혀 두었고 식탁이 놓여 있는 앞으론 장작으로 캠프 회이어 준비도 되어 있었다.
이름하여 부시 만찬이란다.
이 기막힌 이벤트에 모두들 감동하며 즐거이 먹고 마시고 즐겼지만 너무 아까웠다.
이렇게 준비를 하려고 얼마나 애썻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곳에서 서브를 해 주는 종업원들이 우리 일행 숫자와 맞 먹었을 정도니 얼마나 융슝한 대접이었을 런지 상상이 갈것이다.
물론 이런 이벤트는 우리가 묵는 롯지에서 만든...이벤트다.
롯지 입구에 이 외에도 다른 이벤트 하는 것들을 사진 찍어 놓고 홍보를 하고 있었다.
워낙 고가의 돈을 내야 하기에 다른 유럽 관광객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것 같았다.
이 롯지의 하룻밤 묵는 비용 도 만만치 않으니...(미 화로 450불)
황량하기 그지 없는 벌판에 오로지 달랑 이 롯지 하나 뿐이니 달라는 금액이...그야 말로 부르는게 값이다.
이런 곳에서의 이틀밤과 부시 만찬으로 소수스플라이의 체험과 함께 밤은 깊어갔다.
오늘 밤은 더워도 덥다는 말, 하지않고 즐기기로 했다.
언제 이런 경험을 다시 할꺼나...하고 맘 먹으니 철저히 즐기자는 생각이 뒤늦게 들은거다.
내일은 다시 버스로 긴~~ 시간 이동하여 나미비아의 수도인 빈트 훅으로 간다.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잠 자는 것도 아까웠다.
 

20,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훅으로 가는 길

 
  왈비스베이의 샌드위치하버에서 부터 시작한 나미비아의 체험은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의 소수스플라이, 듄 45, 데드플라이등을 체험하고 이제는 수도인 빈트훅으로 가는 일정만 남았다.
수도 까지 버스로 이동 하는 시간은 오전 시간 전부일것 같다.
빈투훅에 도착하면 호텔에 가 체크인 하고 그 호텔에서 점심을 먹느다고 하니...
(실제로 도착하니 오후 한시반 쯤이었고 호텔 뷔페 식당으로 들어가니 이미 많은 현지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어 좀 놀랐다. 마침 그 날이 토요일이라 가족단위가 많이 보였다)
오늘은 버스 안에서 보는 체험이다.
 
나비비아...요즘 어느 티비의 프로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이 다녀온 정글도 나미비아라고...
나미비아 어느 쪽인지는 알수 없으나 워낙 그 나라의 땅덩어리가 넓기때문에 내가 갔던 사막 지대와는 많이 떨어져 있으리라.
전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지대다.
그런 형편인데...왈비스베이의 샌드위치 하버 드라이브때 할아버지 운전기사가 올 해 내린 비의 양은 40mm 정도나 되었다고 자랑? 하였다.
면적을 따진다면 전 셰계에서 34번째의 등수인 나미비아,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밀도는 거의 꼴찌 수준이다.
대략 170만에서 200만 까지라고.
1884년 독일의 보호령하에 있던 나미비아는 1920년 남아공에게 위임된다.
그 후 1990년대에 남아공으로 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다.
 
이곳의 기후는 여름이 우리나라와 반대인 11월 부터 4월 까지고 그 시기가 가장 덥다.
그 중에서도 4월로 나미브 사막의 경우 49도 까지 올라간다.
내가 갔던 달이 11월 말이니...더위가 막 시작되었던 거다.
이 시기...강우량은 8mm 정도인데 내리는 즉시 증발해 버린다.
반면 내륙지방은 이 시기에도 서늘하고 습기도 있으며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기온도 높지 않다고.
아마도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장소는 이 내륙의 고원일 가능성이 높다.
인종은 흑인들이 백인 보다 많은 숫자이지만 빈부의 차이는 흑,백으로 현저히 나누어 진다.
흑인들은 거의가 자급자족하는 농민 아니면 서비스 업종이나 허드렛 일을 한다.
반면 대부분의 백인들은 거의 다 수도인 빈트훅에 거주한다.
독일계의 백인이 많고 빈트훅에는 독일인 거리와 20세기 초 양식인  독일인 집들도 있다.
나미비아의 흑인들은 다른곳(케냐나 남아공 잠비아 등) 과 달리 얼굴색이 유난히도 더 검었다.
 
빈트훅으로 가는 길...역시나 이제것 보아왔던 길과 다를 바 없는...황량하고 인적도 지나가는 차량도 없다.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건 바람소리 뿐이다.
저 바람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 볼 수는 없는 건가?
 


 


이렇게 장거리를 다니다 보면 화장실이 제일 문제다.
휴게소나 주유소가 별로 없으니 대부분...길가의 자연 화장실에서 처리를 하는데 작은 모텔을 겸한 휴게소가 나와 버스는 자동으로...멈추었다.
비교적 차려 놓은 곳이다.
조그맣지만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헌데 문이 닫혀 있었음) 있고 즉석에서 빵을 굽는 빵집도 있다.
빵집 안을 들여다 보니 부부인지 두 남녀가 부지런히 반죽이며...움직이고 있다.
한편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 일행에게 맛을 보라면 커다란 빵 한덩어리를...
그 빵가게 앞에 어린 남자 아이 세명이 놀고 있었다.
아니 놀고 있는게 아니라 외지인인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는거다.
어느 분이 그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었더니 그것을 받아선 입고 있넌 티셔츠의 앞자락에 담고선 꽉 움켜 잡는다.
마치 자기 손에 들어온 것은 절대로 안 놓치겟다는 표정으로...
 


휴계소 한쪽에 있던 빵집  


화장실은 공짜로 사용하게 하였다.
이럴땐 고마움에 대한 답으로 커피라도 마셔 줘야 하는데...입에 맞지 않아서...
대신 커피 무지 좋아하는 우리의 인솔자가 대표로 주문하고 마시고.
 
사막의 전쟁터에도 장미꽃은 핀다...라는 책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종군기자로 나갔던...당시 조선일조 워싱턴 특파원이 었던 강인선(여자로 현재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임) 기자가 쓴 책이다.
그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사막과 포탄이 날라다니는 속에 핀 장미는 과연 얼마나 버티며 또 어떤 색과 표정이었을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런 장미는 아니지만 화장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주 작은 정원이 있고 그곳에 선인장 꽃이 한창이었다.
사막...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식물인 선인장.
화장실에 다녀 나오면서 활짝 핀 꽃을 보는 재미...
모두들 카메라를 들이댄다.
 


