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이숙희-건축미술기행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12.07.11

  • 조회수 :

    2430

곧은 길과 굽은 길

이 글은 이숙희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이숙희님은 2012년 5월 4일부터 5월 14일까지 11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스위스남프랑스 건축미술기행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Ⅰ.작품과 명품
  ‘굽은 길에 그리움이 있다’ - 법정 스님 -

 모퉁이 너머의 길도 예측하기 어려운, 비효율에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불편한 ‘굽은 길’. 쾌적하고 안락하고 빠르며, 인내도 기다림도 필요 없이 정확한 수치로 드러내는 ‘곧은 길’.
 
‘굽은 길’과 ‘곧은 길’은 선(線)으로부터 야기된다. 수치에 따라 정확하게 그어 제 몸도 빈틈없이 채워진 기계적 선이 직선이라면, 그 나머지, 제 몸 안에도 여백을 끌어안고 있는 선이 곡선이다.
 직선의 수치는 기계문명을 이루고 물질의 풍요를 이루니, 그중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명품이다. 명품처럼 삶의 외적 모습에 간여하는 것 - 이는 문명이다. 여백을 끌어안은 곡선은 주관적 느낌이 다분히 개입된 단 하나의 작품을 낸다. 작품처럼 인간중심으로 삶의 내면에 관여하며 드러내는 정서 - 이는 문화이다. 작품은 내면의 울림으로 ‘느낌’을 드러내고, 명품은 돈의 수치로 ‘누림’의 욕망을 채운다.
 
‘굽은 길에 그리움이 있다’함은 ‘문화는 느끼는 것이다’라는 의미에 닿는다.

Ⅱ. 느끼는 것, 누리는 것

 올레길에 들러 보는 것은 누리는 것이고 올레길을 걸어 보는 것은 느끼는 것이다. 누리는 것은 직선의 문명행위요, 느끼는 것은 곡선의 문화행위이다. 사람은 발바닥 넓이만큼만 땅에 딛지만 딛지 않는 나머지 땅, 여지(餘地)가 있어야 바로 설수 있다. 순결한 흰색도, 일등도, 승리도, 성공도, 착함도 그 나머지 여백(餘白)으로 인해 드러난다.
 나의 존재도 채움만으로는 내 안에 채워지지 않는다. 내 안에 그윽히 품고 있는 나머지 여유(餘裕)가 비로소 나를 채워준다. 여지(餘地), 여백(餘白), 여유(餘裕) 같은 ‘나머지’들 - 일컬어 정서 - 를 머금고 문화는 자란다.
 여행(旅行)이 다 여행(餘行)은 아니다.

 
旅行, 들러 들러 목적지를 향해 지나며 들르는 행로(行路). 경탄과 추억조차 ‘느낌상품’으로 안겨주며, 거쳐 지나가는 여행은 누리는 문명행위이다.
 
餘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겨 자신의 느낌을 찿아 나선 행로. 굽은 길모퉁이에서 ‘그 나머지’ 하나로도 작품스러운 여행은 느끼는 문화행위이다.
 백두대간을 걷던 어느 시인이 말했다. ‘퉁퉁 부은 발가락 사이로 이는 바람은 예술이다’라고.

Ⅲ. 작품 그리고 명예
 
 
문명은 누리는 것, 문화는 느끼는 것
 문명과 문화의 만남은 환상적 궁합도, 심각한 상처도 된다. 문명의 대량화를 이용해 ‘느낌’을 집단이식 하고, 작품을 파헤치는 각종 설명회들, 문화의 굽은 길을 직선길로 포장하고, 글과 말로 작품을 밀어 내는 상처의 현장이다.
 
여행의 한계를 넘어가게 해주는 수없이 많은 여행 상품들 중에 오랜 세월의 여백에 오히려 불편한 값을 지불하는 여행. 여유와 여지를 충분히 끌어안는 여행. 문명의 날개를 달고도, 굽은 길 길목에서 나만의 느낌이 작품으로 남겨지는 여행.
 
‘굽은 길’과 ‘곧은 길’의 곡예 사이에서 ‘나머지’들의 소중함을 끌어안은 문명과 문화의 환상적 궁합, 작품 餘行을 꿈꾼다. 
 “테마세이투어” 당신이 나와 같은 땅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은 여행 내내 우리의 울림통을 울리며,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어 나아갔습니다. 당신 덕분에 이 땅에 문명과 문화의 환상 궁합이 이루어지니 ‘다행’이 아니라 ‘감사’ 합니다. 
 당신의 오늘이 있게끔 지켜 준 매니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부디, 당신이 그려가는 작품이 세월 속에서 명예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새삼 당신을 통하여 내가 문명중독자임을 깨달은 여행이었습니다.
                                                                                           [충남대 한문학과 이숙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