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호주 OUTBACK에 부는 바람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07.11.21

  • 조회수 :

    207

억겁의 세월 동안 남반구의 하늘을 떠받쳐 왔던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석양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평생에 한번 가보기 힘들다는 호주대륙의 오지 OUTBACK, 그 광활하고 삭막한 대지의 한 가운데에 우뚝 솟은 에어즈락을 마주한 우리 일행들은 와인잔을 손에 들고 각자 감상을 토로하고 있었지만 에어즈락에 고정시킨 눈길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지난 11월 FOR MANIA ONLY 상품의 일환으로 출발한 호주 OUTBACK 여행은 말없이 수만년의 세월을 변함 없이 지켜온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여행이었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사건과 사고에 얽혀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OUTBACK의 대자연은 시간도, 공간도 정지시킨 채 그저 침묵으로 만 존재하고 있었다.
지난 수 백 만년의 세월 동안 어김없이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어둠이 시작되고, 또 하루가 시작되는 자연의 법칙만을 되풀이 해왔을 에어즈락… 오랜 준비를 거쳐 부산을 떨며 머나먼 이 곳까지 날아온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 얻어내고 싶었지만 저 거대한 돌덩어리는 끝내 침묵만을 지키다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벼르고 별러서 찾아온 에어즈락은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왜, 무엇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의구심만 남겨 준 것이다.
그리고 이날 밤, 야외 BBQ 식사를 마치고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빛들이 혼란한 머리위로 쏟아져 내렸다.
다음날 새벽, 서둘러 어둠에서 깨어날 에어즈락을 만나러 갔다. 오늘은 좀 더 적극적으로 등성이에 올라 직접 에어즈락을 만져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어즈락은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등정을 거부했고, 우리들은 에어즈락 언저리의 애버리진 거주흔적을 배회해야만 했다.
이윽고 에어즈락의 허락이 떨어진 순간, 우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파른 바위사면에 붙어 정상을 향해 기어올랐다. 중간 중간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척박한 대지에 지평선만 아득하게 가물거릴 뿐 그 어떤 문명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을 모두 보겠다는 일념으로 정상에 오르면 오를수록 대지는 아득히 더 넓어져만 갔고, 그 넓이에 비례하여 우리는 더 작아져만 갔다. 그렇게 올라선 에어즈락의 정상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바람이었다.
오후에 킹스캐년으로 이동했다. 대지를 뒤덮고 있는 덤불숲의 이름 모를 가시나무 사이로 그저 아무렇게나 선을 그어놓은 것 같은 도로를 따라 달리고 또 달리는 동안 파란하늘에 피어나는 뭉게구름이 우리들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
이날 밤 킹스캐년에서의 하룻밤은 손전등에 의지한 채 텐트에서 보내야만 했다. 텐트 앞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빵을 굽고, 검게 그을린 냄비에 스프를 끓이면서도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우리일행들은 불과 며칠만에 너무나 쉽게 오지(奧地)에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이 곳에서는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눈치였다.
킹스캐년 트레킹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에어즈락에서부터 따라온 상큼한 바람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세월동안 깎이고 갈라져 협곡을 이루어낸 킹스캐년의 풍광 또한 절로 휘파람이 나오게 만들었다. 세월이 깎아놓은 아득한 바위 틈새를 걸으면서 ‘대자연의 위대함’이라는 상투적인 감탄사를 수도 없이 되뇌인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거칠고 황량했던 OUTBACK을 4일만에 빠져나와 시드니에 발을 내디뎠다. 불과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페라하우스 주변의 불빛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OUTBACK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실 여행 첫머리에 방문했던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격정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로 OUTBACK은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지난 여정을 정리하면서 OUTBACK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OUTBACK은 바람’이었다는 것이다. 에어즈락을 찾아가게 만든 것도 내 마음속의 바람이었고, 실제로 그곳에 존재하는 것도 바람이었다. 원주민 애버리진의 전설도, 길고 긴 세월의 흔적들도 모두 바람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호주 OUTBACK은 지금까지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가장 특별한 지역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바람이 불면 그리움에 열병을 앓게 될 것 같은 그런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