 


다시 달렸다.
그리고 또 한군데의...모텔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물론 화장실 때문이었지만.
모텔은 적은 규모였지만 야외 수영장도 있고 깨끗했다.
우리가 들어가자 마침 점심 손님 맞은 준비로...쓸고 닦고 수영장 청소로 바쁘게 움직이던 종업원들, 우리가 점심 식사 하러 온 줄 았었을 꺼다.
화장실만 사용하기엔 미안하여 수영장 앞, 탁자에 앉아 음료도 시키고 잠시 쉬었다 가기로...
주문을 하는데 종업원들 갈팡 질팡이다.
갑자기 들어닥치기도 했지만 미처 준비가 안되어(점심 시간보다 일러서인지)서 인지 오더를 받아 적는 걸 분명 보았는데 몇 번이고 다시와 묻곤 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21, 빈트훅으로 가다 (나미비아 나흘째)

 
  왈비스베이의 공항에 도착하여 나미브의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 탐방을 다  마쳤다.
물론 여기서 다 마쳤다 함은 전체를 말하는 건 아니다.
워낙 광범위 한 곳이라 우리가 체류 하는 동안 보게 되는...그래도 제일 가볼 만하다고 이름 난 곳들이었다.
그 중의 반은 이동을 하는...버스 안에서 보게 되는 풍경들이었고 마음에 멍울이 생길 만큼 쓸쓸함을 가져왔다.
바람에 쏠리면서 대지에 잠자듯이 있던 풀들이 서로의 몸을 부딧치며 아우성 치는 소리를 들었다.
서걱 서걱,  싸르르...때로는 휭~~하니 빠른 속도로, 어느땐 가냘픈 몸짓으로...
풀들은 그렇게 세월을 쌓아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버스안의 일행들은 감탄에 지쳐 하나 둘...소리없이 잠들어 버리고.
 
길위에서 보낸 시간 만큼이나 가슴에 묻어둘 ... 정경들이 많은 곳이었다.
달리다 보면 도로 위로 나오더 멈칫 돌아서 뛰던 동물들이며 메마른 땅에 수 천년의 세월로 화석이 되어 버린 식물도...
어쩌다 마주치는 차량이 그렇게나 반가웁기도...
너무나 넓은 땅덩어리었기에 어저다 보이는 사람들은 작은 점 처럼 보이기도...
이곳에서의 기억들을 머리 속에서 꼼꼼히 정리 하는 동안 버스는 목적지인 빈트훅의 호텔에 도착하였다.
오후 두 시가 다 된 시간이었고 우리는 뷔페 식당으로 갔다.
 
호텔은 역시다 이나라 대통령의 것이라는 말을 한다.
사실인지 아니지 확인 하룻 는 없으나 분위기상 암튼 대단히 화려 하고 부유층 인것 같은 사람들이 보였다.
호텔에 딸린 골프장이 있는데 주말(토요일)임에도 라운딩 하는 사람들은 두 팀 정도였다.
이곳에선 내일 아침은 느즈막히 요하네스버그로 다시 이동을 하는데 비교적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골프 칠 사람은 오전에 라운딩을 하여도 된다고...
나와 한 부부, 그리곳 서울서 부터 우리를 델고 온 인소자, 하여 네 사람이 치기로...
여행을 와서 골프라...
힘든 몸 때문에 제대로 될까? 하는 염려도 잇지만 꼭 잘쳐서가 맛이 아니라 이런 곳에 와 라운딩 한 번 해 본다는 의미에 냉큼 대답을 하였던 거다.
알아 보다고 하던 인솔자가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말이 안되겠다는 거엿다.
일단 라운딩 시간이 일곱시 부터 이고 골프채를 랜트 하는 건 웃기게도 열 두시 부터란다.
치지 말라는 소리였다.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그렇게 하여 일단 점심을 먹고 각가의 방에 짐을 가져다 놓고 시내로 나갔다.
버스로...
수도라고 하지만 다 둘러 보는데 한 시간도 못될 만큼 작은 도시다.
역사가 있는 성당과 관공서 등이 한 라인에 죽 나열되 다 있었다.
내려서 볼 필요도 없이 버스를 타고 지나치며 다 보았고 너무나 보여 줄게 없어 서인지 기차 역이 유서 깊은 곳이라고 데려 가기도.
시내 중심가 끝 쪽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우리나라 청와대 같은 곳) 건물도 보여주고...
한시간도 못되어 다시 호텔로 돌아와 휴식.
 
저녁에 다시 뷔페 식당.
일요일이라 그런지 제법 현지인들이 많았고 이곳에서 열리는 어떤 행사가 있는지...목에 명찰을 단 검은 남녀들이 보였는데 흑인임에도...인텔리 층 내지는 지식인들 이란게 한눈에 보였다.
메뉴가 환상이었다.
각종 해산물에 단 호박 스프, 스파게티에 즉석에서 구워 주는 얇은 피자.
후식으로는 부드러운 아이스크림과 각종 과일 까지.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되는 시간임에도 참 잘들 먹는게 보였다.
그렇게 먹은 후...일행의 반이...간곳이 호텔 내부의 피티니스 센터였다.
적은 규모였지만 다른 손님들이 없어 그곳엔 우리 일행들 뿐이었다.
런닝머신에 오르고 자전거에도 올라타고 또 다른 기구들 앞에서 땀을 빼는 일행들의 모습을 그 앞으로 지나가던 우리 인솔자가 보았고 멈추어 한참을 구경 하며 하는 말이...
"세상에나...수 백번 손님들을 모시고 다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네요, 어쩜 다들 이렇게나 열심이세요." 하며 한참을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구경을...
그렇게 정신 없이 운동을 (물론 나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종업원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더니 문 닫을 시간이 지났단다.
그 소리에 모두들 뛰던 곳에서 멈추고 내려 왔음이다.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훅, 하면 다른 것은 별로 기억 될 것이 없어 서운했는데...
호텔에서의 이벤트 (휘트니스)가 그래도 인상에 남을 것 같다.
또 이곳에서의 사진도 없다.
그저 버스를 타고 한 바퀴 휙 돌아 왔기에 ...
아, 한 곳에서 내리긴 하였으나(성당) 마침 미사를 보고 있기에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던 거다.
이런 곳을 왜? 왔냐고요...
그래도 다시 왈비스베이 공항으로 가는 것보다 그래도 나미비아의 수도라는데 의미를 둔 것이겠지요.
내일 오전 이 빈트훅의 공항에서 요하네스로 갑니다.


