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터 여행은 바람과 함께 시작한다. 맨 처음 찾은 오롱고에서부터 그랬다. 이스터가 화산섬이라는 것을 말해주듯 하늘을 향해 커다랗게 입벌려 있는 오롱고 분화구는 얼마나 많은 용암을 분출했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만큼 웅장하다. 하지만 이 분화구보다 더 여행자들을 인상깊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매표소에서 분화구까지는 키 작은 초원길이다. 바람은 풀잎을 옆으로 뉘이며 무언가를 전해야 할지를 고뇌하는 듯 시종 여행자들의 귓가를 맴돈다. 그 옛날, 가장 가까운 섬에서 4,000㎞나 떨어진 이 절해고도에 바람 아니면 누가 찾을 생각이나 할 수 있으랴! 18세기초, 이 섬을 맨처음 발견한 서구인들은 그 날이 마침 부활절이라 하여 무성의하게도 이 섬의 이름을 그냥 ‘이스터’라고 정했다. 하지만 이것이 불행과 전설의 시초가 되고 말았다. 부활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스터는 그로부터 불과 140년 만에 라파누이라는 본래의 이름도, 그곳에 살던 5,000여명의 원주민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 와중에 역사의 단서가 될만한 문자도 없어졌다. 완전히 미스테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라파누이들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면 이스터는 그야말로 먼 옛날부터 이곳을 찾은 바람 외엔 아무도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모아이라 불리는 거대한 석상을 남겨 놓았다. 그것도 해안가를 따라 천여 개나….
불행히도 이 고립무원의 섬생활도 평화롭지는 못했던 듯 하다. 전설에 따르면 지배층인 장이족(長耳族)과 노예층인 단이족(短耳族)간에 부족전쟁이 나 모아이를 모두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스터의 모아이들은 대부분 여전히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복원이 아직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오히려 이런 모습이 이스터를 더욱 신비하게 하는 듯 했다. 모아이들은 높이 3~12m에 무게가 20t이나 나간다. 그리고 하나같이 다리가 없고 얼굴과 몸통만 있다. 이 모아이들은 대부분 라노 라라쿠라는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만들었다. 라노 라라쿠엔 아직도 수 백 개의 미완성 모아이들이 산기슭 이곳저곳에 무심하게 서 있다. 특히 이곳의 모아이들은 눈을 파놓지 않아 더욱 공허하게 보이는데 스산하게 부는 바람으로 인해 왠지 더 서글픈 감정이 든다.
섬 안쪽을 보고 있는 대부분의 모아이들과 달리 아후 아키비의 모아이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이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바다를 보며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이런 질문을 던져 보지만 모아이들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바람도 귀만 간지럽힐 뿐 끝내 침묵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람을 야속해 하며 아후 통가리키 유적으로 향한다. 이스터에서 가장 유명한 모아이들이 서 있는 장소다. 일렬로 늘어서 있는 15기의 모아이들은 위엄이 넘친다. 정말 그들은 왜 그곳에 서 있는가? 이 모아이들을 만든 석공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 엄청나게 무거운 모아이들은 어떻게 운반했으며, 어떻게 세웠는가? 몸체보다 무거운 붉은 모자는 또 무슨 재주로 저렇게 절묘하게 머리 위에 얹어 놓았는가? 이런 의문에 아랑곳없이, 그리고 너희들의 의문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모아이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모두 다 한곳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그 위로 또 다시 무심한 바람이 지나간다. |