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2월 21일, 아직 채 동이 트기도 전에 5대의 지프차가 힘찬 시동을 걸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하단부 예멘의 Ramlat al Sabatin 사막을 횡단하는 450km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길도 없는 사막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다는 베두인의 인도로 지프차는 메마른 모래밭을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는 지프차의 헤드라이트만이 유일한 불빛인 캄캄한 사막에서의 질주는 지프차의 굉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잠들어 버린 듯 적막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여명이 밝아오면서 사막이 깊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곡선과 부드러운 모래언덕들, 그리고 광활한 사막의 아침기운에 의해 우리들의 감성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일시에 터져 나오는 환성과 함께 사막의 아름다움에 한껏 매료된 우리들은 지프차를 세우고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모래언덕 이곳 저곳으로 뛰어다니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 지프차가 출발했다. 육안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넘기 힘들어 보이는 가파른 모래언덕을 넘고 또 넘으면서 사구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고 모래톱에 빠진 지프차를 밀어내다 보니 시간은 자꾸만 지체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힘에 부친 듯 한 대의 지프차가 고장이 나 기사와 함께 사막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부터 사막은 황량하고 거친 모습으로 변해갔다.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이 작열하는 태양과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메마른 대지에, 이따금씩 나타나는 야생 낙타를 제외하고는 생명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입안에서는 자꾸 모래알이 씹혔다. 드디어 3,000년 전의 유적지인 샤브와에 도착해서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다. 피부를 꿰뚫는 햇살을 피하기 위해 할 수없이 허물어진 유적지에 돗자리를 깔았다. 유적보호도 좋지만 생존이 우선이다. 오늘의 점심은 우리들 스스로가 준비한 수제비,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식사 중에 또 하나의 지프차가 골골 앓는 소리를 내더니 엔진을 멈춰버렸다. 5대 중 벌써 2대가 제 기능을 못하니 갈 길이 막막하다. 남은 차량들도 자꾸만 오버히트를 해댄다. 사막 안에서는 어떤 통신 수단도 소용이 없어 다른 차량을 불러오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짐들을 지프차 지붕에 올리고 짐칸에 쪼그려 앉아 다시 출발을 했다.
사막의 끝은 영영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로 앞의 지프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는 땀 범벅이 된 온 몸을 덮쳐오고, 웅크린 팔다리는 저리고 쑤시다가 나중에는 감각마저 사라졌다. 사막의 초입부근에서 터져 나오던 감탄사와 노랫소리도 사라진지 오래고 차안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야말로 버티기 싸움이다. 그러던 중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엄한 사막의 일몰이 시작된 것이다. 뿌연 먼지 사이로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떨어지는 태양의 마지막은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다시 어둠… 이번에는 또 하나의 지프차 헤드라이트가 고장났다. 방법이 없이 앞차의 미등을 의지한 채 기어갈 수밖에… 밤늦은 시간에 세이윤의 호텔에 도착했다. 비로소 활짝 웃는 일행들의 얼굴은 도저히 문명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머릿속은 물론이고 코와 입, 그리고 귓구멍까지도 온통 모래투성이였다. 호텔은 그나마 물이 워낙 귀한 지역인지라 물마저 시원찮게 나왔다. 식당에 모여 앉았을 때, 의외로 많은 분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술 대신 물과 콜라로 건배를 나누었다. ‘걸프전에서 생존한 병사들’같은 모습이었다. 정말 치열하고 격렬했던 하루였다. 다음날 사막에 건설된 경이로운 유적지 시밤의 전경을 보기 위해 작은 언덕에 올라갔다. 서서히 어둠에 잠겨 가는 시밤을 바라보자니 어제 하루, 450km의 사막 횡단이 벌써 먼 옛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가장 힘들었던 하루였지만 또한 가장 잊혀지지 않는 하루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여행은 도전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