빈트훅으로 가는 길에...


빈트훅 시내에서...


빈트훅에서 묵었던 호텔의 담벼락 앞의 나무들...


22, 요하네스 버그

 
  20일 일정의 아프리카 여행은 이제 그 끝을 달리고 있었다. 
크게 나누어 케냐에서의 동물 사파리, 나미비아의 사막투어, 이제 남은 건 잠비아의 빅토리아 호수다.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길에다버린, 즉 옮겨 다니는데 버린? 시간이 며칠이다.
이날 하루도 그런 날이었다.
빈트훅 공항에서 요하네스버그핸 비행기를 탔고 도착한 시간은 오후 세 시 경이다.
공항엔...한국인 여자분인 가이드가 나왔다.
이 여자 가이드는 우리가 처음 아프리카 땅에 발을 들여 놓을 때 만났던 분이다.
즉, 홍콩에서 케냐로 갈때 이곳 요하네스버스 공항에서 다시 케냐행 비행기로 갈아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를 안내 하려고 잠깐 나왔던 분이다.
단지 공항 안내만 하고 헤여졌던 그 녀를 보름만에 다시 만나게 된거다.
그렇게 만났지만 그녀의 가이드를 받는건 오늘 오후 반나절 뿐이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요하네스버그를 더나 잠비아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일행들 모두가 입국 심사대를 거치고... 짐을 찾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교적 앞 자리에 앉았던 탓인지 내가 제일 일착으로 나왔던 거다.
이 공항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가려면 거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일 꺼다.
이번에도 이곳 공항을 여러번 거치게 되기도.
그런 반면 정작 이곳에서의 관광은 없었다.
이날도 마찬가지 여서 공항을 나와 호텔로 갔고 체크인을 한 다음 번화가로 나섰다.
 
별 관광 거리가 없는 대신 현지 가이드인 여자분(이름과 성이 생각안남, 너무 잠시 만나서 인가?)의 멘트가 재미있었다.
너무나 똑 부러 지게 말하면서도 사람 좋은...암튼 버스로 호텔로 가면서 들은 그녀의 말들이 재미도 있었으려니와 지식도 얻었음이다.
삼십대 중반쯤 보이고 어려서 가족이 이곳으로 이민왔고 결혼은 한국 남자와 하였다는 것 정도가 그녀 자신이 얘기 하는 도중에 알게 된 것 전부다.
내일 우리가 가려는 곳, 잠비아의 얘기도 그녀가 설명을 하였다.
잠비아에서는 현지인 가이드를 쓰기에 그녀가 하는 얘기에 귀를 귀울였다.
 
호텔은 시내 중심가, 그것도 제일 화려한 거리에 있었다.
재미 있는건 호텔 내부에서(10층에서)엘레베이터로  바깥의 거리로 직접 나갈 수 있으며 3층 부터가 상가다.
각종 명품들이며 익히 알고 있는 메이커들의 상점들이 즐비한 삼층에서 부터 일층으로 내려오면 만델라 광장이 나온다.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엉켜 혼잡한 곳이다.
가이드는 호텔서 부터 이곳까지 안내를 하였으며 한 시간 뒤, 저녁을 먹게될 식당을 가르켜 주었고 그 다음 부턴 자유시간이다.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으면 나와 내 룸메이트 또 오교수와 그녀의 룸메이트인 배여사 까지 네명은 함께 뭉쳤다.
일단은 년령대가 비슷하여 여행 내내 우리 네 사람이 행동을 같이했다.
나이 차는 제일 적은? 나부터 제일 많은 사람이 나와 다섯살 차이였다.
두 사람은 그 중간이었고...
 
우리 네 사람은 자유 시간을 주어도 별 할 꺼리가 없었다.
젊은 사람들 처럼 쇼핑에 눈을 반짝이는 것도 아니고 별, 갈곳이 없었던 거다.
돌아다니다가 혹시라도 길을 잊으면 더 애를 먹겠고...
하여 만델라 동상 앞에서...(만델라 특유의 포즈로 제작된 동상임) 만데랄의 포즈 그대로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겠다는 오교수의 사진을 찍어 주고는 앉을 곳을 찾았다.
그동안 참으로 많이도 다녔던 결과? 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일까?
우리에겐 기다리는 한 시간이 고역? 이었던 거다.
식당으로 미리 들어가 앉아 보려고 식당으로 가 기웃거렸더니...유명한 곳이라 하더니...왠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아무리 예약이 되었다 한들 현재 상황으론 미리 들어가 앉을 자리가 없었다.
헐수 없이 다시 나와 앉을 곳을 찾은 게...어느 남자가 앉앗다 일어난, 나무 벤치.
그것도 두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공간을 셋이 겹쳐 앉으니 한 사람은 다시 저 쪽 다른 곳에...
생각해 보니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예전 같으면 자유시간 한시간이 부족 하리 만큼 싸돌아 다녔을 텐데.
언제 부터인가 이렇게 주는 자유시간에 그저 한곳에 앉아 있기만...


