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 여행이야기

조윤주 - 청해성과 내몽고

  •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 작성일 :

    2015.08.10

  • 조회수 :

    2923

 
 이 글은 서울에 사시는 조윤주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조윤주님은 2014년 7월 15일부터 23일까지 9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청해성과 내몽고 여행을 다녀 오셨습니다. 글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월의 유채꽃여행

 -중국의 문원과 탁이산-
 
 산다는 것은 여행의 연속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는 끊임없이 여행을 한다. 때로는 목적지도 분명치 않고 예상할 수도 없는 여행일 때도 있다. 이즈음에는 가고 싶은 곳들을 미리 선별하고 사전 지식까지 챙겨가며 여행길에 오른다. 특히 사진의 세계에 입문한 후에는 좋은 촬영지를 겸하는 곳일 때가 더 많아졌다.

 “한 여름에 무슨 유채꽃 여행이야!” 처음엔 의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의 봄 풍경으로 각인 된 유채꽃이 중국의 문원과 탁이산(탁얼산)에서는 칠월 중순경에 핀다고 한다.

 문원, 탁이산은 주민 대부분이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회족자치구다. 치련산과 타반산이 마주보는 분지이며, 길이만도 100여리나 되는 고원지대이다. 1949년부터 유채꽃을 집단으로 재배하고 있다. 워낙 고원지대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4~5월에 볼 수 있는 유채꽃이 그 곳에서는 7~8월에 핀다.

 칠월에 유채꽃을 보기 위한 일정은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동서양의 문화중심지이며 실크로드의 시발점이자 종점인 서안 국제공항을 거쳐, 국내선인 청해성의 시닝공항으로 간다. 시닝에서 문원과 탁이산으로 가는 길은 나무 한 그루 볼 수 없는 평균 고도 2,800m의 홍토고원이다. 굽이굽이 고갯길은 강원도 대관령 옛길의 조상뻘 쯤 될 것 같다. 특히 3,800m의 고갯마루 긴 터널을 통과할 때는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300여km의 긴 여행을 하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도 일어난다.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다보니 용변이 급할 때는 관광버스를 세우고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으로 나눠 볼 일을 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해프닝을 겪으며 유채꽃이 만발한 넓은 땅 문원에 도착했다. 제주도 유채꽃밭의 수백 배 크기에 이르는 경관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유채의 황금물결을 이루니 중국식 표현대로 백리유채화해(百里油菜花海)가 아닐 수 없었다. 여름에 유채꽃을 보는 것은 가을에 냉동해 둔 홍시를 여름에 꺼내어 맛보는 느낌이었다. 가슴 깊은 곳까지 한 줄기 샘물이 흘러드는 듯한 짜릿한 전율과 함께 경이로움이 극에 달했다.
 
 작은 언덕 위 대판산(大板山) 전망대에서 바라본 끝없이 펼쳐진 환상적인 유채꽃은 눈 쌓인 치련산(해발4,000m)을 배경으로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대자연의 조화였다. 노란 유채와 짙푸른 청 보리를 바둑판처럼 번갈아 심어놓은 모양이 거대한 원색의 조각보 같았다. 유채꽃밭 사이사이에 붉은 기와와 흰 벽돌로 지은 집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듯하다. 언제 다시 이런 장관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나중에 열어보면 다 똑같은 그림인줄 알면서도 내 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초록과 노란색으로 채색된 유채꽃밭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지만, 가슴 한켠이 아련하다. 농촌출신으로서의 애틋함이었다. 넓은 밭을 갈고 씨를 뿌렸을 힘든 농부들의 애환에 아름답기만 하던 풍경이 고행의 성지처럼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문원을 뒤로 하고 탁이산의 유채를 맞이했다. 탁이산은 티벳어로 종무마유마(宗穆瑪油瑪)로 ‘이쁜황후’라는 뜻이다. 최근 사진작가들에 의해 알려지게 된 기련 산맥의 한 자락이다. 나무 한그루 없이 멸종 위기인 피뿌리 풀, 우리나라 백두산 정상에서나 볼 수 있는 구름국화와 두메자운, 에델바이스 등 진귀한 야생화들이 지천인 해발 3,600m의 높은 산이다. 붉은 사암이 오랜 세월을 지나 풍화와 퇴적으로 형성된 단하지모(丹霞地貌)라는 특이한 지질구조로 되어 있는 초원지대 이기도 하다.

  문원의 유채는 넓은 벌판에 펼쳐진 황록의 물결이었다면, 탁이산 유채는 붉은 지형이 약간씩 드러난 산등성이와 희귀한 야생초들이 함께 어우러진 아기자기함이다. 

  서하시대 만들어진 봉화대에서 황금색 전통의상을 입고 족두리를 한 회족소녀가 우리를 환영하는 춤사위는 자연과 잘 어울렸다. 꽃들 사이로 나 있는 농로를 걷다보면 어릴 적 고향에서 친우들과 잠자리채 메고 재잘거리며 걷던 논두렁길이 생각나기도 했다.
 황금바다와 같은 유채꽃밭의 정경을 계속 보고 싶은 맘 간절했지만,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여정은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문원의 기름이 중국의 온 거리에 흐른다’는 뜻의 ‘문원유만가류(門源油滿街油)’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 사용되는 식용유의 40%를 이 지역에서 생산하다 보니 비유해서 생겨난 말이다.

 유채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면 수확을 해야 하는 또 다른 노동이 시작된다. 광활한 곳 화려함 뒤에 있을 그들의 진한 땀방울이 유채꽃 속으로 배여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길 것만 같다.

 고담함을 잊은 회족들의 순박한 미소가 유채꽃 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