만델라 동상


동상 뒤편의 계단


만델라 광장 안의 식당과 커피숍
 류시화의 인도 여행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에서의 한 귀절이 생각났다.
배낭자 숙소에 머물면서 작가는 매일 아침만 되면 부지런히 배낭르 메고 나가 하루 죙일 싸돌아 다니다가 지친 몸으로 저녁이면 들어오곤 하였단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숫고의 주인이(인도인) 그에게 "당신은 그렇게 매일 다니면서 무엇을 보았냐고, 꼭 그렇게 돌아 다녀야만 많은 것을 보냐고...하면서 한 곳에 앉아서 보는 것도 많은 것을 얻는다" 라는 말을 하더란다.
그 말을 들은 다음날, 작가는 인도문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거리를 구경하였다고...
그러면서 깨닫고 앋은 것이 매일 돌아다닐때 보다 얻은게 더 많았다고.
그 귀절이 떠오르면서 그 때부턴 앉아서 하는 관광이었다.
사실 사람구경 만큼 재미 있는게 또 없다.
더구나 이곳엔 무지 많은 다른 인종들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니 시간이 빨리 갔다.
일행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였고 예약된 식당으로...
유명한 곳이라더니 실내가 꽊 찼다.
고깃집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요리가 유명한 곳이라고.
갈비찜을 시킨 사람들 앞엔 오지 항아리 속의 갈비찜이 우리나라 요리 방식과 똑 같다.
갈비찜 안에 통 감자도 몇개 들어있고.
나는 돼지 등갈비 구이를 시켰다.
이것 역시 양념되어 구워진 건데 입맛에 꼭이다.
다들 너무 많은 양에 남긴것들이 아까웠다.
 이렇게 하여 오하네스버그에서의 반나절이 마감되었다.
상가를 거쳐 호텔로 들어가는데 룸 키인...카드로 입력을 하여야 호텡로 들어가는 문이 열렷다.
엘레베이터도 마찬가지였다.
룸 키를 끼워야 작동이 된다.
아마 상가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그런것 같다.
 
카드 키를 끼우고 숫자 4를 눌렀고 엘레베이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잘 주무시라는 인사를 나누고 나와 룸 메이트인 이 선생님...우리가 먼저 내렸다.


23,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잠비아로...

 
  이동하는 스케줄 상 몇 번이고 들리게 되는 요하네스버그.
빈부의 차이가 커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불안한 나라 이기도 하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이어서(금과 다이아몬드등 보석류의 광산이 많았음)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람들이 몰려 들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아프리카 전체에서 가장 번화한, 현대적인 도시이지만 그 만큼 치안은 불안하다.
암튼 하룻밤을 자고 다시 공항으로 나가 이번엔 잠비아 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시간 정도 소요된 비행기가 잠비아 공항에 도착하고 짐을 찾아 버스로 가려는데...
현지인 남자 몇 명이 전통복장 (윗옷은 안 입고 아래만 치마로..) 을 하고 우리 앞을 막는다.
아니, 막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나오자 북을 두드리고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추어 대는 거였다.
환영의 인사였지만 그들 앞엔 돈을 집어 넣는 바구니가 있었다.
그들 모습을 사진 찍어도 돈을 내야 하고...
어쩌랴, 일단 오불 짜리 하나를 넣고는 카메라를 들이대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찍으라고.


공항에서 롯지부터 갔다.
야외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정원 앞을 건너...저 앞쪽으로 빅토리아의 물줄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물 양이 풍부할대면 이곳 까지도 물 보라가 날린다고.
이곳 잠비아에서 집바브웨이 쪽으로 건너가는 다리 (국경통과하여 건너가게 되어있다) 도 보였다.
또 그 다리 밑 계곡으로 번지 점프를 하는 것도 보였고.
미리 준비해 놓은 점심 메뉴는 야채 스프에 닭고기와 삶은 통감자...
맛이 특별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입에 안 맞는 것도 아니었으며 주는 대로 다 먹었다.
반면 오교수의 룸 메이트인 배여사가 말라리아 약 먹던것 휴유증인지 통 먹지 못하고 끙끙.
도저히 먹을 수가 없으나 배는 고프고...
음식을 가져온 웨이터에게 다른 것 다 필요 없으니 오로지 계란 후라이나...하나 해다 달라면서 자기 몫인 닭고기 접시를 뿌리쳤다.
헌데 문제는 주방에 알아보니 계란이 다 떨어졌다나...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런 큰...호텔에서, 그것도 우리 뿐이 아니라 유럽인들로 북적이는데...
우리의 인솔자가 다시 웨이터에게 정중히 부탁을 하였건만 똑 같은 답이었다.
헐수 없다..하며 감자와 야채 샐러드만 끄적거리고 있었는데 옆 호텔서 빌려 왔는지,  아님 그 사이 사왔는지...계란 후라이 하나가 담긴 접시가 배여사 앞으로...
한바탕 헤프닝을 치루고 일단 빅토리아 호수로...


 이 다리 왼쪽이 짐바브웨이다.


잠비아와 짐바브웨이 두 나라에 걸쳐 있는 빅토리아 폭포의 진 면목을 보려면 두 나라를 다녀와야 한다.
마치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를 아르헨티나 쪽으로 가서도 보듯이...
2000년에 왔을때, 빅토리아폭포를 남성적인...웅장함을 느겼다.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 군데의 폭포중(나이아가라와 이과수) 이곳이 처음이었고 일년 후 이과수 푹포를 갔었다.
이과수는 빅토리아와 달리 섬세한 여성 쪽이었다.(내 느낌으로는...)
그리고 또 몇 년후 이번엔 남편과 같이 카나다를 동부를 여행때 나이아가라를 갔었다.
이과수가 나이아가라보고 하는 말이..."너도 폭포냐?" 하였다고 하더니...그랬다.
먼저의 두 푹포보다 범위며 물이 떨어지는 폭이며...비교가 안되었다.
 
선교사였던 리빙스턴이(영국인) 이 폭포를 발견 하기 전, 현지인들은 폭포에서 떨어지며 날리는 물보라가 귀신이라고 생각하였단다.
그 계곡을 가면 귀신이 있어 물을 뿜어 댄다고...
리빙스턴은 이 폭포르 발견하고 자기네 나라 여왕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 폭포라 명명하였다.
이곳에 가려면 필히 우비를 챙겨야 한다.
폭포를 보는 곳은 물이 떨어지는 반대 편, 우거진 나무들이 있는 숲속 길이다.
그 길을 죽 걸어 가면서 폭포를 보게 되는데 물보라가 퍼져 옷을 적시게 되는 거다.


리빙스턴 동상


계곡으로 떨어지는 요란한 굉음과 물보라가 뿜어대면서 무지개가 걸렸다.
몇 군대에 그렇게 무지개가 걸린 것을 보는 재미...그 재미에 한 가지 더 한것이 있었다.
반대편, 즉 짐바브웨이 쪽, 물이 내려오는 폭포의 위쪽으로 꽤 넓은 공간이 있다.
우리가 걸어가면서 보는 곳과 정 반대인 쪽인 거다.
그곳에 여러명의 유럽인 남 녀들이 벌거 벗고 있는 중이었다.
물로 뒤어 내릴 처지는 아니고 (너무 가파름)...물이 떨어지는 근처에나마...몸을 적시고 싶었던 모양이다.
워낙 따가운 햇살에 기온이 높으니 덥기도 하였고 워낙 그들은 벗는 것을 좋아하니...


빅토리아폭포에서 나와 잠베지 강으로 갔다.
이 강은 아프리카에서 네 번 째로 긴 강으로 길이만 하여도 2,700Km 에 이른다.
짐바브웨이와 잠비아를 관통해 인도양으로 흘러드는 이 거대한 물속엔 '나미야미'라는 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사자의 머리와 뱀의 몸을 가진 신은 잠베지 강을 다스리며 인간에서 평화와 복을 가져다 준다고...
저녁, 일몰의 잠베지 강은 아름답기로 이름 나있다.
이곳, 빅토리아폭포로 오는 모든 관광객들이 똑 같은 코스로...저녁이면 이 잠베지 강에서 뱃놀이를 한다.
일행 끼리 배 한 척 씩을 빌려타곤 일몰에 잠기는 잠베지 강을 보며 배 안에 준비된 와인잔을 높이 들고 부딧친다.
 
미리 대기 하고 있던 배에 오르려 하는데 이곳에도 역시...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총 복장을 한채 우리를 기다리던 한 가족.
어린 아이 까지 있다.
어쩔 수 없이 또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아이이겐 사탕을 건네고.
 

 


강은 길고 아름다웠다.
식어가는 햇살이었지만 강물을 반짝이는 보석처럼 만들어 놓았다.
강 가엔  쓰러진 고사목들이 엉키어 있기도 하였고 새들도 배를 따라 몰려들었다.
강 기슭엔 하마도 보였고 악어 떼들도 나타나곤 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강 주변의 나무 숲들은 불 타올랐다.
고즈녁하고...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마치 조용히 흐르는 강과 다를바 없었다.
간혹 그 정적을 깨는 부스럭 소리...강 기슭에 나타난 몸집 커다란 하마였다.
물에서 나와 뭍으로 올라가는...
혹 먹을 것이라도 찾는게 아닐까?
그 때쯤 내 배의 시계도 저녁 식사 시간임을 일러준다.
일행들은 얼마간의 고요와 정적에서 깨어나 호텔로...
이 호텔은 오래전 영국의 귀족 들이 빅토리아폭포를 보러 와 묵던 곳이란다.
아주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분위기의 호텔이다.
근처의 다른 호텔들과 완연히 차이가 나는...
이날 저녁 우리 일행의 여자들은 모두가 귀부인이... 되었다.



24, 걸어서 짐 바브웨이로 넘어가기 (아프리카 여행 일정의 마지막 날)

 
  바쁜 일정의 아침이다. 
2011년, 11월에 출발하였던 여행은 오늘을 끝으로...달을 넘겨 12월이 되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 12월 8일 저녁이 된다.
일단 오전에 오늘의 일정, 짐바브웨이로 넘어가 그 쪽의 빅토리아폭포를 보게 되는데 어제와 마찬가지로 트레킹을 하면서 걷기도 하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위에서 폭포 주변을 보기도 한다.
 
아침을 먹는 식당은 어제 낯과 달리 본채 건물이아니라 저 쪽~~ 앞에 따로 떨어진 건물이었다.
폭포와 계곡이 잘 보이는 경고나 좋은 장소에 오로지 식당 건물 하나만 있다.
자고 일어난 룸 에서...그 식당 쪽으로 걸어 가는데 공기가 상쾌하다.
이미 종업원들이 정원을 쓸기도 하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관리를 하고 있는데 그 사이로 원숭이들이 뛰어 다니며 장난을 치기도...
그것 뿐 아니라 우리 일행 중에서도 부지런한 몇 분이 이미 산책을 하는게 보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넓은 정원을 거쳐 비교적 좁은 길로 접어 드는데 작은 갤러리가 있다.
뭐, 특별한 갤러리는 아니고 풀 밭에 조각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거다.
그래도 식당 입구에 들어서면서 그런것을 보게 되니 마음이 차분해 지기도...
역시나 야외의 식탁 주변엔 작은 연못...봉긋이 올라온 연 꽃 봉우리가.
 


 


일단 헬리콥터 타는 곳으로 먼저 이동했다.
이곳에서 일행 열 일곱명은 세 팀으로 나뉘어야 했다.
단 무게를(사람들의...) 조정하여 거의 같은 수준으로 세 팀을 만드어야 하는 거였다.
그렇게 나누기 위해 우리가 올라가야 하는 무지~~큰 저울이...
얼마나 큰 저울인지 거짓말 좀 보태서 경차 한대 정도가 올라 갈 만큼이다.
암튼 대충 눈 짐작으로 세 팀을 나누고 다시 한 사람씩 저울에 올라 가기로...
난리가 났다.
남자 분 세 분만 빼고는 다들 그 저울에 선뜻 올라가려 하지 않는 여자들.
저울이 커서 감출 수도 없는 숫자판이 다 보이는 거다.
일단은 제일 먼저 탈 팀...사람들만 저울 앞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멀찌 감치 떨어져 저울 쪽 안보기.
그 팀 통과...
두 번 째 팀은 좀 모자란듯 할텐데...
왜냐면 4, 50대 초반의... 주로 날씬한 편에 속한 여자들이다.
다음 내가 속한 나머지 팀.
64인 나로 부터 세 명의 육십대 후반이 더 있었고.
나머지 두 여인중 한 사람은 오십대였고 그녀의 룸 메이트는 40인 미스였다.
헌데 그 미스가 올랐을때 모두들...한 마디 씩.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였다.
우리 육십대 들과 맞 먹었으니...
워낙 낙천적인 성격의 전문직인 그 아가씨..."그래도 그렇게 살 쪄 보이지는 않잖아요?" 하면서 씩씩하게 헬리콥터를 향해...
그랬다.
보기엔 그렇게 까지 킬로가 안 올라 갈것 같은데...
오전, 그 헬리콥터에 오르는 덕에 한바탕 웃음의 헤프닝이 벌어졌던 거다.
 


 


위에서 보는 폭포는 어제의 그 큰 규모가 아니었다.
워낙 넓게 퍼져 있어 적은 물줄기의 가녀린 폭포였다.
폭포로 흘러들어가는... 주변 강물과 어루러져 여러 군데의 호텔 건물들 역시도 장난감 같이 보였다.
30여분을 그렇게 돌고는 다시 이동한 곳이 잠비아에서 짐바브웨이로 넘어가는 국경 초소다.
여기서 출국 심사를 받고 걸어서 다리를 건너 다시 짐바브웨이서 입국 수속을 하여야 한다.
다시 잠비아로 돌아오면서 똑 같은 절차를 거꾸로 받아야 함이고.
이곳 국경 초소 역시 2000년 왔을때와 하나도 변한게 없었다.
양 손에 혹은 머리에 커다란 보따리를 얹고 들은 여자들에 반해 남자들은 거의 다 빈손이다.
이곳 아프리카에 와서 본 여자들은 다 이렇게 바쁘게 보였고 반면 남자들은 한가하게 보였다.
그저 떼로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이나 하고...
 


잠비아와 짐바브웨이 사이에 난 이...다리로 국경을 통과하게 된다.
 


어제와 반대로 보는 폭포다.
어제 우리가 볼때 어느 장소엔가에서 벌거벗으려고...하던 유럽인들이 모여 있던 곳이기도 하다.
거센 물은 저~~아래 깊은 계곡으로 요란한 굉음을 내며 쏱아지고 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오전시간때라 그런지...폭포의 물소리가 더 요란하고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힘차게 떨어지다가 오후가 되면 저절로 지쳐서 힘이 약해 지는 건가?
그런건 아니겠지만...오전시간 때라 그런지 주변의 다른 것들도 다 싱싱하고 힘차보였던 거다.
늘어져 보인는건...이른 아침 부터 나무 그늘에 앉아 잡담과 무슨 놀이엔가에 빠져 있던 현지인 남자들 뿐이다.
 
이런 저런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현지인 가이드가 우리들을 찾고...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여 한다는 거다.
비행장으로 가는 길이 혹시라도 막히면 시간 안에 도착 못한다고...
 


헬리콥터에서 내려다 본 빅토리아 폭포 주변
 


잠비아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가 그곳서 다시 홍콩으로...인천으로 연결되는 거다.
서울서 부터 함께 한 인솔자는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기다려야 되는 시간을 될수 있는 한 줄이려고 무지 애를 써서 비행 시간을 맞추었다고 하였다.
헌데 그 줄인 시간, 즉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너무 짧게 하다보니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생긴거다.
그 얘긴 내일...
 

25,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아프리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여행이 좋은 것 중에 하나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거다. 
아무때고 어느곳을 해매다 들어가도...우리 집, 여기가 제일 좋구나...하는 느낌이 현관문을 열며서 부터 확~~들어온다.
여행지에서는 마지막날이면 무지 아쉽고 어떻게 하루만이라도 더 연장이 안될까 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행기...내 좌석에 앉고 나서 부터는 왜? 그리도 시간이 느린지...
빨리 집으로 들어가고픈 마음에 콩당콩당...가슴이 뛰기 까지.
 
예상치 않은 일이 현지에서 생기면 여행 주관하였던 여행사 측은 당황하고 수습하느라 쩔절 매다 못해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 년 전인가? 갑작스런 유럽 곳곳의 파업으로 현지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며칠 더 머물게 되었고 비행기 표를 구하려고 공항에 나가 밤을 새웠다는 인솔자의 말을 들었었다.
나는 그 여행에 동행하지 않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왜 나한테는 그런 행운? 이 안오는지...하고 아쉬워 했었다.
헌데 딱 한번 그런 경우가 있을 뻔 했다.
작년 봄, 안데스 산맥 종단의 마지막, 이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였다.
칠레의 산티아고 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다.
그곳서 다시 미국의 아틀랜타, 다시 인천으로 연결되는 비행기표를 예약해 두었으니 시간을 맞추어야 했고,.
중간 기착지인 산티아고에서는 하룻밤을 잘 호텔 예약도 해 놓았고.
헌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행기가 안 뜬다는 거였다.
노조의 파업으로.
난리가 났다.
저녁을 먹는 식당에서 그 소식을 들은거다.
식사후 곧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인솔자와 현지 가이드 서울의 여행사 측...서로 전화가 오가며 비상사태가 걸린거다.
제일 급한건 우리 일행 24명이 하룻밤 이곳에서 자야 할 숙소가 없는 거였다.
비행기는 언제 다시 뜰 줄 모른다고 했고...
애달아 하는 인솔자와 달리 주책 없이 몇 명은 환호성...그 가운데 나도 한 몫.
허나 금방 다시 인솔자의 안타까움에 묵묵히 속으로만 좋아라 하면서 잘 곳이 없으면 공항으로 가 노숙을 해도 된다고 ...모두들 한 마음으로.
허나 시내의 최고급 호텔로 가게 되었다.
비행기는 이곳으로 들어오는 것도 안 떳던 거다.
그렇게 되자 이곳에 무슨 학회인가 하는 일로 오려는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되고 호텔의 빈 방들을 구하게 되거다.
다행이도 이튿날 오전 비행기가 뜨게 되고 산티아고로 가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하룻밤 묵게 되는 것은 수포로 돌아갔고 곧장 아틀랜타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 비행기를 타는 것 마저도 시간이 촉박하여 간신히 탓을 정도였고.
 
다시 잠비아 비행장.
모두들 짐 가방 다시 한번 점검하여 티켓팅을 하고 가방을 부치고.
요하네스버그행 비행기에 올랐다.
순조롭게 가던 비행기가...아직 도착할 시간이 아닌데 멘트가 나오면서 하강이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이 비행기는 완행? 이었던 거다.
근처의 집바브웨이 공항에서 내릴 사람 내리고 탈 사람들 태우는...
요하네스버그 까지 갈 사람들은 그대로 앉아 있으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시간상 문제가 생긴거였다.
우리의 인솔자는 그런 비행기인줄 몰랐었고.
 
요하네스버그공항에 도착하여 눈썹이 안 보이게...땀을 흘리며...뛰고 또 뛰었다.
트랜스 하는 곳으로 빠져 나와 홍콩행 비행기 타는 곳으로 가는 길은 왜 그리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지...
숨이 턱에 받치도록 헉헉대며 도착한 홍콩행 티켓팅 하는 곳에 도착.
맨 앞서 도착한 인솔자가 우리 모두의 예약된 이 티켓을 건제주자 당황하는 직원들.
이미 비행기의 문은 닫혔고...우리 일행이 안와 다른 사람들을 태웠다는 거였다.
아직 비행기 이륙 시간은 아니었고 삼십분 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따지고 항의 하자 직원들이 비행기 안으로 무전을 치고 전화를 하고 인터넷을 들여다 보고 난리였다.
우리들의 좌석을 이미 오버 부킹해 놓았던 다른 사람들을 태웠으니...
어수선한 몇 분이 지나자 빈 좌석이 아직 몇자리 있다는 것이 판명났고 우리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잠비아 공항에서 부친 큰 짐가방 들은 인천까지 곧장 가게 하여 두었고.
 
그 상황에서 일행중 네 명이 비행기에 못 탔다.
자리가 부족했던 거다.
문제는...카운터 맨 앞에서 우리일행들 체크를 하며 통솔하던 인솔자는 비행기를 탔던거다.
미처 좌석이 모자란 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던 거다.
줄 선 차례대로 하다가 보니 네 명이 못타게 된걸 알지 못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일행 모두 (비행기에 탄...) 좌석에 앉고 나서야 그 상황을 알았던 거다.
다시 기내에서 전화로 카운터로 연결하여 알게된 상황은...하룻밤을 비행사 측에서 주선해 주는 호텔러 묵고 다음날이나 홍콩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고...
요하네스버그에서 홍콩행 비행기는 하루에 단 한편, 우리가 탔던 그 것 하나 뿐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처음엔 되게 좋겟다...하룻 밤 더 묵으면서 요하네스버그 실칸 돌아 다니고...
내가 뒤 쳐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게다가 남은 네 사람중, 두 여인은 영어가 능통하다.
미국사람들과 싸워도 이길 만큼의 수준인것을 알기에 그렇게 떨어져 남어도 불편 없음이겠고.
 
그렇게 네 사람을 떨어내고 오자니 인솔자의 얼굴은 어두웠고 서울 사무실과 줄 곳 통화가 오 가고...
홍콩에서도 기다리는 시간 없이 곧 바로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고 다음 날 새벽 도착한 인천공항.
짐 가방을 찾는 곳에서 일행들 모두 목을 쭉 빼고 눈 똑바로 뜨고 찾았건만 우리 일행 모두의 가방은 나오지 않았다.
잠비아에서 부친 가방,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이미 닫힌 비행기의 화물칸 문은 열리지 않았던 거다.
사람들만 겨우 탑승 할 수 있었던 거다.
헐수 없이 짐가방 도착 안함...을 접수 시키고 아주 홀가분 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마중 나온 남편...왜? 가방이 없냐고...
"당신 무거운것 들게 하지 않으려고..."
가방은 이틀 뒤에 집으로...현관 앞 까지 배달이 되었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제일 귀찮고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가 가방 끌러 빨래 꺼리 챙기고 제자리에 집어 넣을 것들 추리는 건데 이틀 동안 푹 쉬면서 편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궁금하였지만 꾹~~ 참고 있다가 그 중 한 여인에게 이메일로 궁금했던 당시의 사태를 물어 보았고...답을 역시 메일로 받았다.
그리고 그 여인들 중 두 사람은 지금 또 다른 곳을 여행중이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미처 한달도 되기 전에 라오스로 떠난거다.
그 두 여인 말고도 아프리카에 함께 했던 또 다른 세 분도  동행하였다고 한다.
부럽다 !!!
 

26, 아프리카 여행기를 끝내고

 
  황량한 초원...그 사이로 사파리용 짚차가 갈수 있는 길은 붉은 황토색의 먼지길.
간혹 바람이 불면 초원에 누워 있던 풀들이 서걱 거리며 흔들리고...
그 사이를 스치는 작은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동물들이 보였다.
차를 세우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차량 지붕에 뚫린 공간으로 길게 목을 뺀다.
눈 앞, 바로 가까이에 사자의 무리들은 누워서 딩굴기도 하고 저~~ 멀리서 혹시나 침범해 올 다른 무리들을 경계 한다.
차 안에서 사자무리들을 보고 있는 네 명의 여자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한 두 마디씩 한다.
"어쩜 새끼가 자는 것을 지켜 주고 있네..."
"와~~ 저 등줄기 좀 봐, 반지르르 하네."
 


 
그렇게 사자무리들을 한동안 감상? 을 하고 짚차의 기사는 황토색 먼지길을 또 달린다.
어디로 가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길이 난 대로 움직일 뿐이다.
곧장 가던 차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왼쪽 길로 접어든다.
마침 신호가 온 무전기의 안내에 따라 방향을 바꾼거다.
이렇게 초원엔 바로 눈 앞에 보이지 않지만 무지 많은 사파리 차량들이 제 각끔 돌아 다니고 있다.
그렇게 다니다가 어느 기사의 눈에 먼저 동물이 보이면 즉각 다른 차량들에게 무전으로 연락을 취하는 거다.
지금 있는 곳을 가르키며 어떤 동물이 나타 났다는 거겠지.
잠시 후 연락을 받은 차량들이 몰려 오고 무전을 쳐 주었던 차량은 먼저  떠나고...
 
이런 것들이 케냐의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좀 떨어진 탄자니아 지역임)  암보첼리, 세렝게티 옹고롱고로 에서의 동물사파리 였다.
문제는 어느 시기에 가야 얼만큼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냐는 거다.
정답은 없다.
그저 운이 쫗아 많이 보는 사람은 행운인 거다.
다행이도 이번엔 그 세군데에서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모든 동물들을 다 볼 수 있었다.
우려하였던 (동물들이 없을 까보아) 일은 기우일 뿐이었고 성공? 적으로 마친 사파리였다.
 


 


며 칠 동안 동물들 숲에서 동물 처럼...주는 대로 먹으면서 세상을 잊고 살다가 다시 문명의 세계로 나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 타운.
풍성거리는 도시의 물결이 며칠전의 초원을 금방 잊게 했다.
까만 사람, 하얀 얼굴들, 북적이는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속에서도 도시는 건재했다.
이것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피할수 없는 현실이고 받아들여 치루어 나가야 하는 일상들이다.
이곳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세속적인 일상에서 탈출 하고싶어 늘 인적이 없는 곳으로 떠나곤 한다.
한편으론 내가 처해 있는 곳과 전혀 다른 세계를 맞보고 싶은 유혹도 있어서 겠지만...
암튼 케이프타운에서 닷새를 보내야 했다. (나미비아 입국비자를 그곳에서 받아야 했기에...)
흑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하라레 마을과 비교 되는 백인 부자들의 동네는 너무나 조용하여 마치 죽은 동네 같았다.
반면 하라레 마을은 들어 가지는 못하고 입구에 세워놓은 버스 안에서(우리가 타고 다니는 )만 들여다 보았지만 시끌 벅적한 소리와 사람들이 오가고..살아있는 동네였다.
그것을 비교 하여 보며 떠오른 유머...
어느 인간이 죽기전에 천당과 지옥을 미리 시찰? 하였단다.
천당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너무나 조용했단다.
반대로 지옥엔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놓고 서로 가겠다고 싸우고, 요란한 음악에 한쪽에선 화투판이 벌어지고...
그 남자는 나중에 죽어 지옥을 선택하였다고.
정작 죽어서 선택하여 간 지옥이 미리 보았던 그런 지옥이 아니란 걸 뒤늦게 알았지만...
하라레 마을을 보면서 그 유머가 생각났던 거다.
그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게 아닐까?
싸우며 미워해도 그 속에서 정이 쌓이고.
 


케이프타운에서는 갑자기 귀족이 된듯 하였다.
몇 군데의 와이너리에가서 우아?한 손으로 잡은 와인잔.
여행 가방 꾸리면서 그래도...하고 한 두벌 씩 집어 넣은 분위기 있는 옷들을 걸친 일행들은 목에도 귀에도 무언가를 매달고 챙 넓은 모자도 현지에서 구입해 쓰고...
세 시간 씩 걸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붉은 와인 색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예전의 보랏빛 꿈에 잠시 취하기도...
인도양과 대서양이 어우러지는 희망봉에 올라 세상을 다 잡은 것 처럼 떠들고 웃어도 보고.
반듯하게 잘라놓은 것 처럼 보이는 테이블마운틴에 오르면서 야생화들이 진 흔적을 보면서 한창 일때의 그 꽃들로 뒤 덮혔을 언덕을 상상도 해보며 저 아래로 보이는 넘실대는 바닷물에 취하기도.
 


 
며칠 그렇게 세속으로 나왔다가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수도사 처럼 다시금 몸과 마음을 다 잡고 도착한 곳, 나미비아.
처음 도착한 왈비스베이를 비롯하여 나미브의 나우클루프트국림공원의 소서수플라이, 데드플라이 듄 45등을 다녔다.
그곳들을 가면서 몇 시간씩 버스로 움직이면 보았던 길, 길, 또 길...
지평선과 맞닿은 듯한 끝없이 이어진 길...그리하여 신기루 현상 까지 보이는 길.
아무것도 없고 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다.
죽은 듯한 길에서 살아 움직이는 많은 것들을...
한편으로 너무나 쓸쓸한 길에서 공허함을 맞보았고 감탄과 탄식도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길에서 드디어 눈을 번쩍 띄이게 한 것, 붉은 모래 언덕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강열한 색의 대비를 보여주며 날카로운 경계를 이룬 삼각형의 한 쪽 면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모습은 한 점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끌려가는 것도 아닐터인데..그들은 무엇을 얻고저 그렇게 땀을 흘리며 오르는 것일까?
그건 올라간 후, 그 정상에 서 보아야만 알것 같아 우리 일행 모두도 발걸음을 재촉하여 한 점은 줄을 만들었다.
사진 작가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한다는 데드 플라이.
이곳에 발을 디디면서 어느곳에 눈을 고정할지...?
바닥은 마치 허연 소금이 굳어져 갈라진 것 처럼 보였다.
작년 봄에 다녀온 볼리비아의 소금 호수 바닥 같았다.
그 허연 바닥에 뿌리를 지탱하고 있는 고사목들.
잎도 곁 가지도 다 죽어 버리고 오로지 몸채만 보존? 하고 있는 고사목들이 군데 군데 있어 사진 작품을 만들어 주는 거다.
파란 하늘과 몇 가지 색의 모래 언걱괴 그 언덕 아래 허연 바닥엔 여기 저기 갈색의 고사목들.
그 사이 사이에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들.
오로지 죽어서 정지된 것들과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만이 있는곳이 데드플라이였다.
 


 

 


소서수플라이의의 밤을 어찌 잊을 까?
별을 쫒아 인적은 커녕 바로 코 앞의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길을 따라 걸었고.
초원 한 가운데의 적은 바위들이 있는 장소였다.
수 십개의 촛불을 밝혀 놓고 한 가운데는 장작불을 태우며 차려 놓은 저녁 뷔페.
바로 초원 한 가운데를 붉게 적시며 넘어가던 일몰 감상에 젖어 있던 일행들의 입에서 신음 소리 같은   탄성이 나왔다.
이 밤, 이 저녁이 나미브에서의 사흘을 마무리 하는 자리였다.
 


이번 여행은 감성과 감정을 적절히 조화시킨 것 같았다.
조용한 감성에서 지내가 다시 격렬한 감정이 차 올라 재빠른 행동으로 카메라 앵글을 맞추게 된 곳이 빅토리아 폭포였다.
이곳에서 일행은 온 몸으로 폭포에서 떨어져 날아오는 물을 맞아야 했다.
머리 부터 발끝 까지 물로 젖으며 몸으로 맞았고... 마음으론 거대한 계곡의 나락과 엄청남 푹포의 위세를 감탄으로 맞았다.
잠비아와 빔바브웨이를 넘어 다니며 청정한 물줄기 세례에 몸을 맞기고  이 물을 맞으면 왠지 행운이 올 것 같은 예감이...?
아니지, 이곳을 떠나 곧바로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옷을 적시면 안되지...
아프리카여행은 그렇게 감성과 이성으로 끝을 맺게 해 주었다.

 

***이 글을 끝내고 나니 왠지 허전한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